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내글구려병에 대해서 <div><br></div> <div><br></div> <div>이것은 실체가 없는 무시무시한 병이다. 이 병에 대해 파악하기 위해 글을 쓰는 방식, 그러니까 병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b style="background-color:#fbd5b5;"><소설을 쓰는 방식></b>에 대해 생각해보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소설은 한 가지 방식으로 쓰인다. 첫 번째 문장을 쓴다. 그리고 그 다음 문장을 쓴다. 그것은 두 번째 문장이 된다. 그리고 다시 다음 문장을 쓴다. 세 번째 문장이다.</div> <div><br></div> <div>첫 문장을 쓰지 않으면 다음 문장은 있을 수 없다. 모든 조각난 문장을 만들어서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첫 문장에서 소설이 시작될 것이다. 다시 말해 <b style="background-color:#fbd5b5;"><문장이 문장을 밀어낸다></b>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 파생되는 문제는 <b style="background-color:#fbd5b5;"><그렇다면 우리는 이전 문장에 만족하는가?></b>이다. 문장을 이어서 쓰려고 하는데 다시 보았더니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더라, 내 글이 구려 보인다, 고 사람들은 이야기한다.</div> <div><br></div> <div>결국 그것은 <b style="background-color:#fbd5b5;"><글이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b>이라는 말로 퉁칠 수 있다. 우리가 내글구려병을 해결하기 위해서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은 <b style="background-color:#b8cce4;"><왜?></b>이다. 왜 내 글이 구려보이는가. 글을 쓰는 간격이 길어서, 내 필력이 늘었기 때문이라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경우는 거의 없다. 이 지랄 맞은 병인 내글구려병을 탐구해보자.</div> <div><br></div> <div><hr>2. 내글구려병의 원인</div> <div><br></div> <div><br></div> <div>내글구려병의 원인은 <b style="background-color:#fbd5b5;"><문장의 완성도></b>에 있다. 우리가 쓴 글을 다시 보았을 때, 단어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경우는 적다. <b style="background-color:#fbd5b5;"><다 괜찮은데 단어 선택이 문제라고 느끼는 경우></b>는 없다고 봐도 좋다. 물론 이 연장에는 표현이 있다. 묘사나 설명이 들어갈 때, 무언가 마뜩잖은 경우가 있을 것이다. 다음 문장을 보자.</div> <div><br></div> <div>1 그가 조용히 웃었다.</div> <div>2 그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div> <div>3 그는 웃는 것 같았지만, 한편으로는 웃지 않는 것 같기도 했다.</div> <div>4 그의 웃음은 어쩐지 슬픔을 연상케 했다.</div> <div>5 그가 싱그러운 웃음을 머금었다.</div> <div>6 울음을 참아내는 그의 입가가 가늘게 떨렸다.</div> <div><br></div> <div>우리는 <b style="background-color:#b7dde8;"><그가 웃었다></b>라는 골자를 두고 무수히 많은 문장을 쓸 수 있다. 개인마다 선호하는 문장의 종류는 많겠지만, 결정적으로 이 한 문장 때문에 글이 마음에 들지 않는 건 아니다. 우리가 버릇처럼 쓰는 말은 내글구려병이지, <b style="background-color:#fbd5b5;"><내문장구려병></b>같은 게 아니다. 앞서 원인이 문장의 완성도에 있다고 했는데, 이 문장의 완성도라는 건 결국 한 문장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가 난해하다면 좀 더 세세하게 살펴보자.</div> <div><br></div> <div></div> <div><hr></div> <div>3. 문장의 완성도</div> <div><br></div> <div><br></div> <div>가독성이나 <b style="background-color:#fbd5b5;"><무척이나></b><b style="background-color:#ffffff;"> </b>좋은 글을 떠올려보라. 문장을 따라가는 생각의 속도가 굉장히 매끄러워서, 활자를 인식한다는 생각을 하기도 전에 이미 다음 장으로 넘어가있는 글을 떠올려보라. 개인적으로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들이 그러했다. 잠깐 정신을 차려 보면 이미 책이 몇 장이나 넘어가 있었다. 이유는 단순하다. <b style="background-color:#fbd5b5;"><존나 잘 썼기 때문></b>이다. 