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안녕, 야구소녀 송지선</div> <div><br></div> <div><br></div> <div>그녀가 말했다. </div> <div>"저는요. 매년 KBO 출입증이 나오면 꼭 사진을 찍어둬요. </div> <div>제가 야구장을 다닐 수 있는 게 너무 좋아서요. </div> <div>또 언제까지 야구장을 다닐 수 있을지 모르니까 오래 간직해 두려고요."</div> <div><br></div> <div>아마 그녀 서랍안에는 </div> <div>전국 각 구장을 드나들 수 있는 KBO 출입증 네 장이 있을 것이다. </div> <div>취재 기자나 방송 스태프라면 매년 아무렇지 않게 발급받는 </div> <div>플라스틱 조각을 그녀는 그렇게 소중히 여겼다.</div> <div><br></div> <div>그로부터 1년 후. </div> <div>스캔들이 터진 5월7일. </div> <div>그녀는 충격과 혼란에 빠져 있었다. </div> <div>밤새 자신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div> <div>세상이 자신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채 인지하기도 전에 </div> <div>이렇게 말했다. </div> <div><br></div> <div>"저, 방송 못하겠죠?"</div> <div><br></div> <div>지금 방송이 문제가 아니라고, </div> <div>일단 심신부터 추스르라고 말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짧고 딱딱했다. </div> <div><br></div> <div>"송지선에게서 일을 빼면 뭐가 남을까요?" </div> <div><br></div> <div>긴 침묵이 이어졌다.</div> <div><br></div> <div>스스로를 내던진 송지선 아나운서 얘기를 쓰는 것은 참 아프고 불편하다. 이 칼럼이 마지막이기를 바란다. </div> <div>옆에서 지켜본 야구기자로서 그녀가 </div> <div>'스캔들의 주인공'으로 기억되도록 놔둬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div> <div>더하거나 포장할 것도 없이, </div> <div>생전 그대로의 모습을 조금이나마 전하는 것이 </div> <div>고인에 대한 마지막 예의라고 생각한다.</div> <div><br></div> <div><br></div> <div>그녀는 어려서부터 놀이터보다 야구장을 자주 다닌 '야구소녀'였다. </div> <div>야구 아나운서로의 꿈을 이룬 뒤에도 그녀의 놀이는 야구였다. </div> <div>쉬는 날에도 야구장을 찾았고, </div> <div>생애 마지막 휴가였던 2010년 11월에도 자기 돈을 들여 </div> <div>중국 광저우로 가서 아시안게임 야구 대표팀의 경기를 보며 응원했다.</div> <div><br></div> <div>아시안게임에서 그녀가 물었다. </div> <div><br></div> <div>"오늘 ○○○ 공 어떻게 보셨어요? 직구 구위가 엄청 좋았잖아요. </div> <div>처음에 불안했던 컨트롤도 이닝이 거듭될수록 안정됐고." </div> <div><br></div> <div>그녀에겐 그게 놀이였고, 휴가였다.</div> <div><br></div> <div>야구가 끝나고 겨울이 왔지만, </div> <div>그녀는 하루도 쉬지 못했다. </div> <div>네이트에 인터뷰 칼럼을 진행했고, </div> <div>프로야구 가이드북 출간을 제의받아 긴 밤들을 꼬박 세웠다. </div> <div>그러면서 말했다. </div> <div><br></div> <div>"아마 제가 남자 아나운서라면 이런 일을 안 했을지도 몰라요. </div> <div>여자 아나운서는 생명력이 짧으니까, </div> <div>그걸 조금이라도 늘리기 위해서 할 수 있는 건 다 해야죠."</div> <div><br></div> <div>예쁜 얼굴과 조리있는 말솜씨만으로 </div> <div>이 바닥에서 살아 남는 것이 힘들다고 그녀는 자각했다. </div> <div>현장 리포팅에 만족하지 않고 </div> <div>야구 캐스터가 되기 위해 혼자 노력했던 것은 그 때문이었다. </div> <div>그녀는 3년 전부터 혼자 스튜디오에 들어가 </div> <div>3시간 동안 녹화화면을 보며 야구중계 연습을 했다.</div> <div><br></div> <div>주위에서 </div> <div><br></div> <div>"여자 목소리로 캐스터를 한다고? 실현 불가능한 얘기다. </div> <div>방송 진행이나 잘해라" 라고 충고했다. </div> <div><br></div> <div>그러나 소용 없었다. </div> <div>아무도 없는 곳에서, </div> <div>아무도 듣지 않는 중계를 그녀는 끊임 없이 반복했다.</div> <div><br></div> <div>그녀와 야구 얘기, 일 얘기를 여러 번 했지만 </div> <div>사생활에 대한 대화는 별로 하지 않았다. </div> <div>다만 그녀와 가까운 사람들을 통해 열망이 큰 만큼 </div> <div>그녀가 늘 불안해 한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div> <div><br></div> <div>그녀는 여러 종류의 SNS를 통해 세상과 소통했다. </div> <div>메아리가 없었지만, </div> <div>응원보다 비난이 많았지만 그녀의 대화창구는 그것밖에 없었다. </div> <div>격정을 참지 못해 때로는 인터넷 공간에서 팬들과 공방을 벌이기도 했다. 약은 행동은 아니었지만 그녀는 그랬다. </div> <div><br></div> <div>솔직히 말하고, </div> <div>자주 흥분하고, </div> <div>금세 사과하고, </div> <div>바로 후회했다.</div> <div><br></div> <div>그녀는 참 외로워했다. </div> <div>그 과정에서 야구선수를 만나고 사랑했다. </div> <div>당사자들간의 문제는 수사를 통해 밝혀질 것이다. </div> <div>자살동기 역시 명확히 밝혀질 것이다. </div> <div>그때까지 그녀를 마녀나 꽃뱀으로 몰아가서는 결코 안 된다.</div> <div><br></div> <div>송지선은 2년 전부터 우울증에 시달렸다. </div> <div>병원치료도 꾸준히 받았다. </div> <div>그녀가 그토록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도 행복하지만은 않았다. </div> <div>다른 아나운서의 말처럼 </div> <div>야구장 뒤편은 여자에게 한 없이 폭력적이었다. </div> <div>'야구소녀'가 '야구여신'으로 추앙받게 된 과정은 전혀 극적이지 않았다. 온갖 소문과 비난으로부터 한 시도 자유로울 수 없었다.</div> <div><br></div> <div>야구 팬들은 매일 그녀로부터 야구 소식을 들었다. </div> <div>SNS를 통해 그녀의 글을 볼 수도 있었다. </div> <div>그녀는 매일 많은 사람들에게 많은 말을 했다. </div> <div>그러나 그녀 마음을 제대로 듣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div> <div>그래서 그녀는 늘 아프고 외로웠다.</div> <div><br></div> <div>진실은 수사를 통해 밝혀질 것이다. </div> <div>어쩌면 유족들의 뜻에 의해 묻혀질 지도 모른다. </div> <div>그것과 상관 없이 남은 이들이 해야 할 것이 있다. </div> <div>지난 2주간 어떤 일이 있었는지 몰라도, </div> <div>그녀가 살아온 30년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 </div> <div>송지선을 송지선으로 기억해야 한다. </div> <div>그래야 그녀가 저 위에서라도 울지 않을 것이다.</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