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제가 일본에 있을적의 이야기 입니다..</p> <p>왜 나는 27년간 솔로인가..하고 우울해 하며 </p> <p>지난 인생동안 보고 겪었던 여자분들을 생각하다보니 문득 떠오른 분입니다.</p> <p><br /></p> <p>일급 10500엔짜리 꿀알바가 끝나버리고 </p> <p>돈도 좀 있고 시간도 남아서 유유자적하던 어느날, 모처럼 일본에서 생긴 자유시간인데 집에서 엑박만 만지작거리고 있자니</p> <p>왠지 시간이 아까워서 무얼할까 하다가 </p> <p>어느 여행사이트에 가벼운 마음으로 도쿄 가이드를 해준다고 적었습니다.</p> <p>가이드비용은 따로 필요없고[워홀러 입장이고..전문가이드가 아니기 때문에] 그냥 교통비랑 밥만 사달라고 적었습니다.</p> <p><br /></p> <p>그날따라 운이 좋았는지 처음으로 적은 가이드글에 바로 덧글이 달리더군요.</p> <p>영국에서 유학하다가 일본에 여행온 사람이라며, 여행할때 간단한 안내와 통역해주면 좋겠다고 하기에 오케이 했습니다.</p> <p>전문적으로 일본어를 공부한것은 아니지만 6개월가량 호텔에서 카운터, 레스토랑 등 일을 하고 1년가까이 각종 아르바이트를 섭렵해왔기 때문에 간단한 가이드라면 자신이 있었지요.</p> <p>여러분도 잘 아시는 신주쿠 동쪽 출구에서 만난 그녀는 세련된 옷을 입고 선글라스를 낀 현대여성(?)이었습니다.</p> <p>너무나도 당당한 기세에 오히려 이쪽이 기가 눌려버렸지요.</p> <p><br /></p> <p>'어..어디로 가실래요?'</p> <p>왠지 기가 눌려서 저자세가 되어 말하니 그녀는 '식사하셨어요? 일단 식사부터 하시죠' 라며 대뜸 밥을 사주겠다며 리드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p> <p>가난한 워홀러가 오랜만에 뭔가 리드를 해보겠다며 나왔던건데</p> <p>'워홀러면 밥도 제대로 못먹죠?' 라며 평소에 눈길조차 주지못하던 신주쿠 대로변의 근사한 레스토랑으로 날 데려갔습니다.</p> <p>얼핏보아도 3000엔 5000엔 하는 음식가격에 손이 덜덜 떨리기 시작하더군요..</p> <p>평소 500엔 하는 정식메뉴앞에서도 부들부들 망설이다가</p> <p>280엔짜리 카케우동으로 요기를 때우고 실성한듯 물건을 나르던 저에겐 너무나도 고가의 음식이었습니다.</p> <p><br /></p> <p>'여기..너무 비싼거 아닌가요?'</p> <p>-'여행이니까 상관없어요'</p> <p><br /></p> <p>전혀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의 그녀...</p> <p>그동안 가난한 유학생과 워홀러만 보아왔던 저에겐 생소한 모습이었습니다.</p> <p>어제만 해도 신오오쿠보에서 와세다 대학으로 가는 대로변에서 280엔짜리 점보도시락을 파는 상점을 발견하고</p> <p>같은 아르바이트를 하는 누나와 팔짝팔짝뛰며 기뻐했는데...</p> <p>잠시 생각에 잠긴틈에 어느세 일본인 점원이 주문을 받기위해 다가왔습니다.</p> <p><br /></p> <p>'여기서는 일본어를 할줄 아는 내가 실력발휘를...'</p> <p>이라며 나서는 순간 그녀가 자연스럽게 영국발음의 영어로 주문을 시작합니다.</p> <p>영어를 할줄아느냐고 물어보니 과연, 고급레스토랑의 점원답게 일본인 점원역시 평소에는 도쿄에서조차 보기힘든 유창한 영어발음으로 응대하고</p> <p>'오..역시 고급레스토랑은 점원도 고급이네'</p> <p>라며 그녀는 기꺼운 표정으로 주문을 합니다.</p> <p><br /></p> <p>'으 내가 뭔가 도움을 주어야 하는데...