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누구나 그러겠지만 나는 낯선 사람이 내게 말을 거는 것도 별로 좋지 않고 나만의 공간인 집에 무단으로 방문하는 것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div> <div>그래도 꿋꿋하게 나를 괴롭혔던(?) 사람들과의 일화를 풀어보려 한다.</div> <div> </div> <div>1. 나를 보고 인상이 선하다는 분들 </div> <div> </div> <div>서울에 처음 왔을 때 내게 가장 먼저 말을 걸어준 사람은 친구도, 선배도 그리고 여자친구도 아닌 버스정류장의 그들이었다.</div> <div>신입생 시절 대중교통을 제대로 탑승하지 못하던 시절의 이야기다.</div> <div> </div> <div>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기 위해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 보는 남녀 둘이서 내게로 접근해 오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div> <div>기분 나쁘게 커플이다. 게다가 흰색 티셔츠를 마치 둘이 커플티처럼 입고 있어서 더 경계심이 들었다.</div> <div>남자는 한 발 뒤로 물러서서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으며, 여성이 내게 웃으며 다가와 말을 걸었다.</div> <div> </div> <div>"안녕하세요~ 인상이 참 선해 보이시네요. 얼굴에 복을 타고 태어나셨어요."</div> <div> </div> <div>"네 안녕하세요. 그런데 제가 돈복은 타고 태어나지 못했네요. 죄송합니다. 저 돈 없어요."</div> <div> </div> <div>"저희는 물건 파는 사람이 아니고요. 학생에게 천운이 있는데 그걸 알려주려는 사람이에요."</div> <div> </div> <div>"제가 지금 천운보다 급한 게 면목동 가는 건데, 혹시 여기서 면목동 가는 버스 좀 알려주시면 안 돼요?"</div> <div> </div> <div>뭐가 그리 좋은지 뒤의 남자는 계속 웃고 있고, 여자는 '이 자식 호락호락한 촌놈이 아니었군.' 하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div> <div> </div> <div>"아~ 집에 가시는 길인가 보구나. 잠시 시간을 내서 저희랑 이야기를 좀 나눌 수 있을까요? 학생 눈빛에서 기가.." </div> <div>그다음 뭐라고 계속 말했는데 그들만의 전문용어라 자세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div> <div> </div> <div>"그런데 제가 지금 집에 빨리 가야 해서 면목동까지 같이 가주시면서 말씀해주시면 안 될까요?"</div> <div> </div> <div>여자는 조금 당황하는 기색이었다. </div> <div> </div> <div>"급하셔도, 잠시 30분 정도만 시간 내주시면 되거든요. 아니면 커피라도 한잔 하시면서 이야기를 한 번 들어보세요. 제가 도와드리고 싶어서 그래요"</div> <div> </div> <div>"그러니까 제가 급하다니까요. 그렇게 도와주시고 싶으시면 같이 면목동까지 가면서 도와주시면 되잖아요."</div> <div> </div> <div>결국 그녀는 남자와 속닥이더니 천연덕스럽게 웃으며 다가와 내게 말했다.</div> <div> </div> <div>"아쉽네요. 저희가 면목동까지 갈 수는 없고..."</div> <div> </div> <div>"그럼 갈 길 가세요. 저도 집에 가야 해요."</div> <div> </div> <div>그날 우리는 그렇게 헤어졌다. 물론 아직도 내게 합정역 앞에서 저런 식으로 접근하는 사람이 간혹 있는데 그냥 무시하고 지나간다. </div> <div> </div> <div>2. 토익 누나</div> <div>약관의 신입생 시절 동기들은 학교를 졸업한 선배라면서 토익 학습지를 파는 사람들에게 아무것도 모르고 구매한 뒤 </div> <div>(그들의 수법은 마치 학교 교재인 것처럼 사기 쳐서 팔았다고 들었다.)