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font size="2">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지만, 지금으로부터 십년 전.</font></div> <div><font size="2"><br></font></div> <div><font size="2">그러니까 내나이가 스물셋, 넷 되던 그 시기는 내 인생의 암흑기였다.</font></div> <div><font size="2"><br></font></div> <div><font size="2">사람의 인생이 백년이라고 치면, 백년 동안에 만날 나쁜 인간들을 1년이라는 시간 안에 한꺼번에 몰아쳐 만났다고 할까.</font></div> <div><font size="2"><br></font></div> <div><font size="2">사기, 이간질, 배신, 구설수. 등등.</font></div> <div><font size="2"><br></font></div> <div><font size="2">사람들의 관계에 치여 쓴맛을 참 여러 번 봤다.</font></div> <div><font size="2"><br></font></div> <div><font size="2">결국 참을 수 없는 분노에 사람들과 치고받고 싸워서 경찰서도 들락거렸고.</font></div> <div><font size="2"><br></font></div> <div><font size="2">예술을 전공하였으나 정서가 불안해지자 작품활동이 전혀 되지 않았다.</font></div> <div><font size="2"><br></font></div> <div><font size="2">늦어지는 졸업 탓에 부모님은 부모님대로 성화시고.</font></div> <div><font size="2"><br></font></div> <div><font size="2">그쯤되니 그냥 사람이란 대상이 모두 두려워졌다.</font></div> <div><font size="2"><br></font></div> <div><font size="2">길가다 마주치는 고양이나 참새를 빼놓고 마주치는 인간은 다 부담스러운 존재였다.</font></div> <div><font size="2"><br></font></div> <div><font size="2">길을 걷다 아파트가 보이면 떨어져 죽는 생각을 하고,</font></div> <div><font size="2"><br></font></div> <div><font size="2">달리는 자동차를 보면 내가 치어서 죽는 상상을 했다.</font></div> <div><font size="2"><br></font></div> <div><font size="2">자려고 누우면 잠도 잘 안 오고. 어쩌다 잠이 들면 꿈을 계속 꾸었는데 그 꿈도 매우 현실적이어서 현실과 꿈을 구분하기가 힘들 정도였다.</font></div> <div><font size="2"><br></font></div> <div><font size="2">지금 생각해보면 우울증이 심했던 것 같다.</font></div> <div><font size="2"> </font></div> <div><font size="2"><br></font></div> <div><font size="2">그런 날들이 꽤 여러달 반복되었을 무렵.</font></div> <div><font size="2"><br></font></div> <div><font size="2">지인을 만나서 길을 걷다가 우연히 점집 골목을 지나치게 되었다.</font></div> <div><font size="2"><br></font></div> <div><font size="2">지인은 평상시에 그런 쪽(무속신앙)에 관심이 많은터라 점을 보자고 했다.</font></div> <div><font size="2"><br></font></div> <div><font size="2">그 당시 지인은 꽤 오래 만나는 남자친구가 있었는데 사이가 좋지 않아 고민이었다.</font></div> <div><font size="2"><br></font></div> <div><font size="2">매사에 의욕이 없는 나는, 점은 너 혼자 봐라 나는 꿔다논 보릿자루처럼 그냥 있겠다고 했다.</font></div> <div><font size="2"><br></font></div> <div><font size="2">점집은 옛날 일본식 상가 건물을 그대로 고쳐 쓰고 있었다.</font></div> <div><font size="2"><br></font></div> <div><font size="2">그곳은 역전 앞, 점집 골목으로 대부분은 점집들의 형태가 비슷비슷했다.</font></div> <div><font size="2"> </font></div> <div><font size="2"><br></font></div> <div><font size="2">미닫이 문을 열고 들어가면 바로 신당이 보였는데, 주인이 없었다.</font></div> <div><font size="2"><br></font></div> <div><font size="2">날이 아닌가 싶어서 그냥 나오자고 했는데 지인은 한사코 기다리자고 했다.</font></div> <div><font size="2"><br></font></div> <div><font size="2">주인도 없는 신당에서 무려 30분이 넘게 기다렸다.</font></div> <div><font size="2"><br></font></div> <div><font size="2">더는 기다리기 지루하고 또 우울한 마음이 도져서 먼저 가겠노라고 주섬주섬 가방을 챙겨서 일어났다.</font></div> <div><font size="2"><br></font></div> <div><font size="2">지인은 망설였으나 기다린 시간이 아쉬웠는지 꼭 점을 보고 가겠다는 거다.