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온 지 이십여 년이 되어간다. 처음 서울에 왔을 때 지하철 환승도 제대로 모르던 촌놈이 이제 내비게이션의 도움 없이도 서울 시내 이곳저곳을 <div>다닐 정도로 <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서울 사람이 다 되었다. 물론 외모는 여전히 서울 사람들보다 동남아시아 사람들에게 친근하다는 게 문제지만..</span></div> <div><br></div> <div>서울 생활을 하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내가 큰 친절을 베푼 적도 없는데 주변 분들에게 지금까지 많은 도움을 받고 지내는 것 같다. </div> <div>아이를 데리고 슈퍼에 가면 아이에게 주라며 과자나 사탕 같은 걸 하나 더 주시고는 한다. </div> <div>물론 우리 아이는 아직 못 먹기 때문에 내가 먹긴 하지만 후훗. 그리고 요즘은 내가 먹고 싶은 걸 달라고 하기까지 한다. </div> <div>동네의 맥가이버 같은 존재인 철물점 아저씨도 얼마 전 집에 문제가 생겼을 때 출장비도 받지 않으시고, 수리를 해주시고 가셨다.</div> <div>물론 '이 사람, 허우대만 멀쩡했지 허당이네' 라며 와이프와 아들 앞에서 나를 디스하고 가시긴 했다. </div> <div><br></div> <div>생각해보니 내가 그들을 위해 베풀었던 선행이나 친절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div> <div>기억나는 건 총각 시절 자췻집이 있는 골목에 쓰레기를 가끔 모아서 버리고 (자주는 아니고 매주 토요일 한 번 정도) 그리고 옆집 </div> <div>반지하에 혼자 폐지를 모아 생활하시는 할머니께 회사에서 나오는 폐지와 책, 그리고 퇴근하다 박스를 보면 가져다 드린 정도밖에 없던 것 같다. </div> <div><br></div> <div>내가 살던 자취방은 골목 입구에 있어서 그런지 많은 사람이 쓰레기를 무단 투기하고, 쓰레기가 가득 담긴 봉투를 버리고 가곤 했다.</div> <div>주인집 할머니는 매일 쌓여가는 쓰레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으셨다. 쌓여있는 쓰레기 앞에서 욕을 해보기도 잡히면 쓰레기를 먹여 버리겠다!!라고</div> <div>소리를 지르셔도 쌓이는 쓰레기의 양은 줄어들지 않았다. 할머니는 내게도 혹시라도 쓰레기 버리는 사람을 보면 '잡아서 족쳐' 라고 지시하셨다.</div> <div>하지만 할머니도 나도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을 한 번도 보거나 잡아서 족칠 기회는 없었다. </div> <div>결국, 나는 할머니께 인터넷에서 본 한 가지 방안을 제시했다.</div> <div><br></div> <div>"할머니, 경고 문구를 하나 적어서 붙여 놓으면 어떨까요?"</div> <div><br></div> <div>"몰러.. 니가 혀. 나는 무식혀서 글을 잘 못 써."</div> <div><br></div> <div>"제가 쓰면 효과가 없죠. 할머니께서 쓰셔야 보는 사람들도 양심의 가책을 느껴서 버리지 않을 거 같아요."</div> <div><br></div> <div>평소 욕이라면 일가견이 있으신 할머니에게 어떤 표현이 나올까 기대했는데, 펜을 잡으신 할머니는 순수한 펜팔 소녀 감성으로 돌아가신 듯 </div> <div>너무 순수하게 <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제발 쓰레기를 버리지 마시오.' 라고 </span><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글을 쓰셨다. 보는 사람의 눈을 멀게 할 찰진 욕의 향연이 나올 거라는 나의 상상은 어긋났다. </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나는 할머니께 당시 인터넷에서 유행하던 방법 할매의 글을 보여 주며 할머니께 이 정도 임팩트는 있어야 한다고 설명해 드렸다.</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br></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근디 길거리에 욕 써서 붙여 놓았다가 나 잡아가면 어떻혀.." </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br></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여기 할머니 집 벽이에요. 제가 책임질게요. 누가 안 잡아가요."</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br></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할머니는 어떤 찰진 욕을 적으실까 고민하시더니 '쓰레기 버려봐라. 잡히면 손모가지 작살난다.' (맞춤법에 틀려도 현실감을 위해 그대로 적었음.)</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라고 적으셨다. 생각보다 부드러운 표현이었지만 </span><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노인이 직접 작성한 글을 쓰레기를 버리는 젊은 사람들이 보면 양심의 가책을 느껴 버리지 않을까 </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생각했다. </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하지만 할머니의 경고문에도 집 앞의 쓰레기 불법 투기를 줄어들지 않았다. 결국 내가 토요일 아침마다 50리터 쓰레기봉투를 사서 주변</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할머니께서 쓰레기 때문에 스트레스받지 마시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런데 생각보다 50리터 쓰레기봉투가 커 </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여유 공간이 남아 자췻집이 있는 골목길의 쓰레기들을 매주 모아 버리게 되었다. 자기 집 앞에 있던 무단 투기 된 쓰레기를 치울 때 '왜 우리 집 앞 </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쓰레기를 치우냐며' 이상한 시선으로 바라보셨던 분들도 나중에는 '우리가 치워야 하는데' 하시며 미안해하시거나, 같이 치우는 것을 </span><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도와주시고는 </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했다. </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하지만 </span><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그래도 쓰레기 무단투기는 줄어들지 않았다. 