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졸업을 앞둔 예비 작가에게] _ 임근준 AKA 이정우<br><br>1. 평생에 걸쳐 연구할 주제가 무엇인지 고민하라.<br><br>2. 자아를 탐구하는 소위 ‘일기장 작업’을 해왔다면 다른 직업을 알아보라.<br><br>3. 졸업하기 전 학생의 신분으로만 가능한 에고-트립(ego-trip)이 있다는 점을 기억하자.<br><br>4. 에고(ego)와 후츠파(chutzpah)는 클수록 좋다.<br><br>5. 학창 시절에 ‘캠퍼스의 전설’이 되지 못했다면, 아예 어떤 식으로든 기억에 남지 않는 편이 이롭다.<br><br>6. 최소한 3-4회 이상의 개인전을 소화할 분량의 작업이 축적되기 이전에, 개인전을 열고 데뷔하지 말라.<br><br>7. 평판이 좋은 대안공간이나 갤러리가 아니라면, 때 묻지 않은 공간에서 데뷔하는 편이 낫다.<br><br>8. 3류 상업 화랑과 함부로 비즈니스 관계를 맺으면 곤란하다.<br><br>9. 주례사 격의 전시 서문을 받지 말라. 때로 전시 서문은 화환보다 추하다.<br><br>10. 작업에 자신이 있다면 목에 힘을 주고 다녀도 상관없다.<br><br>11. 삶과 작업이 상관없어 뵌다면, 둘 중 하나는 가짜다.<br><br>12. 작가 이력에 아트 페어 관련 정보를 적는 망신스러운 일을 삼가라.<br><br>13. 수준 낮은 작업을 하는 이들과 어울리지 말라.<br><br>14. 주변에 탁월한 작업을 전개하는 동료가 없다면, 자신의 수준을 의심해보라.<br><br>15. 작업에 관해 터놓고 의논해도 좋은 만큼 탁월한 취향(taste)과 감식안(eye)을 지닌 동료를 확보하라.<br><br>16. 동료를 구하는 데 나이/인종/성별 등을 따지는 우를 범하지 말라.<br><br>17. 전시 개막 리셉션에 가족과 동문을 부르지 말라.<br><br>18. 주변의 일반인들이 작업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의기소침해하는 아마추어적 감상주의를 버려라. <br><br>19. 윤리적 명제에 천착하는 죄의식의 작품(guilt trip art)으로 혹세무민하지 말라.<br><br>20. 부모의 바람에 따라 ‘정상적 가정’도 꾸리고, 어떤 식으로든 ‘아방한 작업’도 할 수 있으리라는 헛된 바람은 일찌감치 집어치워라.<br><br>21. 개인 작업실에 꽂혀 있는 책이 500권 미만이라면 작가로서의 자질을 의심해보라.<br><br>22. 성공한 예술가는 자신만의 관객을 거느리는 법. 가상의 관객을 염두에 둔 채 실질적 관객을 도모하는 자세를 갖춰라.<br><br>23. 작업을 십분 이해하는 관객 2-3인으로 충분하다는 식의 태도가 때로 중요하다. <br><br>24. 더욱 중요한 일은 그 2-3인의 확보.<br><br>25. 자기 작업을 해설하는 일은 금기다. 작가의 입으로 작품을 해설하면, 작품은 제 스스로 말 할 기회를 잃는다.<br><br>26. 작가 프리젠테이션에서도 작업에 관련된 기본 전제 조건 외의 핵심을 해설하면 안 된다.<br><br>27. 아티스트 스테이트먼트(artist statement)에 작업의 미적 구조를 (확정적 언어로) 해설해놓으면, A급 평론가는 평문 쓰기를 거부하거나, 작가의 말을 직접 인용해버린다.<br><br>28. 아티스트 스테이트먼트에선, 구체적 언어를 사용할 때조차 추상적이어야 옳다. 특정 담론을 언급하는 일은 바보짓이다.<br><br>29. 숨은 레이어(layer)를 거느리지 않는 자명한 작업은 비교적 생명이 짧다.<br><br>30. 작업에 싸구려 재료를 쓰지 말라. 나중에 고급 재료를 써서 다시 제작하면 된다고 믿기 쉽지만, 나중이란 존재하지 않는다.<br><br>31. 언어와 조형의 관계를 일대일로 대응시키는 일은 (사기가 아니라면) 바보짓이다.<br><br>32. 