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BED src=http://pds24.egloos.com/pds/201206/23/71/06_My_Machine.swf wmode="transparent"> <P><BR><BR><BR>달빛이 구름에 가리웠다.<BR><BR>발길이 시야에 잘 들지 않아 가끔 발을 땅에 내딛는 것이 불안했다.<BR><BR>시간이 얼마나 깊어 졌는지 감이 안 들었으나, 근처에서 젖은 풀잎 향이<BR>느껴지는 것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강줄기가 뻗어 있을 것이라 예상이 되었다.<BR><BR>무과시험에서 떨어지고 나흘째였다.<BR><BR>분명 나의 활끝은 과녁의 정 중앙을 꿰뚫었고, 길들여 지지 않은 말에 올라타서도 흔들림 없이<BR>칼을 뽑아 내가 갖은 모든 기량을 선보였다. 다만 나의 들끓어 오르는 기백과 무용심은 채점관들의<BR>주목을 이끌지 못하는 인형놀이와 다를 바가 없었다.<BR><BR>장원으로 이름이 불려 나간 사내의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았다.<BR><BR>그는 사내대장부라 불리기에 왜소한 키와 호리호리한 체구를 하고 있었다.<BR>그런 두터운 살집 하나 없는 팔뚝으로 검을 집는다는 것이 내게는 의아스럽고 못마땅했다.<BR>나와 단 다섯합만을 주고받는 것도 버거워 보이는 그런 약골이 장원이라니, 인정할 수가 없었다.<BR><BR>어디 귀족의 자재가 뇌물로 등용길에 오른 것이 틀림이 없었다.<BR><BR>당장 허리춤의 칼을 뽑아들어 사내와 결판을 짓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으나, 나라님 결정이 번복될 리도<BR>없을 것이 뻔함이거니와 그런 샌님 같은 놈을 힘으로 억누른다는 것을 무사로서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BR><BR>다음 과거일을 기약 할 수는 없었다.<BR><BR>명백히 무사로서의 자질을 갖추고 있는 내가 이번 과거에 장원을 할 수 없었다면, 다음 과거에서도<BR>같은 일이 반복되지 말란 법도 없는 것이었다. 당장 결판을 짓는 것이 사내로서의 마땅한 도리라 생각이 들었다.<BR><BR>내가 향하고 있는 곳은 한양에서 산 스무고개를 지나 사십 리쯤 걸어서 도착할 수 있는 유명한 뱃놀이 터였다.<BR><BR>그곳은 향간에 소문이 무성한 장소로 낮에는 사람들이 배를 끌며 계절구경에 나서기 일품인 명소라 일컬어졌으나,<BR>밤이면 귀신이나 도깨비가 나타나 사람에게 해코지를 하며 밤새 노리개처럼 가지고 놀다가 목을 따서 그 피를<BR>마시고 즐긴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때로는 귀신들이 물가에 서 있는 사람들의 발목을 낚아채 물가 깊은 곳으로<BR>몸을 끌어내리며 물을 마시게 하여 숨통을 막아 죽이고선 영영 그 시체를 끌어 안고 살기도 한다고 한다.<BR><BR>귀신들은 원래 사람들이 보통 인식하는 것 처럼 머리를 풀어해친체 피눈물을 흘리며 바라보기에 역한 모습을<BR>띄우지 않고 때로는 유곽의 기생처럼 아리따웠으며 때로는 집에 계시는 어머니처럼 넉넉한 인상을 하고 있을<BR>때도 있다고 하였다. 때로는 문어처럼 흐물거리는 도깨비를 보았다는 자가 있는가 하면, 혈귀처럼 얼굴이<BR>시뻘건 구척 장신의 장정을 보았다는 자도 있었다.<BR><BR>그들은 하나같이 말씨에 기품이 있고 재치가 뛰어나 사람에게 거짓을 말하는 것이 능숙하며<BR>사람이 꾀에 속아 덤벙대는 모습을 보며 그 멍청함을 손가락질해 비웃었다고 한다.