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콜록.. 콜록.."<br><br><br>숨을 돌리는지 아니면 목구멍으로 빗물이 들어가서인지 모르게 태섭은 연신 기침을 해댔다.<br><br>박형사가 우산을 펴고 조용히 다가와 태섭과 나에게 쏟아지는 빗물을 막아 주었다.<br><br><br>"그날 다툼이 있었어요.<br><br>전에 말했듯이 승균이 형님이 돈을 제일 먼저 잃었어요. 콜록...<br><br>남은 둘이 치면 재미가 없잖아요. <br><br>그래서 그대로 판을 접으려고 했죠. <br><br>그런데 승균이 형님이 계속 돈을 꿔달라는 겁니다.<br><br>노름판에서 돈을 꿔주면 그냥 돌고 도는 거잖아요.<br><br>우리가 전문 타짜도 아니고...<br><br>안된다고 했죠.<br><br><br>그러자 갑자기 형님이 내 멱살을 잡더니 마구 윽박을 지르는 거예요.<br><br>지금 당장 내가 꿔준 천만원을 갚으라는 거예요.<br><br>옆에 있던 영주 형님이 말릴려고 했는데 소용없었어요.<br><br>어린 놈의 새끼가 도박에만 맛을 들여 돈 귀한 줄 모른다며 타박을 하는 거예요.<br><br>우리 셋 다 술에 취해 있었는데...무시하는 말을 들으니까 갑자기 분노가 치밀더라구요.<br><br>한 대 치고 싶었죠. 그러나 꾹 참았습니다.<br><br>다른 방법으로 형님을 놀려주고 싶었어요.<br><br><br>그래서 제가 제안을 한 겁니다.<br><br>그 폐가의 영정사진을 들고 오면 100만원을 빌려주는게 아니라 그냥 주겠다고......<br><br>그 날 엄청나게 비가 쏟아졌어요.<br><br>오늘처럼요.<br><br>약속이나 지키라면서 승균이 형님이 빗속을 뚫고 비틀거리며 그 폐가로 가는 겁니다.<br><br><br>저와 영주형님은 뒤를 좇았어요.<br><br>그 집 현관에 다다르자 승균이 형님이 정신이 들었는지 한 참을 머뭇거리는거예요.<br><br>역시나 예상했던대로였죠.<br><br>뒤따라 온 저희는 거기서 승균이 형님을 놀려댔죠.<br><br>그러자 승균이 형님이 열이 뻗치는지 갑자기 저의 멱살을 잡고 그 집으로 끌고 가는 겁니다.<br><br>제가 반항하며 발버둥쳤는데 그 형님이 자꾸 제뺨을 때리고 욕을 하면서 그 집으로 저를 밀어 넣는 겁니다.<br><br>그리곤 그 영정 사진 앞에 저를 세우더니, 내가 가져가는 걸 똑바로 보라며 윽박을 질렀죠.<br><br>화가 났죠.<br><br>저는 100만원어치 값어치를 하려면 혼자 와야지 왜 끌고 왔냐면서 승균이 형님의 밀쳐냈습니다.<br><br>벽에 잠시 머리를 부딫힌 형님은 죽겠다는 엄살을 부리는거예요.<br><br>그리고는 저를 고소해서 콩밥을 먹이겠다는 겁니다. <br><br>이건 뭐..사람가지고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br><br><br>그 날 술을 먹지 말았어야 했어요.<br><br>저는 분에 못이겨 그 집 창고 쪽에 있는 쇠기둥에 형을 묶어놨죠.<br><br>묶어놓고 보니까 그 차용증이 생각나더라구요.<br><br>그래서 형님의 주머니와 지갑을 뒤졌는데 종이 쪼가리만 있고, 그 차용증은 없는 겁니다.<br><br>귀신하고 노름이나 하고 있으라며 형님을 버려놓고 그 집을 빠져나왔어오.<br><br>영주 형님이 말리긴 했지만, 영주 형님을 강제로 이끌고 저는 그 집을 내려왔어요.<br><br>그 땐 정말 겁만 주려고 했던 겁니다. <br><br><br>사무실에 있다보니가 조금씩 술이 깨더라구요.<br><br>그 때 승균이 형님이 조금 걱정되는 겁니다.<br><br>1시간 쯤 지나서 저와 영주 형님은 다시 그 집으로 올라갔어요.<br><br>혹시나 죽지나 않았을까 걱정도 되더라구요.<br><br><br>현관에 다다르자 저희는 심장이 멎는 줄 알았습니다.<br><br>승균이 형님이 나무토막처럼 거실에 떡하고 서 있는 겁니다. <br><br>창고 쪽에는 청테이프 같은 것부터 낫이나 호미같은 녹슨 연장이나 도구들이 가득했는데...<br><br>형님이 한 손에 낫 같은 걸 들고 서 있는 겁니다.<br><br>그 모습을 생각하면 아직도 소름이 돋아요.