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BED src=http://pds24.egloos.com/pds/201206/23/71/06_My_Machine.swf wmode="transparent"> <P><BR><BR><BR>서해안의 외딴 섬. 제부도 항구에서부터 다섯 시간가량 배를 타야 들어올 수 있는 이곳은 온천여관이 즐비한 관광지였다.</P> <P>차로 두 시간이면 한 바퀴를 다 돌 수 있을 정도의 이 섬은 관광객들의 발길이 잦은 곳으로 나는 동생 정현이와 부모님에게</P> <P>여관을 물려받아 이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았다.</P> <P> </P> <P>섬이어서 인지 늦여름에도 바람이 많아 선선했다. 슬슬 가을에 접어들까 싶었다만 아직 여름의 기운이 맴도는 햇살에 등짝이</P> <P>따끔거려 살살 짜증을 불러일으키곤 했다. 거리에 떨어진 낙엽들이나 슬슬 쓸며 시간이나 죽일 셈이었으나 벌써 누군가 한번</P> <P>쓸고 지나갔는지 여관 앞거리는 담배꽁초 하나 없이 말끔했다.</P> <P> </P> <P>끝이 다 상해 키가 작아진 대빗자루를 인도 한편에 대충 던져두고 그늘 밑에 기어들어가 걸터앉았다. 담배에 불을 끄스르며 매일 보는</P> <P>마을의 전경을 둘러보았다. 우아하게 꾸며놓은 조경이나 건물의 미려한 대리석 미장, 옛 방식의 목재건물들이 어우러지며 장관을</P> <P>이루어 놓은 모습들, 과연 관광의 명소다운 일품의 관경이다.</P> <P> </P> <P>담배가 다 타들어가 손끝에 뜨끈뜨끈한 열기가 느껴졌다. 담배 머리를 바닥에 비벼끄며 자리를 털고 일어서는데</P> <P>저만치서 젊은 연인이 팔짱을 한 체 걷고 있었다. 주변 크고 작은 나무들의 풍경과 어우러지며 괜스레 바라보는</P> <P>사람으로 하여금 미소를 머금게 하는 기분 좋은 한 쌍이었다.</P> <P> </P> <P>연인들은 우두커니 서 있던 내게 다가오며 물었다.</P> <P><BR>“아저씨, 여기 근처에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정자가 있다고 들었는데, 혹시 아세요?”</P><BR> <P>“아, 잘 모르겠네요. 죄송합니다.”<BR><BR>나는 최대한 좋은 사람의 모습을 가장하며 너그러운 인상을 지어 보였다. 연인은 예의 있게 고개를 꾸벅하고 숙이곤 스스로 길을</P> <P>찾아보려는 듯 주위를 둘러보며 나아갔다.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정자. 그런 곳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인근에서 그곳을 정자라거나</P> <P>휴게소처럼 듣기 좋게 부르는 사람 따위는 없었다. 이 마을의 사람들은 그곳을 일컬어 보통 ‘자살바위’라 부르고 있었다.</P> <P> </P> <P>바닥을 끄는 연인들의 신발 소리가 가엽게 느껴져 한동안 눈을 땔 수가 없었다. 여인의 배가 볼록한 옆모습을 바라보다 한숨이 뱉었다.</P> <P>그들은 내가 보기에 너무 어리기만 한 연인들이었다. 직업상의 직감이라고 해야 할까? 저 가엾은 연인은 얼마 지나지 않아 유명을</P> <P>달리할 것이었다. 사실 직감이라는 말도 바보 같았다.</P> <P> </P> <P>우리 마을 관광객 대부분은 생을 마감하러 이곳을 찾아들기 때문이다.<BR><BR>내가 운영 중인 온천여관 마당에 들어서자 동생 정현이가 “형!” 하며 나를 불러 세웠다. 정현이, 우리는 4년 전부터 이 모텔을 함께</P> <P>꾸려나가고 있었다. 정현이는 올해 스물한 살로 겉으로는 재수를 위해 임시적인 차원으로 이곳에 머무르는 중이었으나, 실제론 학문 따위엔</P> <P>관심이 없고 진즉 이 생활에 적응한 듯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모텔의 운영은 순조로웠고 나와 정현이의 돈 씀씀이는 벌이에 비해 턱없이 적었다.</P> <P> </P> <P>우리 형제의 소비욕이 적은 탓도 있었겠지만, 이 섬에는 지출할 수 있는 마땅한 소비공간이 없었다.</P> <P>그것이 불행인지 다행인지, 통장의 잔고는 점점 쌓여만 갔고, 우리는 부족할 것이 없었다.<BR><BR>“형, 나 스마트폰 새로 사야겠는데?”</P> <P> </P> <P>“왜? 바꾼지 얼마 안 됐잖아?”</P> <P> </P> <P>“방금 계단에서 떨궜어.”</P> <P> </P> <P>“아, 조심 좀 하지.”<BR><BR>정현이가 내민 손 위에 액정이 거미줄 모양으로 이리저리 금이 간 최신형 스마트폰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구매한 지 몇 달 지나지 않았던</P> <P>스마트폰이었던 지라 아깝다는 생각이 들며 나도 모르게 표정을 찡그렸다. 정현이는 그런 나의 모습을 보면서도 대수롭지 않다는 듯</P> <P>“어차피 수리하는 것보다 새로 사는 게 이득이야.” 라며 자기 합리화를 하고 있었다.</P> <P> </P> <P>더 이상 궁색한 소리가 하고 싶지 않았던 나는 뻔히 망가져 말을 듣지도 않을 스마트폰을 만져보며 이것저것을 눌러보다가 휙 하고</P> <P>정현이에게 내밀었다. 