<BR><BR>지금 북쪽 최전방을 호령하는 대장군이 젊은 시절 이곳에 들러 귀신들을 불러모아 술잔치를 벌였다는 일화는<BR>무용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대부분 들어봤을 이야기로 귀신들은 다음날 아침 대장군의 기백에 감복하여<BR>큰절을 하고 그의 앞길에 금가루를 뿌려주며 축복을 빌어 존경을 표했다한다. 실로 그 덕이었는지<BR>그는 젊은 나이에 관직에 올라 북방에서 넘치는 기량을 마음껏 발휘하였고 지금은 대장군의 위치에 올라있었다.<BR><BR><BR>'나도 그놈들에게 인정을 받는다면, 장원 같은 것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BR><BR><BR>한참을 걸어 달빛을 담은 강줄기가 시야에 들어왔다.<BR>주위를 둘러보며 뱃터를 찾자, 근처에 아낙처럼 보이는 운영이 눈에 띄었다.<BR><BR>허리춤의 칼자루를 확인하는 손에서 축축한 땀이 흥건했다.<BR><BR>아낙에게 다가서자 아낙은 나를 빤히 바라보면서 묘하게 입꼬리를 말아 올리고 있었다.<BR><BR>"무사님이 이 밤에 물가에는 어인 일이신지요?"<BR><BR>"밤잠을 못 이뤄 바람 좀 쐬러 나왔소."<BR><BR>"이곳이 어떤 곳 인줄은 듣고 오셨답니까?"<BR><BR>"뱃놀이 터가 아니오?"<BR><BR>아낙이 웃음을 지으며 물가로 시선을 돌렸다. 온통 하얀 옷을 입은 아낙은<BR>소문에서와 같이 기생처럼 고운 자태를 하고 있었고, 다소곳한 몸가짐에서 기품이 흘렀다.<BR><BR>"그럼 저와 뱃놀이라도 하시겠습니까?"<BR><BR>아낙의 뒤켠에 작은 배 한 척이 동여맨 밧줄에 몸은 의지한체 물결을 따라 살살 흔들리고 있었다.<BR><BR>"저 배에는 노자루가 보이질 않소만?"<BR><BR>"그런 것은 뱃놀이를 하는 것에 방해만 된답니다."<BR><BR>아낙이 가슴팍에 다소곳이 손은 얹은 체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마음이 불안해져 자꾸만 허리춤의<BR>칼자루를 만지작거리자 아낙은 슬쩍하고 내 허리춤을 흘겨보았다. 그리고 이내 깊은 미소를 띄며 물었다.<BR><BR>"소녀가 도깨비가 둔갑한 몰골로 보이십니까?"<BR><BR>아낙의 웃음은 나약해진 내 마음을 비웃듯 기분 나쁘면서도<BR>반반한 얼굴 형색 때문인가 기묘한 색기가 흘렀다.<BR><BR>"무사님이 제가 두려우시다면 어쩔 수가 없지요. 저 혼자 배에 오르겠습니다."<BR><BR>"아닙니다. 이런 위험한 곳에 여인을 혼자 둘 수는 없지요. 함께 오르겠습니다."<BR><BR>내가 먼저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며 배에 오르자 나루터에서 아낙이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BR>나는 배에 올라 아낙에게 손을 뻗어 부축해주겠다는 의사를 보였다. 그러자 아낙은 알 수 없는<BR>어색한 웃음을 머금은 체 내 손을 의지해 나루터 끝에서 배를 향해 발을 디뎠다.<BR><BR>"겁이, 없으시군요..."<BR><BR>아낙의 말에 옆을 돌아보자 배가 슬슬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BR>표정이 굳은 아낙은 흔들리는 배 위에 선체 자세를 흐트러트리질 않았다.<BR><BR><BR><BR><BR>-1부 끝-<BR><BR><BR></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