</div> <div>취소도 못 하고 울며 겨자 먹기로 결제를 했다. 그중 일부는 부모님께 말씀도 못 드리고 아르바이트를 해서 갚았던 친구도 있었다. </div> <div>많았다. 다행히 나는 돈이 없어 보였는지 아니면 영어 잘하게 생겨서 그런지 내게로 다가와 내 미래를 걱정해주는 선배는 없었다.</div> <div> </div> <div>내가 복학한 24살이 되던 해, 몸은 예비역이었지만 마음만큼은 신입생이었다.</div> <div>마치 에버랜드에 처음 놀러 온 용포의 어떤 여인처럼 신기하게 학교 이곳저곳을 구경하며 등교하고 있었다.</div> <div>그런데 단정한 정장을 입은 여인(엄청나게 예뻤음)이 내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div> <div> </div> <div>"안녕하세요. 혹시 신입생이신가요?"</div> <div> </div> <div>신.입.생 이 얼마 만에 들어보는 신선하고 황홀한, 마치 제세동기의 출력을 가장 세게 한 뒤 심장에 직접 마사지 받는 기분이었다.</div> <div>그리고 갓 제대한 예비역인 나를 신입생으로 봐주다니..</div> <div> </div> <div>"네 신입생 맞습니다만.."</div> <div> </div> <div>"아.. 저는 작년에 졸업한 선배인데, 우리 잠깐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div> <div> </div> <div>"네 그럼요. 말씀하세요."</div> <div> </div> <div>"그럼 우리 저기 벤치, 아니 시간 되면 커피 한잔 할래? 선배로서 해주고 싶은 말도 있고."</div> <div> </div> <div>"네 누나. 가시죠." 내가 앞장섰다.</div> <div> </div> <div>내 24 인생에 나와 염색체가 다른 여자 사람이 커피를 먼저 마시자고 한 것은 그날이 처음이었다. 분명 토익 누나가 맞지만, 그녀의 외모에 끌려</div> <div>따라갔다. 따라간 커피숍에는 몇 명의 토익 형아, 토익 누나들이 코흘리개 신입생들을 상대로 열심히 영업 하고 있었다. </div> <div>그녀가 시키는 커피와 같은 것으로 시켰다. 그녀는 빠르게 본색을 드러냈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말을 자르고 말했다.</div> <div> </div> <div>"저기 대학 작년에 졸업했으면 24살이시죠?"</div> <div> </div> <div>"응? 으..응 24살인데.."</div> <div> </div> <div>"사실 나도 24살인데, 신입생도 아니고 그쪽이 예뻐서 따라 왔거든요. 내가 토익 교재 하나 살 테니까. 나랑 사귀어 주세요."</div> <div> </div> <div>순간 그녀는 당황했다. </div> <div> </div> <div>"아.. 아니. .그게 아니고.."</div> <div> </div> <div>"저랑 사귀어주면 내 친구들도 내가 때려서라도 하나씩 다 사게 만들 테니까 우리 사귀어요." </div> <div> </div> <div>그녀는 당황의 단계를 넘어 거의 울기 직전이었다. 그리고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파악한 토익 형아들과 낯선 아저씨들 손에 이끌려 </div> <div>커피숍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나는 쫓겨 나면서 외쳤다. </div> <div> </div> <div>"전화번호라도 알려 주던가아아아아! 나는 포기 못해애애애애"</div> <div> </div> <div>그리고 수업받으러 강의실로 룰루랄라~ 하며 깡충깡충 뛰어 갔다. </div> <div> </div> <div>아마도 그녀는 지금쯤 시집가서 행복하게 살다가 실수로 나를 추억하면 소주가 생각나겠지..</div> <div> </div> <div>3. 