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근대화를 해서 돈을 버는게 아니라 돈이 있어야 근대화를 할 수 있습니다. </p> <p>일본은 임진왜란 전부터 근대화를 위한 조건, 즉 자본의 축적을 만들어 갔습니다. </p> <p>계기는 총의 수입입니다. </p> <p> </p> <p>'도쿠가와 이에야스(대망)'라는 장편 소설에 보면 초장부터 일본 봉건 영주의 군대는 총을 들고 싸웁니다. </p> <p>오다 노부나가를 비롯한 지역 영주들이 유럽(주로 포르투갈)에서 온 무역상으로부터 총과 탄약을 사들이면서 </p> <p>자기 군대를 총으로 무장시키고 주변 영지들을 하나씩 침략하면서 전국시대를 뒤흔듭니다. </p> <p>총을 가진 영주들이 총이 없는 영지를 손쉽게 장악하면서 삽시간에 일본 열도가 통일됩니다. </p> <p>당시 일본은 총과 탄약을 만들 기술이 없었습니다. 전부 유럽에서 온 상인들에게 산 겁니다. </p> <p> <br></p> <p>여기서 하나 궁금한게 생기죠.</p> <p>도대체 영지가 그리 넓지도 않은 일본의 봉건 영주들이 어떻게 총과 탄약을 살 돈을 마련했을까요? </p> <p>그당시 일본에는 유럽 귀족들이 탐낼만한 특산품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p> <p>중소규모의 지역 영주들에게 금은보화가 많았던 것도 아닌데. </p> <p>반대로 유럽 상인들이 일본에 가려면 목숨을 걸고 유라시아 대륙의 반대쪽 끄트머리까지 수개월의 항해를 해서 가야했는데</p> <p>그들은 일본 영주들에게 총과 탄약을 넘기고 뭘 받아서 돌아갔을까요? </p> <p>사실 그들의 총기 매매에는 끔찍한 반대급부가 있었고 이런 어두운 역사는 당연히 일본 작가가 쓴 소설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p> <p> </p> <p>역사적 진실은 일본 영주들이 자기 영지의 백성들을 총, 탄약과 교환했다는 겁니다. </p> <p>일본의 이 악명높은 노예 사냥과 매매는 15세기에 시작하여 20세기 초까지 지칠 줄 모르고 확대, 지속되며 </p> <p>그 판매수익은 대부분 군자금으로 쓰입니다. </p> <p>따라서 오다 노부나가가 갑자기 두각을 나타내고 주요 지역을 선점할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전술이나 용인술에 뛰어나서가 아닙니다.</p> <p>그당시 막 시작된 인신매매, 노예무역이라는 반인륜적인 짓거리를 경쟁자들보다 좀더 효율적으로 했던 것뿐입니다. </p> <p> <br></p> <p>일본 영주들은 그렇게 수입한 총탄으로 자기 영지를 넓히고, 다시 그 영지의 농민들을 잡아 노예로 팔고, </p> <p>농산물의 90% 가량을 세금으로 수탈해서 곳간을 채웠습니다. </p> <p>열도 통일 이후에는 임진왜란을 일으켜 조선에서 도자기 장인들을 잡아가서 도자기를 구워 유럽 귀족들에게 팔았고, </p> <p>그렇게 자국민과 도자기를 팔아서 번 돈이 쌓이면서 근대화에 필요한 자금이 됩니다. </p> <p>그러니까 메이지 유신은 그당시 일본 엘리트들의 의식이 유달리 깨어서 일어난 게 아니라 </p> <p>그만한 자본이 축적되면서 자연스럽게 발화한거죠. </p> <p>사회과학의 용어로 표현하자면, 물적토대가 의식을 변화시킨 겁니다. </p> <p> </p> <p>우리 역사로 돌아와보면 </p> <p>조선 시대의 엘리트들도 명나라, 청나라와 교섭하면서 근대화의 필요성은 늘 느껴왔었지만 </p> <p>조선의 중앙정부는 외국의 선진 문물을 수입해서 우리 걸로 응용하고 만들어 낼 돈이 없었습니다. </p> <p>임진왜란, 병자호란 이후에라도 조선이 정신을 차렸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p> <p>그런 면에서 조선 역사에서 가장 안타까운 장면은 효종 시절 대동법의 좌절입니다. </p> <p>효종 때 충청도 사람인 김육의 건의를 받아들여 충청도에서만 잠깐 대동법을 시행했을 뿐인데도,</p> <p>세수 증대 효과가 엄청났었고 충청도 백성들의 삶은 더 풍족했졌습니다. </p> <p>왜냐하면 이 대동법의 요지는 백성들이 낸 세금을 중간에서 가로채는 지방 관리들과 지주 양반들의 몫을 줄이는 거였으니까요. </p> <p>효종은 세금이 순조롭게 걷히자 언젠가는 군대를 일으켜서 요동을 공격할 생각까지 했었죠. </p> <p> <br></p> <p>하지만 전국의 땅 가진 양반들이 똘똘 뭉쳐서 이러한 조세 개혁에 격렬한 저항을 했고, </p> <p>결국 대동법이 껍데기만 남은채 유명무실해지면서 조선의 조정은 근대화에 필요한 돈을 끝끝내 가질수 없었습니다. </p> <p>조선 역사는 이후에도 300년 가까이 이어지지만 대동법이 좌절된 순간 거기서 끝난거나 마찬가지입니다.</p> <p>영조, 정조 시절에 뭔가 변화를 시도해보려는 시늉을 하긴 했었지만 뚜렷한 성과는 없었죠. </p> <p>그때라도 조세개혁에 반대하는 대지주 양반들을 처벌하고 대동법을 원래대로 바로 잡았더라면...</p> <p> </p> <p>그랬다면 근대화를 스스로 해낼수 있었고 우리는 식민지도 안 겪었을거고 분단도 없었을겁니다. </p> <p>청나라 말기에 공백지나 다름 없었던 연해주, 만주, 요동 지역까지 다 점령했을 거고 </p> <p>2차대전이라는 우여곡절은 있었겠지만 지금까지 잘 먹고 잘 살았을겁니다. </p> <p>그런 위기를 버텨낼만한 자본과 무력이 있었을 테니까요. </p> <p> <br></p> <p>많이 아쉽죠. 일본과 달리 조선은 근대화에 필요한 자본을 모으지 못했다는 것.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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