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공간이란 내가 무엇인가와 관계를 맺고있는 형태를 말합니다.</div> <div> </div> <div>여기는 나를 중심으로 너와 관계를 맺고 있는 공간이고, 거기는 너를 중심으로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공간, 저기는 너와 내가 아닌</div> <div> </div> <div>제3자가 중심이 되어 우리와 관계를 맺고 있는 공간입니다.</div> <div> </div> <div>여기라는 공간은 철저하게 내 경험에 의해 진행되가는 것이기 때문에 나만이 알수 있는 고유적 경험입니다. </div> <div> </div> <div>그렇기 때문에 거기있는 이가, 저기 있는 이가 여기있는 나의 경험을 이해한다는것은 불가능합니다. </div> <div> </div> <div>같은 물건을 바라봐도 여기의 나와 거기의 너가 느끼는 것은 전혀 다를 수 밖에 없는데, 배려 차원의 이해를 넘어서 거기나 저기 있는 이가</div> <div> </div> <div>여기의 나를 깊게 간섭하거나 마치 고유적 나의 경험을 본인들이 이미 똑같은 경험을 했고, 그에 대한 답을 강제적으로 주입시키거나 알려주려</div> <div> </div> <div>한다면 필연적으로 갈등이 생길 수 밖에 없습니다.</div> <div> </div> <div>이러한 상황은 여기 게시판의 이야기들 처럼 며느리와 시부모의 관계에서도 예외일 수는 없을것입니다. 꼭 시부모님이 아니어도 나이가 상대적으로</div> <div> </div> <div>많아, 어른 이라는 이유로 본인들의 경험과 판단을 아랫사람에게 강요하는 경우가 빈번히 발생합니다.</div> <div> </div> <div>이것은 어른스럽지 못한 행동입니다. </div> <div> </div> <div>인고의 착각처럼 그분들이 참고 견뎌왔던 세월을 타의든 자의든 똑같이 되풀이 한다면 이러한 갈등은 되려 더욱 악화만 시킬 뿐 진정될 수 없습니다.</div> <div> </div> <div>본인들이 겪어 온 인고의 시간들은, 그 끝이 눈을 감는 날까지 결코 평화나 행복으로 마무리되지 않는다는것을 스스로 인지하고 있을겁니다.</div> <div> </div> <div>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조건 아랫사람이 참고 견뎌야 하는 상황을 똑같이 되풀이 하려는 이유가 무엇일까요</div> <div> </div> <div>그게 맞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죽기전까지 본인의 삶을 합리화 시키려는 습이 있습니다. 그 합리화는 삶의 좋은 부분일 때는 되려 덜하지만 </div> <div> </div> <div>좋지 않은 삶의 일부일 수록 누군가 그 부분을 지적하거나 들춰내려 할 때 그 합리화가 극에 달해 논리나 상대방의 배려 따위는 안중에 없게 됩니다. </div> <div> </div> <div>결국 어린아이가 떼를 쓰는 모습으로 변하기도 합니다. </div> <div> </div> <div>겪어오셨던 인고의 시간들, 그 끝자락에 와보니 결코 그게 좋은 방법이 아니었다는것을 알고 있지만 나도 모르게 그것을 되풀이 하여 </div> <div> </div> <div>내 삶속 인고의 시간들은 정당했고, 윤리적이고, 어른에 대한 공경이었다 합리화 시키는 것입니다. </div> <div> </div> <div>인고의 시간들은 결코 나를 빛나게 하지도, 나를 행복하게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해 버리는 순간 내 삶의 일부를 부정하게 된다 느끼기 때문입니다</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사람은 관계로써 존재합니다.</div> <div> </div> <div>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자식이 태어남으로써 생겨납니다.</div> <div> </div> <div>자녀와 부모의 관계는 부모가 자식을 낳음으로써 생겨납니다.</div> <div> </div> <div>즉, 부모는 자식을 낳았고, 자식은 부모를 만들었습니다.