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 이후 대학 다닐 때 친했던 (물론 지금까지도 제일 친하다.) 세 명의 친구가 있다. <div>한 명은 군견병 출신에 개를 좋아 아니 반려견 이상으로 사랑하는 친구, 다른 한 명은 나와 비슷하게 영화 보는 것을 좋아하는 노안의 친구</div><div>(이 둘은 같은 과였고, 그 중 한 놈은 같은 영화 동아리였다.)</div><div>마지막은 암내 나는 고등학교 동창 (녀석은 같은 학교도 아닌데 대학생활의 많은 시간을 우리 학교에서 보냈다.) 이다.</div><div>앞으로 글에서 표현은 군견, 노안 이렇게 쓰겠다.</div><div><br></div><div>대학 신입생 시절 부터 나, 군견, 노안은 항상 붙어 다녔고, 학교가 다른 암내는 셋이 술 먹는 자리에 우연히 동석하였다가 나머지 녀석들과</div><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친해지게 되었다. 암내는 뒤늦게 우리 무리에 영입된 자신이 삼총사의 달타냥 같은 존재라고 했으나, 에미넘이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span></div><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달타령 하는 소리로밖에 들리지 </span><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않았다. '냄새나는 주제에 감히 주인공 타이틀을 차지하려 하다니...'</span></div><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br></span></div><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1학년 때 나란히 넷 다 학사경고를 받고, 군대도 비슷한 시기에 다녀온 우리는 복학 후에도 모든 수업을 같이 받는 등 항상 뭉쳐 다녔다.</span></div><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그리고 지금까지 우리에게 여신 같은 존재인 그녀를 처음 만난 건 바로 재이수를 받던 1학년 전공 수업시간이었다.</span></div><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br></span></div><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흔하디흔한 조별 과제를 준비할 때 어느 후배도 선뜻 우리 조에 가담하려 하지 않았다. 하긴 정상적인 학점을 받고 싶은 새내기였으면 </span></div><div>학교에 개를 끌고 다니는 이상한 놈과 한국말을 할 수 있을까 하고 의심되는 국적 불명의 동남아인, 그리고 볼펜 잡는 것도 힘겨워 보이는</div><div>귀에 낀 이어폰이 보청기처럼 보이는 어르신과 함께 조별 과제를 한다는 건 피하고 싶었을 것이다. </div><div><br></div><div>어차피 우리 셋이 해야 될 거라는 상황 판단에 외부에서의 인재 영입을 포기하고 조 이름을 짜고 있었다. </div><div><br></div><div>"쓰리 아웃 어때? 어차피 우리 셋 다 아웃인데.." 나는 우리의 현실을 반영한 조 이름을 제안했다. </div><div><br></div><div>"좀 긍정적이고 발전적인 의미로 '개발도상국' 어때?" 노안은 역시 70년대 격동의 산업 역군으로 일했던 젊은시절을 잊지 못하는 것 같았다.</div><div><br></div><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우리 셋이 어떤 것을 한다는 의미인 "뜨리 떰띵" 어때?" 군견은 매너 있는 신사의 나라 영국식 발음으로 말했다.</span></div><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노안과 나는 순간 그것을 생각했다. '이 미친.. 매일 개랑 놀더니 발정 난 개새끼가 됐네."라며 티격태격하고 있는데 </span></div><div><br></div><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그런데 신입생 하나가 '선배님 조에 자리 있나요?'라고 물었다. 놀랍게도 여자 후배였다.</span></div><div><br></div><div>"자리는 있는데, 우리 셋인데 괜찮겠어?"</div><div><br></div><div>"네. 괜찮아요. 같이 할 애도 없는데요."</div><div><br></div><div>빈 깡통같이 텅 빈 두뇌를 가진 습관성 치매가 20대에 이미 찾아 온 노안과 지푸라기 짚는 심정으로 대학을 다니는 허수아비인 나, 그리고 </div><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원작에서는 사자였지만 현실에는 그냥 똥개인 </span><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군견과 함께하는 </span><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그녀가 '이상한 나라의 도로시' 같이 여겨졌다. 결국 우리 조의 이름은 </span></div><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이상한 나라의 도로시' 였다. (그러고 보니 토토는 샤파 였네...) 샤퍄=군견이 기르던 개 이름</span></div><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br></span></div><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도로시는 조별 과제를 나름 성공적으로 마친 이후에도 우리 무리와 자주 함께했다.