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 </p> <p>나를 철들게 한 나의 할머니</p> <p><br></p> <p><br></p> <p><br></p> <p><br></p> <p>교통사고로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마저 아버지가 남기신 빚을 갚기 위해</p> <p><br></p> <p>서울로 떠나신 후, 다섯 살이던 저와 세 살이던 남동생은 시골에 계시던</p> <p><br></p> <p>할머니 손에 맡겨졌습니다.</p> <p><br></p> <p><br></p> <p><br></p> <p><br></p> <p>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장 먼저 기억나는 어린 시절이 있겠지요.</p> <p><br></p> <p><br></p> <p><br></p> <p><br></p> <p>제가 기억할 수 있는 가장 어린 시절은 할머니 손에 맡겨지고 1년이 지난,</p> <p><br></p> <p>여섯 살의 봄입니다. 불행히도 제가 기억하고 있는 가장 어린 시절은,</p> <p><br></p> <p>지금까지도 제 가슴 속에 아픈 추억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p> <p><br></p> <p><br></p> <p><br></p> <p><br></p> <p>그날, 도시 생활을 하고 있던 친척들이</p> <p><br></p> <p>저와 제 동생 문제로 할머니 댁을 찾았습니다.</p> <p><br></p> <p>너무 어렸기 때문에 정확히 기억할 수는 없지만,</p> <p><br></p> <p>할머니와 친척들 간에 언성을 높이는 이야기가 오갔습니다.</p> <p><br></p> <p>할머니는 계속해서 안 된다는 말씀만 반복하셨고,</p> <p><br></p> <p>친척들은 사는 게 힘들어서 도와 줄 수 없다는 말만 거듭 했습니다.</p> <p><br></p> <p><br></p> <p><br></p> <p><br></p> <p>큰아버지는 저와 제 동생에게 새 옷을 입혀 주고, 새 신을 신겨 주며,</p> <p><br></p> <p>좋은 곳에 가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p> <p><br></p> <p><br></p> <p><br></p> <p><br></p> <p>울먹이시던 할머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큰아버지는 저희 남매 손을 이끌고</p> <p><br></p> <p>문밖을 나섰습니다. 친척들 누구하나 따라 나오는 사람이 없었지만,</p> <p><br></p> <p>할머니는 다르셨습니다.</p> <p><br></p> <p>버선발로 뛰쳐나와 저희 남매를 끌어안고 우셨습니다.</p> <p><br></p> <p><br></p> <p><br></p> <p><br></p> <p>“안 된다. 절대 못 보낸다. 고아원에도, 아들 없는 집에도, 나는 못 보낸다.</p> <p><br></p> <p>죽은 내 아들 불쌍해서 이것들 못 보낸다.</p> <p><br></p> <p>니들 헌티 10원 한 푼 도와 달라구 안 헐라니까 보내지 마라.</p> <p><br></p> <p>그냥 내가 키우게 놔둬라.” 할머니는 그렇게 말씀하시며 목 놓아 우셨습니다.</p> <p><br></p> <p><br></p> <p><br></p> <p><br></p> <p>그날 할머니가 아니었다면 지금의 저도, 제 남동생도 없었겠지요.</p> <p><br></p> <p>할머니의 눈물이 지금의 저희 남매를 있게 해 준 것입니다.</p> <p><br></p> <p>고아원에 가지 않은 것만으로도, 아들 없는 집에 보내지지 않은 것만으로도,</p> <p><br></p> <p>저희 남매는 할머니께 평생 갚아도 다 갚지 못할 은혜를 입은 것인데</p> <p><br></p> <p>그게 얼마나 큰 은혜였는지 그때는 몰랐습니다.</p> <p><br></p> <p><br></p> <p><br></p> <p><br></p> <p>철이 들 무렵이 되어서야 그것을 알았습니다.</p> <p><br></p> <p><br></p> <p><br></p> <p><br></p> <p>할머니는 친척들께 약속하신 대로 10원 한 푼 받지 않고</p> <p><br></p> <p>저희 남매를 기르셨습니다.