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문제는 둘째치더라도 유럽식의 의료체계는 환자에게 있어서 굉장히 안좋은 의료체계에 속하지요. 무상의료라고 북유럽 의료같은거 좋아하시는분들 많은데 그거 절대로 좋은게 아니예요.
철저하게 원가 절감을 하도록 되어있는 의료제도라 큰검사도 간단한 검사도 최대한 줄이고 간단한 약도 될수 있으면 안 주도록 되어 있지요. 하다못해 한국 병원에서는 응급실 가면 막 달아주는 링거조차 유럽에서는 안달아주려고 하지요. 포괄수가제나 총액계약제의 특징입니다. 이는 환자보다는 예산을 우선시 하는 제도고 현재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공단에서 추진중인 제도입니다.
얼마 전에 뉴질랜드에서 산모를 75분 CPR 해서 살렸고 애는 죽었느니 어쩌니 했던 기사를 봤던 분들이 있을텐데 요, 거기서 [산모가 이상 증상을 느껴 낮에 병원을 찾아왔었으나 아무런 조치 없이 집으로 돌아갔다] 라는 대목을 눈여겨 보신분들은 아마 없을겁니다. 왜 산모가 아무런 조치도 받지 않고 집에 돌아갔을까요? 뉴질랜드의 의료체계 때문입니다. 소위 말하는 무상의료, 총액계약제라고 해서 영국, 캐나다, 일부 유럽과 비슷한 의료체계를 운영하고 있고 그때문에 병원에서는 최대한 검사를 줄이고 될수있으면 입원이나 치료도 최소화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체계지요. 결국 유럽식 의료체계에서는 호미로 막을수 있었던거 가래로 막을때까지 기다리게 되는 경우가 많아져요.
한국이라면 어땠을까요? 한국에서는 이상증상을 느낀 산모가 낮에 병원에 찾아오면 바로 입원시키고 태아상태를 평가합니다. 거기서 이상이 발견되었고 필요하다면 응급으로 수술방 열어서 최대한 빨리 제왕절개 시행하지요. CPR까지 가지도 않을 일이었다는거죠. 지금의 한국 의료제도로는 호미로 막을거 호미로 막을 수 있다 이거죠.
한국에서는 북유럽에서 잘 안해주는 CT, MRI도 펑펑 찍죠. 그러나 단순히 병원 수익을 위해서 찍는것만은 아닙니다. 싸니까 가능한거예요. 비보험으로도 미국에서 찍는 비용의 10%, 보험 적용시 CT같은 경우는 미국 가격의 5% 미만으로 찍을 수 있죠. 유럽같으면 찍어주지도 않아요. 비용을 최소화 해야하니까요. 한국 병원들이 너무 많이 찍는거 아니냐구요? 과잉진료아니냐구요? 절대로 아닙니다.
과잉진료가 아닌 이유는 각종 검사와 치료의 가격대비 효율을 따지는 cost-effectiveness라는 개념때문입니다. 의학에서 절대 빠지지 않는 중요한 개념이 이 cost-effectiveness입니다. 아무리 좋은 검사가 있어도, 아무리 좋은 치료가 있어도 그 효과에 비해 그 가격이 지나치게 비싸다면 그 치료는 필수적인 1차 치료(treatment of choice)가 아닌 선택적인 2차 치료로 사용하게 됩니다.
한국은 cost가 낮아서 cost-effectiveness가 굉장히 좋은 나라입니다. 다른나라에서는 저 cost-effectiveness때문에 못하는 검사들도 한국에서는 마구마구 해도 문제가 없을정도지요. 대표적인 예로는 건강검진때 내시경으로 하는 위암검사가 있겠습니다. 한국에서나 이렇게 검진용으로 내시경 들이밀수 있지 다른나라에서 이런거 못해요. 딴나라는 내시경 하려면 비싸거든요. 외국에서 한국처럼 내시경 검사 했다가는 과잉진료소리 듣기 딱 좋지만 한국은 국가가 주도해서 검사를 시킬정도라는거죠.
