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포커를 치면서 기다렸지만, 시간이 40분을 넘기자 슬슬 걱정이 되었죠.<br><br>어떤 사람은 집에 도망쳤을거라 하고, <br><br>어떤 사람은 그 흉가 앞에서 기절해 있을거라 하고,<br><br>아니면 근처에 숨어서 덜덜 떨고 있을거라 하고....<br><br><br>그런데 저희를 더 걱정스럽게 만든 건 형님이 전화를 놓고 갔다는 것입니다.<br><br>한 치 앞을 내다 볼수 없을 만큼 쏟아지는 장대비도 거기에 한 몫했죠.<br><br>혹시나 발을 헛디뎌 어디선가 도움을 요청하고 있을지 모르는 일이었어요.<br><br>그런데 아무도 그 흉가에 가보자는 사람은 없었어요.<br><br><br>솔직히 무서웠죠.<br><br>다 들 무서워하는 기색이 역력했습니다.<br><br>혹시나 누가 가보자는 말을 할까봐 두려워하며 눈치만 보기에 급급했죠.<br><br><br>그런데 그 때...<br><br>사무실 문이 갑자기 덜커덕 열리는 겁니다.<br><br>형님이 문 앞에 서 있는 겁니다.<br><br>우와..........그 땐 정말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죠."<br><br><br><br><br>그는 잠시 떨리는 손으로 담뱃재를 털더니 계속 말을 이었다.<br><br><br><br><br>"그 모습이 얼마나 무섭던지....지금도 그 때를 생각하면 소름이 쫘악 돋습니다.<br><br>그거 있잖아요. <br><br>스릴러영화 보면 범인이 빗속에서 사람 파묻고 돌아올 때 그 모습.....<br><br>빗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검은 우비 속으로 형님의 얼굴이 반쯤 보이는 겁니다.<br><br>거기 있는 사람들 모두 입이 떡 벌어진 채 넋이 나간 사람처럼 형님을 바라보았죠.<br><br><br>바로 그 때 형님이 우비 속에 감춰진 뭔가를 우리 앞에 탁 던져 놓는 겁니다.<br><br>그 영정사진이었죠.<br><br><br>정말 미칠 것 같았어요.<br><br>아니 그것보다는 승균이 형님이 미친 것 같았어요.<br><br>미치지 않고서는 어떻게 저럴 수 있는지....<br><br>영주 형님은 비명까지 질렀다니까요.<br><br>놀랄만도 했죠.<br><br>우린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이 앉은 자세를 유지한 채 사진으로부터 재빨리 물러났습니다.<br><br>영정사진의 얼굴은 확인할 생각도 못했어요.<br><br><br>그런데 우비를 벗을 생각도 안하고 형님이 사무실 안으로 발을 옮기는 겁니다.<br><br>그리곤 저에게 다가와 약속한 돈을 내놓으라는 겁니다."<br><br><br><br><br>"그래서 줬어?"<br><br><br><br>"형사님이라면 안주고 배기겠어요?<br><br>저는 얼만지도 모르는 제 앞에 놓인 만원권을 쓸어담아 형님한테 냉큼 건넸죠.<br><br>형님은 여기저기 돈을 우겨넣더니 다시 사무실을 빠져나가는 거예요.<br><br>더 웃긴건 뭔지 아세요?<br><br>형님이 그 영정사진을 다시 들고 나가는 겁니다.<br><br>그 형님이 어디로 가려는지 아무도 묻지도 않고 궁금해하지도 않았어요.<br><br>단지 그 사무실에서 빨리 나가주기만을 바랬던 거죠.<br><br><br>형님이 나가자 저희는 그제서야 숨을 고르기 시작했어요.<br><br>포커판은 이미 끝난거나 마찬가지였구요.<br><br>거기 있던 사람들이 하나같이 승균이 형님이 제 정신이 아닌 것 같다며 수근거렸죠."<br><br><br><br><br>"양승균......딴 사진으로 사기친 것 아냐?"<br><br><br><br><br>"그 생각도 해 봤죠.<br><br>그런데 그 다음 날 그 폐가를 지나가는데 그 사진이 안보이는거예요.<br><br>형님이 가져온 게 분명했어요.<br><br>사기를 쳤다 하더라도 그 때 그 형님 얼굴빛을 본 사람은 저와 똑같이 했을 겁니다."<br><br><br><br><br>"그래서 황승균이 죽은 것하고 그게 무슨 상관이라는거야?"<br><br><br><br>나는 애써 그의 얘기를 무시하려 했지만 나도 이미 그 것에 빠져들고 있었다.