</p> <p><br></p> <p>하루도 거르지 않고 남의 집으로 일을 다니시며,</p> <p><br></p> <p>받아오신 품삯으로 생활을 꾸려가셨습니다.</p> <p><br></p> <p>할머니가 저희 남매를 키우기 위해 얼마나 고생을 하셔야 했는지,</p> <p><br></p> <p>스스로 얼마나 억척스러워지셔야 했는지,</p> <p><br></p> <p>그때는 너무 어려서 몰랐습니다.</p> <p><br></p> <p><br></p> <p><br></p> <p><br></p> <p>그저 배부르게 먹지 못하는 것이 불만이었고,</p> <p><br></p> <p>새 옷 한 벌 없이 남의 옷만 얻어 입는 것이 불만이었고,</p> <p><br></p> <p>다른 아이들처럼 학용품을 넉넉하게 쓰지 못하는 것이 불만이었고,</p> <p><br></p> <p>마음 놓고 과자 한번 사 먹을 수 없는 것이 불만이었고,</p> <p><br></p> <p>소풍에 돈 한 푼 가져갈 수 없는 것이 불만이었고,</p> <p><br></p> <p>운동회 때 할머니랑 함께 달리는 것이 불만이었고,</p> <p><br></p> <p>할머니 밑에서 자란다는 이유만으로 동네에서나 학교에서나</p> <p><br></p> <p>불쌍한 아이 취급받는 것이 불만이었습니다.</p> <p><br></p> <p><br></p> <p><br></p> <p><br></p> <p>배부르게 먹이지 못하는 할머니 마음이 얼마나 아팠을지,</p> <p><br></p> <p>새 옷 한 벌 사주지 못하는 할머니 마음이 얼마나 아렸을지,</p> <p><br></p> <p>남의 집으로 옷을 얻으러 다니며 할머니가 얼마나 고개를 숙이셨을지,</p> <p><br></p> <p>넉넉하게 학용품을 사 주지 못하는 할머니 마음이 어땠을지,</p> <p><br></p> <p>소풍간다고 김밥 한번 싸주지 못하고</p> <p><br></p> <p>용돈 한 푼 주지 못하는 그 마음이 어땠을지,</p> <p><br></p> <p>다른 아이들은 운동회 때 엄마와 함께 하는 것을</p> <p><br></p> <p>나이 드신 당신 몸으로 해 주시느라 얼마나 진땀을 빼셨을지,</p> <p><br></p> <p>어디서나 애비 에미 없다고 손가락질 받는 손자들을 보며</p> <p><br></p> <p>얼마나 가슴을 쓸어 내리셨을지,</p> <p><br></p> <p>그때는 철이 없어서 몰랐습니다.</p> <p><br></p> <p><br></p> <p><br></p> <p><br></p> <p>그저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조금이라도 더 불쌍하게 보여서</p> <p><br></p> <p>뭐 하나 얻으려고 애쓰는 할머니의 모습이 싫고 창피할 뿐이었습니다.</p> <p><br></p> <p>할머니는 저희 남매를 위해 자신을 포기하고 사셨습니다.</p> <p><br></p> <p>당신의 체면이나 얼굴을 모두 버리시고,</p> <p><br></p> <p>오로지 저희 남매를 위해 사셨습니다.</p> <p><br></p> <p>앉았다 하면 신세 한탄이 먼저 나오고,</p> <p><br></p> <p>불쌍한 손자들 얘기를 풀어 놓으며 눈물을 훔치시기 바빴지만,</p> <p><br></p> <p>할머니가 그렇게 사셨기 때문에 과자 한 봉지라도 얻어먹을 수 있었고,</p> <p><br></p> <p>이발소에서 공짜로 머리를 자를 수도 있었고,</p> <p><br></p> <p>새 연필 한 자루라도 얻어 쓸 수 있었습니다.</p> <p><br></p> <p><br></p> <p><br></p> <p><br></p> <p>할머니는 그렇게 철없는 남매를 기르시면서</p> <p><br></p> <p>한없는 사랑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누구보다 억척스럽고 강하셨지만,</p> <p><br></p> <p>또 누구보다 여리고 사랑이 넘치는 분이셨습니다.</p> <p><br></p> <p>남의 집으로 일을 가시는 날에는 새참으로 나온 빵을 드시지 않고</p> <p><br></p> <p>집으로 가져오시는 분이셨고,</p> <p><br></p> <p>1주일에 한번 장으로 나물을 팔러 가시는 날에는</p> <p><br></p> <p>순대를 한 봉지씩 사다주시는 분이셨습니다.