종교인들</div> <div>지금 사는 집은 입구부터 최첨단 무인 감시 시스템으로 함부로 집에 사람이 들어오기 힘들지만, 결혼 전 내가 살던 자취방은 매주 주말이면</div> <div>좋은 말씀 전하러 온 아주머니, 절에서 만든 물건을 팔러 오는 스님인지 그냥 대머리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장사꾼들 등이 찾아 왔다. </div> <div>그런 분들이 올 때마다 매번 거절하거나 무시했었다. </div> <div> </div> <div>불타는 금요일 소주와 고량주로 오장육부가 광란의 시간을 보낸 다음 날, 어김없이 토요일 아침부터 내 자취방이 예루살렘도 아닌데 신도들의</div> <div>(기독교 모독은 아닙니다. 정확히 말하면 여호와의 증인이겠지요.) 방문은 끊이지 않았다. 그날따라 오전에만 2팀이 나의 자취방으로 순례</div> <div>왔다. 그 날 나는 한 번만 더 내 방문을 두들기고 초인종을 눌러댄다면 십자군 전쟁에서 십자군과 장렬히 싸운 오스만 튀르크의 전사가 되어야 </div> <div>겠다고 다짐했다. </div> <div> </div> <div>"띵똥 띵똥" 또 누군가 초인종을 눌러댔다.</div> <div> </div> <div>"누구세요?"</div> <div>문구멍으로 바라보니 아주머니 두 분과 학생처럼 보이는 여성 3인조였다.</div> <div> </div> <div>"아.. 실례합니다. 잠시 좋은 말씀 전하러 왔습니다."</div> <div> </div> <div>"어서 오세요! 실례라니요." </div> <div>나는 마치 시골에 계신 어머니께서 반찬을 잔뜩 싸들고 오실 때처럼 아주 반갑게 문을 열어 드렸고, 공손하게 인사드렸다. </div> <div> </div> <div>"들어 오세요. 어서 들어 오세요."</div> <div> </div> <div>세 여인은 '아니 이게 무슨 시츄에이션..' 하는 표정으로 약간 당황한 듯했다. </div> <div> </div> <div>"아. 여기서 말씀 잠시 드려도..."</div> <div> </div> <div>"우리 집에 오신 손님인데, 들어 오셔서 편하게 말씀하세요." 라고 말하며 리더로 보이는 앞에 있는 아주머니를 손을 잡고 집안으로 모셨다.</div> <div>그러자 뒤에 있던 두 여인도 어쩔 수 없이 집 안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문을 이중으로 철컹 철컹 잠갔을 때, 뒤에 따라 들어온 두 여인의</div> <div>표정이 점점 싸늘히 질려갔다.</div> <div> </div> <div>"아 편하게 아무 데나 앉으세요."</div> <div> </div> <div>남자 혼자 사는 자취방이 결코 깨끗하고 아늑할 리가 없었다. 그리고 회사 야구단의 전리품인 야구 배트가 방 한가운데 있었고, 그녀들에게 가장 </div> <div>두려웠을 거라 생각되는 건, 방 한쪽에 어제 함께 술 마시고 술이 덜 깨 좀비처럼 하늘로 두 팔을 벌리고 자는 친구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div> <div> </div> <div>"그런데 어떤 일로 오셨죠? </div> <div> </div> <div>"아.. 그게.." 리더인 아주머니도 뭔가 이상함을 느끼셨는지 아무 말씀도 하지 못하고 계셨다.</div> <div> </div> <div>나는 냉장고를 열어 음료수라도 드리고 싶었지만 어젯밤 먹다 만 생수와 맥주 몇 캔밖에 없었다. 그래도 내 집에 오신 분들인데 제대로 </div> <div>접대해 드리고 싶었다. 이건 진심이었다.</div> <div> </div> <div>"저기 친구분도 주무시고 계신 데 다음에 찾아오겠습니다."</div> <div> </div> <div>"저기 지금 말씀 안 하실 거면, 다시는 오시지 마세요. 다른 분들한테도 꼭 말씀 전해주시고요. 저는 관심 없는데 왜 매주 토요일이면 </div> <div>저를 괴롭히세요. 지금 제가 이렇게 행동하니까 무서우시죠? 저도 아주머니 같은 분들 오면 화도 나고 무서워요."</div> <div> </div> <div>"네.. 네 알았어요."</div> <div> </div> <div>그 뒤로 좋은 말씀을 전하는 분들은 우리 집에 찾아오지 않았다. </div> <div> </div> <div>이런 결말이면 나도 좋을 텐데, 안 오긴 개뿔, 매주 찾아와서 나를 괴롭혔다. </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