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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볕이 따갑게 내리쬐는 7월의 상순.
태양이 분노하는 열기가 온몸에 확확달아올랐다. 내 이마에서는 땀방울이 송알송알 맺혀 콧잔등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렸다. 하루살이가 이마에 앉아 살갖을 할켰다. 난 얼굴을 찡그리며 이마를 기른진 손으로 긁어댔다. 이마에서는 땀방울과 기름방울이 뒤범벅이 되어 끈적이며 흘러내렸다. 몹시도 짜증이 나고 마음이 답답하여 손에 쥐고 있던 스페너를 땅에 내동댕이 치며, “제기랄” 하고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러댔다.
그러던중 어느덧 휴식시간이 되었다.
정비사 중에서 가장 막내인 나는 오늘도 어김없이 음료수 심부름꾼으로 변신할수 밖에 없었다. 난 가장 가까이에 있는 그녀가 일하는 슈퍼로 가지 않고 다른 데로 갈까 망설이다가, 좋아하는 그녀를 보고 싶은 생각에 불쑥 슈퍼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그녀의 곱지 못한 시선을 생각하자 약간은 의기소침한 모습이 되었다. 역시 카운터에는 그녀가 앉아 있었는데,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는중이었다.
그 순간 지난번에 있었던 일이 머리에 스쳐 지나갔다.
“아가씨!이 식혜 얼맙니까?”
“7000원이에요.”
며칠전 주인 딸인듯한 아가씨는 카운터 위에 올려진 몇개의 캔음료를 잠깐 스치
듯 바라보더니 짜증섞인 목소리로 퉁명스럽게 대답하고는, 마치 화풀이라도 하듯이 봉지안으로 음료수를 아무렇게나 쏟아 넣었다. 그리고는 내가 내민 돈을 채 가듯이 받아가, 금고에 집어넣고 신경질적으로 금고 문을 쾅닫았다.
거스름돈을 받으려고 기다리는 나를, 그녀는 무슨 더러운 거지를 바라 보는것처럼 경멸에 가득찬 눈으로 바라보았다. 마치 아직도 무슨 볼일이 남아 있느냐고 묻는것처럼, 그리고 왜 아직도 가지 않느냐는 듯이….
아마도 그녀의 그런 무시하는 듯한 눈빛은, 나의 얼굴과 옷에 군데군데 묻어있는 흙먼지와 기름 얼룩자국들, 그리고 내 몸에서 심하게 풍기는 땀냄세 때문일 것이었다.
난 그녀의 경멸하는듯한 눈초리를 받자, 거스름돈을 받을 생각도 하지 못하고, 내 자신이 부끄러운 생각에 얼굴만 붉어져 음료수캔이 든 봉지를 들고 가게에서 도망치듯 나와버렸다. 서둘러 나오는 내 모습뒤로 그녀의 곱지 못한 시선과 궁시렁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런 그녀의 행동에 한편으로는 화도 났지만, 이렇게 온몸에 기름이나 묻히고 땀냄세나 풍기는 내 자신에게 더 화가 났다.
‘왜 난 남들처럼 멋있는 인생을 살지못하는 걸까?’ 하며 내 자신에 대한 회의마저 느껴졌다.
하긴 사람들의 그런 시선을 처음 느끼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내가 좋아하고 사귀고 싶어하는 그녀에게서 그런 시선을 느낀다는 것은 연애를 하고픈 혈기왕성한 청춘인 나로서는 크나큰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사실 며칠전까지만해도 그녀의 그런 눈빛은 그냥 느낌으로만 막연하게 느꼈었는데, 일주일간 고생해서 내 진실한 마음을 쓴 편지를 용기를 내서 그녀에게 전해준 후로부터 그녀는 그런 표정을 느낌만이 아닌 아예 표면으로 들어내놓고 있었다. “네까지께 감히 나를 넘봐!” 그러는것처럼.
