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동생과는 분기에 한번 형식적인 문자를 주고 받을 정도로 어색한 사이었기 때문에,
오랜만의 전화가 반갑기보다는 불쾌했다.
아마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무언가를 요구하리라.
나는 한숨을 푸욱 쉬면서 폴더 폰을 열어 전화를 받았다.
그런데 예상과는 달리, 동생은 꺽꺽 목이 메는 소리로 울고 있었다.
동생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동생의 울음 소리가 들리던 몇초동안 나의 머리 속에는 온갖 종류의 질병, 재해, 사고 등이 떠올랐다.
그러던 와중 여동생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언니, 엄마가 죽었데."
뒷통수를 갈기는 충격적인 내용에, 나는 그 자리에서 무너져 내렸다.
두서없는 동생의 말을 요약하자면 이러했다.
동생은 엄마의 사망소식을 외할아버지로부터 접했으며,
엄마의 시체를 담은 관을 외할아버지가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동생은 깜짝 놀라 외할아버지에게 당장 그 집에 가겠노라고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외할아버지는 불같이 화를 내며 너 따위에게 네 엄마의 시체를 보여줄 수 없다고 말하셨다고 한다.
외할아버지의 이해할 수 없는 처사에 동생은 울면서 매달렸다고 한다.
그 와중에 할아버지에 의해서 일방적으로 전화가 끊겼다 한다.
동생은 몇 번 더 외할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보려 하다가 받지 않아 포기하고 나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했다.
엉엉 우는 동생의 말을 들으며, 쿵쿵 거리던 심장이 점차 진정되기 시작하며 현실적인 문제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엄마가 죽었으면 사망신고를 해야할텐데, 의사한테 엄마를 보여야 하나? 장례식은 어쩌지?
외할아버지가 저렇게 비협조적으로 나온다면 나랑 동생이랑 둘이서 장례를 치뤄야 하나?
그러기 전에 먼저 엄마의 시체를 가져와야 할텐데?...
머릿속을 뱅뱅 도는 여러가지 생각에 머리가 아파왔다.
하지만 엉엉 우는 동생을 진정시키기 위해서라도, 엄마의 사망 이후에 이어질 여러 현실적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라도
지금 가장 먼저 해야 할일은 우선 외할아버지네 집에서 엄마의 시체를 인수하는 것이었다.
거의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 동생과 만났다.
할아버지의 집은 시내에서 그리 멀리 떨어진 곳은 아니었지만, 나름 외진 곳에 있었다.
컴컴한 논밭 사이를 지나, 오래전에 버려져 폐허가 된 교회를 지나 한참을 걸어가야 외할아버지네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길 양쪽에 있던 가로등은 중간을 넘어서자 완전히 사라졌고,
나와 동생은 거의 삼십분 동안이나 불이 없는 시골길을 걸어갔다.
멀리서 외할아버지네 집이 보였다. 집안에서 누가 TV를 보고 있는지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렸다.
동생과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 외할아버지네 집에 몰래 들어가기로 마음 먹었다.
엄마의 시체가 어디에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시간이 늦었으니 집을 조용히 뒤지면 되리라고 생각했다.
살금살금 몰래 집안으로 침입했다. 신발을 벗고 양말만 신은채로, 미닫이 문으로 된 껌껌한 방문을 하나하나씩 열었다.
하지만 엄마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고,
그렇게 불같이 화를 냈다던 외할아버지의 모습도, 외삼촌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복도 중간에 있던 가장 큰 방에서
초등학생이었던 외삼촌의 작은 딸과 막내 딸이 TV를 보고 있었다.
동생과 나는 사촌들에게 아는 척을 해야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다.
하지만 동생은 외삼촌과 외할아버지의 위치를 알기 위하여 사촌들에게 아는 척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망설이고 있는 때에, 우리의 말소리를 들은건지 막내 사촌동생이 엉금엉금 기어 미닫이문 바깥으로 우리를 보며 활짝 웃었다.
해맑은 웃음이 검은 공기를 갈랐고, 동생과 나는 섬뜩한 기분을 느꼈다.
본인의 동생이 갑자기 미닫이 문 바깥을 쳐다보자 의아했는지 외삼촌의 둘째딸이 복도 쪽으로 걸어나왔고,
그 아이는 나와 동생을 발견하고 굉장히 반갑다는 듯한 말투로 이렇게 말했다.
"언니들, 고모 시체는 저어기 닭장에 있어."
나와 동생은 서로의 얼굴을 한번씩 쳐다보고 침을 꿀꺽 삼킨 후에
사촌동생이 가르쳐준 방향으로 뛰어갔다.
그 아이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지 않은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게 아니었다.
닭장이 점점 가까워 졌을 때,
닭장 바깥으로 닭들이 꼬꼬댁 거리며 우는 소리, 푸드득 거리며 날갯짓 하는 소리가 분주하게 들렸다.