정현이도 그런 내 반응에 조금 무안한 기분이 들었는지 말이 없었다. 잠시 말이 없이 서있는데 뒤에서 자갈이</P> <P>바스슥하며 서로를 문데는 소리가 들려왔다. 뒤를 돌아보자 사이좋게 팔짱을 엮은 젊은 연인이 정문을 통해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BR><BR>“저희 예약하고 왔는데요.”<BR><BR>청년이 말을 마치곤 눈을 동그랗게 떴다.</P> <P>나는 금방 표정을 환히 밝히며 접객을 하는 태도에 들어갔다.<BR><BR>“정자는 잘 찾으셨어요?”<BR><BR>연인은 활짝 웃음 지으며 “예.”하고 기분 좋게 대답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정현이가 방 안내를 위해 잰걸음으로 여관에 들어갔다.</P> <P>내가 손바닥을 펴 보이며 여관의 현관을 가리키자 청년은 여자친구만을 남겨둔 체 여관마당을 빠져나갔다. 내가 고개를 갸우뚱하며</P> <P>바라보자 여자친구로 보이는 여성이 “담배 사온데요.” 라며 웃었다.<BR><BR>“그럼 먼저 객실에 들어가실까요?”</P> <P> </P> <P>“아니요. 날씨도 좋은데 여기서 잠깐 기다릴게요.”</P> <P> </P> <P>“그럼 저기 평상에 올라 계세요. 몸도 불편해 보이시는데.”</P> <P> </P> <P>“네, 그이 오면 같이 들어갈게요.”<BR><BR>여관 현관을 들어서며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혼자 남은 여성의 표정이 쓸쓸하게 느껴지는 것은 비단 기분 탓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P> <P>내 직감이 어느 정도 맞아 들어간다는 듯 짐가방으로 보이는 검은색 벡팩이 가벼워 보였다. 보통 경험상 저런 가방에 들어있는 물건이란</P> <P>속옷 몇 장과 약소한 푼돈, 가족사진, 칼, 알 수 없는 약, 밧줄 등이었다.<BR><BR>시간이 좀 흘렀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때는 해가 다 저물어 여관마당으론 등을 켜놓지</P> <P>않고서는 주변이 시야에 들어오지 않을 법했다. 카운터실을 나서며 정현이에게 물었다.<BR><BR>“좀 전에 그분들 객실 안내했어?”</P> <P><BR>“아니? 형이한거 아니었어?”<BR><BR>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마당으로 나가 등에 전원을 올렸다. 그러자 아까 낮부터 평상 위에 앉아있던</P> <P>여성이 가로로 누운 체 미동이 없었다. 내가 다급히 다가가며 발소리를 내자 여성은 여전히 미동도 안은 체 물어왔다.<BR><BR>“아저씨.”</P> <P> </P> <P>“예? 아가씨 괜찮아요?”</P> <P> </P> <P>“아저씨, 여기 배 몇 시에 떠나요?”</P> <P> </P> <P>“오늘 아침배로 들어오셨죠?”</P> <P> </P> <P>“네, 그런데요.”</P> <P> </P> <P>“오늘은 그 아침 배가 전부에요. 더 이상 없어요.”</P> <P><BR>내 이야기가 끝나자 여성은 소리내어 울기 시작했다. 뒤를 돌아보자 정현이가 현관을 붙든체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P> <P>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정현이에게 신호를 보내자, 정현이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드며 어깨를 으쓱하고 들썩였다.<BR><BR>“아가씨, 잠깐만요.”<BR><BR>핸드폰을 꺼내 들어 마을의 친구인 영운이에게 전화를 걸었다.<BR><BR>“아가씨 남자친구분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P> <P> </P> <P>“김, 김성헌이요.”<BR><BR>신호가 몇 번 울리지 않아 영운이가 바로 전화를 받았다.<BR><BR>“영운이냐?”</P> <P> </P> <P>“어, 왜?”</P> <P> </P> <P>“야 오늘 남자하나.”</P> <P> </P> <P>“어, 있었어. 자살바위. 너네 쪽이야?”</P> <P> </P> <P>“신분증은?”</P> <P> </P> <P>“잠깐.”<BR><BR>영운이가 뭘 뒤적이는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수화기를 시끄럽게 했다. 이곳에서는 불안한 예감은 대부분 적중을 하고는 한다.</P> <P>그리고 이번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닐 것이란 생각이 들었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예상이 빗나가길 바라고 있었던 것 같다.<BR><BR>“김성헌. 스물여섯.”<BR><BR>수화기 속 영운이의 목소리는 너무 차분했다.<BR><BR><BR></P> <P><BR><BR>-1부 끝-<BR></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