그렇다면 가독성이 좋은 글과 내 글의 차이점은 무엇이며, 내글구려병의 원인에 가독성을 언급하는 이유는 무엇일까?</div> <div><br></div> <div>통상적으로 문장의 완성도가 낮으면 가독성이 떨어진다. 가독성이 떨어지면 연결된 문장 사이에 틈이 생긴다. 틈이 생기면 다음 문장까지 가는 시간이 느려진다. 여기에서 <b style="background-color:#b7dde8;"><작가의 불만족></b>이 생겨난다. 이 부분이 내글구려병의 핵심이기도 하다.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다음 문장을 보자.</div> <div><br></div> <div>1- 어머니는 늘 쌀밥을 지었다. 항상 맛있는 건 아니었다. 수입 쌀이기 때문이었다.</div> <div><br></div> <div><br></div> <div>언제인가 작법에 관련된 글을 썼을 때 예시로 들었던 문장이다. 위의 세 문장은 대체적으로 촘촘하게 연결된 편이다. 그래서 별다른 틈 없이, 말하자면 <b style="background-color:#fbd5b5;"><생각의 여지 없이></b> 문장을 읽어낼 수 있다. 이 문장을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쓴다고 생각해보자.</div> <div><br></div> <div>2- 어머니는 늘 쌀밥을 지었다. 지호는 쌀밥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수입 쌀이기는 했지만.</div> <div><br></div> <div><br></div> <div>이렇게 두면 느낌이 오는가? 1번처럼 쓸 수 있는 사람이 2번의 문장을 쓴다면, 높은 확률로 <b style="background-color:#fbd5b5;"><내 글이 구리다></b>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2번의 문장을 세부적으로 다시 나눠보자.</div> <div><br></div> <div><br></div> <div>1 어머니는 늘 쌀밥을 지었다.</div> <div>2 지호는 쌀밥을 무척이나 좋아했다.</div> <div>3 수입 쌀이기는 했지만.</div> <div><br></div> <div>이 문장들은 <b style="background-color:#b8cce4;"><독립적으로 쓰였을 때></b>는 크게 문제가 없다. 다만 이어 놓으면 문제다. 문장에 다소 거리감이 있기 때문에 가독성이 떨어진다. 가독성이 떨어지면 그건 불만의 형태, 그러니까 내글구려병으로 남는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퇴고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b style="background-color:#fbd5b5;"><문장 단위에서 마음에 들 때까지></b> 고쳐야 한다. 시간을 들여서 흡족할 때까지 고쳐야만 내글구려병을 해소할 수 있다.</div> <div><br></div> <div><hr></div> <div><span style="font-size:9pt;">4. 그 외의 이야기</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br></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br></span></div> <div>내글구려병은 등단을 목표로 하는 작가지망생보다는 장르문학을 쓰려고 하는 사람들에게서 많이 발생한다. 장르문학의 특성상, 한 편에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없기 때문이다. 통상적인 경우에 단편소설(원고지 80매 가량)을 쓰는 데 소요되는 시간은 한 달 남짓이다. A4용지로 환산하면 10장에서 11장 정도가 되는데, 이 분량은 장르문학에서는 늦어도 며칠 안에는 뽑아내야 하는 분량이다. 당연히 문장의 완성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div> <div><br></div> <div>하지만 독자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연재를 해야 하기 때문에, 지정된 키로바이트 수를 맞춰야 하기 때문에, 등의 이유로 한 문장씩 마음에 들 때까지 손을 볼 수는 없다. 이렇게 문장을 두고 가면 나중에 다시 볼 때에는 내글구려병을 겪게 된다. 그게 아주 오래된 회차의 글이 아니라 <b style="background-color:#fbd5b5;"><다만 오늘 쓰고 있는 글></b>에서도 마찬가지다.</div> <div><br></div> <div>이렇게 글을 쓰는 이유는 한 가지다. 많은 사람들이 <b style="background-color:#b8cce4;"><내글구려병 때문에 글을 못 쓰겠다></b>고 이야기하는데, 사실 글은 답을 품고 있다. 뻔하고 유치한 이야기지만 답은 글 속에 모두 있다. 딱 두 문장만 보면 된다. 첫 번째 문장과 두 번째 문장이 마음에 들면 두 번째 문장과 세 번째 문장을 보라. 여기까지도 통과가 되면 세 번째 문장과 네 번째 문장을 보라. 분명히 당신은 <b style="background-color:#fbd5b5;"><어딘가 마음에 들지 않는 문장></b>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