</p> <p><br></p> <p><br></p> <p><br></p> <p><br></p> <p>동생과 제가 싸우면 뒤란에 있던 탱자나무 가지로 심하게 종아리를 치셨지만,</p> <p><br></p> <p>붉은 줄이 그어진 종아리에 약을 발라주시며 금세 눈물을 훔치시는 분이셨고,</p> <p><br></p> <p>맛있는 과자를 마음껏 못 사줘 미안하다며 문주를 부쳐주시고,</p> <p><br></p> <p>개떡을 쪄주시고, 가마솥 누룽지에 설탕을 발라주시는 분이셨고,</p> <p><br></p> <p>비가 아주 많이 오는 날에는 우산 대신 고추밭 씌우는 비닐로</p> <p><br></p> <p>온 몸을 둘러주시고 빨래집게로 여기저기 집어주시며,</p> <p><br></p> <p>학교에 가서 다른 아이들이 너는 우산도 없느냐고 놀리거든,</p> <p><br></p> <p>“우리 할머니가 이렇게 돌돌 싸매면 비가 한 방울도 못 들어와서</p> <p><br></p> <p>옷이 안 젖는다더라.</p> <p><br></p> <p>너도 니네 엄마한테 나처럼 해달라고 해봐.”</p> <p><br></p> <p>그렇게 말하라고 시키시던 분이셨습니다.</p> <p><br></p> <p><br></p> <p><br></p> <p><br></p> <p>비록 가난해서 봄이면 나물을 뜯어다 장에 내 팔고,</p> <p><br></p> <p>여름이면 고기를 잡아다 어죽 집에 팔고,</p> <p><br></p> <p>가을이면 도토리를 따다 묵 집에 팔고,</p> <p><br></p> <p>겨울에는 손에 마늘 독이 베이도록 마늘을 까서 돈을 벌어야 했지만,</p> <p><br></p> <p>그래도 지금 생각해보면 할머니와 함께 했던 유년의 그 시간들이</p> <p><br></p> <p>스물아홉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습니다.</p> <p><br></p> <p><br></p> <p><br></p> <p><br></p> <p>그때는 그게 행복이라는 걸 몰라서 할머니 가슴을 많이도 아프게 했지요.</p> <p><br></p> <p>저는 가난이 싫었습니다. 억척스러운 할머니가 싫었습니다.</p> <p><br></p> <p>그래서 반항적이었고,</p> <p><br></p> <p>사춘기에 접어들면서는 제 욕구를 채워주지 못하고 제 마음을 조금도</p> <p><br></p> <p>이해해 주지 않는 할머니가 미워서 버릇없이 굴기도 했습니다.</p> <p><br></p> <p><br></p> <p><br></p> <p><br></p> <p>할머니가 부끄럽다는 생각은 했으면서도,</p> <p><br></p> <p>고생하시는 할머니가 불쌍하거나 안쓰럽다고</p> <p><br></p> <p>생각해 본적은 한번도 없었습니다.</p> <p><br></p> <p>할머니를 생각하며 몰래 눈물을 훔쳐본 적도 없었습니다.</p> <p><br></p> <p><br></p> <p><br></p> <p><br></p> <p>그때는 정말 몰랐습니다.</p> <p><br></p> <p>할머니가 제 욕구를 충족시켜주고 싶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p> <p><br></p> <p>사춘기의 저를 이해 못했던 것이 아니라,</p> <p><br></p> <p>현실이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우리 남매가 아니었다면</p> <p><br></p> <p>혼자 편하게 사셨을 할머니가 손자들을 떠맡은 죄로</p> <p><br></p> <p>불쌍하게 사실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p> <p><br></p> <p>철이 들 무렵에야 알았습니다.</p> <p><br></p> <p><br></p> <p><br></p> <p><br></p> <p>저와 남동생은 시골에서 중학교를 마치고 각각 천안에 있는</p> <p><br></p> <p>상고와 예산에 있는 인문고등학교에 진학해 자취 생활을 했습니다.</p> <p><br></p> <p>저희 남매는 주말마다 할머니가 계시는 집으로 내려갔는데,</p> <p><br></p> <p>그때마다 냉장고를 열어보면 그 안에 빵과 우유가 가득했습니다.