그 사이를 가르는 꽥, 끅, 윽 하는 신음 소리에 나와 동생은 온 몸에 닭살이 돋았다.
이건 누군가가 닭의 목을 비틀며 따고 있을 때 나는 소리였다.
닭을 죽이고 있는 건 외삼촌일까, 아니면 외할아버지일까.
만약에 우리가 외할아버지네 집에 몰래 침입한걸 알았다면, 저 사람은 우리마저 죽이지 않을까.
나와 동생은 다리를 벌벌 떨며 저 닭장 속에 들어가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 고민했다.
동생은 되돌아 가자고 했다. 다음날 아침에 오는게 어떻겠냐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나를 설득했다.
하지만 나는, 엄마가 여기에 있다며 여기에서 포기할 순 없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때 닭들이 지랄 하는 소리가 뚝, 하고 그치더니, 닭장의 철문이 끼익 하고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근처에 있던 풀 숲에 숨어있던 나와 동생은, 닭장의 빛을 등지고 나온 문을 연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외삼촌이었다.
퀘퀘한 피비린내를 풀풀 풍기며, 사람 피인지 닭 피인지 알수 없는 빨간 액체를 몸 전체에 뒤집어 쓴 외삼촌은
의외로 쿨하게 웃으며 '네 엄마는 저기 닭장 속에 있다'라고 말했다.
나와 동생은 아무 말도 못하고 외삼촌이 가르치는 닭장 안으로 들어갔다.
외삼촌의 곁을 지날 때 삼촌이 쿡, 하고 웃는 소리가 들렸다.
그게 너무 무서웠기에, 나와 동생은 다리를 벌벌 떨며 닭장 구석에 있는 철망으로 다가갔다.
사방에 닭피가 널려있었고, 삼촌이 목을 딴 것으로 추정되는 닭의 시체가 잔뜩 쌓여있었다.이
하지만 우리에겐 그것을 신경 쓸 시간이 없었다.
닭이 알을 낳는 철장 중간쯤에 검은 나무로 짠 관이 보였다.
나와 동생은 무슨 힘이 생겼는지, 그 관을 철장 구멍에서 빼서 엄마의 얼굴을 확인했다.
사후 경직이 시작되어 이미 파랗게 질린 엄마의 얼굴은 의외로 평안해 보였다.
특별히 큰 사고를 당한 건 아닌지, 사지가 멀쩡한 엄마의 모습을 확인 한 후,
나와 동생은 홀린듯 관 뚜껑을 닫고 양쪽으로 관을 들쳐 맨 후 닭장을 빠져나왔다.
오줌을 지리며 도망치는 나와 동생을 보며 외삼촌은 무표정한 얼굴로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엄마의 시체를 우리에게 보여주지 않겠다던 외할아버지를 만나지 않은게 다행이라며,
나와 동생은 길 중간에 버려진 교회 앞에 엄마의 시체를 놓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밝은 달이 밤의 공기를 붉게 만들었기 때문에,
고딕 양식으로 쭉 뻗은 교회의 모습이 더욱 위협적으로 보였다.
그리고 그 때, 나는 아침 6시쯤 잠에서 깼다.
몇 년에 한 번이나 꿈을 꿀 정도로 꿈을 꾸지 않는 나는
오랜만에 신기한 꿈을 꿨다며 들떠 엄마에게 이야기를 했다.
아침밥으로 계란후라이를 먹고 있던 엄마는 '내가 죽는 꿈이라니 무슨 개꿈이야'라고 별 대수롭지 않은 반응을 보였다.
동생은 엄마의 뱃살을 주물럭 거리며
'언니랑 나 힘도 좋다ㅋㅋㅋ 언니랑 나 둘이서만 엄마 못 이고 올텐데?'라며 피식거리며 웃었다.
그렇게 별거 아닌 개꿈으로 끝날 줄 알았다.
다음 날, 외할아버지에게서 외삼촌이 구속되었다는 소식을 들을 때까지.
이미 절도 등등으로 전과 5범이었던 외삼촌은, 이번에도 또 절도로 잡혔다고 했다.
하지만 이후 들리는 소리로,
술집을 운영하는 줄 알았던 삼촌이 알고보니 룸싸롱의 바지 사장이었으며,
그 룸싸롱의 아가씨 몇명을 성폭행 한 나머지 고소를 당했다고 한다.
이미 전과 5범이었기에, 이후 외삼촌은 거의 30년이 되는 형을 선고받았다고 한다.
이후, 엄마가 흘러가듯 그런 말을 했다.
꿈에서 닭장이라는게 감옥이라고.
이게 10여년 전, 내가 중학생이던 시절에 유일하게 꾸었던 예지몽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