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 ceo시군요. 어쩐지 고객들 니드에 기민하게 대응 하더라니....대한민국에서 그 까탈스럽기 짝이 없는 삼, 사십대 아줌마들 상대로 서비스업 하셨으면 인정!
한 줄 요약: 역시 가세가 기울어 조낸 어렵게 공부해서 체육특기생이 설대 갔다. 유학 준비하며 강사로 돈 벌다 아예 그 길로 나가 대박 터트림
지회장, 파주시 축구협회 회장을 역임했고, 2003년 파주미래발전연구소를 설립, 파주의 미래발전을 위한 다방면의 연구도 이어갔다. 2007년 중국 샹판대 객좌교수, 2011년 고려대학교 뇌공학연구소 연구교수를 역임했으며, 중국국립우한대학교 객좌교수를 역임하고 있다.
2004년 참여정부 대통령 직속 동북아시대위원회 자문위원으로 활동했다. 2004년
열린우리당에 영입인재 케이스로 입당했다. 입당과 동시에 부대변인을 맡으면서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파주 지역 출마를 선언했다. 당내 경선에서 처음에는 2위로 밀려나면서 출마가 좌절되는 것처럼 보였지만, 1위로 통과한 당내 후보가 선거법 위반이 걸리면서 공천이 취소된 덕분에 출마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한나라당 이재창 후보에 밀려 2위로 낙선했다.(득표율 39.53%)
그 뒤 박정어학원 원장으로 계속 재직하면서 열린우리당 정책위원회 부의장, 2007년 대선에서는 정동영 캠프의 사이버정책팀장으로 활동했다.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도 출마하려 했으나
윤후덕에게 밀리면서 출마는 하지 못했다. 2011년에는 민주당 교육복지특별위원회 위원장과 정책위원회 부의장을 역임했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파주을 지역구에 무소속으로 다시 출마했으나
새누리당 황진하 후보에 밀려 낙선했다. 당시 민주통합당 후보로 공천이 확정되었지만, 공천확정 3시간만에 파주을 선거구가 야권연대지역으로 결정되면서 일방적으로 공천이 취소되었다. 탈당 후 무소속으로 출마, 이후 공정한 경선을 통해 선거일 하루 전인 4월 10일 다시 야권단일후보로 선출되었지만 투표용지가 이미 인쇄되는 등 사표를 방지하지 못하면서 낙선했다.(당선자와의 표차는 4,980표, 무효표는 6,549표) 이후 계속해서 2012년부터 파주을 지역위원장을 역임해왔으며, 중앙당 국제위원장, 원외지역위원장협의회 협의회장, 남북교류협력특별위원회 부위원장 등의 정치활동을 이어갔다.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
파주시 을 선거구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출마, 47.1%를 득표해 5,713표차로 새누리당 사무총장인 황진하 후보를 꺾고 드디어 초선의원으로
당선되었다. 참고로 박정어학원을 운영한 CEO답게 당시 신고한 재산이 무려 237억 9,138만원.
더민주도 부자의원이 나오는 시대가 되었다, 박정이 재산 1위도 아니다! 2016년 5월 8일에는 원내부대표로 선출되어 당의 원내지도부에 입성하였다.
20대 국회의 첫번째 법안을 대표발의했다.
개성공단을 대체하는 '파주평화경제특구법'. 공동으로 발의한 의원들은
박영선,
송영길,
정동영,
박지원 의원 등 중진 그룹을 비롯
오제세,
이찬열,
조정식,
박광온,
신경민,
노웅래,
소병훈,
황희,
한정애,
박찬대 의원 등이 있었으며,
파주시 갑의
윤후덕 의원 역시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