</font></div> <div><font size="2"><br></font></div> <div><font size="2">알겠다고 인사를 나누고 점집을 나서서 한 30미터 걸었을까.</font></div> <div><font size="2"><br></font></div> <div><font size="2">저기 먼 곳에서 한복을 차려입고, 정갈하게 쪽진 머리를 한 중년 아줌마가 걸어오고 있었다.</font></div> <div><font size="2"><br></font></div> <div><font size="2">차림새가 평범한 차림새가 아니라서 아- 저 아줌마 보통사람은 아니구나- 하는 느낌이 났다.</font></div> <div><font size="2"><br></font></div> <div><font size="2">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성큼성큼 걸어 지나치려는 순간</font></div> <div><font size="2"><br></font></div> <div><font size="2">중년여인이 내 손목을 낚아채더니,</font></div> <div><font size="2"><br></font></div> <div><font size="2">" 왜, 조금만 더 기다리지 벌써 기어 나왔노. " </font></div> <div><font size="2"><br></font></div> <div><font size="2">팔목을 잡고 왔던 길로 다시 끌고 가는 것이다.</font></div> <div><font size="2"><br></font></div> <div><font size="2">사실, 끌려가는 동안에 이 아줌마가 도를 아십니까나, 다단계 같은 귀찮은 사람이 아닐까 머리가 복잡했으나 왔던 점집으로 밀어넣길래 이건 뭔가 싶었다.</font></div> <div><font size="2"><br></font></div> <div><font size="2">그 당시에는 가정용 씨씨티비가 흔한 것도 아니어서 꽤 놀랬다.</font></div> <div><font size="2"><br></font></div> <div><font size="2">" 아주머니, 혹시 다른곳에서 씨씨티비로 보고 계셨어요? "</font></div> <div><font size="2"><br></font></div> <div><font size="2">지인이 여러차레 물어봤으나 썩은 미소를 날리며,</font></div> <div><font size="2"><br></font></div> <div><font size="2">" 내 장바구니 안 보이나. 장보다 쌔빠지게 뛰어온 거 안 보이나. 늦었으면 못 볼 뻔 했네. "</font></div> <div><font size="2"><br></font></div> <div><font size="2">실제로 아줌마가 내려놓은 장바구니 안에는 대파며 사과며 뭐가 많았다.</font></div> <div><font size="2"><br></font></div> <div><font size="2">지인은 기다린 보람이 있다며 기분이 업되어서 연애가 어쩌고 결혼이 어쩌고 쫑알댔다.</font></div> <div><font size="2"><br></font></div> <div><font size="2">그런데 아주머니는 조용히 향에 불을 켜더니,</font></div> <div><font size="2"><br></font></div> <div><font size="2">" 오늘은 너 말고 니 뒤에 가시내 이야기나 듣자 " 며 나를 가리켰다.</font></div> <div><font size="2"><br></font></div> <div><font size="2">그러더니 작은 소반 같은 걸 내 앞에 끌어다놓고 마주 앉았다.</font></div> <div><font size="2"><br></font></div> <div><font size="2">나는 아무 의욕이 없었다. 예를 들자면, 길을 걷다가 아무 일면식이 없는 사람이 내 뺨을 찰지게 때리고 지나가도 아- 내가 한 대 맞았구나- 하고 다시 갈길 걸어가는 마네킹처럼. </font></div> <div><font size="2"><br></font></div> <div><font size="2">그 때 내 상태가 그랬다.</font></div> <div><font size="2"><br></font></div> <div><font size="2">좀처럼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 몰라서 그냥 가만히 있었다.</font></div> <div><font size="2"><br></font></div> <div><font size="2">옆에서 지인이 무슨 말이라도 해보라고 옆구리를 찔러도 딱히 생각나는 말이 없었다.</font></div> <div><font size="2"><br></font></div> <div><font size="2">아줌마가 나를 유심히 보더니 나지막한 음성으로,</font></div> <div><font size="2"><br></font></div> <div><font size="2">" 그리 죽고 싶나. "</font></div> <div><font size="2"><br></font></div> <div><font size="2">경상도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해서(이 지역은 전라도), 지인이 뭐라고요? 되물었더니,</font></div> <div><font size="2"><br></font></div> <div><font size="2">" 아니~ 이 처자는 살고 싶은 마음이 개미 눈꼽만큼도 없잖아. 친구 아니야? "</font></div> <div><font size="2"><br></font></div> <div><font size="2">지인 역시 내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설마 내가 죽을만큼 괴로워 했을 거란 생각은 못했다고 했다.