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 <strong> 나는 누구인가 </strong></div> <div> <br>“야! 너 우리 아파트 놀이터에 놀러 온 거냐?” <br>다섯 살 여자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br>“어른이 물으면 말을 해야지! 지난번에 너 나보고 뭐라 말했어?” <br> 우리 집 근처 골목길에 작은 슈퍼가 있다. 일을 보러 나가는데 슈퍼주인이 손자 둘을 껴안고 있었다. 작은 손자가 귀여워 들여다보려고 하니 큰손녀가 자기 동생을 보지 말라고 악을 쓰며 울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딱 붙어 앉아서 작은 손자를 만지작거렸다. 그러자 울던 아이가 울음을 뚝! 그치더니,<br> “아짐마는 가던 길이나 가~!” <br>민망해져 나는 가던 길을 갔다.<br> 그렇게 암팡지게 말하던 다섯 살 손녀와 아파트 놀이터 앞에서 딱 부딪혔다. 주위를 싸악 둘러보니 아이는 혼자였다. 아이의 손에 들린 주둥이 찢어진 과자봉지를 보며 나도 찢어진 입으로,<br>“과자는 우리 동네에 왜 질질 흘리고 다녀! 니가 청소하냐? 너 지난번에 아짐마 가던 길이나 가라고 그랬지?” <br>나를 빤히 쳐다보던 아이가 마침내 울음을 터뜨리더니 경비실아저씨를 부르며 뛰어갔다. 울면서 뛰어가는 아이 뒤통수에 대고 한마디 더 구시렁거렸다. “관리비도 안내는 게 우리경비아저씨는 왜 찾아?” <br> <br> 역 주변을 걷다보면 검은 가방을 사선으로 메고 도(道)를 아느냐? 고 묻는 사람들을 종종 만난다. 그들은 배짝 마른 얼굴로 날더러 인상이 선해 보인다, 덕이 있어 보인다, 라는 말을 하며 줄줄 따라온다. 다섯 살 아이에게 으름장을 놓으며 울린 그날도 나는 역 근처에서 배짝 마른 이들에게 그런 말을 들었다. 마침, 덕을 쌓으러 절에 가는 길이긴 했다. <br> 좀 전 아이를 울렸던 그 시간의 내 인상도 선하고 덕이 있어 보였을까. 사람의 관상은 눈에 보이는 얼굴보다는 그 사람의 평소 얼굴표정이나 말투, 눈빛이나 행동거지가 자신의 인상을 좌우한다고 들었다. 또, 자신의 상이 아무리 좋다한들 어떤 상을 만나느냐에 따라 운명이 바뀐다고 했다. 그렇다면 나는 다섯 살 아이를 만났던 순간에 내 안에 숨어있던 다섯 살이 툭! 튀어나오기라도 했단 말인가. <br> 절에서 무릎이 부서지도록 백팔 배를 했다. 백팔 번뇌가 머릿속을 헤집었다. 금빛 옷을 입은 부처는 무릎을 접었다 일어났다를 반복하며 머리를 조아리는 나를 측은하게 내려다보고 있는 듯 했다. <br> 나는 가끔씩 나에게 묻는다. ‘너는 누구인가?’ 한 남자의 아내, 한 아이의 엄마라는 뻔한 답 말고. 다섯 살 아이를 윽박지를 때는 다섯 살 아이이고 길거리에서는 선한 얼굴이고, 금빛의 부처 앞에서는 잔뜩 주눅이 든 허름한 나. 누군가를 만날 때 마다 달라지는 여러 개의 나. 나는 누구인가.<br> 집으로 돌아오는 골목에 슈퍼 집 다섯 살 손녀가 친구랑 놀고 있었다. 아이가 나를 알아보고 자기 할머니에게 나의 잔망스러움을 일러바칠 것 같아 꼈던 안경을 벗었다. 아무 일 없는 듯이 지나가고 있는 나의 뒤통수에 대고 아이가 한마디 했다.</div> <div><br>“치사하다! 정말!”</div> <div><br>신은 죽었다고 말한 니체는 어린아이를 최고의 선(善)이라고 했다.</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이 글은 수필이기에 실화를 바탕으로 합니다.</div> <div> </div> <div>- 저희 어머니께서 보실 수도 있으니까 너무 심한 비방은 삼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br> </div> <div><br> <br> <br></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