</div> <div> </div> <div>다시 말해 부모와 자식은 동시에 생겨난 것입니다. </div> <div> </div> <div>자식으로써 한살, 부모로써 한살</div> <div> </div> <div>부모가 자식을 키우는 시간동안, 자식 또한 부모를 성장케 합니다.</div> <div> </div> <div>따라서 진정한 부모노릇은 자식으로 인해 받은 부모교육을 마친 후에 할 수 있고, 진정한 자식노릇은 부모님으로 부터 받은 자녀교육을 마친 후에</div> <div> </div> <div>비로소 할 수 있습니다. 부모와 자식은 동시에 태어났기에 모두 교육받은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div> <div> </div> <div>마찬가지로 며느리와 시부모의 관계또한 그렇습니다. 자식이 결혼을 함으로써 시부모도 시부모로써 한살, 며느리도 결혼을 함으로써 며느리로 한살.</div> <div> </div> <div>이렇게 새로이 탄생한 관계속에는 나이를 기준으로 한 어른과 아이는 존재 할 수 없습니다. </div> <div> </div> <div>위에 말했드시 여기는 나를 중심으로 너와 관계를 맺은 공간이기에, 거기 너를 중심으로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공간을 절대 이해할 수 없습니다.</div> <div> </div> <div>그러니 여기의 내가 경험한 바를, 거기의 너에게 주입시키려 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div> <div> </div> <div>내가 내 자식과 부모자식의 관계를 맺으며 받아온 부모교육은, 타인이 타인의 자식에게 받은 교육과 절대 같을 수 없을 뿐더러</div> <div> </div> <div>내 자식을 키워온 경험으로 타인의 자식에게 똑같이 강요할 수 없다는 얘기입니다.</div> <div> </div> <div>자식 결혼 두번 세번 시킨게 아니라면 아니,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이 며느리는 새로운 고유의 이 며느리 이기 때문에 다시금 시부모도 며느리와의 관계</div> <div><br>속에서 다시 한살인것입니다.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배려라는 것은 그래서 나온것입니다. 여기의 내가 거기의 너를 완전히 이해한다는것은 불가능하다는것을 알기에 너의 경험을 내가 귀담아 듣고</div> <div> </div> <div>나의 경험을 너가 들어줌으로써 배려가 생겨나고 조율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div> <div> </div> <div>관계속의 갈등을 해결하려면 기본적으로 너와 내가 다르다는것을 서로 인정해야 합니다. </div> <div> </div> <div>비약이 심할지 모르지만 저희 할머니께서는 고모님을 어렸을 적 마당에 있는 우물에서 잃으셨습니다. 밭에나가 일을 하고 있는 사이에 </div> <div> </div> <div>우물가에서 놀던 아이가 거꾸로 밑도 보이지 않는 우물속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차갑고 깊은 우물속에서 아이를 건져냈을 때 할머님은</div> <div> </div> <div>어떤 심정이셨을까요. 그 후 어린 손자들이 물가에 혼자 있는 것만 보아도 노발대발 하십니다. 이런 할머니의 경험을 모르는 며느리들은</div> <div> </div> <div>도데체 이해 할 수 없을 겁니다. 그저 손주사랑에 빠져서 극성떠는 노인네로 불 수 도 있을겁니다.</div> <div> </div> <div>그럼에도 본인 새댁일 때 한 밥상에서 절대 밥 한번 같이 먹지 못하고, 늘 바가지에 누릉지조차도 눈치를 봐가며 입을 오물오물 거린 아픈 기억이 </div> <div> </div> <div>있으셔서 먹는거 만큼은 남겨 버릴지언정 동네 잔치 할 만큼 하셔서 머느리들을 먼저 먹이고 한 밥상에서 배터지게 먹는것에 행복해 하십니다.</div> <div> </div> <div>사람의 경험이란 그런것입니다. </div> <div> </div> <div>섣불리 판단 할 수도, 미워 할 수도 없는것입니다. 사람 관계 중 저는 부부관계가 가장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내 남편에 대한 이야기는 나만큼</div> <div> </div> <div>잘 아는 사람도 없을테고, 나에 대한 이야기는 나 남편만큼 잘 아는 사람도 없을것입니다. 