</font></div> <div><font size="2"><br></font></div> <div><font size="2">나는 지극히 외강내유형인지라 고민이 생겨도 내색을 안 하는 타입이기 때문이다.</font></div> <div><font size="2"> </font></div> <div><font size="2">그런데 점쟁이 아줌마가 해준 이야기를 듣고나서 나는 오열했다.</font></div> <div><font size="2"><br></font></div> <div><font size="2"><br></font></div> <div><font size="2">" 내가 기도드리러 산에 갈 때가 됐거든.</font></div> <div><font size="2"><br></font></div> <div><font size="2"> 그래서 산에 갈 채비하느라고 한참 시장에서 장보고 있었는데, 아 느그 할머니가 살쾡이 같은 눈을 하고 날 보는기라.</font></div> <div><font size="2"><br></font></div> <div><font size="2"> 사과를 하나 집어들면 사과 옆에서 째리보고.</font></div> <div><font size="2"><br></font></div> <div><font size="2"> 곶감을 집어 들면 곶감 옆에서 째리보고. </font></div> <div><font size="2"><br></font></div> <div><font size="2"> 얼른 가라고 등 떠밀어서 진짜 가랭이 찢어지게 뛰왔다. </font></div> <div><font size="2"><br></font></div> <div><font size="2"> 너거 할머니가 니 걱정 많~이 한다 "</font></div> <div><font size="2"><br></font></div> <div><font size="2"><br></font></div> <div><font size="2">.......</font></div> <div><font size="2"><br></font></div> <div><font size="2"><br></font></div> <div><font size="2">그땐 할머니가 돌아가신지 2년이 채 되지 않을 무렵이었다.</font></div> <div><font size="2"><br></font></div> <div><font size="2">어렸을 때부터 할머니 품에서 자랐기 때문에 사이가 각별했다.</font></div> <div><font size="2"><br></font></div> <div><font size="2">너무 연로하신 탓에 자연사로 돌아가셨기에 사람들은 할머니의 죽음을 두고 호상이다고 위로하였으나 사람의 죽음을 두고 잘죽었다 논하는 것이 나는 분했다.</font></div> <div><font size="2"><br></font></div> <div><font size="2">하지만 슬픔은 그 때 뿐이었고, 나는 나대로 대학생활을 하느라 할머니를 잃은 슬픔은 곧 잊고 살았었다.</font></div> <div><font size="2"> </font></div> <div><font size="2"><br></font></div> <div><font size="2">아무 생각이 없다가, 할머니 이야기가 나오자 눈물이 삐질삐질 밀려나왔다.</font></div> <div><font size="2"><br></font></div> <div><font size="2">처음에는 뭔가 서러워서 흑흑거렸는데 나중에는 감당이 안 될 만큼 꺽꺽거리며 울었다. </font></div> <div><font size="2"><br></font></div> <div><font size="2">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의 나는 정말로 정말로 힘들었는데 주변인은 나의 힘듦을 알아주지 않았고, 알 수도 없었다.</font></div> <div><font size="2"><br></font></div> <div><font size="2">살아있는 사람들도 몰라주는 나의 힘듬을 돌아가신 할머니가 알고 계신다는 생각에 가슴 한구석이 더더욱 서러웠다.</font></div> <div><font size="2"> </font></div> <div><font size="2"><br></font></div> <div><font size="2">" 그래가지고 내가 쌔빠지게 걸어왔는데, 할매가 니 뒤따라서 걷고 있대.</font></div> <div><font size="2"><br></font></div> <div><font size="2"> 니 뒤에서 울면서 따라 걷는 거야. 그래서 내가 너를 알아봤지.</font></div> <div><font size="2"><br></font></div> <div><font size="2"> 허리는 구부정해가지고 .. 허리 ㄱ자로 굽은거 느그 할매 맞제? "</font></div> <div><font size="2"> </font></div> <div><font size="2"><br></font></div> <div><font size="2">점쟁이 아줌마는 허리를 구부리며 지팡이짚는 흉내를 냈다.</font></div> <div><font size="2"><br></font></div> <div><font size="2">우리 할머니가 맞았다. 우리 할머니는 나이 오십에 산에 땔감 주우러 갔다가 산비탈에서 구른 후에 점점 허리가 굽었다고 했다.</font></div> <div><font size="2"> </font></div> <div><font size="2"><br></font></div> <div><font size="2">점쟁이 아줌마는 내 손을 감싸 쥐면서,</font></div> <div><font size="2"><br></font></div> <div><font size="2">" 힘든 때는 누구나 온다. 