감기약도 마찬가지예요. 뭐 EBS에서 편파적으로 만들어서 한국의사는 위험한 약 많이 주는것마냥 매도하던 그 다큐나 짤방을 보셨던분들 많을겁니다. 근데 그 다큐에서는 의도적으로 몇가지 이야기를 조작하거나 숨겼습니다.
첫째로 그 약들을 받을 때 거짓으로 호소하던 증상을 유럽 의사들에게 약을 들이밀때는 각각이 무슨약인지조차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다는 점.
어느 의사가 정체불명의 알약을 들고와서 '이 약 먹어도 되나요?' 할때 먹으라고 할까요? 사실 그 약들은 다 다른형태 다른 제품명으로 그 나라들에서도 널리 쓰는 약들이거든요.
둘째로 유럽의사들이 마치 환자를 생각해서 약을 안주는거 같이 표현했다는 점.
절대로 환자를 생각해서 약을 안준게 아닙니다. 뭐 배울때부터 될수 있으면 약을 주지 않도록 배웠을수도 있겠지만 그건 환자를 생각해서 약을 안준다는거랑은 거리가 멀죠. 철저하게 예산을 따르도록, 비용을 최대한 절감하도록 훈련받은 의사들이 유럽의사들입니다. 의료복지국가라고 많이들 생각하시는 영국에서는 [어떤 경우에도 환자가 의료인에게 기대하는 것은 "환자 개개인에 대한 충실함(fidelity)이지 결코 한정된 의료자원의 배분을 염려하는 충직함(stewardship)이 아니다(Ellis SJ, BMJ, 1999)] 이라는 말도 있을정도지요. 오히려 환자를 생각한다면 감기증상에는 약을 줘야하는게 맞습니다. 나으라고 주는게 아니고 조금이라도 덜 아프고 덜 불편하라고 주는겁니다. 게다가 한국에서는 의료제도의 특성도 있지만 약의 가격도 크게 비싸지는 않은편이고 게다가 약 안주면 화내는 한국 환자들의 특성 등등 여러가지가 복합되면서 약을 일단 처방해주는거죠.
약을 너무 많이 주는것처럼 보인다구요?
그렇게 보여도 실제로는 한약같은거나 조제료 같은거 다 빼고 실제 연간 약품 비용만 순수하게 GDP대비로 따지면 한해에 실제약제비로 사용하는 돈은 한국하고 1인당 GDP가 비슷한 OECD국가들 평균보다 적거나 비슷비슷합니다. 근데 진료비가 엄청나게 싸서 진료비 대비 약제비가 많아보인다는게 함정. 한국 진료비는 딴나라의 반의반도 안되는데 약제비는 딴나라랑 비슷하거나 아주 조금 더 싸다면 진료비 대비 약제비가 많아보일 수 밖에 없지요. 약 많이 주는거 아니라 이겁니다.
셋째로 마치 염증반응이 체내 바이러스만 물리치기 위해서 발생하는것이고 마냥 좋은것인것 마냥 표현했고 감기약은 좋은 반응을 억지로 막는것처럼 표현했다는 점.
실제로는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우는꼴인게 감기에서의 염증반응입니다. 시골에서 토끼잡는데 군대가 탱크몰고 와서 박격포쏘고 총쏘고 수류탄 던져대는 꼴인데 동네 주민들이 무사하겠습니까. 감기약을 먹는건 그때문입니다. 동네 주민 다 죽으니까 총 좀 쏘지 말고 수류탄 던지지 말고 박격포 쏘지말라고 알려주는게 감기약인거죠. 게다가 실제로 현대의학에서는 염증반응을 최대한 줄이려고 노력합니다. 대부분의 경우 염증반응으로 인한 득보다는 실이 많기 때문이지요. 아토피, 비염, 천식, 자가면역질환, 만성B형간염, C형간염 등등... 원인이 확실하면 그 원인을 제거해서 염증반응을 줄이고 원인을 잘 알 수 없거나 제거 불가능한 원인이고 바이러스 감염중에서도 위험한것들(ex: B형간염,C형간염 바이러스)이나 세균감염이 아니라면 일단 염증반응을 최대한 줄이려고 노력하지요.