</p> <p><br></p> <p><br></p> <p><br></p> <p><br></p> <p>남의 집으로 일을 다니셨던 할머니가 새참으로 나온 빵과 우유를 드시지 않고</p> <p><br></p> <p>집으로 가져오셔서 냉장고에 넣어놓으신 거였습니다.</p> <p><br></p> <p>남들 다 새참 먹을 때 같이 드시지 왜 이걸 냉장고에 넣어 놓으셨냐고,</p> <p><br></p> <p>유통기한 다 지나서 먹지도 못하는 데 왜 그러셨냐고 화를 내면,</p> <p><br></p> <p>“니덜이 목구멍에 걸려서 넘어가야 말이지.</p> <p><br></p> <p>니덜 오먼 줄라고 냉장고에다 느 놨는디, 날짜 지나서 못 먹으먼 워쩐다냐.”</p> <p><br></p> <p>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p> <p><br></p> <p><br></p> <p><br></p> <p><br></p> <p>한번도 할머니를 가엾다고, 안쓰럽다고 생각하지 못했던 제가,</p> <p><br></p> <p>냉장고에 가득하던 빵과 우유를 내다 버리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쏟았습니다.</p> <p><br></p> <p><br></p> <p><br></p> <p><br></p> <p>가슴 저 밑바닥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오는데,</p> <p><br></p> <p>할머니가 그렇게 불쌍해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p> <p><br></p> <p>아마도 그때가 제가 철이 들 무렵이었던 것 같습니다.</p> <p><br></p> <p><br></p> <p><br></p> <p><br></p> <p>한번은 자취하는 제게 김치와 쌀을 갖다 주시겠다고 올라오신 할머니를</p> <p><br></p> <p>만나기 위해 터미널에 나간 적이 있었습니다.</p> <p><br></p> <p>한참을 두리번거린 후에 찾아낸 할머니는 반갑게 제 손을 잡으시며</p> <p><br></p> <p>“아침 7시 차 타구 나왔더만, 10시두 안 돼 도착허더라.</p> <p><br></p> <p>한 3시간은 이러구 서 있은 모양이여.</p> <p><br></p> <p>기다리다 배고파서 나 먼저 짜장면 한 그릇 먹었다. 이?” 라고 말씀하셨습니다.</p> <p><br></p> <p><br></p> <p><br></p> <p><br></p> <p>저는 또다시 가슴 한 구석이 아렸고,</p> <p><br></p> <p><br></p> <p><br></p> <p><br></p> <p>그러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할머니께 화를 냈습니다.</p> <p><br></p> <p>“그러게 내가 아침 드시고 천천히 출발하시라고 안 했어!</p> <p><br></p> <p>할머니 때문에 속상해 죽겄네.”</p> <p><br></p> <p>할머니는 화가 난 손녀딸의 눈치를 살피시며 들고 오신 가방 지퍼를 여셨습니다.</p> <p><br></p> <p>할머니가 들고 오신 큰 가방 속에는 김치 통 두 개가 들어있었고,</p> <p><br></p> <p>가방 안은 김치 통에서 흘러나온 빨간 김치 국물로 한 가득이었습니다.</p> <p><br></p> <p>“내가 할머니 때문에 미치겠네. 김치만 비닐봉지에 꼭 싸서 가져오셔야지,</p> <p><br></p> <p>가방에다 김치 통을 통째로 넣어오면 국물이 안 넘친데?”</p> <p><br></p> <p>할머니는 금세 얼굴이 붉어지셨습니다.</p> <p><br></p> <p>“이를 워쩌까. 국물이 다 새서 못 들고 가겄다.</p> <p><br></p> <p>내가 언능 수퍼 가서 봉다리 얻어올팅께 지달려라, 이?”</p> <p><br></p> <p>할머니는 터미널 안 슈퍼에서 검은 비닐봉지를 얻어 오셨습니다.</p> <p><br></p> <p><br></p> <p><br></p> <p><br></p> <p>그리고 김치 통을 봉지 안에 넣어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p> <p><br></p> <p>“가시네덜이 지덜언 짐치 안 먹구 사나,</p> <p><br></p> <p>노인네가 버스 안에서 김치 냄새 좀 풍겼기로서니,</p> <p><br></p> <p>그렇기 코를 막구 무안을 줘?”