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font-size:9pt;"> 내가 처음 그걸 발견한 건 금요일 저녁 7시였다.</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font-size:9pt;"></span> </div> <div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font-size:9pt;"> 집에서 돌아와 아파트 문을 여니 식탁 위에 기름기가 반지르르한 갈비찜이 놓여있었다. </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font-size:9pt;">온 집안에 고기 특유의 고소한 향기가 가득했다. 마침 배가 고팠던 내겐 천국 같은 향기였다.</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font-size:9pt;"> 하지만 입에도 대지 않고 전부 쓰레기통에 버렸다. </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font-size:9pt;"></span> </div> <div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font-size:9pt;"> 나는 혼자 산다.</span></div> <div class="바탕글"></div> <div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font-size:9pt;"> 이 일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일단 나는 27살이고, 2년 전에 바늘구멍보다 더 좁다는 취업구멍을 간신히 통과했다. </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font-size:9pt;">외모에 대해서 내 친구의 표현을 인용하자면, ‘지나가는 여자들 중 제일 평범한 사람 15명을 모아 평균을 내면 나올 얼굴’이다. </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font-size:9pt;">나는 평범한 얼굴에 평범한 인생을 살아온 평범한 사람이라고 자부할 수 있다.</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font-size:9pt;"></span> </div> <div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font-size:9pt;"> 그런데 어쩌다 이런 스토커가 붙었을까.</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font-size:9pt;"></span> </div> <div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font-size:9pt;"> 정체불명의 갈비찜은 매일 저녁 7시에 항상 놓여있다. 도대체 누가 이런 짓을 하는 거지?</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font-size:9pt;">당연히 경찰을 불렀지만 별다른 증거도 없고, 무엇보다 직접적인 피해가 없는 이상 더 손쓸 수 있는 일도 없다고 했다. </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font-size:9pt;">그래, 피해가 나올 때가 돼서야 부랴부랴 달려올 셈인가? 어쨌든 이 근처에 순찰을 자주 돌아 줄 테니 다른 문제가 생기면 신고하라는 말만 남기고 경찰들은 가버렸다.</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font-size:9pt;"></span> </div> <div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font-size:9pt;"> 또 불러봤자 소용없을 것 같아 그 다음 날부터는 갈비찜이 있어도 경찰에 신고하진 않았다. </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font-size:9pt;">그들 말마따나 아직 별다른 피해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font-size:9pt;"></span> </div> <div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font-size:9pt;"> 하지만 찝찝한 건 어쩔 수 없다.</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font-size:9pt;"></span> </div> <div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font-size:9pt;"> 누가, 어떻게, 왜 이 갈비찜을 놓아두었을까? 부엌에 요리한 흔적이 없는 걸 보면 바깥</span><span lang="en-us" style="font-size:9pt;">에서 갈비찜을 가지고 온 것 같긴 하다. 그</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font-size:9pt;">런데 집 안엔 어떻게 들어왔을까. 의문의 갈비찜 사건 바로 다음 날 도어락의 비밀번호를 바꾸고 보조키까지 추가로 달았다. </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font-size:9pt;">우리 집은 4층이지만 혹시나 싶어 창문도 단단히 잠그고 간다.</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font-size:9pt;"></span> </div> <div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font-size:9pt;"> 하지만 갈비찜은 벌써 일주일째, 주말을 제외한 주중에 회사를 갔다 오고 나면 어김없이 식탁위에 놓여있다.</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font-size:9pt;"></span> </div> <div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font-size:9pt;">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무엇보다 갈비찜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다. </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font-size:9pt;">이런 말 하면 좀 정신 나간 것 같겠지만, 갈비찜을 버릴 때마다 아까워 죽을 것 같다. </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font-size:9pt;">유난히 배가 고픈 날엔 딱 한 점만 집어 먹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뭐가 들어있을지 모르니 함부로 손대기도 껄끄럽다.</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font-size:9pt;"> 그렇지 않아도 마음 추스르기 힘든 기간에 이런 일까지 터지니 감당하기 힘들다.</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font-size:9pt;"></span> </div> <div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font-size:9pt;"> 어머니께서 갑작스레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내가 5살 때 아버지께서 암으로 돌아가신 후 남은, 나의 유일한 가족이. 