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BED src=http://pds24.egloos.com/pds/201206/23/71/06_My_Machine.swf wmode="transparent"> <P><BR><BR><BR>"아낙의 기백에 올곧은 줄로만 알았던 내 뚝심이 힘없이 부러지는 감을 느꼈다.<BR>그것은 마치 갈대자루가 꺾이듯 허무하고 맥없는 소리를 내는 것 같았다.<BR><BR>이는 본래 나의 정신이 얼마나 얇상하고 볼품 없었는가를 알게하며 가슴을 아리게했다.<BR><BR>아낙의 혀놀림에 베이는 내 정신이 조각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수밖에는 없었다.<BR>아낙은 내가 대답할 때까지는 움직일 생각이 없다는 듯 꼿꼿한 자세로 나를 내려다 보았다.<BR>거적때기 하나 걸치지 않은 여인네의 위상이 칼자루를 찬 무사 나부랭이의 자존심을 무참하게 만든다.<BR><BR>"낭자 옷을 걸치시지요. 제가 무례가 컸습니다."<BR><BR>"소녀가 도깨비가 아니라는 것을 믿어주시겠다는 말씀으로 알겠습니다."<BR><BR>내가 말없이 고개를 떨구자 아낙은 주섬주섬 옷을 걸치기 시작했다.<BR>아낙의 표정에는 안도감도 아닌 성취감도 아닌 거북함과 언짢음이 뒤섞인 우중충한 기운이 맴돌았다.<BR><BR>"..."<BR><BR>"..."<BR><BR>"무사님은 저를 욕보이셨으면서도 뜻을 금방 굽히시는군요. 흔해빠져 발에 치이는 흔한 소인배 양아치들과 진배없습니다."<BR><BR>아낙의 폭언에 대응할 마음이 들지 않았다. 아낙은 이 잠시 잠깐의 시간만으로 나를 뿌리째 흔들었고,<BR>내 뱃속 오장육부까지 꿰듯 예리한 통찰을 보였다. 나는 아낙에게 그저 탄복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BR>깨닫게 됨과 동시에 깊은 패배감을 느꼈다.<BR><BR>"무사님은 그러시면서도 아직 목숨이 아까워 저 강물에 몸을 담그는 것조차 못하실 것입니다.<BR>겉으로는 소녀에게 고개를 떨구시면서도 속으로는 아직 소녀를 완전히 믿고 있지 않으신계지요?"<BR><BR>나는 그 말 또한 맞는다며 고개를 끄덕였다.<BR><BR>"차라리 그 목을 스스로 베셔서 대장부의 기개라도 보이심은 어떠하십니다. 소녀는 무사님에게 겁탈을 당할까<BR>벌거숭이가 되어 강물을 헤집고, 이 늦은 시간 달빛 아래 한참동안 찬바람을 맞으며 떨어야 했습니다."<BR><BR>떨군 고개를 다시 들 용기가 들지 않았다. 고개를 들어 확인하지 않는다 하여도 아낙이 짓고 있을 표정이 생생하게<BR>떠올라 억장을 무너트렸다. 아낙과 내가 진검을 들고 합을 맞췄다면 나는 이미 목이 달아난 체 흙밭을 뒹구는<BR>살덩어리가 되어있었을 것이었다.<BR><BR>천천히 흘러내리는 강물이 야속하기만 했다.<BR><BR>"무사님은 소녀에게 소원을 하나 빚지셨습니다."<BR><BR>아낙은 손을 가슴을 쓸어내리 내리며 자신을 타이르 듯 수차례 숨을 들이 내쉬었다.<BR><BR>"내 약조한바 무엇이든 들어 드리리다. 말씀만 하시오."<BR><BR>"이제 그만 무과급제에 대해선 잊으시고 속세를 떠나시지요."<BR><BR>"무슨..."<BR><BR>아낙은 가슴팍을 움켜쥐었다. 아낙의 눈가에 왁칵 눈물이 차올라 그렁그렁한 눈동자로 내게 호소하자<BR>강물이 불어나며 배가 넘실거렸다. 배가 요동을 치기 시작하는데도 이상스럽게 나도 아낙도 몸이<BR>뱃바닥에 들러 붙은냥 온전하게 앉아 서로를 응시했다.<BR><BR>"소녀, 이제 낭군님을 뵈러오기가 지칩니다."<BR><BR>아낙의 눈에 맺혔던 눈물이 뺨을 타고 주르륵 흘렀다.