</p> <p><br></p> <p>할머니의 그 말을 듣는 순간, 차 안에서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받으며</p> <p><br></p> <p>안절부절 하셨을 할머니 모습이 떠올랐습니다.</p> <p><br></p> <p><br></p> <p><br></p> <p><br></p> <p>가슴이 미어졌습니다. 할머니는 김치 전해 줬으니 그만 가 봐야겠다시며</p> <p><br></p> <p>들고 오신 가방 안쪽 작은 지퍼를 열고</p> <p><br></p> <p>꼬깃꼬깃 접은 1만 원 짜리 두 장을 제 손에 쥐어 주셨습니다.</p> <p><br></p> <p>할머니께서 건네주신 1만 원 짜리는 빨갛게 물들어서</p> <p><br></p> <p>김치 국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습니다.</p> <p><br></p> <p>할머니 앞에서 울고 싶지 않았던 저는 얼른 매표소로 뛰어가</p> <p><br></p> <p>할머니 차표를 끊어다 드리고 할머니를 배웅해 드렸습니다.</p> <p><br></p> <p><br></p> <p><br></p> <p><br></p> <p>그날 자취방으로 돌아오는 시내버스 안에서</p> <p><br></p> <p>얼마나 소리 내어 울었는지 모릅니다.</p> <p><br></p> <p><br></p> <p><br></p> <p><br></p> <p>할머니가 젖은 가방에서 꺼내 주셨던,</p> <p><br></p> <p>빨간 김치 국물이 뚝뚝 떨어지던 1만 원 짜리 두 장을 손에 꼭 쥐고,</p> <p><br></p> <p>사람들이 가득한 버스 안에서 그렇게 한참을 울었습니다.</p> <p><br></p> <p><br></p> <p><br></p> <p><br></p> <p>고등학교 졸업 후 무역회사에 취직한 저는 돈을 벌게 되었고,</p> <p><br></p> <p>이제 할머니를 호강시켜 드릴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찼습니다.</p> <p><br></p> <p>할머니가 아프시다고 하면 약재시장에 가서</p> <p><br></p> <p>좋다는 약재를 사다 보내 드리고, 할머니 생신이 다가오면</p> <p><br></p> <p>동네 할머니들과 식사라도 하시라고 용돈도 보내 드리고,</p> <p><br></p> <p>주말에 시골에 내려가면 할머니와 장으로 구경도 나가고,</p> <p><br></p> <p>명절에는 할머니를 모시고 레스토랑에 가서 돈가스도 사 드렸습니다.</p> <p><br></p> <p><br></p> <p><br></p> <p><br></p> <p>처음 할머니를 모시고 레스토랑에 가서 돈가스를 먹던 날, 할머니는</p> <p><br></p> <p>돈가스 한 접시에 음료로 나온 사이다 한잔까지 쭉 비우신 뒤 말씀하셨습니다.</p> <p><br></p> <p>“양두 얼마 안 되는 것이 참말로 맛나다, 이?</p> <p><br></p> <p>이런 것이먼 몇 접시라두 먹겄다.”</p> <p><br></p> <p>저는 할머니의 그 말에 또 다시 눈물이 났습니다.</p> <p><br></p> <p>그까짓 돈가스가 얼마나 한다고 이제서야 사드리게 됐을까.</p> <p><br></p> <p>가슴이 아파서 고개도 들지 못하고 제가 먹던 접시를</p> <p><br></p> <p>할머니 앞에 내어 드렸습니다.</p> <p><br></p> <p><br></p> <p><br></p> <p><br></p> <p>그날 하얗게 서리 내린 할머니 머리를 내려다보면서</p> <p><br></p> <p>마음속으로 다짐했습니다.</p> <p><br></p> <p><br></p> <p><br></p> <p><br></p> <p>앞으로는 맛있는 것은 무엇이든 사 드리리라.</p> <p><br></p> <p>남들 먹는 거, 맛있다고 하는 거, 한번씩은 다 맛보여 드리리라.</p> <p><br></p> <p>좋은 옷도 입혀 드리고 멋진 구경도 맘껏 시켜 드리리라.</p> <p><br></p> <p><br></p> <p><br></p> <p><br></p> <p>언젠가 할머니는 말씀하셨습니다.</p> <p><br></p> <p>“우리 손녀딸 좋은 사람 만나 시집가고,</p> <p><br></p> <p>이쁜 새끼 낳아 사는 거 보고 죽으먼 내가 소원이 없을 것인디.”