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 class="바탕글">뒤늦게 시사인의 '분노한 남자들' 기사를 살폈다. 몇몇 부분 통계자료를 이용해서 객관적 현</p> <p class="바탕글">실을 조명하려는 노력이 엿보인 부분이 있는가 하면, 한편으로 ‘시사인 절독 사태’를 만들어</p> <p class="바탕글">낸 뇌관을 이미 기자가 폭발시켰음을 보게 된다. </p> <p class="바탕글"><br></p> <p class="바탕글"></p> <p class="바탕글">기자는 우선 이 문제를 ‘남녀의 싸움’으로 편의적으로 구분한다. 메갈-워마드 방식을 반대하</p> <p class="바탕글">는 훨씬 더 많은 여성들이 있음은 아예 거론하지도 않는다. 또한 그런 방식을 문제 삼는 여</p> <p class="바탕글">성들이 메갈-워마드로부터 ‘명예자지’소리를 들으며 도덕적으로 단죄당하고 모욕당하는 문</p> <p class="바탕글">제까지를 포함해, ‘미러링으로 안되니 칼로 배를 쑤셔 버린다’는 등의 가감없는 증오와 폭력</p> <p class="바탕글">의 발산에 대해서 사람들이 어떤 식의 저항감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다양한 스펙트럼에 </p> <p class="바탕글">대한 숙고가 전혀 없다. </p> <p class="바탕글"><br></p> <p class="바탕글"></p> <p class="바탕글">대신 기자는 주로 ‘남성의 크기’를 조롱하는 메갈리아의 상징에 대한 남성들의 부적절한 저</p> <p class="바탕글">항으로 논의를 집약한다. 그래서 “남성의 크기를 조롱당한 남자들은 여성의 현실을 기각했</p> <p class="바탕글">다. 이제 ‘여성혐오’는 ‘없다’ 적어도 메갈리아가 주장하는 방식으로는 없다.”는 식으로 섣불</p> <p class="바탕글">리 결론을 내어 버린다. 쉽게 말해 남자들이 메갈리아로부터 ‘크기조롱’을 받아서 이러한 모</p> <p class="바탕글">욕을 견디지 못해서 이 반발로 이 사회가 여성억압의 사회가 아니라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p> <p class="바탕글">그래서 메갈리아에 반발하는 남자들은 이 사회가 여성억압사회인 것을 인정하지 않는 이들</p> <p class="바탕글">이란다. 기자 본인이 빚어놓은 말잔치의 운율을 맞추려고 단어들을 우격다짐 끼워 맞춰 놓</p> <p class="바탕글">은 형국이라 부자연스럽기 그지없다. </p> <p class="바탕글"><br></p> <p class="바탕글"></p> <p class="바탕글">아무리 좋은 얘기를 해도 듣지 않는 것이 인간의 특성이다. 주변 사람들에게 사탕발림하면</p> <p class="바탕글">서 ‘너 좀 변해라’며 충고하고 조언해보라. 안듣는다. 그게 사람 생리다. 그런데 욕하고 비꼬</p> <p class="바탕글">고, 모욕하고, 비하해서 상대방이 바뀐다니.... 결국 많은 사람들은 ‘페미니즘 자체’를 반대하</p> <p class="바탕글">는 것이 아니고, 메갈리아의 ‘그런 식’의 방식이 효과도 없고 성평등에 오히려 저해되는 역</p> <p class="바탕글">효과가 클 것에 대한 우려를 한 것이다. 그렇다보니 이 때문에 여성들도 나서서 메갈리아에 </p> <p class="바탕글">저항하며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p> <p class="바탕글"><br></p> <p class="바탕글"></p> <p class="바탕글">하지만 기자는 거듭 이 모든 문제를 ‘남자들이 자기 성기가 작다고 여성들로부터 비하 당한 </p> <p class="바탕글">것에 대한 반발' 의해 '여성 혐오 같은 것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다고 부정하여 메갈리아를 </p> <p class="바탕글">반대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인 것 쯤으로 문제를 왜곡한다. 이렇다보니 자연스럽게 메갈리아</p> <p class="바탕글">는 '여혐을 하면서도 여혐 사실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남성들에 의해' 무차별한 고통을 받는 </p> <p class="바탕글">나약한 존재로 자리매김 된다. 기자는 그렇게 남근 콤플렉스를 극복한 본인의 인간승리를 </p> <p class="바탕글">여성들 앞에 드러내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결국 이렇다보니 사람들의 시사인 절독 현상이 </p> <p class="바탕글">줄을 이었던 것이다.</p> <p class="바탕글"><br></p> <p class="바탕글"></p> <p class="바탕글"></p> <p class="바탕글">문제는 이후의 사태였다. 어떤 언론사에서 시사인 절독 사태에 대해 [‘메갈리아=여자일베’ </p> <p class="바탕글">인정안하면 시사인처럼 된다?]는 말 같지도 않은 선정적 제목으로 기사를 써서, 마치 시사</p> <p class="바탕글">인 기자가 메갈리아를 반대하지 않아서 시사인 절독 현상이 일어난 듯 호도했다. 그리고 많</p> <p class="바탕글">은 이들이 그 말에 넘어가서 시사인 구독 운동에 들어갔다. 이렇다보니 해당 기자도 자기의 </p> <p class="바탕글">페북에 ‘수십만건의 자료를 정리한 객관적인 분석인데 뭐가 문제냐?’고 발끈해 하면서 마치 </p> <p class="바탕글">자기가 흑백론자들의 테러를 당했던 것인 마냥 분해하는 글을 써 올렸다. ‘안티조선’운동할 </p> <p class="바탕글">때도 그랬을까? 시민이 보기 싫은 언론을 문제 삼아 절독하는 것은 민주사회의 권리이다. </p> <p class="바탕글">그런데 마치 그것을 과격한 ‘흑백논리’ ‘파시스트’라는 식의 논리구조로 몰고 가며 피해자 </p> <p class="바탕글">코스프레 하다니. 그런데, 애초에 흑백논리를 보였던 것은 기자 본인임을 자각해야 한다. 절</p> <p class="바탕글">독 사태는 오히려 그에 대한 시민의 응징의 표시였다. </p> <p class="바탕글"><br></p> <p class="바탕글"></p> <p class="바탕글">물론 절독한 이들 중에는 실지로 여성 혐오자도 있을 수 있고, ‘메갈리아 찬성 = 여자일베’</p> <p class="바탕글">라는 도식을 가진 이들도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이들의 ‘절독 독려’ 행위까지 모두 </p> <p class="바탕글">지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명확히 사리를 따지지 않고 자기 말의 운율에 맞추기 </p> <p class="바탕글">위한 어줍쨚은 끼워맞추기와 일반화로 기사를 그런 식으로 써서 맥없는 시민들이 패 갈라 </p> <p class="바탕글"></p> <p class="바탕글"></p> <p></p> <p class="바탕글">싸우게 만든 행태는 잘못이다.</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