궁극의 조형적 쾌락은 (언어에 연루된) 오브제를 (언어에 종속시키지 않은 채) 다른 차원의 오브제로 전환하는 데서 발생하는 법이다.<br><br>33. 우리 시대의 예술은, 법칙의 지배, (반)자율적 실천, 그리고 성숙한 자유주의에 기반을 둔다. 이해가 가지 않는다면, 4년 동안 헛공부했다.<br><br>34. 창피한 작업도 버리지 말고 비밀 공간에 잘 숨겨놓을 것. 훼손 또는 파기하면 나중에 후회하는 수가 있다.<br><br>35. 작품의 기록 사진은 반드시 고화질로. 인생은 길고, 기록은 영원하다.<br><br>36. 작업 세계의 근간이 되는 작품은 절대 판매하지 말라.<br><br>37. 큐레이터, 화상, 후원자, 평론가를 만날 때 예의를 갖추되 굽실거리지 말라.<br><br>38. 전시 관련 인쇄물을 제작할 때 유행에 민감한 디자인을 피하라.<br><br>39. 가능하다면, 작업을 이해할 수 있는 지력을 소유한 디자이너를 찾아 장기간 협업하라.<br><br>40. 타자와 협업을 시도할 때, 기회주의적 분업 혹은 아웃소싱에 주저함이 없어야 한다.<br><br>41. 창조성을 추구하는 데 따르는 민망함은 타인의 몫이 되도록 하라.<br><br>42. 시대착오적이길 두려워하지 말라.<br><br>43. 기념비적 아름다움을 거부하는 태도야말로 지난 시대의 기념비라는 사실을 기억하라.<br><br>44. 현실 도피적 리얼리티를 도출해 현실로 귀환하는 법을 배워라.<br><br>45. 틈새 마케팅(niche marketing)의 미적 논리에서 벗어나도록 노력하라.<br><br>46. 예상한 것 이상의 결과를 낳는 작업 과정을 고안하라.<br><br>47. 자기-참조적(self-referential) 작업을 시작할 때, 과연 내가 이 일을 평생 즐겁게 지속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라.<br><br>48. 다양한 미디엄(medium)을 작업에 동원할 때, 그것의 다이어그램적 배치(diagrammatical disposition)가 조형적으로 아름답나 자문해보라.<br><br>49. 작업을 언어로 치환해봐서, 말단이 닫힌 폐쇄 구조의 텍스트-구조체가 도출된다면, 무엇이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복기 작업에 나서야 한다.<br><br>50. 좋은 작업은 대개, 이성에 의해 설정되지만, 감성에 의해 기동되고, 많은 부분, 몸에 익은 지식에 의해 구현된다.<br><br>51. 모든 미술품은 오브제와 정신의 (재)결합체라는 점을 잊지 말라.<br><br>52. “재능은 빌리고, 천재는 훔친다(Talent Borrows, Genius Steals)”는 오스카 와일드의 말을 기억하라.<br><br>53. 포스트-모더니즘(Post Modernism)은 끝났다. 전 세대의 열린 질문의 계정에 함부로 무임승차하다가는 일찌감치 도태되는 수가 있으니 주의하라.<br><br>54. 예술에서, 패션(fashion)은 금기지만, 스타일(style)은 중요하다.<br><br>55. 대개의 좋은 작업은 아이러니(irony)하지만, 억지로 아이러니를 추구한다고 될 일은 아니다.<br><br>56. 형식을 무시한 채 ‘진정성’을 추구하는 우를 범하지 말라. 내용과 형식은 결국 하나다. 그런데, 진정성이 대체 무슨 말인가?<br><br>57. ‘과정이 모든 것’이라고 생각하며 작업해야 옳지만, 관객과 마주한 채 말을 건네는 역할은 언제나 결과의 몫이다.<br><br>58. 미적으로 성공한 전업 작가는, 거의 예외 없이 아침 일찍 일어나 작업하고, 저녁에는 전시 개막이나 파티 등을 둘러본 뒤 일찍 잠자리에 든다.<br><br>59. 인생은 길지만 전성기는 짧다.<br><br>*<퍼블릭아트>지 2010년 1월호 게재 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