</span></div><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매 학기 수업을 함께 받는 건 물론이고 당구장에서 짜장면을 함께 먹으며 4구를 배웠고, 2대 2로 스타크래프트를 할 때도 함께 했다. </span></div><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점점 도로시는 우리 사이에서 당돌한 여자 후배에서 점점 여신으로 변해 가고 있었다.</span></div><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br></span></div><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도로시는 신이었던 관계로 우리에게 관대함을 베풀기도 했는데, 노안과 나의 여자친구를 만들어 주기 위해 자신의 친구들을 희생시켜 미팅을</span></div><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시켜주기도 하였으며 (당시 군견은 자신은 이미 애견이 있으므로, 더는 여자에게 사랑을 베풀 수 없을 것 같다며 거절했다. 병신....)</span></div><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본인은 술을 잘 마시지 못했지만, 우리가</span><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 술을 마실 때 셋이 취하면 오빠들을 하나씩 집으로 귀가 시켜주는 등 듬직한 역할을 하기도 </span><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했다.</span></div><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br></span></div><div>우리가 그런 여신 같은 도로시에게 처음으로 실망한 사건은 도로시에게 남자친구가 생겼을 때였다.</div><div>도로시가 3학년, 우리가 4학년이 되었을 때 도로시 외모에 큰 변화가 찾아왔다. 렌즈를 끼고, 화장 하고 스탠드 갓 등 같은 치마를 입고</div><div>다니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의 설마 했던 상상은 현실이 되었다. 도로시에게 남자친구가 생긴 것이었다.</div><div>캠퍼스에서 도로시와 남자친구가 손을 잡고 걷는 모습을 봤을 때 우리는 모르는 척 했지만, 도로시가 먼저 우리에게 다가와 <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남자친구를 소개해 줬다. </span></div><div><br></div><div>"오빠들 내 남자친구야!" 과는 기계공학과고 나이는 오빠들하고 동갑이야." </div><div><br></div><div>아무리 우리와 동갑이었지만 녀석은 우리에게 예루살렘 성지를 빼앗은 이단 튀르크족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 뒤 우리 셋은 잃어버린 성지를 되찾으려는 비장한 마음으로 <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십자군, 아니 동맹을 결성했다. </span></div><div><br></div><div>"샤파 (군견이 기르던 개 이름) 시켜서 밤길에 물어 버리라고 할까?" 군견이 샤파의 목줄을 세게 움켜 잡으며 말했다.</div><div><br></div><div>"사람 보면 좋다고 꼬리 치고, 배 뒤집고 뒹구는 놈한테.. 뭘 바라냐.."</div><div><br></div><div>"도로시의 약점을 공개해버려?"</div><div><br></div><div>"뭐? 저그 못하는 거? 닥쳐! 도로시의 최고 약점은 우리 셋이야." </div><div><br></div><div>결국, 우리는 도로시의 첫 연애를 친오빠의 마음으로 응원해주기로 했다. 도로시가 기계공학과 녀석과 좀 더 오래 아름답고 순수한 사랑을 하길 </div><div>바랐으나, 도로시는 녀석과 사귄 지 얼마 되지 않아 헤어졌다. 우리 셋 중 누구도 도로시에게 왜 헤어졌는지 물어보지 않았다.</div><div>물어보는 게 오히려 도로시 마음에 더 큰 상처를 줄 거라 생각했다. </div><div>도로시가 원하는 대로 술을 사주고, 노래방에 가서 미친놈들처럼 방방 뛰며 노래 부르고 춤추면서 도로시의 기분을 풀어주려고 노력했다.</div><div>하지만 노래방에서 우리 손에 이끌려 같이 공옥진 여사의 병신춤 대열에 끼어 춤추며 웃던 도로시는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div><div><br></div><div>"오빠들 너무 고마워..."</div><div><br></div><div>"아니야. 우리가 무슨 도움이 된다고."</div><div><br></div><div>"오빠들 덕분에 나 기분이 완전히 풀렸어." 울다가 웃으면 엉덩이에 털 난다는데 울다가 웃던 그 날의 도로시의 모습은 예뻐 보였다.</div><div><br></div><div>나중에 기계공학과 녀석이 도로시와 전에 사귀던 여자에게 양다리를 걸쳤다는 소식을 듣고 우리 셋은 분노해 샤파를 앞세워 기계공학과로 쳐들어 </div><div>갔지만, <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기계공학과의 일방적인 남녀 성비를 본 뒤 '여기서 까불다가, 사람 세 명과 개 한 마리가 사망했다'는 뉴스에 나오기 싫어 우리는 </span></div><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기계공학과 앞에서 온갖 저주의 말을 내뱉은 뒤 도망쳤다. 