젠장</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br></span></div> <div>그리고 예전 자취를 할 때 집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데, 옆의 반지하 사는 할머니께서 젊은 주인집 아주머니에게 면박을 당하고 계신 것을 </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본 적이 있다. 내용은 할머니께서 폐지나 고물을 수집하셔서 생활하시는 거 같았는데, 주워오신 폐지나 고물 때문에 집 앞이 더러워지고, 보기 </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좋지 않다고 하시는 것 같았다. 그 당시 왜 그랬는지 할머니를 봤을 때 시골에 계신 어머니가 생각나서인지 토요일마다 쓰레기 정리할 때 한 번씩</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할머니 집 앞에 있는 폐지와 고물을 같이 정리해 드렸다. 그리고 가끔 회사에서 나오는 폐지 (회사 성격상 엄청난 폐지가 발생한다.)를 가져다</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드리고 퇴근하다 박스 같은 게 보이면 할머니께 드리고는 했다. 물론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지금도 가끔 드리고는 한다. </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br></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어제 간만의 휴가를 맞아 집에서 소파와 혼연일체 되어 밀린 만화책을 보고 있는데, 어린이집에서 아들을 데리고 온 와이프가 </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어린이집 앞에서 어떤 할머니께서 내 이름을 말씀하시며 '얘가 성성씨 아들이 맞죠?' 하시며 내복이 들어 있는 봉투를 주고 가셨다고 한다.</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와이프는 그리고 그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기 시작했다.</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br></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삼삼이 어린이집 끝나는 시간에 가끔 본 할머니인데, 삼삼이를 유심히 바라보고는 하셔서 처음에 이상한 할머니라고 생각하고 경계심이</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어제 삼</span><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삼이 어린이집 끝나는 시간에 와이프에게 오더니 말을 걸고 내복을 주셨다고 한다. 와이프에게 </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br></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너 그래서 그 할머니 그냥 보내 드렸어?"</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br></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아니 내가 오빠 같은 줄 알아. 음료수 하나 사서 드렸어. 안 받으신다고 손사래 치시는 걸, 그냥 조끼 주머니에 넣어 드리고 왔어.'</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br></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잘했어. 오랜만에 칭찬받아 마땅한 소비활동을 했네."</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br></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바로 아들을 안고 할머니를 찾으러 나섰다. 할머니 댁에 계시지 않아 이 골목 저 골목을 다니는 데, 저쪽 멀리서 할머니께서 폐지를 모은 </span></div> <div>손수레를 끌고 오고 계셨다. </div> <div><br></div> <div>"할머니 안녕하세요. 내복 같은 걸 사주시고 그러세요. 뭐 해드린 게 있다고."</div> <div><br></div> <div>"아니에요. 내가 도움 많이 받았는데요. 애기 볼 때마다 아저씨랑 닮아서 맞나 아닌가 싶었는데. 슈퍼에 물어보니까 아저씨 아들이 맞더라고요."</div> <div><br></div> <div>"말씀 편하게 하세요. 삼삼아 할머니께 감사하다고 인사드려." 삼삼이는 요즘 예절 교육을 받아서 '감사하다고 해' 그러면 고개를 까딱하고는 한다.</div> <div><br></div> <div>말 잘 듣는 삼삼이가 웃으며 고개를 까딱하고 할머니께 인사드렸다. </div> <div><br></div> <div>"아이고, 고놈 참 귀엽네." </div> <div><br></div> <div>"삼삼아 할머니께 고맙다고 뽀뽀해드려. 잘 입겠습니다." 라고 말씀 드려 (물론 아직 아들은 아빠, 엄마, 까가, 이거 밖에 말하지 못한다.)</div> <div><br></div> <div>여전히 말 잘 듣는 삼삼이가 할머니에게 다가가 뽀뽀하려 했을 때 할머니께서는 </div> <div><br></div> <div>"내가 땀 흘리고 먼지를 뒤집어써서 더러워서 안 돼요." 라고 하셨지만 이미 뽀뽀 상대를 보고 돌진하는 아들을 막을 수 없었다.</div> <div><br></div> <div>"괜찮아요. 삼삼이한테는 친할머니 같으신 분이신데요. 앞으로 삼삼이 보시면 예쁘다고 머리도 쓰다듬어 주시고 하세요. 얘가 어르신들을 </div> <div>좋아하고 <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자기 예쁘다고 하면 워낙 좋아하는 애라서요. 절대 저나 저희 와이프나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으니까. </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앞으로 저희 아들 보시면 마음껏 예뻐해주세요</span><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 </span></div> <div><br></div> <div>할머니께서 사주신 내복은 삼삼이에게는 컸다. 하지만 삼삼이를 안아주시는 할머니의 모습을 생각하며, 오늘 휴가 내기를 잘했구나 하는 생각이</div> <div>들었다. 내가 사는 동네는 스무 살 때도 그리고 곧 마흔이 될 내게 여전히 친절하고, 사람으로 살기 좋은 동네인 것 같다. </div> <div><br></div> <div>하지만 제발 주차 좀... </div>
출처
황금 휴가 기간 중 만화책만 보는 나
어린이집에서 여자친구가 생긴 18개월 된 아들
그리고 아들에게 선물을 주신 고마운 할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