특히 감기같은 단순하고 치명적이지 않은 질환에서는 그러한 염증반응을 줄여주는것만으로도 회복에 크게 도움이 되고 또한 염증에 의한 손상때문에 발생하는 2차적인 세균감염을 줄일 수 있습니다.
어쨌든 한국의료 현재상태로도 환자들에게는 굉장히 좋다 이거죠. 문제는 의료계종사자들의 희생이 너무나도 크다는거죠. 의사, 간호사, 물리치료사, 임상병리사 등등.. 의사들이 무슨 희생을 하냐는 분들 또 나올텐데 인턴이나 레지던트들 5년 내내 일주일에 백시간 넘게 근무하는거는 아는사람들이 별로 없을겁니다. 그러면 또 그런식으로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 의료계 스스로 들고 일어나야 되는거 아니냐는 분들 나올텐데 한국 의료제도의 고질적인 문제 때문에 인턴이나 레지던트 인력으로 병원을 겨우겨우 유지하고 있고 그걸 아는 인턴 레지던트들이 따질수나 있을까요. 들고 일어나면 당장에 병원 전체가 마비되고 환자들은 불편해지고 결국에는 병원 유지 자체가 불가능해지고 수련받던게 물거품이 되는 상황이 벌어지는데요. 아니 진작에 노동부도 알고 있는데 이거 건드리면 한국 의료가 어찌될지 아니까 가만히 있는거죠.
사실상 전체적인 퀄리티, 접근성, 가격등을 종합적으로 보면 한국의료보다 좋은건 옆나라 일본의료밖에 없어요. 일본 의료는 환자입장에서는 굉장히 보장성이 좋고 가격도 싸고 의료계 입장에서는 한국처럼 의료계 모가지를 조르고 비틀어서 쥐어짜 죽이려고 들지도 않지요. 일본에서는 종합병원 의사들이 하루에 진료하는 환자수가 한국의 반의 반도 안되니 시간도 많고 설명해줄 시간도 많고 그만큼 환자에게 좋은 인상 주고 환자는 가격싸서 좋고 의사는 착취 안당해서 좋고. 한국 의료와 일본 의료의 차이는 한국은 보험료를 소득대비 5.8%만 걷고 일본은 지역마다 다르지만 소득대비 10~20%정도 걷는다는 차이랑 일본 의료의 보장성이 한국보다 조금 더 좋다는 정도의 차이밖에 없어요. 한국에서 보험료를 그정도 걷으면 산부인과 소아과 외과 흉부외과 같은 비인기과를 인기과로 만들 수 있고 사람 살리고 싶어하는 의사를 사람 살릴수 있는 자리에 있게 해주는게 가능해요. 게다가 환자들도 병원가서 내야할돈이 줄어들죠. 필요한 검사 제때 필요할때 받을 수 있고 가격도 저렴하고 환자도 종합병원의사 별로 오래 안기다리고 만날 수 있어서 만족하고 종합병원의사도 지금처럼 하루 환자 100명 진료해야하는 중노동을 겪지 않는 그런 의료가 가능해진다 이겁니다.
결론은 한국 의료 지금도 좆나 좋은데 더 좋으려면 무상무상무상의료 좋아하지 말고 국민들이 들고일어나서 국민건강보험료 두배내겠다 세배내겠다고 들고 일어나야 된다구요. 자꾸 의료실비보험이니 그딴거 들지 말고.. 모 당처럼 무상의료 외치지 말고. 무상의료는 환자를 생각하는 의료가 아니라 예산을 생각하는 의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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