도움을 주어야 하는데....' </p> <p>라는 생각을 하는 동안 점심식사가 휙 하고 끝나 버리고</p> <p>저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은것에 왠지 풀이 조금 죽어버렸습니다.</p> <p>뭔가 도움이 되지 못한다면 단순히 밥만 얻어먹은 사람이 되기에 스스로 나름 알고있는 지식을 동원해서 </p> <p>'이곳은 여기서 환승하면 좋아요!'</p> <p>'nhk홀에서 바로 시부야로 걸어서 넘어갈 수 잇어요'</p> <p>'아키하바라에서 우에노까지 걸어가면서 보는 경치가 굉장히 좋아요'</p> <p>'국민체육관-메이지신궁-타케시타도오리-하라쥬쿠-오모테산도로....'</p> <p>라며 나름 워킹코스를 말했지만</p> <p>'택시!' 라며 일본인도 잘 못타는 기본요금 710엔짜리 택시를 서슴없이 세워탑니다.</p> <p>일본에 1년반 살면서 처음으로 본 자동문 택시에 놀라며</p> <p>'이여자...어디 부잣집 여자인가' 라는 생각도 하며</p> <p>같이 택시에 올랐습니다. </p> <p><br /></p> <p>'명품을 조금 둘러보고 싶은데....'</p> <p>그녀가 가이드북과 듣도보도 못한 '도쿄 명품상점 안내북'이라는걸 꺼내어서 이것저것 물어보기 시작합니다.</p> <p>명품에는 관심도 없고, 돈키호테 중고명품판매점외에는 가본적도 없는 찌질한 남자워홀러는 다시한번 압도되어버리고..</p> <p>'저는...돈키호테밖에 모르는데...'</p> <p>-'음..그러면 거기부터 가요 ㅇㅇ' </p> <p>라며 안내를 부탁합니다.</p> <p>다행인지 불행인지 돈키의 명품라인을 둘러본 그녀는 나름 만족했는지 선글라스라든지 백을 주문하고</p> <p>카드가 한도에 다달아</p> <p>'토오리마셍'[안긁혀요] 라는 말을 몇번이나 들으며 이곳저곳을 전전합니다.</p> <p>다행인지 불행인지 이곳 점원들은 그녀가 영어로 말을 걸면 </p> <p>'에엣? 노 잉글리쉬'</p> <p>라며 당황해하였기 때문에 제가 나설 무대가 생겼고..</p> <p>처음에는 '소위 말하는 된장녀라는건가? 아니...그거랑은 좀 다른건가?' 라고 생각하던 저도 어느세</p> <p>'아...이맛에 명품사러 다니는건가' 라며 그녀를 통해 말하는 저는 저에게 집중된 가게 점원들의 깎듯한 태도와 융슝한 대접에 반하고 말았습니다.</p> <p>멋지게 차려입은 미남미녀점원들이 하얀색 빛나는 장갑을 끼고</p> <p>그녀가 주는 눈길한번, 손짓한번에</p> <p>굳게 잠겨져있던 쇼케이스를 목에걸고있던 열쇠로 열어 젖히고</p> <p>연신 꺼냈다 넣었다하며 진상하고 있었습니다.</p> <p><br /></p> <p>카드를 긁을때마다 대화를 나누어야 했기 때문에 그녀는 카드를 저에게 맡겼고</p> <p>저는 그런 그녀덕분에 큰돈쓰는 대리만족감을 여실히 느끼며 그녀의 지시에 따라 카드를 긁었습니다.</p> <p>12만엔 18만엔짜리 지갑과 키홀더들부터 30~50만엔 백들과 선글라스까지...</p> <p>그녀는 거침없이 긁어대었고</p> <p>그때마다 점원들은 오랜만에 찾아오신 대물손님에게 연신 이마가 땅에 닿을듯 굽신거리며 융슝한 대접을 아끼지 않았습니다.</p> <p>저는 그야말로 그들의 한 가운데에 서서 [통역때문에] 난생처음 대리만족을 느끼고 있었구요.</p> <p>1790엔짜리 60분짜리 무한리필 샤브샤브를 먹으며</p> <p>'우와~ 초 부자된 기분!' 이라고 생각했는데</p> <p>지금은 30~50만엔이 슥슥슥 긁혀나가니..어안이 벙벙하다가 도취되어버린겁니다.</p> <p><br /></p> <p><br /></p> <p>그렇게 그녀와 도쿄일대를 돌며 명품여행을 하다보니 </p> <p>딱히 유명관광지를 둘러본것도 아닌데 밤이 되었습니다.