나는 밤세 잠을 이룰수 없었다. 자꾸 그녀의 경멸하는듯한 시선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나같이 기름이나 묻히고 사는 기능공들에게 가장 서럽고 힘든건 바로 사람들의 곱지못한 그런 시선인데….난 괜히 흘러나오는 눈물을 꾹 참으며, 미래에 성공해서 당당하게 큰소리치는 나를 생각하며 억지로 잠을 청하였다. 하지만 마침내 감긴 눈꺼플사이로 한줄기의 눈물이 볼을 타고 흘려내렸다.
작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통화하고 있는 그녀를 조심스럽게 힐끔힐끔 쳐다보며 대충 음료수와 담배를 산후 그걸 카운터로 가져갔다. 하지만 그녀는 통화 내용이 중요한듯 카운터위에 올려진 물건들의 계산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녀의 인상이 좋지 않은걸로 보아 별로 좋은 내용이 아닌것 같아, 그녀를 부르지 않고 통화가 끝나기를 조용히 기다렸다.
“뭐라고 아침에 보니 타이어가 터졌다고. 그럼 타이어를 교환해야지. 방법을 모 른다고.그럼 어떻게…, 차가 없으면 어떻게 부모님을 그 먼거리에서 모셔올수가 있어. 버스를 타면 너무 멀미를 많이 하시고, 택시를 타자이 돈이 많이 들고 말 야…, 그럼 정비소엔……. 뭐, 사람이 너무 많이 밀려서 출장이 안된다고,…혹 시 근처에 도움받을만한….”
통화 내용을 들어보니 아마 그녀의 인척관계에 있는 사람의 차에 타이어가 터져 곤란한 상황에 빠진 모양이었다. 난 그녀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 그녀의 통화에 끼어 들었다.
“저….”
“잠깐만…,계산좀 해주고.”
계산을 해달라는줄 알고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통화자에게 기다리라고 말하더니,그녀는 날 힐끔 한번 쳐다보더니 카운터위에 올려진 돈을 들어 계산하고 남는 거스름돈을 내주었다. 말이 내준거지 거의 카운터위로 내팽개 쳤다.
“저, 그게 아니고…….”
“또 뭐예요. 거스름돈도 드렸잖아요. 계산이 잘못됐어요?”
내가 가지 않고 말을 거는걸 보자 그녀는 화를 내며 따지듯 말했다.
“그…그게 아니고, 타이어가 펑크난 모양인데 제가 도움이 될까해서요.”
“…….”
그녀는 나의 난데없는 말에 약간은 놀란듯한 눈으로 바라보더니, 무언가를 생각하여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나의 직업을 생각하고는, 별로 마음에는 내키지는 않았지만 사정이 사정이니만큼 어쩔 수 없는 심정으로 응한듯했다.
그녀는 전화상대자에게 곧 간다고 말하고는 전화를 끊고, 날 보고 따라오라는듯이 눈짓을 하고는 앞장을 섰다.
“저….”
“걱정말아요.여기서 얼마 멀지 않으니까?”
도움을 받는 처지여서 그런지 그녀의 태도는 많이 누그러져 있었지만, 여전히 말투는 퉁명스러웠다.
그녀를 따라 5분쯤 걸어 가자 아파트가 보였는데, 그녀는 그 아파트 지하주차장으로 들어갔다. 뒤따라 들어가보니 지하주차장에서 안전부절해하며 왼쪽 뒷바뀌에 있는 타이어만 바라보며 발을 동동 굴리는 한 여인을 볼수 있었다. 아마 그여인이 아까 전화를 한모양이었다.
“연희야, 이사람이 예비타이어를 끼워줄거야.” 연희라고 불린 여인은 날 한번 바 라보더니, 이제 살았다는듯이 길게 숨을 내쉬며 차 옆으로 비껴섰다.