<BR><BR>"낭군님은 무과에 낙제하시고 장원에게 칼을 뽑아드셨죠. 그 살가죽 희끄무리하고 비리비리해 보이던<BR>사내에게 맨손으로 제압을 당하셨다니, 자존심에 큰 상처를 받으셨음을 소녀도 깊이 이해하고 있습니다."<BR><BR>"..."<BR><BR>"허나 낭군님, 어찌 하늘이 내린 운명을 하찮게 여기시고 강물에 몸을 던지는 것은 부끄러히 여기시지 않으십니까?!"<BR><BR>아낙의 목소리가 갈라지며 원통한 듯 격앙되어갔다.<BR><BR>"밤이면 낭군의 차가워진 손을 잡고 배위에 올라 담화를 짓는 것도 이제 소녀는 질렸습니다.<BR>자신의 조강지처 조차 몰라보는 망령에게 사로잡힌 소녀의 못난 팔자에도 진절머리가 납니다!"<BR><BR>강물이 위로 가파르게 솟구치더니 순식간에 밑으로 쏟아져 내렸다.<BR>물살에 주체를 못하는 뱃머리가 갈 곳을 잃은 듯 정신없이 흔들리며 갈팡질팡 선회를 반복했다.<BR><BR>"도깨비를 낭군으로 여긴 미친년의 팔자도 이해해주셔요."<BR><BR>"..."<BR><BR>"소녀의 원입니다. 이제 가시지요. 소녀도 따라 나서겠습니다."<BR><BR>아낙이 흔들리는 배 위에 선체 내게 손을 내밀었다.<BR>아낙이 뻗은 손을 잡자 아낙의 손주변이 푸르스름하게 질려갔다.<BR><BR>"이 찬손을 잡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입니다."<BR><BR>아낙이 나를 이끌어 강물로 몸을 던지자, 나의 몸은 힘을 잃은 듯 그대로 아낙에게 딸려나갔다.<BR>힘차게 몰아치는 강물속에 빨려들며 소용돌이 속에 몸이 휘말려갔다. 사방 온통 물바다인 곳에서도<BR>무슨 이유에선지 숨이 차오르질 않았다. 한쪽 손을 잡은 아낙의 온기가 따땃하니 기분 좋았다.<BR><BR>시야가 검게 물들며 아득히 잠이 쏟아지는 것을 느꼈다.<BR>주변에 어렴풋이 들려오는 아낙의 웃음소리가 가슴을 간지르는 것 처럼 애틋했다.<BR><BR>눈을 뜨니 해가 중천이었다. 내가 서둘러 허리춤을 만져보자 자리에 있어야 할 칼자루가 만져지질 않았다.<BR>나룻터 배가 주변을 돌며 유유히 흘러다녔다. 가을 산의 단풍낙옆들이 울긋불긋한 것이 뱃놀이를 떠나기에 그만으로 보였다.<BR><BR>주변사람에게 "내가 이곳에 얼마나 누워있었소?" 하고 묻자 대답이 없었다.<BR>눈앞으로 나와 밤새 배위에 있었던 아낙이 뱃놀이에 한창인 배에 올라 주변을 돌아보고 있었다.<BR><BR>아낙은 나의 시선을 느꼈는지 나를 돌아보더니 천천히 물 위를 걸으며 내게 다가왔다.<BR>아낙이 내 앞에 손을 뻗치며 미소를 짓는데 나는 영문을 알 수가 없어 아낙의 손을 멀뚱히 쳐다보기만 하였다.<BR><BR>"낭군님" 이라는 아낙의 목소리가이 가슴을 울리며 아련하게 들려왔다.<BR>주변에서 뱃놀이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BR><BR>"오늘도 시체가 떴다면서요?"<BR><BR>"말도 말어 저번에 산건너 최가댁!"<BR><BR>"여기 물에 몸 던지셨다는 그 무인의 집안 말씀이오?"<BR><BR>"아이 그러게, 그 최가댁 마님이 오늘 아침에 물 위에 떠 다니셨다지 뭐야!"<BR><BR>"아이구메! 이거 무당을 불러다 굿이라도 한판 벌여야지 원..."<BR><BR>나는 아낙의 손을 잡으며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BR>아낙은 말없이 웃으며 내 옆구리에 살포시 안겨들었다.<BR><BR>가을 날씨가 쾌청하니 나루터로 바람이 선선했다.<BR><BR><BR><BR>-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