</p> <p>그녀도 '아! 이제 그만써야겠다' 라며 명품행진을 멈추었고 둘다 하루종일 돌아다녀 지친상태였습니다.</p> <p>'이제 어디가실래요? 저녁 드실래요?'</p> <p>제가 묻자 그녀는 잠시 생각하는듯 하더니</p> <p>'혹시 일본의 포장마차랄까..선술집같은곳 알아요?'</p> <p>라고 묻습니다. </p> <p>저는 선뜻 지역주민들만 아는 포장마차같은 분위기의 술집으로 갑니다.</p> <p>노가다 아르바이트를 할때 나에게 신경많이 써주시던 아저씨께서 한턱쏜다며 데려갔던 가게인데</p> <p>얼굴에 칼흔적이 있는 야쿠자같이 생긴 아저씨가 게이같은 목소리로 밥을 눈앞에서 요리해주며 대화를 나누어주는 재미있는 곳이었습니다.</p> <p>손님도 고등학생부터 회사원 아줌마, 무서운 아저씨들[코로시야]까지...[같이생긴] 실로 다양한 일본인들이 모여있는 밥집이었습니다.</p> <p><br /></p> <p>'하이~ 이랏샤이~'[예~ 어서오세요~]</p> <p>가게에 들어서자 점원분이 일본특유의 큰 목소리로 맞아줍니다.</p> <p>'토리아이즈....나마데!' [일단...생맥!]</p> <p>하루종일 늦여름길을 다녔으니 목이마를만도 해서 생맥을 시킵니다. 거품많이! 라고 뒤늦게 외치니 빙긋 웃으며 거품을 넘치게 따라줍니다.</p> <p>고급스러운 곳을 좋아할것 같은 그녀가 혹시 이런곳은 싫어하지 않을까 눈치를 보았더니</p> <p>의외로 일본인으로 가득찬 이런 술집의 분위기가 역시나 그녀에게도 신선했던 모양인지 흥미진진한 얼굴입니다.</p> <p>'와...여긴 한국인이..랄까....외국인이 한명도 없네'</p> <p>-'여기선 우리가 외국인이잖아요'</p> <p>'아...' </p> <p>항상 금발의 손님들이 있는 식당에서만 밥을 먹은 모양입니다.</p> <p>도쿄에서는 식당에가면 꼭 한둘씩 서양인 손님이 밥을 먹고있곤 하니까요</p> <p>'그런데...이런데서 한국어로 떠들어도 되는거에요?'</p> <p>-'예? 왜요?'</p> <p>'그...야쿠자라든지..우익이라든지..'</p> <p>왠지 한국어로 말하는걸 들키기라도 할까봐 걱정하듯 목소리를 낮춥니다.</p> <p>하긴, 왠지 그런쪽으론 전혀 생각해본적이 없는데 되돌이켜보니 항상 일본어로 일본사람 한둘 섞인 상태에서 이런곳에 왔었고...</p> <p>한국인끼리 한국어로 이런자리에서 떠들어도 될려나 ? 라고 생각이 들었지만</p> <p>'괜찮아요 ㅎㅎㅎㅎ 죽이기야 하겟어요?'</p> <p>라며 안심시켰습니다....시킬려고 했는데 오히려 불안해진 모습..</p> <p>'한국보다 오히려 안전하니 괜찮아요'</p> <p>라고 안심시켰습니다.</p> <p>물마시며 한숨 고르고 있으니 밥이나왔습니다.</p> <p>'스푼 쿠다사이'[스푼 주세요]</p> <p>숟가락을 받아서 한국인 답게 규동을 비빔밥처럼 퍽퍽 비빈뒤 시오카케[후추]를 듬뿍 뿌리고 생강을 촥촥 뿌려 다시 비빈뒤</p> <p>한입 가득 떠먹으니 일본사람들이 시오카케와 생강을 뿌리는 부분부터 왠지 힐끔힐끔 보기 시작합니다.</p> <p>숟가락으로 퍽퍽 퍼먹으니 더욱 많은 사람들이 신기하듯 쳐다봅니다. </p> <p>보통 일본사람들은 다른사람을 잘 안쳐다보는데</p> <p>지금은 우리만 외국인이라 그런지 제법 오래 쳐다봅니다.</p> <p>왠지 쑥스러워서 짐짓 모른척하고 밥을 먹는데 </p> <p>'왜 다 우리를 쳐다보는거에요?;;'</p> <p>라며 소근소근 그녀가 말을 건내옵니다.</p> <p>'숟가락으로 규동먹는게 신경쓰이나봐요'</p> <p>보통 스키야 같은곳에 가면 숟가락도 놓여있곤 하지만, 일본사람들은 카레라이스 말고는 거의다 젓가락만 사용해서 먹기 때문에</p> <p>의외로 그런 사소한게 자기네들과 다르게 보이곤 하는가봅니다.