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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humorbest_528939
    작성자 : 숏다리코뿔소
    추천 : 28
    조회수 : 3009
    IP : 119.195.***.230
    댓글 : 8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2/09/17 07:16:21
    원글작성시간 : 2012/09/16 22:35:53
    http://todayhumor.com/?humorbest_528939 모바일
    배경음) 자살의 명소 -1부-




    서해안의 외딴 섬. 제부도 항구에서부터 다섯 시간가량 배를 타야 들어올 수 있는 이곳은 온천여관이 즐비한 관광지였다.

    차로 두 시간이면 한 바퀴를 다 돌 수 있을 정도의 이 섬은 관광객들의 발길이 잦은 곳으로 나는 동생 정현이와 부모님에게

    여관을 물려받아 이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았다.

     

    섬이어서 인지 늦여름에도 바람이 많아 선선했다. 슬슬 가을에 접어들까 싶었다만 아직 여름의 기운이 맴도는 햇살에 등짝이

    따끔거려 살살 짜증을 불러일으키곤 했다. 거리에 떨어진 낙엽들이나 슬슬 쓸며 시간이나 죽일 셈이었으나 벌써 누군가 한번

    쓸고 지나갔는지 여관 앞거리는 담배꽁초 하나 없이 말끔했다.

     

    끝이 다 상해 키가 작아진 대빗자루를 인도 한편에 대충 던져두고 그늘 밑에 기어들어가 걸터앉았다. 담배에 불을 끄스르며 매일 보는

    마을의 전경을 둘러보았다. 우아하게 꾸며놓은 조경이나 건물의 미려한 대리석 미장, 옛 방식의 목재건물들이 어우러지며 장관을

    이루어 놓은 모습들, 과연 관광의 명소다운 일품의 관경이다.

     

    담배가 다 타들어가 손끝에 뜨끈뜨끈한 열기가 느껴졌다. 담배 머리를 바닥에 비벼끄며 자리를 털고 일어서는데

    저만치서 젊은 연인이 팔짱을 한 체 걷고 있었다. 주변 크고 작은 나무들의 풍경과 어우러지며 괜스레 바라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미소를 머금게 하는 기분 좋은 한 쌍이었다.

     

    연인들은 우두커니 서 있던 내게 다가오며 물었다.


    “아저씨, 여기 근처에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정자가 있다고 들었는데, 혹시 아세요?”


    “아, 잘 모르겠네요. 죄송합니다.”

    나는 최대한 좋은 사람의 모습을 가장하며 너그러운 인상을 지어 보였다. 연인은 예의 있게 고개를 꾸벅하고 숙이곤 스스로 길을

    찾아보려는 듯 주위를 둘러보며 나아갔다.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정자. 그런 곳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인근에서 그곳을 정자라거나

    휴게소처럼 듣기 좋게 부르는 사람 따위는 없었다. 이 마을의 사람들은 그곳을 일컬어 보통 ‘자살바위’라 부르고 있었다.

     

    바닥을 끄는 연인들의 신발 소리가 가엽게 느껴져 한동안 눈을 땔 수가 없었다. 여인의 배가 볼록한 옆모습을 바라보다 한숨이 뱉었다.

    그들은 내가 보기에 너무 어리기만 한 연인들이었다. 직업상의 직감이라고 해야 할까? 저 가엾은 연인은 얼마 지나지 않아 유명을

    달리할 것이었다. 사실 직감이라는 말도 바보 같았다.

     

    우리 마을 관광객 대부분은 생을 마감하러 이곳을 찾아들기 때문이다.

    내가 운영 중인 온천여관 마당에 들어서자 동생 정현이가 “형!” 하며 나를 불러 세웠다. 정현이, 우리는 4년 전부터 이 모텔을 함께

    꾸려나가고 있었다. 정현이는 올해 스물한 살로 겉으로는 재수를 위해 임시적인 차원으로 이곳에 머무르는 중이었으나, 실제론 학문 따위엔

    관심이 없고 진즉 이 생활에 적응한 듯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모텔의 운영은 순조로웠고 나와 정현이의 돈 씀씀이는 벌이에 비해 턱없이 적었다.

     

    우리 형제의 소비욕이 적은 탓도 있었겠지만, 이 섬에는 지출할 수 있는 마땅한 소비공간이 없었다.

    그것이 불행인지 다행인지, 통장의 잔고는 점점 쌓여만 갔고, 우리는 부족할 것이 없었다.

    “형, 나 스마트폰 새로 사야겠는데?”

     

    “왜? 바꾼지 얼마 안 됐잖아?”

     

    “방금 계단에서 떨궜어.”

