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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rivfishing_2420
    작성자 : 봄여름가을.
    추천 : 5
    조회수 : 1396
    IP : 14.41.***.243
    댓글 : 0개
    등록시간 : 2015/09/16 12:20:55
    http://todayhumor.com/?rivfishing_2420 모바일
    고삼 낚시글
    만약 내가 긴급 수배된 사상범이라거나 거액의 복권에 당첨돼 수사관이나 사람을 피해야 한다면 가장 먼저 은신을 고려할 장소가 그곳이다. 정신의 한 본향일 뿐, 주민등록이나 호적에 기재되지 않았음은 물론 친인척이나 친구, 애인 같은 연고가 전혀 없어 누구도 찾아낼 수 없는 내 소재 불명의 장소였기 때문이다. 뒤돌아서면 왜 볼이 붉어지는지 애매하면서 들뜸으로 소일하기 일쑤였던 심정적 첫사랑이 80년 여름에 고향인 안성의 고삼으로 휴가를 떠나버리자 생긴 까닭모를 상실감은 극적 우연을 연출하기 위해 다음날 휴가원을 제출하고 엿들은 그녀의 고향발 버스에 무작정 몸을 싣게 했다. 그러나 동화 속 조우는 커녕 인적 드문 끝없는 들판과 광활한 수면적에 좌절해 미수로 끝장난 사랑 놀음이 그곳의 시작이었다.
     
    전복된 상징적 의미의 첫사랑은 그 후 여러 해를 환각제나 순례처럼 그곳을 찾게한 유미唯美의 단초였다. 친분 있는 사람은 떠밀리다시피 한번쯤은 함께 했으며 모두가 특유의 정취에 흠뻑 몰입했다. 저수지변은 갈대와 다양한 수초, 수양버들, 수몰 나무 등으로 식생이 조밀해 물빛이 그럴 듯했고, 만곡지거나 완만한 굴곡으로 양안의 풍경이 단속적으로 짙푸른 팔자섬 너머 끝없이 길게 이어졌으며, 인공섬인 좌대로 가기 위해 주인 노부부 중 한 사람이 노를 젓는 낡은 목선에 탑승하면 이따금 부는 바람에 작은 파도가 치고 나아가는 뱃전과 부딪쳐 찰박찰박거리며 흰 포말이 일었다. 밤이면 해가 떠 빛살 눈부시게 갈라지는 아침까지 뭉글뭉글 피어오른 짙은 안개가 저수지를 잔뜩 에워싸 낮의 정물을 마술처럼 몽환적으로 일그러뜨렸다.   
     
    필시 양 손에도 뭔가 들려있을 만큼 등짝의 멜빵 가방과 함께 잡다한 낚시 집기는 한 짐이었다. 대낚시를 잊지 못하게 하는 소도구는 야간 노점상들의 필수품 칸델라였다. 카바이트를 통에 담고, 물을 혼합하고, 노즐을 가는 철사로 소제해 입으로 빨아내고는 잘 닦은 반사경을 부착해 점화하면 뽁, 하고 점등됐으며 찌의 마디마다 감은 야광테이프가 반사돼 반짝이는 과정은 긴장한 챔질 끝에 물방울을 퉁기며 낚시줄을 쑤웃, 수중으로 쳐박는 씨알 좋은 붕어의 바늘털이 손맛만큼이나 황홀했다. 20년 앞을 예견 못하는 행정력도 안성 고삼지 월향리 향림의 좌대를 타게 했다. 동원 예비군 훈련을 면제한 대가로 대한가족계획협회가 주관한 정관 수술을 마치자마자 달려가 다리를 오므리고 쪼그려 앉아 칼을 맞아 허전한 고환을 힐끔거리며 고소한 냄새 물씬한 원자탄을 부지런히 물에 버무렸다.
     
    손나팔로 민가를 향해 밥!을 자꾸 외치면 노란 사각 플라스틱 소쿠리로 호박무침 할머니 백반이 배달됐다. 손님이 드문 평일에는 전용 나룻배를 좌대에 계류시켜 두고 엇박자 노젓기로 편리하게 육지를 오가거나 저수지 여행을 떠났다. 무슨 습벽인지는 몰라도 어느 물가를 가도 낚시를 마치고 그 자리에서 통과제의 같은 수영이 있었다. 인근 좌대에 낚시꾼이 없으면 서슴없이 물에 뛰어들었다. 수심이 깊어 바닥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간혹 말풀이 종아리에 척 감기면 섬뜩했으나 개의치 않고 이 좌대 저 좌대 사이를 듀공처럼 천천히 헤엄치며 퍼져나가는 파문을 바라보기도 하다가 좌대에 누워 일광욕을 하면서 저수지의 고요한 평온을 즐겼다.
     
    언제 다시 또 고삼과 붕어낚시 얘기를 할 수 있을까. 견지나 루어나 보트나 계류낚시는 외도지만 난봉꾼이 조강지처를 찾듯 결국 연안 정통 붕어낚시로 끝을 보게 된다거나, 어느 틈엔가 유동찌 채비가 대세가 되었다던가, 일본식 떡붕어 띄울낚시도 토종 붕어 바닥낚시처럼 한 방식으로 인정된다거나, 말라붙어 쿰쿰한 냄새 풍기는 손바닥의 떡밥을 때 밀 듯 긁어내며 2m짜리 찌를 똥구멍까지 밀어올리던 충주호의 전설적인 붕어 밤낚시가 다시는 도래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과, 자기 연민에 빠져 연상이었던 첫사랑 그녀도 틀림없이 연모의 정이 있었을 거라고 과거를 이상화해봤자 허망한 얘기들 말이다. 다만 희붐하다가 마침내 아스라히 사라질 비정한 기억에게 맡기지 않고 지금보다 시간이 더 흘러 망각 탓에 혹시나 있을지도 모를 더 이상의 수식과 윤색을 막기 위해 이 정도 기록해 두는 것도 나쁠 성싶지 않다.   
     
     
     
     
     
    ty200.jpg
    고삼저수지(사진 출처:네이버 블로그)
     
     
    10397895708.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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