<br><br>우린 그 형님한테 죽임을 당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거예요.<br><br><br>그런데 형님이 조금 이상했어요.<br><br>후레쉬로 비친 얼굴은 웃고 있는거예요.<br><br>그러면서 저희에게 그러는 거예요.<br><br><br>기다리고 있었는데 왜 이제 왔냐고....<br><br>그러면서 등 뒤에 감쳐 둔 영정사진을 저희에게 건네는 겁니다.<br><br>소름이 쫘악 돋았어요.<br><br>다리가 후덜덜 떨리고 말 한마디 꺼내지 못했어요.<br><br>사진을 내밀며 웃는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사진을 받아들지 않으면 죽일 것 같았어요.<br><br>우린 덜덜 떨리는 손으로 그걸 받아들었죠.<br><br><br>그런데 갑자기 형님이.....<br><br>저희에게 자기 딸을 소개시켜 주겠대요.<br><br>그러면서 안방으로 걸어 들어가는 겁니다.<br><br>아시다시피 승균이 형님 딸은 5년 전에 죽었거든요.<br><br><br>우린 본능적으로 형님이 귀신 들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br><br>우린 형님이 안방으로 들어간 틈을 타서 미친 듯이 그 폐가를 도망쳐 나왔습니다.<br><br>정말 미친 듯이요."<br><br><br><br>태섭의 눈빛에는 거짓이 섞여 있지 않았다.<br><br><br><br>"그 뒤로 형님이 조금 이상해졌어요. <br><br>생각보다 무척 밝아진 겁니다. <br><br>일도 열심히 하고, 술담배도 잘 안하고....특히 노름을 갑자기 끊었어요.<br><br>그런데 그건 잠시였어요.<br><br>시간이 지나자 형님 표정이 점점 어두워지는 겁니다. <br><br>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어요. <br><br>한 동안 끊었던 술을 다시 했는데, 정말 깜작 놀랐어요.<br><br>어느 날부터인가 소주 대여섯병을 그 자리에서 나발 부는 거예요.<br><br>그리고 우리와 같이 있는 시간이 조금씩 줄었어요.<br><br>자꾸 어딘가로 사라지는 겁니다.<br><br><br>어떤 작업자는 승균이 형님이 한 밤 중에 그 폐가로 들어가는 것을 봤다고 하더라구요.<br><br>뭔가를 잔뜩 싸들고 말이죠.<br><br>심지어 그 폐가에서 승균이 형님이 한 밤중에 누군가와 말을 나누고 있다는 소문까지 돌았죠.<br><br>그 집을 부수기로 했어요.<br><br>전에 말했던 것처럼 그 형님이 갑자기 나타나서 저희는 도망을 쳤고, 사장님과 다시 그 자리에 돌아갔어요.<br><br>그런데 거기서 저희는 이상한 말을 듣게 됐어요."<br><br><br><br>"무슨 말?"<br><br><br><br>"사장님이 형님을 달래려고 가까이 가는데...........<br><br>형님이 전혀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내며 사장님한테 말하는 거예요.<br><br><br>'이봐....홍선이 오랜만이네'이러면서요.<br><br><br>순간 사장님이 우리만큼이나 무척 당황해 하셨어요.<br><br>형님은 말을 멈추지 않았어요.<br><br><br>'그 때 자네 왜 그랬나? 왜 나를 죽도록 내버려 두었나' 이러잖아요.<br><br><br>더 놀랄 줄 알았는데 사장님 표정은 의외로 담담해지더라구요.<br><br>오히려 미소까지 짓더라니까요.<br><br>그러더니 '형님, 그 땐 미안했소이다' 이러면서 화를 풀고 승균이 좀 돌려달라고 하더군요.<br><br><br>저와 영주 형님은 서로 얼굴만 쳐다보고 무슨 상황인지 어리둥절 했습니다.<br><br>승균이 형님한테 승균이를 돌려달라고 하다니요.<br><br>사장님이 저 폐가와 연관이 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br><br>게다가 어떤 사람의 죽음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이 드니까 갑자기 사장님이 무서워졌어요."<br><br><br><br>"사장이 니들 입막음을 했겠군. 그렇지?"