     

    “아, 조심 좀 하지.”

    정현이가 내민 손 위에 액정이 거미줄 모양으로 이리저리 금이 간 최신형 스마트폰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구매한 지 몇 달 지나지 않았던

    스마트폰이었던 지라 아깝다는 생각이 들며 나도 모르게 표정을 찡그렸다. 정현이는 그런 나의 모습을 보면서도 대수롭지 않다는 듯

    “어차피 수리하는 것보다 새로 사는 게 이득이야.” 라며 자기 합리화를 하고 있었다.

     

    더 이상 궁색한 소리가 하고 싶지 않았던 나는 뻔히 망가져 말을 듣지도 않을 스마트폰을 만져보며 이것저것을 눌러보다가 휙 하고

    정현이에게 내밀었다. 정현이도 그런 내 반응에 조금 무안한 기분이 들었는지 말이 없었다. 잠시 말이 없이 서있는데 뒤에서 자갈이

    바스슥하며 서로를 문데는 소리가 들려왔다. 뒤를 돌아보자 사이좋게 팔짱을 엮은 젊은 연인이 정문을 통해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저희 예약하고 왔는데요.”

    청년이 말을 마치곤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나는 금방 표정을 환히 밝히며 접객을 하는 태도에 들어갔다.

    “정자는 잘 찾으셨어요?”

    연인은 활짝 웃음 지으며 “예.”하고 기분 좋게 대답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정현이가 방 안내를 위해 잰걸음으로 여관에 들어갔다.

    내가 손바닥을 펴 보이며 여관의 현관을 가리키자 청년은 여자친구만을 남겨둔 체 여관마당을 빠져나갔다. 내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바라보자 여자친구로 보이는 여성이 “담배 사온데요.” 라며 웃었다.

    “그럼 먼저 객실에 들어가실까요?”

     

    “아니요. 날씨도 좋은데 여기서 잠깐 기다릴게요.”

     

    “그럼 저기 평상에 올라 계세요. 몸도 불편해 보이시는데.”

     

    “네, 그이 오면 같이 들어갈게요.”

    여관 현관을 들어서며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혼자 남은 여성의 표정이 쓸쓸하게 느껴지는 것은 비단 기분 탓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직감이 어느 정도 맞아 들어간다는 듯 짐가방으로 보이는 검은색 벡팩이 가벼워 보였다. 보통 경험상 저런 가방에 들어있는 물건이란

    속옷 몇 장과 약소한 푼돈, 가족사진, 칼, 알 수 없는 약, 밧줄 등이었다.

    시간이 좀 흘렀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때는 해가 다 저물어 여관마당으론 등을 켜놓지

    않고서는 주변이 시야에 들어오지 않을 법했다. 카운터실을 나서며 정현이에게 물었다.

    “좀 전에 그분들 객실 안내했어?”


    “아니? 형이한거 아니었어?”

    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마당으로 나가 등에 전원을 올렸다. 그러자 아까 낮부터 평상 위에 앉아있던

    여성이 가로로 누운 체 미동이 없었다. 내가 다급히 다가가며 발소리를 내자 여성은 여전히 미동도 안은 체 물어왔다.

    “아저씨.”

     

    “예? 아가씨 괜찮아요?”

     

    “아저씨, 여기 배 몇 시에 떠나요?”

     

    “오늘 아침배로 들어오셨죠?”

     

    “네, 그런데요.”

     

    “오늘은 그 아침 배가 전부에요. 더 이상 없어요.”


    내 이야기가 끝나자 여성은 소리내어 울기 시작했다. 뒤를 돌아보자 정현이가 현관을 붙든체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정현이에게 신호를 보내자, 정현이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드며 어깨를 으쓱하고 들썩였다.

    “아가씨, 잠깐만요.”

    핸드폰을 꺼내 들어 마을의 친구인 영운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가씨 남자친구분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김, 김성헌이요.”

    신호가 몇 번 울리지 않아 영운이가 바로 전화를 받았다.

    “영운이냐?”

     

    “어, 왜?”

     

    “야 오늘 남자하나.”

     

    “어, 있었어. 자살바위. 너네 쪽이야?”

     

    “신분증은?”

     

    “잠깐.”

    영운이가 뭘 뒤적이는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수화기를 시끄럽게 했다. 이곳에서는 불안한 예감은 대부분 적중을 하고는 한다.

    그리고 이번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닐 것이란 생각이 들었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예상이 빗나가길 바라고 있었던 것 같다.

    “김성헌. 스물여섯.”

    수화기 속 영운이의 목소리는 너무 차분했다.




    -1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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