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div>한국전쟁 당시 인천상륙 작전을 시작으로 전세를 역전 시켜 통일을 목도에 두었으나</div> <div>중공군의 개입에 의하여 연합군이 패퇴하기 시작합니다.</div> <div><br /></div> <div>전쟁 초반 북한군이 남침하면서 각 점령지마다 인원을 대거 징용한 터라</div> <div>대한민국은 예비병력 확충이 어려웠습니다.</div> <div>그래서 정부는 1950년 11월 20일 국민방위군에 대한 법안을 국회에 제출합니다.</div> <div><br /></div> <div>1. 군인, 경찰과 공무원이 아닌 만 17세 이상 40세 이하 장정들을 제2 국민병에 편입시킨다.</div> <div>2. 제2국민병 가운데 학생을 제외한 자는 지원에 의해 국민방위군에 편입시킨다.</div> <div>3. 육군참모총장은 국바부장관의 지시를 받아 국민방위군을 지휘 감독한다.</div> <div><br /></div> <div><img src="http://thimg.todayhumor.co.kr/upfile/201309/1378348964n46lXP1K8KQmZ6LxeSxkdZwT1F.jpg" width="550" height="386" alt="국민방위군_징집자들.jpg" style="border: none" /></div> <div><br /></div> <div>이렇게 해서 1950년 12월 21일 국민방위군 설치법이 공포되었고</div> <div>국방부 장관 신성모는 <font color="#ff0000"><b>우익단체 대한청년단 단장 김윤근</b></font>을 준장으로 임관시키고 국민방위군 사령관에 임명합니다.</div> <div><span style="font-size: 9pt; line-height: 1.5">문제의 시작은 최소한의 기간장교만 현역이었고 나머지 지휘관들이 이와 같이 우익단체의 민간인으로 이루어졌다는 겁니다.</span></div> <div><span style="font-size: 9pt; line-height: 1.5">준장, 대령 등 직책만 거창하지 </span><span style="font-size: 9pt; line-height: 1.5">사령관 김윤근 부터가 이등병 경력도 없는 미필자 였고 나머지 간부 역시 비슷한 상황이었습니다.</span></div> <div><br /></div> <div>그렇게 모인 병력은 <b><font color="#ff0000">'50만 명'</font></b>에 이릅니다.</div> <div>당시 국방장관 신성모가 국회에서 80만 내지 100만을 데리고 내려왔다. 라고 증언하였으니 사건의 피해자는 더 많을 수도 있습니다.</div> <div><br /></div> <div>이렇게 모인 병력은 중국군의 대공세에 서울이 함락될 지경에 이르자 </div> <div>즉시 후퇴명령이 떨어집니다.</div> <div><br /></div> <div><div style="text-align: left"><img src="http://thimg.todayhumor.co.kr/upfile/201309/1378349238kUp68nM23l3UTxpwLlwncd9uHODL.jpg" width="475" height="367" alt="1.4.jpg" style="border: none" id="image_0.5588414480444044" /></div><br /></div> <div>경상도에 이루어진 방어선까지 후퇴를 명령 받았지만 이 50만여명에게 지원된 차량은 없었습니다.</div> <div>추위를 이겨가며 경상도까지 도보로 주파해야 했습니다.</div> <div><br /></div> <div>거기까지라면 그렇다 하겠는데 </div> <div>이들에겐 겨울군복, 침구류 심지어 식량조차 제대로 지급되지 않았습니다.</div> <div><br /></div> <div>국민방위군의 지휘관들이 수십만 병력에게 지급될 <font color="#c0504d"><b>보급품을 모두 횡령, 착복</b></font>했기 때문입니다.</div> <div><br /></div> <div>추운겨울 겨울군복도 지급받지 못해 추위에 떨면서</div> <div>식량조차 배급받지 못해 굶주린체 서울에서 대구, 부산까지 50만여명이 걸어서 이동하기 시작했습니다.</div> <div><span style="font-size: 9pt; line-height: 1.5">당연한 결과로 동사자와 아사자가 속출하기 시작했습니다.</span></div> <div><br /></div> <div>이러한 사실은 야당 국회의원 이철승이 국민방위군에 있던 친구에게 사실을 듣고나서야 세상에 공개됩니다.</div> <div><span style="font-size: 9pt; line-height: 1.5">국회에서 야당이 국민방위군 진상을 요구하며 이승만 정권과 여당인 자유당을 비판 하고 나서자</span></div> <div>국민방위군 사령관 김윤근과 국방장관 신성모는</div> <div>'불순분자의 제 5열의 책동' 이라며 이들의 진상규명 요구를 묵살하기 위해 나섰습니다.</div> <div>하지만 사건이 사건인 만큼 여론은 심각히 악화되었고</div> <div><span style="font-size: 9pt; line-height: 1.5">긴급히 진상조사단이 꾸려져 사실을 확인 하게 되는데</span></div> <div><span style="font-size: 9pt; line-height: 1.5"><br /></span></div> <div><span style="font-size: 9pt; line-height: 1.5">조사 결과 <b><font color="#ff0000">9만~12만 여명</font></b>이 굶주림과 추위에 <b><font color="#ff0000">사망</font></b>하였단 결과가 나옵니다.</span></div> <div><span style="font-size: 9pt; line-height: 1.5">국민방위군 간부들은 현금 23억원 쌀 5만 2천섬을 착복한것으로 확인 되었으며</span></div> <div>보급품 조달 비 중 55억원을 빼돌린 것으로 확인 되었습니다.</div> <div><br /></div> <div><b><font color="#c0504d">당시돈으로 현금 78억원 과 쌀을 비롯한 수많은 보급품</font></b>들이 이들의 주머니로 사라진 것이죠.</div> <div><br /></div> <div>이는 한국전쟁 당시 벌어진 국군 최악의 비극 중 하나이며</div> <div><font color="#31859b"><b>격전지인 백마고지에서도 사상자가 1만4천여명</b></font> 이었던걸 생각한다면 </div> <div>무능하고 부패한 아군이 적보다 무섭다는걸 증명하는 사건입니다.</div> <div><br /></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