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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무명논객
국회 내의 소위원회를 구성하는 것을 골자로 한 합의안을 바탕으로, 철도노조의 파업 철회는 이제 사실화된 듯 하다. 징계를 하지 않겠다는 내용도, 수서발 KTX 자회사 면허 발급을 취소하겠다는 안도 철회되고, 새누리당이 위원장으로 있는 국회 소위가 철도 민영화에 관해서 어떤 목소리를 낼 수 있으며 어떤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지는 사실 크게 기대하는 바가 없다. 다만, 이 타협 정국에서 민주당이 어설프게 개입했다는 것은 화가 나는 부분이다.
이에 관해 평가가 엇갈리는 듯 한데, 하나는 정당 민주주의를 옹호하는 자들의 전형으로서, 사회적 논제에 관하여 정당이 그것을 수렴하고 국회 차원의 공론으로 올리는 역할을 수행했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민주당의 기회주의적 태도를 비판하는 자들이다. 두 가지 상반된 평가와 주장들 중, 민주당이 정치력을 발휘하여 중재에 성공했다는 평가는 동의하기 어렵다. 그 이유를 들자면 다음과 같다.
첫 째, 민주당이 철도 파업 정국을 맞이하여 구체적으로 발휘한 정치력은 사실 전무하다. 그 동안 민주당은 철도 민영화에 관하여 크게 논란으로 삼은 바가 없으며, 나아가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총파업에 돌입하는 초유의 사태를 맞이하기까지 민주당은 미온적 태도로 일관하였다. 그들이 사회적 논제들을 국회로 올리고, 파업 정국을 연착륙시키며 중재에 나선 것은 사실 칭찬 받아야 할 일이 아니라 당연히 그래야만 하는 것으로 취급받아야 한다. 그마저도 민주당 의원인 박기춘은 뉴스에 나와서 한다는 말이 “연말에 국민들에게 선물을 드리고 싶었다”라는 얼빠진 소리였다. 자기들 입장에서는 타협에 성공했고 사태를 해결했으니 좋은 것 아니냐는 생각이겠지만, 사태가 해결된 뒤의 책임은 시민사회가 떠안아야 한다. 둘 째, 사태를 중재하기 위한 민주당의 정당으로서의 노력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 타협 정국이 구체적으로 공개된 바도 없으며, 단 3자 대면만으로 어설프게 진행된 타협안은 민주당이 과연 ‘정당으로서’ 사태 중재에 나선 것인지 의심스럽게 하는 부분이다. 무릇 정당이라 함은, 시민사회와의 유기적 연대가 필수적 요소로 자리 잡아야 하며, 시민사회와 유리된 정당은 오로지 정치계급만을 양산하는 직업군에 불과하게 된다. 만약 민주당 내부에서 사태를 해결함으로써 자신들의 정치력을 재확인하고자 하는 의도였다면, 민주당의 정치력이 거의 구제불능 수준이라는 것을 재확인한 계기였을 것이다.
분명히 이번 총파업 정국은 그 동안 정부와 언론의 ‘귀족노조’나, 혹은 ‘시민 불편’을 강조하는 프레임 싸움 속에서, 시민사회와 노동계가 결합하게 된 중요한 지점을 형성하였으며, 나아가 시민의식 역시 성장하였음을 보여주는 유례 없는 사건이었음은 분명하다.혼란만 남긴 채 일단락되긴 했으나 ‘안녕’ 대자보 시국과 겹쳐지면서 학생사회 – 시민사회 – 노동사회가 유기적으로 결합하게 된 이 사건은 분명히 정치학적으로나 철학적으로나 의미 있는 논쟁지점을 형성했음은 틀림 없다. 나 자신은 개인적으로 이 사건들의 총합을 두고 ‘진실을 획득하려는 주체들의 등장’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향락만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주체는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중요하다. 그 이전까지 시민사회를 오랫동안 지배해온 ‘주적’담론을 깨고, 시민사회를 실질적으로 위협하는 자들은 다름 아닌 극우파들이라는 점을 사람들이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점도 상당히 의미 있는 지점이다.
이제 남은 것은 앞으로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 논의라고 생각한다. 이미 파업동력은 상실되었고, 정념으로 불타올랐던 자들은 대오에서 이탈할 것이다. 사전에 준비된 바가 없이 맞이해버린 파업 정국이며, 유례 없는 노동계의 단결이 돋보인 사건이지만 정작 그 이후를 대비코자 하는 어떤 전술도 없었다. 김명환 위원장과 박기춘 의원, 김무성 의원 사이에 어떤 말이 오고갔는지는 모르겠으나, 노조 지도부가 대대적으로 후퇴를 감행한 상황에서 남은 것은 혼란 뿐인 파업 대오다. 민주노총 역시 총파업을 이어가겠다고는 했지만 여전히 상징적일 뿐이며 이렇다 할 위력적인 힘을 보여주었다고는 아직 생각하기 어렵다. 구체적으로, 시민사회와 연대된 지점으로부터 어떻게 정부를 압박할 것인가? 조금 냉정할진 모르나, 나는 이번 총파업은 박근혜 정부에 대하여 실질적은 위력을 행사한 것이 아니라 상징적 결합을 통한 압박에 불과했다는 생각이다. 사실, 가장 취약하게 공격 당하기 쉬운 것은 바로 이런 ‘상징적 압박’이다. 이러한 압박이 전술적으로 효과가 있으려면 그만큼 시민사회에 힘이 있어야 하지만, 이후 벌어질 전개과정에서 노조원들이 징계와 벌금에 시달리게 될 것이라는 점은 너무나도 선명하다.
이와는 별개로, 정당들은 정당 나름대로 반성을 많이 해야 할 것이다. 박기춘이 중재에 나섰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할 게 아니라, 그 동안 정당들이 얼마나 사회적 논제에 민감하게 반응했으며 그것을 올바르게 수렴하고 갈등을 중재하고자 불철주야 노력했는지 반성해야 할 일이다. 정당은 항상 시민사회와 유리되어선 안되며, 유리되는 즉시 그들은 오로지 정치계급으로서의 임무만을 수행한다. 권력의 암투장으로 인식되는 의회는 시민들에게 어떤 정치적 효능을 안겨주지도 못한다. 파업이 연착륙되며 사태가 해결 정국을 맞이하면 시민들은 자신들의 저항적 의사 표시가 충분히 정치적 효과가 있었다고 인식되어야 하지만, 이번 파업 해결 정국은 그러한 정치적 효능감은 없었으며 오로지 회한과 눈물만이 남았다. 이제 남은 건 징계와 벌금, 그리고 정부의 정치적 공세와 그에 시달리는 노조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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