내가 트렁크를 열어달라는 쉬늉을 하자 그녀는 재빨리 트렁크문을 열어주었다. 난 익숙한 솜시로 트렁크 룸 카페트 아래에 보관되어 있는 예비타이어와 잭을 꺼낸후 고임목으로 타이어를 고정시킨 다음에 터진 타이어에서 가장 가까운 잭 포인트 아래로 잭을 가져가 설치하였다. 그리고 즉시 잭에 핸들을 넣고 시계방향으로 돌려 차체를, 타이어를 교환하기 쉬운 높이로 들어올렸다.하지만 핸들이 굳어서 잘 올라 가지 않아 꽤 애를 먹었다. 조금 숨을 돌린후 허브너트 렌치로 너트를 시계반대 방향으로 돌려 모두 빼내었다. 그리고 터진 타이어를 빼내었다. 여름이고 또 힘든 작업중이어서 그런지 얼굴에서 땀이 많이 나고있었다. 그 땀이 눈에 들어 갔는지 눈이 조금 따끔거렸다. 난 기름묻은 소매로 언제나처럼 습관적으로 땀을 닦아냈다. 그리고는 그녀를 무의식적으로 바라보았다. 그녀는 자신때문에 쉬는 시간인데도 쉬지 못하고 이렇게 땀흘리며 고생하는 나에게 조금은 미안했던지 예비타이어를 나에게 가져다 주었다. 아마 본심은 착한 여인인 것 같았다.
“손이 더럽혀지니 그냥 두세요. 제가 할께요.”
난 그녀에게서 타이어를 받아 들어 빈 자리에 끼어넣었다. 그리고는 너트를 하나하나 꽉조였다. 어느덧 내 손과 옷에는 너트와 다른 공구에서 묻은 기름이 얼룩져 있었다. 난 다시 잭을 핸들로 돌려 빼내고, 받이고 있던 고임목을 빼내었다. 모든 마무리가 된것이었다. 하지만 말처럼 금방되는 쉬운일이 아니어서, 아까 땀을 닦은 얼굴위로 다시 땀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난 습관적으로 다시 기름진 소매로 얼굴을 닦으려 했다. 그때 그녀의 고운 손이 불쑥 내밀어 지며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이걸로 닦으세요.”
그녀가 내민 손에서는 멀리서도 향기가 느껴지는 꽃무늬 손수건이 놓여있었다.그녀의 손수건인것 같았다. 조금 망설이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도 나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이제까지 나를 바라보던 경멸의 눈빛과는 달리 고마워하는 진실의 눈빛이었다.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 기름진 얼룩자국이 이렇게 아름다운건지 정말 몰랐어요. 그 얼룩자국이야말 로 남을 위해 자신을 헌신하는 노력의 증거라는걸요. 정말 죄송해요. 그동안의 제 행동에 진심으로 사과드릴께요.
그리고 고마워요.”
그녀의 진실한 눈빛과 사과의 말을 듣자 그동안 그녀로 하여금 격었던 고통이 눈녹듯이 사라져버리는것 같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처음 보는 그녀의 미소는 날 너무도 기쁘게 해주었다. 다른 사람에게도 아닌 나를 향한 미소, 그 미소는 어떠한 시원한 바람보다도 내가슴을 시원하게 해주었다.
나만을 위한것 같은 미소, 그리고 내가 쓴 편지의 내용을 승락하는 의도가 다분히 담긴 것같은 수락의 미소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난 그녀가 내미는 손수건으로 땀으로 범벅이 된 얼굴을 닦으며, 그동안 간직하고 있던 자신에게 느끼던 경멸감과 자책감 그리고 굴욕감을 한꺼번에 모두 닦아 내버렸다.
‘그래! 나의 이 기름 얼룩 자국은 다른 사람의 편리함을 위한 노력의 훈장이라 구,곧 소리없는 봉사의 영예의 자국들….’
날 바라보며 환한 미소를 짓는 그녀에게, 나도 환한 미소를 지으며 눈을 찡긋했다.
어디선가 시원한 바람이 솔솔 불어왔다. 마치 나의 기쁜 마음을 축하해 주는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