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BED src=http://pds24.egloos.com/pds/201206/23/71/06_My_Machine.swf wmode="transparent"> <P><BR><BR><BR>오랜 시간 한 여자를 좋아하고 있었다.<BR>오랜 시간 동안 한 편의점에서 일하고 있는 여자.<BR><BR>얼핏 보면 수수해보지만 그렇지도 않은 그런 여자.<BR><BR>그 여자는 아름다우면서도 꾸밈이 없었다.<BR>꾸밈이 없는 것이 아니라 포기처럼 보이는 날도 있었다.<BR><BR>여자로서의 포기. 어쩌면 그게 더 맞는 생각일지도 모르는 것이었다.<BR><BR>때로는 편의점 안으로 찾아들어 물건을 샀다.<BR>담배, 바나나 우유, 주스.<BR><BR>나름 손님임에도 이 여자는 얼굴을 한번 쳐다보는 일이 없었다.<BR>여자는 죄지은 사람처럼 고개를 수그리고 개미 같은 목소리를 냈다.<BR><BR>한번은 편지를 써서 마음을 전해볼까 싶기도 했지만<BR>편지를 쓰는 것까지는 쉬워도 전해주기는 어려웠다.<BR><BR>결국, 나같은 사람이 된다는 거 였나보다 스토커.<BR><BR>나는 여자가 편의점 일을 마치기를 기다렸다가 뒤를 밟았다.<BR>여자가 혹여 뒤를 돌아볼까 노심초사였지만 여자는 길을 걸을<BR>때에도 곧잘 땅만 쳐다보며 걷고는 했다.<BR><BR>그녀의 집을 알아내는 것은 너무도 손쉬운 일이었다.<BR><BR>나는 다음날 열쇠수리공을 불러 집 문을 열고 그녀의 방을 들어가 보았다.<BR><BR>그녀의 방은 뭐랄까. 향이 없었다. 여자들의 냄새.<BR>그리고 또 특별히 뭐라 콕 찍어 설명이 힘들었지만,<BR>이곳은 여자의 방이라는 뉘앙스가 없었다.<BR><BR>꼭 여자들이라고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이 방에는 그 흔한 화분조차 하나 보이지 않았다.<BR><BR>커튼은 민무늬의 카키색 천 쪼가리가 볼품이 없었고,<BR>침대와 이불도 순 카키색 옅은 무늬가 들어간 재미없는 물건들뿐이었다.<BR><BR>냉장고 안에는 요리할 수 있는 식재료 따윈 들어있지 않았다.<BR>물, 음료수 하나, 언제부터 얼어붙어 있는지 가늠이 안 되는 피자 한 조각.<BR><BR>TV는 존재하지 않고, 17인치로 보이는 작아 보이는 모니터와<BR>싸구려 컴퓨터가 책상도 아닌 조막만 한 작은 테이블 위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BR><BR>옷장 속은 여자의 옷장이란 느낌을 풍기며 많은 옷이 들어있었지만<BR>오랜 시간 잠겨있던 옷장의 향이 자욱하게 풍겨왔다.<BR><BR>확실히 내가 그녀를 스토킹하며 봐왔던 옷은 몇 벌 보이지 않았다.<BR><BR>방을 둘러보다 졸업앨범을 찾아 앨범을 뒤적이며 그녀를 찾았다.<BR>졸업 사진의 고등학생 시절의 얼굴이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아 금방 그녀를 찾아낼 수 있었다.<BR><BR>2008년 졸업생. 이름 정지영.<BR><BR>어릴 적부터 빼어난 미모였다는 것을 알았다. 물론 지금 모습을 보면 예상이 어려워 소스라칠<BR>만한 일도 아니었지만, 조금 의아스러운 건 지금의 모습과 상반되는 사진의 모습이었다.<BR><BR>반의 친구들과 찍은 사진으로 보이는 그녀의 모습은 자신감 있고 밝은 활기찬 고등학생의 모습.<BR><BR>책장에 들어있는 책이 졸업앨범과 몇 권의 소설이 전부였다.<BR>허리춤까지 오는 작은 책장인데도 허전함이 느껴졌다.<BR><BR>컴퓨터를 켜자. 바로 윈도우 화면으로 전환되었다.<BR><BR>겨우 60기가 남짓의 하드디스크 내용물을 살살 뒤져보자<BR>최근의 드라마 몇 편 이외에는 별다른 데이터가 없었다.<BR><BR>게임조차도 하지 않는 여자 같았다.<BR><BR>한참 방을 뒤져보고는 텅텅 비어있는 방의 살풍경이 마치 여자의 삶을 대변하듯 느껴졌다.<BR>스토커로서 주제넘게도 나는 정지영이란 여자를 동정하게 되었다.<BR><BR>방을 좀 더 둘러보다 방의 키를 찾게되어 열쇠집을 찾아가 열쇠를 복사했다.<BR>열쇠를 복사하고 그녀의 방에 다시 열쇠를 돌려 놓으러 가는 길. 길가에서<BR>팔고있는 선인장 화분을 하나 샀다.<BR><BR>여자의 방에 열쇠를 돌려두고, 화분을 올려둘 그럴듯한 장소를 찾았다.<BR>나는 한참을 고민하다 화분을 책장에 얹어두었다. 허전했던 책장이<BR>그나마 공간을 차지하며 약간은 쓸쓸함이 줄은 듯 보였다.<BR><BR>여자가 이 화분을 보고 나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하는 생각이 들며 입가에 웃음이 돌았다.<BR><BR>며칠 뒤 그녀가 출근한 것을 확인하고 다시 그녀의 방을 찾아갔다.<BR>현관에 서서 열쇠를 넣어 돌리니 휙 하고 열쇠가 걸림 없이 돌아갔다.<BR><BR>'조심 좀 하지...'<BR><BR>방에 들어서자 이상하게 방에서 은은한 여자의 향기가 느껴지는 것을 알 수 있었다.<BR>커튼까지 꽁꽁 쳐 두었던 창은 문을 활짝 열고 환기를 해놓은 상태였다.<BR><BR>오늘은 무엇을 해볼까 고민을 하다가 그녀가 읽은 책들을 한번 읽어볼까 생각이 들었다.<BR>개중에는 여자가 편의점 일을 하면서 읽던 책도 있었다. '공중그네' 오래 된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이었다.<BR><BR>한참 동안 엎드려 책을 읽었다.<BR><BR>얼마나 지났을까, 핸드폰에서 알람이 울리며 내가 방을 떠나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었다.<BR>책을 자리에 돌려놓고 현관으로 향하는 거실에서 난 얼마 전 사뒀던 화분이 현관 신발장<BR>위로 자리를 옮긴 것을 보았다.<BR><BR>'버리진 않았네?'<BR><BR>여자가 눈치채면 화분을 가져다 버릴 줄로만 알았다.<BR>화분에 다가서니 포스트잇 종이에 정성껏 쓴 듯 보이는 글씨가 보였다.<BR><BR>'당신은 누구 신가요?'<BR><BR>"뭐야. 이 여자 스토커한테 누군지 묻는 거야?"<BR><BR>나는 별 희한한 여자를 좋아하게 되었다는 생각을 하며 신발을 신었다.<BR>신발을 신고 현관을 열려고 하는데 생각지도 안았던 현관문에<BR>포스트잇이 한 장 더 붙어있었다.<BR><BR>'신고하지 않을게요. 또 오세요.'<BR><BR><BR><BR><BR><BR>-1부 끝-<BR></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