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효과 때문일까? 흙수저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났다.
보증금 300만 원을 구해줄 수 있는 부모를 둔 친구도, 방학 때면 일본이나 유럽으로 여행을 떠나던 친구도, 자기 역시 흙수저라며 빈곤 속에서 꿋꿋하게 살아간다고 한다.
이게 일종의 계급의식으로 발전될 수 있다면 퍽 긍정적인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게, 정말 말도 안되는 수준의 빈곤을 경험하고 있는 이들에게 가야 할 지원과 관심을 빼앗는 아귀다툼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더러 든다.
나야 이제 그런 지경에선 조금이나마 벗어났으나, 너무 지쳐서 진흙탕에 코 박고 죽고 싶어하던 몇몇 친구들에겐, 이게 자칫 가난마저 빼앗기는 형국이 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빈곤층의 외연이 확장된다는 건 그 내포가 부실해짐을 의미한다. 흙수저의 과잉은 흙수저의 의미를 퇴색시킬 수밖에 없다. 극빈층 청년들은 가난하다는 것마저 빼앗기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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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17/07/30 01:10:30 121.173.***.199 생겼으면좋겠
213633[2] 2017/07/30 02:10:44 211.222.***.74 부담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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