</p> <p><br></p> <p>저는 할머니의 소원대로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을 했고,</p> <p><br></p> <p>다음 달이면 돌을 맞는 예쁜 딸아이도 낳았습니다.</p> <p><br></p> <p><br></p> <p><br></p> <p><br></p> <p>할머니는 올해로 팔순이 되셨습니다.</p> <p><br></p> <p>그렇게 억척스럽게 우리 남매를 길러 내셨던 할머니는</p> <p><br></p> <p>이제 정말 할머니가 되셨습니다.</p> <p><br></p> <p><br></p> <p><br></p> <p><br></p> <p>허리도 구부러지셨고, 검은머리가 한 가닥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p> <p><br></p> <p>너무 늙으셔서 예전처럼 맛있는 문주를 부쳐 주시지도 못하고,</p> <p><br></p> <p>개떡을 쪄 주지도 못하고, 누룽지에 설탕을 뿌려 주시지도 못합니다.</p> <p><br></p> <p>뜨거운 밥에 올려 먹던 할머니의 얼짠지가 그렇게 맛있었는데,</p> <p><br></p> <p>이제는 그때 그 맛을 내시지도 못합니다.</p> <p><br></p> <p>같이 봄나물을 뜯으러 다닐 수도, 도토리를 따러 다닐 수도 없습니다.</p> <p><br></p> <p><br></p> <p><br></p> <p><br></p> <p>그래서 가슴이 아프고 할머니를 생각하면 자꾸만 눈물이 납니다.</p> <p><br></p> <p>할머니 하면, 낡고 닳아 헤진 고무신 한 짝이 떠오릅니다.</p> <p><br></p> <p>헌 고무신처럼 평생을 마음껏 가지지 못하고</p> <p><br></p> <p>지지리 고생만 하시며 살아오신 할머니,</p> <p><br></p> <p><br></p> <p><br></p> <p><br></p> <p>이제 할머니가 제 곁에 함께하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느낍니다.</p> <p><br></p> <p>언제일지 모를 그날까지 제가 할머니의 은혜를 다 갚을 수 있을까요?</p> <p><br></p> <p>꽃으로 태어났으나 들풀로 사셔야 했던 그분의 인생,</p> <p><br></p> <p>이제부터라도 화사한 꽃으로 사셨으면 좋겠습니다.</p> <p><br></p> <p><br></p> <p><br></p> <p><br></p> <p>가난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조금 불편한 것일 뿐이라는 걸</p> <p><br></p> <p>가르쳐 주신 할머니!</p> <p><br></p> <p>이제 저는 할머니의 사랑과 고생을 모두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철이 들었습니다.</p> <p><br></p> <p>눈부시게 화창한 봄날, 우리 할머니 손을 잡고 꽃길을 걸어 보고 싶습니다.</p> <p><br></p> <p>오래 전 눈물나게 아름다웠던 유년의 풍경들을 떠올리며 웃어 보고 싶습니다.</p> <p><br></p> <p><br></p> <p><br></p> <p><br></p> <p>올 봄에도 꽃은 피겠지요?</p> <p><br></p> <p>그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편지를 마치겠습니다.</p> <p><br></p> <p><br></p> <p><br></p> <p><br></p> <p>이 글은 MBC 라디오 여성시대에서 스크랩한 글입니다.</p> <p><br></p> <p><br></p> <p><br></p> <p><br></p> <p> </p>
<img height="151" src="http://thimg.todayhumor.co.kr/upfile/201108/1314084858328_1.gif" width="186" alt="1314084858328_1.gif"><p><strong> 오유야! 아프지마!!</strong></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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