</p> <p>그렇게 밥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p> <p>부자인줄 알고 부자냐고 물어보았더니 웃으면서 </p> <p>'서민이에요 서민 ㅎㅎㅎ'</p> <p>이라고 웃습니다. </p> <p>서민이 어떻게 그렇게 하루만에 삼천만원씩 쓰냐고 물으니까</p> <p>'제가 그냥 이리저리 모은 돈이에요' 라며 말을 흐립니다.</p> <p>밥을 다먹고 안주거리와 부도사와, 레몬사와부터 시작해서 오니고로시같은 일본주까지 줄줄줄 시켜보았습니다. </p> <p>평소에 이름만 알고 못마시던 일본주까지 데운걸로 시켜서 마시니 </p> <p>공짜라서 그런지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짜리한 술맛이 평소와는 달리 더 애틋하게 느껴집니다. </p> <p>그녀는 술이 한잔 두잔 넘어갈때마다 분위기가 바뀌더니</p> <p>'신세한탄 해도되요?'라며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합니다.</p> <p>그녀는 영국에서 유학할때 백인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졌습니다.</p> <p>그리고 몇년을 사귄끝에 둘은 결혼을 약속했습니다.</p> <p>그녀는 남자와 결혼하기위해서 잠자는 시간도 아껴가며 아르바이트를 했고</p> <p>옷에 난 구멍을 기워서 입어가며 돈을 모았습니다.</p> <p>그런데 어느날 집에오니 남자친구가 백인 여자와 같이 있더라는 겁니다.</p> <p>이게..뭐지..?</p> <p>쇼크에 빠지려는 그녀에게 남자가 다가와서 사실은 새로운 여자가 생겼다고 말합니다.</p> <p>정말로 미안하다고 말하고 의외로</p> <p>그렇게 쉽게 그녀와 남자는 헤어졌습니다.</p> <p>그이후로 조금 방황하다가 휴학을 하고</p> <p>기분전환을 위해서 일본으로 놀러왔다는 겁니다.</p> <p>한국의 집에 갔다가, 말도 안통하고 한번도 안가본 하지만 가까운 일본으로..</p> <p>그래서 오늘 쓴돈은 전부 결혼자금이었다고 하더군요.</p> <p>그동안 아끼고 아끼며 견뎌왔던 자신에게의 상이라고 합니다.</p> <p>왠지 그말을 들으니 마음이 조금 짠하더군요.</p> <p>단순히 돈많은 부잣집 여자라고 생각했는데...</p> <p>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p> <p>섣불리 어줍짢은 위로의 말이라도 건냈다가는 오히려 그녀의 마음을 언짢게 할것 같아서 조용히 술을 따라주고 그녀의 이야기를 쭉 들어주었습니다.</p> <p>나중에 택시에 타서 바래다 주는데</p> <p>'나랑 같이 잘래요?' </p> <p>라고 하는 그녀에게</p> <p>'후회 할짓 하지말고 그냥 들어가서 자요 ㅇㅇ' 라며 보냈습니다.</p> <p>신주쿠에서 이이다바시까지 걸어오는데 왠지 즐거웠던 마음은 싹 가시고 </p> <p>'인생이란...' 이라는 생각이 가득차 </p> <p>오는 내내 인생은 무엇일까..? 라고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습니다.</p> <p>그러다 싸구려 꼬치전문점에 들어가서 홀로 앉아 술을 마시다가 정신차려보니</p> <p>필름이 끊겼는지 아침 8시 10분이고 저는 어디론가 향하는 전철에 혼자 앉아 잠자고 있더군요 ㅡ.ㅡ;;;;;;;;;</p> <p>그렇게 첫번째 어설픈 저의 가이드는 끝이났습니다....</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