<p class="바탕글">지난 달 내리 있던 일이다. 내가 실습 간 지 얼마 안 돼서 교과서를 벗하며 살 때다. 서울 왔다 가는 길에, 터미널로 가기 위해 일단 광화문에서 버스를 한번 내려야 했다. 광화문 뒤편 푸른 지붕 아래 앉아서 교과서를 고쳐 쓰는 노파가 있었다. 교과서를 하나 사 가지고 가려고 역사 교과서 하나만 달라고 부탁을 했다. 노파가 꺼내는 것이 교학사 교과서 같았다.</p> <p class="바탕글"><br></p> <p class="바탕글">“교과서가 이런 것밖에는 없습니까?” </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했더니,</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br></span></p> <p class="바탕글">“교과서 하나 가지고 불만이 그리 많소? 맘에 안 들거든 북한에 가서 사시우.”</p> <p class="바탕글"><br></p> <p class="바탕글">대단히 무뚝뚝한 노파였다. 검인정 기준을 흥정하지도 못하고 수많은 오류나 수정해 달라고만 부탁했다. 그는 잠자코 열심히 고치고 있었다. 처음에는 제대로 고치려는 것 같더니, 저물도록 이리 돌려보고 저리 돌려보고 굼뜨기 시작하더니, 마냥 그대로다. 내가 보기에는 그만하면 도저히 교과서가 아닌 것 같은데, 자꾸만 더 손 보고 있었다.</p> <p class="바탕글"><br></p> <p class="바탕글">인제 다 됐으니 그냥 고치지 말고 다른 책을 달라고 해도 통 못 들은 척 대꾸가 없다. 타야 할 차 시간이 빠듯해 왔다. 갑갑하고 지루하고 초조할 지경이었다.</p> <p class="바탕글"><br></p> <p class="바탕글">“더 고치지 않아도 좋으니 금성출판사 교과서나 주십시오.”</p> <p class="바탕글"><br></p> <p class="바탕글">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p> <p class="바탕글"><br></p> <p class="바탕글">“좌편향을 다 없애야 올바른 교과서가 되지, 생쌀이 재촉한다고 밥이 되나.”</p> <p class="바탕글"><br></p> <p class="바탕글">한다. 나도 기가 막혀서,</p> <p class="바탕글"><br></p> <p class="바탕글">“공부하는 사람이 좋다는데 무얼 더 고친다는 말이오? 노인장, 외고집이시구먼. 차시간이 없다니까요.”</p> <p class="바탕글"><br></p> <p class="바탕글">노인은 퉁명스럽게,</p> <p class="바탕글"><br></p> <p class="바탕글">“종북주의자는 북한 가서 사시우. 난 외교 하러 가겠소.”</p> <p class="바탕글"><br></p> <p class="바탕글">하고 내뱉는다.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그냥 갈 수도 없고, 차 시간은 어차피 틀린 것 같고 해서, 될 대로 되라고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p> <p class="바탕글">“그럼, 마음대로 해 보시오.”</p> <p class="바탕글"><br></p> <p class="바탕글">“글쎄, 재촉을 하면 점점 좌편향 된다니까. 교과서란 올바르게 만들어야지. 좌편향 되면 쓰나.”</p> <p class="바탕글"><br></p> <p class="바탕글">좀 누그러진 말씨다. 이번엔 고치던 것을 숫제 TV조선 위에다 놓고 태연스럽게 중동행 비행기 표를 확인하는 것이 아닌가. 나도 그만 지쳐 버려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 얼마 후에야 교과서를 들고 이리저리 돌려보더니 다 됐다고 내준다. 사실 이미 아까부터 교과서는 아니었던 종이쪼가리다.</p> <p class="바탕글"><br></p> <p class="바탕글">차를 놓치고 다음 차로 가야 하는 나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 따위로 정치를 해 가지고 정치가 될 턱이 없다. 사람 본위가 아니고 제 본위다. 그래 가지고 아버지만 되게 부른다. 인권도 모르고 불친절하고 무뚝뚝한 노파다.’ 생각할수록 화증이 났다. 그러다가 뒤를 돌아다보니 노파는 태연히 허리를 펴고 재래시장을 바라보고 섰다. 그 때, 바라보고 섰는 옆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각하다워 보였다. 부드러운 눈매와 국모 육영수 여사를 닮은 모습에 내 마음은 약간 누그러졌다. 노파에 대한 멸시와 증오도 그가 재래시장을 바라보자 감쇄된 셈이다.</p> <p class="바탕글"><br></p> <p class="바탕글">집에 와서 교과서를 내놨더니 아내는 이건 국정화 교과서라고 야단이다. 검인정 교과서보다 참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국정화 교과서가 더 좋다는 생각이 들지를 않았다. 그런데 아내의 설명을 들어 보니, 교과서 전체를 보면 좌편향 되어 있다는 기운이 오고, 올바른 역사를 가르치기 위해 지금 한번 바로잡고 가야 한단다. 한국식 민주주의에 요렇게 꼭 알맞은 교과서는 좀체로 만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집에 있는 TV를 고물상에 팔아넘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p> <p class="바탕글"><br></p> <p class="바탕글">옛날 교과서는 그랬다. 제주 4.3 항쟁은 폭동, 군사 독재는 구국의 결단, 광주 민중항쟁은 북한의 소행이었다. 학생들의 눈으로 보아서는 그것이 사실인지 진실인지 알 수가 없다. 단지 교과서를 믿고 공부하는 것이다. 그게 애국이었다. 지금은 그럴 일이 없다. 어느 교사가 옳지도 않은 역사를 가르칠 리도 없고, 또 잘못된 역사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학생도 없다. 옛날 독재 정권들은 자신들이 보기에 아름다운 역사를 만드는 데 최선을 다했다. 그렇게 순수하게 심혈을 기울여 가스통 할아버지들을 만들어냈다. </p> <p class="바탕글"><br></p> <p class="바탕글">이 교과서도 그런 심정에서 만들었을 것이다. 나는 그 노파에 대해<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서 죄를 지을 것 같은 불쾌감을 느꼈다. 나는 그 노파를 찾아가서 시바스리갈이라도 대접하며 진심으로 이야기를 나누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난 토요일에 상경하는 길로 그 노파를 찾았다. 그러나 그 노파는 우리를 만나지 아니했다. 나는 광화문 앞에 멍하니 서있었다. 내 마음을 전할 길이 없어 안타까웠다. 그러다 문득 광화문 서쪽 너머에 궁정동 쪽을 바라보았다. 아, 그때 그 노파가 재래시장이 아니라 저 궁정동을 보고 있었구나. 열심히 교과서를 고치다가 유연히 그 헌정 대상의 영혼이 계실 저 곳을 보고 있던 거룩한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무심히 ‘수신제가 치국평천하(修身齊家 治國平天下)’라는 구절을 되뇌었다. 문득 40년 전 교과서 고치던 노인의 모습이 떠오른다.</span></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