살면서 부모한테도 못한 이야기를 부부는 서로 이야기</div> <div> </div> <div>할 수 있는 관계이기 때문입니다.</div> <div> </div> <div>시부모가 미워지고 며느리가 미워 질 때, 며느리는 남편에게, 시부모는 아들에게 조용히 한번쯤 저 아이는 어떤 사람이고 어떤 걸 겪어왔니,</div> <div> </div> <div>반대로 당신의 부모는 당신을 어떻게 키웠고 어떤 삶을 사셨는지 진지하게 묻고 알아가면 그 자체로도 아픈 관계속에 배려가 생길 수 있습니다.</div> <div> </div> <div>시부모가 고집을 피울 때에는 좀더 구체적인 나의경험이나 다른 며느리들의 경험을 예로 들면서 </div> <div> </div> <div>"어머니 그건 정말 위험한 생각이에요. 왜냐하면 글쎄 얼마전에~" 하며 위험한것을 조금 과장해서 얘기하는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div> <div> </div> <div>나이가 있으신 어른들은 그런 구체적 정보, 자신들이 경험하지 못한데서 일어난 실제 사건들을 들으면 생각보다 놀라셔서 겁을 내십니다.</div> <div> </div> <div> </div> <div>사람의 갈등은 생각보다 주제에 벗어나, 말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생길 확률이 높습니다.</div> <div> </div> <div>인터넷의 글들을 보면, 말 전달과정보단 무엇때문에 라는 주제에 사람들이 초점을 둘 수 밖에 없습니다.</div> <div> </div> <div>실제 어떤 대화가 어떻게 오갔는지는 당사자 외에 아무도 알 수 가 없습니다.</div> <div> </div> <div>요세 사람들은 팩트라는 단어가 많이 쓰여질 만큼 무엇 때문인지가 더 중요하고</div> <div> </div> <div>나이가 있는 옛 사람들은 어느덧 주제는 벗어나 상대방의 태도에 초점을 더 두게 됩니다. </div> <div> </div> <div>이게 세대간 갈등의 큰 이유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div> <div> </div> <div>따라서 어른은 젊은 사람들이 말하는 초점에 고집을 꺽고 한번쯤 깊게 생각해 볼 필요가 분명히 있고</div> <div> </div> <div>젊은 사람들은 어른들에게 이게 왜 잘못된것인지에 대한 얘기를 할 때, 좀 더 지혜롭게 때론 겁을 주며(?) 대화를 풀어나갈 필요가 있습니다.</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나이를 불문하고 현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저는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이 </div> <div> </div> <div>성찰입니다.</div> <div> </div> <div>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본인을 위한 성찰이 필요합니다. 삶 전체가 아니어도, 오늘 하루동안의 성찰이라도 필요합니다.</div> <div> </div> <div>성찰이 없는 삶은 무섭게 습관화 되어집니다. 그 때가 되면 나를 되돌아보는 일은 커녕 내가 오늘 어떤 말을 했고, 어떤 행동을 했는지조차</div> <div> </div> <div>기억나지 않습니다. 이것은 관계에 있어서도 정말 중요한 부분입니다.</div> <div> </div> <div>각각의 성찰이 이뤄지는 부부관계는 대화가 오래가고, 대화가 오래가는 부부는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게 됩니다. </div> <div> </div> <div>부부를 중심으로 새롭게 태어난 많은 관계들도 그 때서야 비로소 원만해 질 수 있습니다.</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출처
백년도 못사는데
천년만년 살것처럼 갈등맺고 미워하고 살아갈 시간이 없습니다
더 사랑하지 못함에 아쉬워하고
더 아껴주지 못함에 미안해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