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n class="ct lh" style="font-size:12px;"></span><div> </div> <div> </div> <div> </div> <div style="text-align:left;"><img width="350" height="529" style="border:;" alt="20110827023315872.jpg" src="http://thimg.todayhumor.co.kr/upfile/201508/1440398007kfE1kTcLFVXfGE7xZK2rnLSmDPDVbA.jpg"></div> <div> </div> <div> </div> <div>96년 강릉 무장공비 침투</div> <div> </div> <div>추격작전중에 팔에 관통상을 입은 이종갑 예비역 소령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군 생활 18년 중 10년을 북파공작원(HID) 교관으로 근무</div> <div> </div> <div>96년 당시 육군 3군단 정보분석장교로서 북한군의 이동경로를 예측하고 대응책을 짰다.</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br>96년 9월18일, 북한군 25명을 태운 잠수함이 강릉 대포동 앞바다에서 좌초된 채 발견됐다. 침투 당일 이광수는 민가에 숨어있다 잡혔고 이후 11명은 자살, 11명은 교전 끝에 사살됐다.</div> <div> </div> <div>이들은 모두 잠수함 승조원에 불과했다. 핵심은 살아 남은 나머지 2명이었다. 김정일이 "1개 사단 병력(8,000~1만 명)과도 바꾸지 않겠다"고 공언한 최정예 침투조였다.</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br>북한군 침투조 2인은 49일째인 11월5일 새벽, 강원 인제군 용대리에서 초병들이 북한군과 교전했다.</div> <div> </div> <div>이 씨는 '이번에는 반드시 잡아야 한다'고 되뇌이며 현장에 출동했다.</div> <div> </div> <div>탄피를 분석하며 도주방향을 예측하던 순간, 해가 막 떠올라 시야가 잠시 가려지는 사이 숲 속에서 "탕, 탕, 탕"하는 세 발의 총성이 울렸다.</div> <div> 첫 발은 이 씨의 왼팔 윗부분을 관통해 뼈와 살이 뜯겨졌고, 나머지 두 발은 팔꿈치 아랫부분을 스쳤다.</div> <div> </div> <div>계속되는 총격에 근처에 있던 장교 3명과 병사 1명이 숨지고 13명이 다쳤다.</div> <div> </div> <div>북한군 2명은 뒤쪽에서 덮친 특전사 요원들에 의해 모두 사살됐다.</div> <div> </div> <div>기나긴 추격전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남은 1명이 더 있다"는 소문이 꼬리를 물었지만 이 씨는 "다음 날 바로 작전이 종료됐다. 북한군이 더 있었다면 그랬겠나"라며 강하게 부인했다. 군 당국도 "놓친 북한군은 없다"는 입장이다.</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부상은 심했다. 오른다리 정강이 뼈를 잘라 왼팔에 붙이고 혈관도 이식했지만 뼈와 근육을 간신히 연결하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div> <div> </div> <div>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살은 여전히 움푹 파여있고 왼팔과 왼손가락은 힘을 쓰지 못한다.</div> <div> <br>그래도 망가진 몸은 상관없었다. 진짜 시련은 그 다음이었다.</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병원에서 1년 정도 치료를 받자 육군 3군단은 "치료기간이 길어져 소속부대가 바뀌었다"며 관사에서 나가라고 명령했다.</div> <div> </div> <div>졸지에 가족들은 떠돌이 신세가 됐다.</div> <div> </div> <div>900여 만원의 병원비도 절반 정도는 본인이 먼저 내고 몇 년이 지나 할부로 나눠 받는 방식이었다.</div> <div> </div> <div> </div> <div><br>작전이 끝나자 40여명이 훈장, 20여명이 대통령표창을 받았다. </div> <div> </div> <div><strong>부상자들은 모두 참모총장 표창에 그쳤다. </strong></div> <div> </div> <div>그는 "작전에 참여하지도 않은 군 고위층이 훈장을 받았다. 우리는 거들떠도 안보더라. 이건 아니었다"고 말했다.</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이듬해인 97년, 중령 진급심사가 있었다.</div> <div> </div> <div>그는 전상(戰傷)을 입었고 과거 최우수 교관으로 선정되는 등 촉망 받는 군인이었기에 진급 1순위로 꼽혔다.</div> <div> </div> <div>하지만 탈락했다.</div> <div> </div> <div> </div> <div>이 씨는</div> <div> </div> <div>"주변의 육군사관학교 출신들은 심지어 지뢰지역에 잘못 들어가 다리를 다쳐도 진급했다.</div> <div> </div> <div>난 전쟁터나 다름없는 곳에 뛰어들었지만 비주류인 <strong>3사관학교 출신</strong>이었다.</div> <div> </div> <div>차별을 견디며 더 이상 군에 남을 자신이 없었다"고 말했다.</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돈없고 빽없는 사람이 ( 3사출신 ) </div> <div> </div> <div>목숨걸고 적과 교전하다가 팔에 관통상을 입으면</div> <div> </div> <div>훈장을 안줌</div> <div> </div> <div>그리고 다음해 진급에서 탈락시킴</div> <div> </div> <div> </div> <div><font size="3"> </font></div> <div><font size="3"></font> </div> <div><font size="3"></font> </div><font size="3"></font><div>전쟁터에 목숨걸고 뛰어들면 이렇게 됨 </div> <div><br> </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