그것도 내 생일에.</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font-size:9pt;"> 장례식은 거의 혼자 치르다시피 했다. 얼굴도 가물가물한 친척들이 와서 잠깐 조의를 표하고 금방 갔다. </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font-size:9pt;">너무 울어서 실신한다는 게 뭔지 처음 느껴봤다.</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font-size:9pt;"></span> </div> <div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font-size:9pt;"> 그리고 장례식이 끝난 뒤 일주일 후, 식탁 위에 갈비찜이 놓여있기 시작했다. </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font-size:9pt;">타이밍의 신이 있다면 얼굴 한 번 보고 싶다.</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font-size:9pt;"></span> </div> <div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font-size:9pt;"> 오늘은 월요일. 주말 동안은 항상 집안에 있어선지 그 놈의 갈비찜을 보지 못했지만, </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font-size:9pt;">지금 이 문을 열면 또 그 갈비찜이 있을 것이다.</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font-size:9pt;"> 역시,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오늘도 어김없이 그 갈비찜이다. 나는 이제 익숙한 손길로 갈비찜을 들고 쓰레기통으로 가져갔다. </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font-size:9pt;">아니, 가져갔어야 했다.</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font-size:9pt;"></span> </div> <div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font-size:9pt;"> 가끔씩 사람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한다.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면 내가 왜 그랬을까 이해가 되지 않는 그런 행동. </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font-size:9pt;">아마 지금 내 행동이 딱 그런 종류의 것일 거다.</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font-size:9pt;"></span> </div> <div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font-size:9pt;"> 오늘따라 갈비찜이 너무 아까웠다. 그리고 배가 너무 고팠다. </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font-size:9pt;">빌어먹을 상사가 하도 닦달하는 바람에 하루 종일 먹은 거라곤 커피 2잔과 초콜릿 한 조각뿐이다.</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font-size:9pt;"></span> </div> <div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font-size:9pt;"> 그리고 이 갈비찜의 냄새는 너무 매혹적이다. </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font-size:9pt;"></span> </div> <div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font-size:9pt;"> 결국 접시를 원래 있던 자리에 놓았다. 그리고 젓가락을 가져왔다. 아직 식지 않았는지 희미하게 김이 올라온다.</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font-size:9pt;"> 딱 한입. 한입만 먹을 생각이었다. 겨우 그 정도만 먹는 데 설마 무슨 일이 생기겠어? </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font-size:9pt;">하지만 혹시 몰라 휴대폰을 식탁 위에 올려놨다. 무슨 일이 있으면 119나 경찰에 신고하면 된다. </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font-size:9pt;"> 젓가락으로 하나를 집어 베어 물었다. 달콤하고 짭짤한 양념이 밴 고기에서 육즙이 터져 나온다. </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font-size:9pt;">아, 맛있다. 나도 모르게 하나를 더 집었다. 한 입만, 한 입만 더.</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font-size:9pt;"></span> </div> <div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font-size:9pt;"> 정신을 차리고 나니 그릇은 깨끗이 비어있었다. 결국 다 먹어버린 것이다. </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font-size:9pt;">뭐가 들어있는지도 모르는 수상한 음식을. 이렇게 멍청할 수가!</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font-size:9pt;"> 하지만 그게 너무 맛있어서 어쩔 수 없었다. 어렸을 때 어머니께서 해주셨던 것처럼. 그때의 맛과 너무 비슷했다. 정말…….</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font-size:9pt;"> 똑같았다.</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font-size:9pt;"></span> </div> <div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font-size:9pt;"> 어머니는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그 날은 내 생일이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갈비찜이다. 어머니는 그때 마트에서 장을 보고 돌아오시는 길이셨다.</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font-size:9pt;"> 그 이후로 더 이상 갈비찜이 식탁에 놓이는 일은 없었다. 나는 주말에 어머니의 묘에 갔다. </span></div> <div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font-size:9pt;"></span> </div> <div class="바탕글"><span lang="en-us" style="font-size:9pt;">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엄마.</span></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