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br></p><p><br></p><p>지구상에 '생명체'의 시작이 '자기복제자'라는 유기물질에서 비롯했던 이유에서,</p><p>인간 뿐 아니라 모든 생물체는 자신과 비슷한 무언가가 사회에 존재하기를 바라는 내면적 욕망이 있습니다. 그것은 일반적으로 자신의 유전자를 퍼뜨려 자신과 닮은 자손을 번식시키고자 하는 욕망으로 세계에 표출되며 그것이 좌절될 때 생물체는 고독함을 느낍니다.</p><p><br></p><p>그런데 인간의 경우에는 좀 더 고차원적인 욕망을 가지게 됩니다. <span style="font-size: 10pt; line-height: 1.8;">사유세계를 발달시킨 인간은 자신의 사유와 닮은 사유를 찾고자 합니다. </span><span style="font-size: 10pt; line-height: 1.8;">그것은 자신이 느끼는 감정과 사상에 대해 공감과 이해를 바라는 욕망으로 표출되며, 이 욕망이 좌절될 때 인간은 마찬가지로 고독을 느낍니다.</span></p><p><span style="font-size: 10pt; line-height: 1.8;"><br></span></p><p><span style="font-size: 10pt; line-height: 1.8;">문제는 한 개인이 가지고 있는 사유의 세계라는 것은 외부 세계와 완벽하게 단절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에, 한 개인의 감정과 사유에 대해 다른 개인은 100% 완벽한 공감이나 이해를 할 수 없고, 또한 운 좋게 할 수 있었다 하더라도, 그 사실을 양쪽 다 100% 확신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span></p><p>인간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소통의 수단을 발명하고 발전시켰습니다. 덕분에 인간은 다른 생물 종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은 양의 소통의 수단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언어, 문학, 미술, 음악, 패션, 향수, 행위예술 등 현재의 사유나 감정의 파편이라도 담을 수 있는 모든 문화적 요소들은 의사 소통의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소통은 여전히 불완전하며 결코 완전해질 수 없는 것이기에, 여전히 타인의 사유나 감정에 대한 완벽한 이해는 불가능합니다.</p><p><br></p><p>이러한 공감, 이해의 물리적 단절이 인간의 근원적인 고독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친구나 애인과 즐겁게 웃고 떠드는 행복한 어떤 순간에는 은연 중에 감정의 일치를 느끼고 고독이 해소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것은 고독의 해소가 아니라 잠시 둔감해진 것 뿐입니다. 왜냐하면 그 고독은 사라진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들과 나의 유전적, 환경적 차이는 그 순간에도 고독의 형태로 실재하며, 언젠가는 반드시 공감 불가능한 마찰을 만들어낼 것이고, 그 때가 되면 둔감해졌던 고독을 다시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인간은 근원적으로 고독합니다.</p><p><br></p><p><br></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