<br><br><br><br>"그 날 이후로 형님이 조금씩 이상해졌어요.<br><br>며칠동안은 모든 작업이나 회사일은 정상적으로 잘 돌아갔어요.<br><br>그런데 날이 갈 수록 형님의 행동에 변화가 생긴게 조금씩 보이더라구요.<br><br>일단 술이 늘었어요.<br><br>상상을 초월할 정도로....<br><br>두 세병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는 사람이 어느 날부터인가 일곱여덟병을 나발 분다고 생각해 보세요.<br><br>더 이상한건 그러고도 정신이 멀쩡하다는 겁니다.<br><br><br>그리고 우리와 같이 있는 시간이 조금씩 줄었어요.<br><br>자꾸 어딘가로 사라지는 겁니다.<br><br><br>어떤 작업자는 승균이 형님이 한 밤중에 그 폐가로 들어가는 것을 봤다고 하더라구요.<br><br>뭔가를 잔뜩 싸들고 말이죠.<br><br>심지어 그 폐가에서 승균이 형님이 한 밤중에 누군가와 말을 나누고 있다는 소문까지 돌았죠.<br><br><br>모두들 형님을 조금씩 멀리하기 시작했어요.<br><br>심지어 눈 마주치는 것도 두려워했죠.<br><br><br>그 즈음에 사람들 사이에 흉흉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어요.<br><br>승균이 형님이 귀신을 불러낸다는 거예요."<br><br><br><br>나는 지금의 이 상황을 뭐라고 해석해야 할지 난감했다.<br><br>살인 용의자가 될 수 있는 사람 앞에서 형사가 귀신 얘기나 듣고 있으니 말이다.<br><br>그러나 나는 그의 얘기를 중지시킬 수 없었다.<br><br><br><br>"그게 무슨 말이야?"<br><br><br><br>"형님이 죽은 딸내미 얘기를 한다는 거예요."<br><br><br><br>나는 순간 피해자의 아내가 한 말이 떠올랐다.<br><br><br><br>"주연이라는 딸 애?"<br><br><br>"예. 딸내미를 만났다는 거예요.<br><br>모두들 승균이 형님이 이젠 정상상태가 아님을 직감했죠.<br><br>다들 그 형님이 미쳤을거라 얘기했지만, 속으로 혹시나 진짜로 귀신을 불러내면 어떡하나하고 걱정하고 있었죠.<br><br>생각해 보세요.<br><br>그 폐가를 들락거리면서 사무실에 들어올텐데...<br><br>그것도 순간의 실수만으로도 큰 사고로 이어지는 중장비를 다루는 회사인데, 귀신이 몸에 붙어다닌다고 생각해 보세요.<br><br>생각만 해도 소름이 돋았죠.<br><br><br>그런데 그 때 영주 형님이 뭔가 제안을 하나 했죠."<br><br><br><br><br>"...?"<br><br><br><br><br>"그 집....폐가를 부수자는거예요.<br><br>벽돌집이라 부수는건 눈깜짝할 사이예요.<br><br>그런 구조의 집은 포크레인으로 슬쩍 밀기만 해도 넘어가거든요.<br><br>처음엔 불태우자는 사람도 있었어요.<br><br>그런데 그건 아닌 것 같았어요.<br><br>주변의 눈도 있고...<br><br>아무리 버려져 있다해도, 소유자가 누구인지만 모르는 엄연한 사유재산인데....."<br><br><br><br>"그래서 부셨어?"<br><br><br><br>"부수자는데는 모두 동의했어요. <br><br>그런데 문제가 하나 남아있었어요.<br><br>그걸 누가 하냐였죠.<br><br>눈치만 살피던 저희들은 제비뽑기를 했죠.<br><br>그 때 영주 형님이 걸린겁니다."<br><br><br><br>"노영주는 지게차 기사 아냐?"<br><br><br><br>"면허증 없으면 운전 못하나요?<br><br>거기 있는 사람들은 자기분야가 아니어도 중장비의 간단한 조작은 다 할 줄 알거든요. <br><br><br>승균이 형님이 비번인 날을 골라서 영주 형님이 회사 포크레인을 몰고 그 폐가로 갔죠.<br><br>모두들 전쟁터에 나가는 병사마냥 포크레인 뒤로 졸졸 따라가고 있었습니다.<br><br>수십여미터 근처에 다다르자 영주형님만 빼놓고 모두 제자리에 멈춰 섰어요.<br><br>영주 형님은 그 때까지도 두려운 표정이 역력했어요.<br><br>조심스럽게 영주 형님이 포크레인을 몰고 그 폐가에 다가갔죠. <br><br>그리고 삽을 들어 굉음을 내며 옆의 창고를 막 부수고 있는데........"