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일, 월 만나다.
오늘따라 버스 차창으로 스치는 바람이 상쾌했다.
월은 드디어 그를 만난다.
월은 그를 만나는 것이 너무나 기대가 되었다.
그는 그녀에게는 특별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월은 이상한 능력이 있었다.
아니 어쩌면 별로 특별한 것이 아닐 수도 있지만, 그녀의 그 능력을 알고있는 사람들은 그 능력을 특별한 것으로 말하곤 했었다.
햇볕이 따사롭게 내리던 7년 전의 예배당….
예쁜 교복을 입은 그녀는 어린 동생들을 위해 눈물을 뿌리며 기도하고 있었다.
IMF의 경제난으로 깨어진 가정에, 이제 남은 건 아버지가 죽음으로 지켜낸 방 세간짜리 빌라 한 채와 어린 동생들뿐이었다.
미래를 장담할 수 없는 어린 세 남매의 앞에 세상은 험난한 파도였다.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기도하는 것 뿐….
그녀는 벌써 몇 시간 째 기도하고 있었다. 이제는 자신이 말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자신 안에 또 다른 누군가가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를 지경에 이르렀을 때, 그녀에게는 신비한 일이 일어났다.
갑자기 십자가에서 환한 빛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는가 싶더니, 예배당의 모든 창을 통해 엄청나게 밝은 빛이 한 순간에 들어와 그녀에게 모였다.
정말이지 순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에토 카락케퓨타르 에펠로리악타 류코이메 나바카다릭히…….”
그녀의 입에서 알 수 없는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녀도 이 말이 자신이 하는 것인지, 아니면 자신 안의 다른 존재가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왜인지 그 말은 그녀가 엄마의 뱃속에서부터 알고 있던 것처럼 친근하게 느껴졌다.
하나둘씩 거리의 가로등이 켜질 때까지, 그녀의 알 수 없는 기도는 계속되었다.
이상하게도 그녀가 이 알 수 없는 말을 한 지 꼭 세 시간이 지난 후부터는 그녀도 이 말의 뜻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녀와 어린 동생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었지만, 이 이상한 언어로 된 기도의 내용은 엉뚱하게도 온 인류를 위한 간절한 기도였다.
세상에서 전쟁이 사라지고 정의로움이 세상을 지배하는 질서가 되도록, 온 세상에 괴로움을 당하고 있는 어린이들과 다른 이들의 욕심 때문에 고통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었다.
그녀는 한 번도 들어보지도 못한 나라와 도시, 그리고 마을들, 자신이 전혀 알지 못하던 아이들을 위해서도 기도하고 있었다.
그러나 신기한 것은 그렇게 기도하면서 그녀의 눈에는 그 모든 것들이 한 편의 영화처럼 흘러가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녀가 기도하는 나라와 도시, 그리고 마을, 사람들의 얼굴이 하나씩 그의 눈앞을 스쳐가고 있었다.
그런 일이 있은 후부터 그녀는 그 낯선 언어를 마치 일상어처럼 쓸 수 있게 되었다.
다만 아무도 그녀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기에 그녀는 단지 기도할 때만 그 말을 쓸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도 가끔 그녀는 실수로 사람들에게 그 말을 툭툭 내뱉곤 했다.
그럴 때마다 사람들은 그녀에게 무슨 뜻이냐고 물었고, 그녀는 그저
“요즘 외국어를 하나 더 배우고 있어요.”
하고 대답하곤 했다.
그러던 그녀에게 또 한 번의 이상한 경험이 있었다. 그 경험은 일(日)과의 통화중에 일어났었다.
몇 개월 전이었다.
“여보세요. 유태일 선생님댁이죠?”
“네, 제가 유태일입니다만.”
“예. 아름다운 출판사인데요, 원고 때문에 전화 드렸어요.”
“아, 네. 지금 막 메일로 보내드렸는데요?”
“예. 그러세요? 지금 원고를 빨리 넘겨야 되어서 부탁드리려고 전화했는데….”
“지금 막 메일로 보냈으니까 얼른 확인해보세요.”
그녀는 급한 마음에 간단히 인사를 한다는 것이 그만 실수를 하고 말았다.
“예 감사합니다. 릭히 하쿠 이파카락하 에파카탄!”
“예, 간사님도요.”
그녀는 깜짝 놀랐다. 그가 이 말을 알아들었단 말인가?
“예? 제가 지금 뭐라고 말씀드렸죠?”
“예. 감사하다고 그러셨잖아요.”
“그거 말고, 그 뒤에….”
“아. 아름다운출판사 전용인사말이요? ‘늘 사랑과 평화가 함께 하세요.’라고 하셨죠.”
“제가 그랬나요?”
“매번 전화하실 때마다 그렇게 하시잖아요.”
그때는 정말 놀랐었다. 그리고 ‘매번 전화할 때마다’라니... 그럼 그 때마다 그는 자신의 말을 알아듣고 있었던 것이었단말인가?
아무런 이상함도 느끼지 않고 자연스럽게...
그를 만나면 꼭 그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리고 자신의 이상한 능력도 해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차창 사이로 부는 시원한 바람이 그녀의 검고 긴 생머리를 가볍게 날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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