<br><br><br><br>"사장님이 우릴 협박하거나 윽박지르지는 않았어요.<br><br>단지 돈을 몇 푼 쥐어주면서 오늘 일을 발설하지 말라고 하셨죠."<br><br><br><br>"그래서 그 뒤로 황승균이는 어떻게 된거야?"<br><br><br><br>"사장님이 저와 영주 형님에게 번갈아가면서 승균이 형님을 감시하라고 했어요.<br><br>특히 저 폐가에는 절대 가지 말도록 명령하셨죠.<br><br>그 날 일당을 톡톡히 챙겨 주시니까 저희들이야 아쉬울게 없었죠.<br><br>폐가로 가려는 승균이 형님과 몇 번의 몸싸움이 있기도 했어요.<br><br><br>그렇게 며칠이 지났는데, 어느 날 감시를 하고 있던 영주 형님으로부터 전화가 왔어요.<br><br>승균이 형님이 집을 들락날락하면서 계속 소주를 사가지고 온다는 겁니다.<br><br>사장님은 무엇을 눈치 챘는지 급하게 승균이 형님 집으로 달려갔어요.<br><br>저 또한 영문도 모른 채 따라갔죠.<br><br>저희 셋이 승균이 형님 집에 들어섰을 때 이미 형님은 죽어 있었어요.<br><br>엄청나게 많은 양의 소주를 입에 들이부은 것 같더라구요."<br><br><br><br>"지금 하는 말 진짜야?"<br><br><br><br>"뭐든 조사해 보세요. <br><br>지문이 되었든, 족적이 되었든, CCTV가 되었든...<br><br>우리가 거기에 도착했을 때 형님은 이미 숨이 멎어 있었습니다.<br><br>사장님이 그 때 넋두리를 하시더라구요.<br><br>승균이를 최씨 형님이 데려갔다는 거예요.<br><br>밖으로 나온 저희는 사무실로 돌아가려고 했죠.<br><br><br>그런데 영주 형님이 승균이는 우리가 죽인거라며 탄식을 하는 거예요.<br><br>경찰이 오면 얘기하겠다고 하더군요.<br><br>저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어요.<br><br>승균이 형님 차용증을 경찰이 보면 분명히 저를 의심할텐데, 거기다가 그 폐가에서 있었던 일까지 말해 버리면<br><br>용의자 1순위로 몰릴 것 같았어요.<br><br>놀란 저는 입막음을 하려고 했지만, 사장님은 오히려 담담해 하셨습니다.<br><br>신고해 봤자 바뀌는게 아무 것도 없을거라고......<br><br>살아있는 이승의 사람이 명을 끊은 게 아니니, 경찰이 믿어주지도 않을거라고 말입니다.<br><br>그런데 영주 형님은 사무실로 돌아오지 않았어요.<br><br>불안 했어요.<br><br>미칠 것 같았습니다."<br><br><br><br>"그래서 황승균이 집을 털었군."<br><br><br><br>"어차피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가만히 있었어야 했는데....허허허.."<br><br><br>태섭은 기가 차는지 눈물섞인 웃음을 쏟아냈다.<br><br><br>"그런데 그 영정 사진은 황승균이가 다시 갖다 논거야?"<br><br><br>"뭔 소리예요? <br><br>우린 그 사진을 어디다 집어 던졌는지도 기억도 안 날뿐더러, <br><br>그 뒤로 그 거실의 영정사진은 보이지도 않았어요.<br><br>전에 말씀드렸잖아요!!"<br><br><br>"훗...이 새끼 봐라...."<br><br><br>나는 상의 주머니를 뒤져 촉촉히 젖어가는 담배 하나를 입에 물었다.<br><br>그리고 불을 붙인 후 길게 한 모금을 빨아들였다.<br><br>나는 태섭을 노려보며 아무 말없이 연신 담배를 빨았다.<br><br>빨고 내뱉고...다시 한번 빨고 내뱉고....<br><br><br>두려웠다.<br><br>뭔지 모를 두려움이 몰려왔다.<br><br>손이 떨려왔고, 정신이 혼미했다.<br><br>나의 이러한 소름끼치는 감정도 모른 채 박형사가 거들었다.<br><br><br><br>"김형사님, 폐가에서 영정사진 봤어요?"<br><br><br><br>나는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쉬지 않고 담배만 빨았다.<br><br>간혹 터지는 푸른색 섬광만이 주변을 밝히고 있었다<br></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