<br><br><br><br>태섭은 피우고 있던 담배를 짓이겼다.<br><br><br><br>"그 비오는 날 승균이 형님이 사무실에 나타났을 때만큼 놀랐어요.<br><br>거실에서 형님이 뛰쳐 나오는겁니다."<br><br><br><br>"뭐?"<br><br><br>"놀란 건 그게 전부가 아니었어요.<br><br>갑자기 형님이 호통을 치는거예요.<br><br>내 집에서 썩 물러가라며...<br><br>그런데 그 목소리가 형님 것이 아니었어요.<br><br>너무나도 낯선 생소한 목소리였어요.<br><br>그나마 멀리서 바라 본 저희들이 그럴 정도였는데, 바로 앞에 있던 영주 형님은 어땠겠어요?<br><br>비명을 지르며 영주 형님이 운전석에서 뛰쳐나왔죠."<br><br><br><br>"포크레인을 놓고 도망쳤단 말이야?<br><br>황승균이 그 걸로 무슨 짓 할 줄 알고?"<br><br><br><br>"다행히도 영주 형님이 키를 뽑아들고 도망을 쳤던거죠.<br><br>저희는 사무실로 몸을 피했습니다.<br><br>그 때 저희를 수상히 여긴 사장님이 무슨 일인지 물었죠.<br><br>그제서야 저희들은 그간의 일을 사장님께 모두 털어놓았죠.<br><br>얘기를 모두 듣고 난 사장님은 같이 그 폐가로 가자는거예요.<br><br>사장의 명령이니 안 따를 수도 없고, 그렇게 해서 저희들은 그 곳으로 다시 갔습니다."<br><br><br><br>"황승균이 있었어?"<br><br><br><br>"예. 경비원처럼 어디서 몽둥이 하나를 들고 와 거기서 지키고 있더라구요."<br><br><br><br>"가서 뭐했어?"<br><br><br><br>"사장님이 형님한테 가서 말을 걸었죠.<br><br>나머지 사람들은 멀찌감치 떨어져 지켜봤구요.<br><br>그런데 웃긴 건 승균이 형님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말을 거는 것 같았어요.<br><br>우리 직원들이 큰 실수를 한 것 같다면서 연신 죄송하다고 사죄를 하더군요.<br><br>포크레인만 가지고 갈테니 화를 푸시라고 말을 하더라니까요.<br><br>그랬더니 신기하게도 승균이 형님이 몽둥이를 내려놓더니 제자리에 풀썩 주저앉는거예요.<br><br>귀신이 빠져나간 것처럼 말예요."<br><br><br><br>태섭은 잠시 양 팔을 쓸어내렸다.<br><br><br><br>"그 날이 언제야?"<br><br><br><br>"형님이 죽기 이틀 전이었어요."<br><br><br><br>"그리고 어떻게 되었지?"<br><br><br><br>"어떻게 되긴요? 승균이 형님을 업고 사무실로 내려갔죠.<br><br>정신이 돌아온 형님이 집엘 가겠다며 사무실을 나선거예요.<br><br>그리고 이틀 동안 아무런 연락도 없다가 시체로 발견이 된거죠.<br><br>연락이 없음에도 우리는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았어요.<br><br>오히려 승균이 형님이 우리에게 연락을 할까봐 두려웠죠.<br><br>차라리 나오지 않았으면 했어요."<br><br><br>나는 담배를 하나 꺼내 입에 물었다.<br><br>그리고 천천히 불을 붙이며 입을 열었다.<br><br><br><br>"너...황승균이 죽은 걸 어떻게 알았어?"<br><br><br><br>"예?"<br><br><br><br>내 예상대로 그는 놀라는 눈치였다.<br><br><br><br>"신고 접수 후 경찰이 도착한게 대략 4시 반이야.<br><br>10분도 안되서 도착했지.<br><br>내가 도착한 건 20분 후고....<br><br>그 사이에 죽은 황승균 와이프가 회사에 연락을 취할만큼 여유롭진 않았겠지.<br><br>회사 사람들은 마치 며칠 전부터 알고 있었다느냥 여유로웠어.<br><br>아무리 소속감이 적다해도 무리가 있지.<br><br>게다가 현장에서 도망을 쳤던 노영주는 이미 황승균이 죽을 걸 알고 있던 사람 같더라구..."<br><br><br><br>나는 길게 담배 연기를 내 뿜었다.<br><br><br><br><br>"누가 그 전에 다녀갔어.....그렇지?"<br></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