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 게시판 |
베스트 |
|
유머 |
|
이야기 |
|
이슈 |
|
생활 |
|
취미 |
|
학술 |
|
방송연예 |
|
방송프로그램 |
|
디지털 |
|
스포츠 |
|
야구팀 |
|
게임1 |
|
게임2 |
|
기타 |
|
운영 |
|
임시게시판 |
|
옵션 |
|
| |||||||||||||||
↑ 남만주의 신빈현 왕청문에 세워진 항일명장 양세봉 장군의 조각상. 우상 숭배를 배격하는 중국에서 조선인의 석상은 이례적이다. (사진=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제공) ..... 양세봉은 1924년 남만주로 넘어와 여러 독립운동 단체가 통합한 참의부의 소대장으로 임명되었다. 그해 5월 16일 국경을 넘어 평북 초산과 강계에서 일본 경찰과 교전을 벌여 여러 명을 사살하고, 사흘 후 사이토 총독에게 총알을 날려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신출귀몰한 무장투쟁을 벌이면서 양세봉은 독립군 안에서 최고의 군인으로 이름을 날렸다. ◈ 만주의 유일당 조선혁명당 결성되자, 조선혁명군 총사령관으로 취임하다 흩어져 있던 만주의 독립운동단체들은 1929년 12월 만주의 유일한 정당인 조선혁명당을 결성했다. 양세봉은 그 산하의 무력부대인 조선혁명군 총사령관으로 임명됐다. 그는 중국인 부대인 요녕농민자위군과 연합하여 일본군과 200여 차례 교전을 벌였다.
고구려연구재단 조사 결과, 양세봉 장군이 이끄는 조선혁명군이 1929년~1934년까지 5년간 벌인 전투는 80여 차례, 사살한 일본군과 만주국 군경은 1,000명에 달했다. 양세봉 장군 밑에서 참모장으로 눈부신 활약을 한 이가 나중에 광복군 지대 장이 되는 김학규 장군이다.
|
죄송합니다. 댓글 작성은 회원만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