그래도 화가 안 풀린 노안은 남자 화장실 변기에 응가를 하고 물을 내리지 않는 </span></div><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테러까지 저지르고 나왔다. 그리고 그걸 우리에게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더러운 놈...</span></div><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br></span></div><div>바보 같은 우리를 대학 교육으로는 포기했는지 사회로 내보낼 때 도로시는 졸업식에서 우리에게 꽃다발을 하나씩 주며 우리의 미래를 축복해줬다.</div><div><br></div><div>"도로시. 오빠들 없어도 꿋꿋이 공부 열심히 해야 해. 괴롭히는 사람 있거나 심심하면 언제든지 전화하고."</div><div><br></div><div>"난 오빠들이 사회에 나가서 제대로 밥벌이나 할 수 있을까 그게 더 걱정이다."</div><div><br></div><div>그 뒤 학교 다닐 때 만큼은 자주는 아니지만, 우리가 가끔 모일 때 도로시도 함께 했고, 1년 후 도로시도 졸업을 하게 되었다. </div><div>그리고 도로시가 똥차 세 대를 추월해 우리보다 먼저 결혼을 하게 되었을 때 '이상한 나라의 도로시' 조별 모임 네 명은 나이가 들어</div><div>처음 조를 결성하고 술을 마셨던 추억의 술집에서 도로시의 결혼을 축하해주기 위해 모였다.</div><div><br></div><div>"도로시 사실 나 고백할 거 있는데, 나 학교 다닐 때 너 좋아했었다. 그런데 내가 너랑 사귀어서 잘 되면 좋은데 만일 헤어지면 다른 친구들이 </div><div>너를 다시는 못 볼 거 <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같아서 그냥 포기했었어." 술을 마시던 노안이 웃으면서 먼저 고백 했다. </span></div><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br></span></div><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나도 사실 샤파 때문에 소개팅하지 않았던 게 아니고, 너 좋아했었거든.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데, 소개팅은 차마 못 하겠더라고.</span></div><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그리고 우정 이냐 사랑 이냐의 갈림길에서 난 우정을 택한 거야. 고마운 줄 알아! 이 새끼들아." 군견이 우리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span></div><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br></span></div><div>"야.. 성성이 너는?" 친구들이 내게 물었다.</div><div><br></div><div>"난 절대 CC는 안 해. 그게 나의 캠퍼스 라이프 원칙이었어."</div><div><br></div><div>"그런데 도로시 너는 혹시 우리 중에 좋아하는 놈 없었냐?" 군견이 도로시에게 물었다.</div><div><br></div><div>"난 오빠들 한 번씩 다 좋아했었는데 몰랐구나. 처음에 개를 데리고 다니던 군견 오빠가 잘생긴게 좋아서 사실 조별 모임 할 때도 오빠들</div><div>조에 들어간다고 한 거였어. 그런데 오빠들 알게 되면서 노안 오빠는 생긴 <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것과 </span><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다르게 순수하고 마음이 착한 사람이어서 좋아했고, 성성이 오빠는 </span></div><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말도 재미있게 하고 가끔 사람을 편하게 해주는 게 있어서 좋았어. </span><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근데 나도 오빠들한테 고백은 못 하겠더라고." </span></div><div><br></div><div>우리의 여신이었던 도로시가 한 남자의 여신이 되는 날. 그동안 봤던 어느 날보다 도로시는 아름다웠다. 아니 눈부신 진정한 여신의 모습 이었다.</div><div>그리고 우리 한 명, 한 명과 사진을 찍고, 함께 사진을 찍을 때 도로시는 다른 어떤 사람들보다 '오빠들이 와줘서고 고맙다.'고 했다.</div><div>그리고 우리를 하나씩 안아주었다. 결혼식이 시작되기 전 부터 <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나와 군견이 여동생을 시집보내는 오빠의 마음으로 흐뭇하고 바라보고 있을 때 </span></div><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순수하고 마음이 착한 노안은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span></div><div><br></div><div>지금 도로시는 1남 1녀의 엄마로 열심히 살고 있다. 아이들이 아직 어려 예전처럼 자주는 못 보지만 1년에 한 번 정도 남편과 함께 </div><div>우리들을 만날 때 아직도 그녀가 여전히 스무 살 여신의 모습으로 우리의 기억에 남아 있어 줘서 고맙다. </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