보니까 너는 마음이 다른 누구보다 더 여리고 깨끗하네.</font></div> <div><font size="2"><br></font></div> <div><font size="2"> 순진하니까 상처도 잘 받는 거야. 할머니가 니 걱정돼서 잠을 못 잔다 하잖아.</font></div> <div><font size="2"><br></font></div> <div><font size="2"> 힘들땐 죽을 생각부터 할 게 아니라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을 이겨먹을 생각을 해야 산다. "</font></div> <div><font size="2"> </font></div> <div><font size="2"><br></font></div> <div><font size="2">시간이 너무 지난 이야기라, 기억을 더듬어 쓴 것이지만 아줌마는 아무튼 저렇게 이야기를 하며 나를 달랬다.</font></div> <div><font size="2"><br></font></div> <div><font size="2">나는 할머니가 너무 궁금하고 걱정이 되어서 정말 할머니가 보이냐고 할머니는 왜 천국에 가지않고 눈에 보이는 거냐고 물어봤다.</font></div> <div><font size="2"><br></font></div> <div><font size="2">왜냐면 우리집안은 사돈에 팔촌까지 크리스챤이기 때문이다.</font></div> <div><font size="2"><br></font></div> <div><font size="2">특히 우리 할머니는 돌아가시기 전까지 교회 권사님까지 하셨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font></div> <div><font size="2"><br></font></div> <div><font size="2">제사는 지내본 적도 없고 절 근처에는 가본 적도 없는데... 유일하게 나혼자만 불교인지라 집안에서 상또라이 취급을 받는 때도 있었는데.</font></div> <div><font size="2"><br></font></div> <div><font size="2">교회식으로 말하자면 애진즉 천당 가셔서 영면하셔야 할 분이 왜...?</font></div> <div><font size="2"><br></font></div> <div><font size="2">점집 아줌마는 썩소를 지으시며 " 나중에 죽으면 느그 할매한테 물어 본나 " 하셨다.</font></div> <div><font size="2"><br></font></div> <div><font size="2"> </font></div> <div><font size="2">아무튼. 할머니가 손녀 걱정에 죽어서도 눈물을 흘린다는 이야기에 마음이 편치가 않았다.</font></div> <div><font size="2"><br></font></div> <div><font size="2">복채를 드리려고 지인에게 눈치껏 얼마냐 물었더니 점집 아줌마는 됐다고, 다음에 둘이서 다시 놀러오라고 복채 받는 것을 한사코 거부했다.</font></div> <div><font size="2"> </font></div> <div><font size="2"><br></font></div> <div><font size="2">그러니까 나는 생전 처음 점보는 곳에 가서 처음부터 끝가지 울기만 하다 나온 거다.</font></div> <div><font size="2"><br></font></div> <div><font size="2">너무 울어서 지인의 부축을 받다싶이 해서 나왔다.</font></div> <div><font size="2"><br></font></div> <div><font size="2">어떤 믿음에서인지는 몰라도, 그 이후로 나는 조금씩 변했다.</font></div> <div><font size="2"><br></font></div> <div><font size="2">할머니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 하나로 위로가 되었기 때문이다.</font></div> <div><font size="2"><br></font></div> <div><font size="2">학교를 다시 복학했고. 옆에서 누가 뭐라하든 정신승리로 버텨냈다.</font></div> <div><font size="2"><br></font></div> <div><font size="2">잡생각을 없애기 위해서 알바를 두탕씩 뛰었으며 일이 끝나면 사람들이 북적북적한 호프집이나 까페에서 꼭 사람들을 만나고 돌아갔고, 나중에는 집에 혼자 들어가는 게 싫어서 그 지인과 살림을 합쳐 함께 살았다.</font></div> <div><font size="2"><br></font></div> <div><font size="2">그러면서 나는 예전의 김푼수로 다시 돌아갔다.</font></div> <div><font size="2"> </font></div> <div><font size="2"><br></font></div> <div><font size="2">가끔 그날의 그 점집이 생각나서, 오년 후엔가? 남자친구와 함께 찾아갔는데</font></div> <div><font size="2"><br></font></div> <div><font size="2">그 거리가 싹 재개발이 되어서 새 건물이 들어서고 그 점집 역시 없어져 있더라.</font></div> <div><font size="2"> </font></div> <div><font size="2"><br></font></div> <div><font size="2">그 아줌마가 무속인이든 뭐든간에 힘들어 하는 어린 아가씨에게 시간을 투자해서 힘내라 응원해 주어서 참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font></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