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_ <br>알람보다 먼저 깬다. 늘 그렇다. 알람은 한번도 제 일을 해 보지 못했다. 그럼에도 눕기 전 반드시 알람을 맞추는건, 바람이다. 알람 소리 못 듣고 고목처럼 자고 싶은, 그래서 엄마가 흔들어 깨우면 투정으로 일어나 늦었잖아, 왜 이제 깨웠어, 호들갑 떨어보고픈. 그렇지만 알람보다 먼저 깬다. 그건 습관이다. 습관에는 설명이 필요없다.<br><br>식탁_<br>밥 욕심이 많다. 반찬은 짱아찌 하나라도 족하다. 우겨넣는 밥덩이가 목구멍을 터트릴 듯 채워 물로 겨우 내리면 위장이 부풀어오르는 그 느낌이 좋다. 그런 내 뒤통수를 후려치는 엄마의 된 손. 그만 좀 퍼먹어. 엔간치 처먹어야지, 엔간치. 씹느라 답 못하는 나는 그저 속으로, 자꾸만 배가 고파요, 엄마.<br><br>화장실_<br>만성 변비다. 급하게 먹는 탓이다. 알고 있지만 고칠 수는 없다. 그건 습관이니까. 기본 30분. 아빠의 노크는 잔뜩 화가 나있다. 시팔, 개같은년이, 그렇게 처먹으니 싸지르는 게 일이지 아주. 힘 주느라 답 못하던 나는 겨우 입을 떼, 금방 나가요. 돌아오는 답은, 영원히 나가, 들어오지마.<br><br>지하철_<br>일찍 집을 나서기도 하고, 종착에 가까운 역에서 탑승함으로 자리는 늘 여유로운 편. 앉아가다보면 만원이 된다. 나를 사이에 두고 한 커플이 앉는다. 여자가 눈치를 줘 남자가 내게 말한다. ㅈㄹ ㅈ ㅂㅋㅈㅅㄹㅇ? 터널 소리가 커 듣지 못한 나는, 네? 하고 되묻는다. 자리 좀 비켜달라구요. 이건 물음이 아니다. 위압이다. 싫은데요. 이번엔 남자가 되묻는다. 네? 터널이 곧 반복됨으로 나는 빠르게 답한다. 그런걸물어볼땐죄송하다던가실례한다던가뭐그렇게말씀하셔야예의아닌가요자리옮겨드리는거야못할일이아니지만<br><br>됐어요. 자기야, 다른 칸 가자. 뭐야 재수없어. 여자가 내 말을 끊고 남자 손을 붙잡아 이동한다. 내가 무어라 말하지만, 터널에 재진입해 소리가 묻힌다. 양 옆 빈 자리에 노부부가 재빠르게 나누어 앉는다.<br><br>나는 가방에 고개를 파묻고 이빨로 가방 가죽을 뜯는다. 노부부는 자리를 바꿔달라 말하지 않는다. 그저 아무렇지 않게 나를 사이에 두고 절편과 생수를 주고 받을 뿐.<br><br>회사_<br>쓸고 닦는 일이 먼저다. 의무는 아니지만 그렇게 됐다. 지극히 당연한 업무처럼. 사실 그냥 문지르는거다. 자주 갈지 않아 까만 마포걸레나 바닥이나 다름없다. 행위로서 청소를 마치고 기지개 펴는데 소장이 들어온다.<br><br>라인보게, 아주 그냥 통나무야. 물 줄 뻔했어. 늙은 농담을 대번에 알아듣지 못해 생각하는데 계속 말한다. 아니, 옆 현장 미스최는 그렇게 잘 빠졌더만. 싹싹하기까지 하니 김소장은 일 할 맛 나겠어. 나를 잠시 훑어보더니, 미스김은 타고난게 안 되면 좀 꾸미기라도 하든지. 일할 맛이 나야지 원. 아가씨잖아, 신경 좀 써. 나는 눈만 껌뻑이고, 소장은 연이어. 됐다. 내가 너한테 뭘 바라냐. 회의하게 어제 말한 자료 인원수대로 복사나 해놔. 커피 세팅해놓고. 난 눈만 껌뻑이는데, 대답 좀 시원하게 좀 해. 아후, 속터져.<br><br>나는 눈물이 터져.<br><br>복사기_<br>사실, 복사하는 일을 좋아한다. 위잉, 탁. 한 장. 위잉, 탁. 두장. 그렇게 계속 뱉어내는 복사용지를 가만히 보다가, 어느정도 쌓이면 뭉치로 들어 뺨을 대보는거다. 따뜻해. 이건 습관이다. 습관에는 설명이 필요없다.<br><br>다만, 바람이 하나 있다면, 딱 이 만큼만.<br><br>누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