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BED src=http://pds24.egloos.com/pds/201206/23/71/06_My_Machine.swf wmode="transparent"> <P><BR><BR><BR>결혼 일주년 기념일이었다. 별 특별한 준비를 하고 싶지가 안았다.<BR>아내를 위해야 한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마음이 동하질 못하고 어딘가에서 아내와의 단절감을 느꼈다.<BR><BR>나는 그렇게 아무준비 없이 일주년을 맞았다.<BR><BR>그러나 퇴근 후 집앞, 예전 아내의 얼굴이 가슴에 밟혀 도저히 맨손으론 집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BR>변변한 선물도 준비하지 않은 염치지만, 내가 사랑했던 아내다. 라며 마음을 다잡고 꽃집으로 향했다.<BR><BR>그리고 산 달랑 한송이의 장미.<BR>도저히 아내를 위해 뭘 사고싶지가 안았다.<BR><BR>집 현관앞에 들어서며 난 벨을 누르지 않고 직접 열쇠를 꺼내 문을 열었다.<BR>현관에 들어서자 온통 불이꺼진 거실에 붉은 촛불이 살랑살랑 흔들리고 있었다.<BR><BR>그리고 어렴풋한 불빛에 어린 아내의 미소.<BR>아내는 나를 보고는 성큼성큼 다가들어서는 와락안겨왔다.<BR><BR>"결혼기념일 잊어먹은 줄 알았잖아..."<BR><BR>"뭐야, 너 울어?"<BR><BR>내 품에 안겨있던 아내는 내 손아귀에서 장미를 빼앗아 들고는 빙그레 웃음지었다. <BR>아내는 이제 도저히 누군지 모를 사람의 얼굴로 바뀌어 있었다.<BR><BR>눈물이 흘러 뺨을 타고 내리는 동안 앳되보이는 뺨가가 붉으스름하니 달아올라있었다.<BR>한참을 기른 긴 생머리가 어깨 한켠만 타고 앞으로 쏟아져 내렸다. 작은 촛불빛에도<BR>그 깊은 검정색의 머릿결은 감탄이 터질듯 부드럽고 탐스러워 보였다. 아직 눈물이 마르지 않은<BR>촉촉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큰 눈망울이, 어른거리는 불빛을 담은체 반짝였다.<BR><BR>아름다웠다. 다른 말로는 형용이 안됐다. 정말, 아름다웠다.<BR>그래서 더더욱 소리지르고 싶었다. 당신 도대체 누구냐고.<BR><BR>주방테이블에 와인을 따른 잔과 촛불이 하나만 올라서있는 케잌을 올려둔체 나란히 앉았다.<BR>한참동안 내 옆모습을 바라보는 아내의 눈길이 부담스러워 와인을 급하게 마셔댔다.<BR><BR>"천천히 마셔, 술도 약하면서."<BR><BR>아내는 그러면서도 내 잔에 와인을 또 반쯤을 체우곤 눈을 게슴츠레 뜨며 내게 물었다.<BR><BR>"자기 뭐 소원같은거 없어?"<BR><BR>"소원?"<BR><BR>소원? 있다. 너무나 간절한 소원.<BR><BR>"자기 머리있잖아. 한 이정도로 다시 자르면 안되?"<BR><BR>내가 아내의 어깨쯤에 손을 얹으며 묻자 아내는 긴머리칼을 만지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BR><BR>"왜? 자기 긴머리는 싫어?"<BR><BR>"아니, 나 긴머리 좋아하는데, 짧은 머리는 진짜 좋아해. 옛날처럼."<BR><BR>'예전의 니 모습이면 더 좋고...'<BR><BR>혹시나 머리가 짧아지면 좀 예전과 비슷해질까 싶었다.<BR>아내는 배시시 웃으며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곤, 그리곤 평소와 다르게 내게 먼저 키스해왔다.<BR><BR><BR>아내는 다음날 바로 머리를 단발로 커트했다. 최근 유행하고 있는 연예인의 머리를 했다는데 알 수가 없었다.<BR>그리고 그런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중요한 것은 머리를 밝은 금색으로 염색했다는 것이다.<BR><BR>"야, 너 회사에서 뭐라고 하겠다."<BR><BR>"아니야. 괜찮아. 디자인실 서대리도 노란머리 하고 다니던데 뭐."<BR><BR>회사에서 뭐라고 하는 것 보다도 길거리에서 아내가 팔장을 끼워오는 순간이 더 두려웠다.<BR>마치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여학생과 조금 나이 어린 삼촌처럼 사람들 눈에 비출 것만 같은 어색함. 두려움.<BR><BR>내 생각이 꼭 틀린 것 만은 아니라는 듯, 거리의 몇몇 남자들 무리는<BR>우리를 뒤돌아보곤 알수없는 옹아리소리를 내며 사라져갔다.<BR><BR><BR>반년 뒤 애지중지 하던 장미꽃은 썩어 문드러지다 못해 가루가되어 거실바닦을 뒹굴렀다.<BR>아내는 봉오리가 떨어져 가지만 남은 장미를 끌어 안은체 한참을 서럽게 울었다.<BR><BR>그 모습이 그렇게도 가증스러워 보였다.<BR>결혼생활, 일년 반차에 접어들고 있었다.<BR><BR><BR>고향에서 부모님이 올라오시던 날.<BR><BR>아내는 분주하게 장을 보며 음식을 준비했다. 평소 집안청소에<BR>시끄러운 아버지에게 잔소리를 듣는 것이 끔찍했던 나는 청소를 도맡기로 했다.<BR><BR>연애때부터 손맛이 좋았던 아내는 작정을 한듯 주방에 판을 벌여놓았다.<BR>머리를 말아 틀어 올린 겉모습이 아직 영락없는 대학새내기인데 반해<BR>손놀림은 종가집 며느리 마냥 앙칼졌다.<BR><BR>부모님이 도착하실 저녘때가 되어 아내는 추리닝을 벗어 던지곤<BR>단정한 옷차림으로 바꿔입으며 마중을 준비했다.<BR><BR>집 근처 역 앞에서 차를 주차한체 십분여가 흘렀을까. 부모님이 멀리서부터 손을 흔드셨다.<BR>그 모습을 본 아내가 잽싸게 빠른 걸음을 하며 어머니의 손에 들린 짐꾸러미를 받아 들었다.<BR><BR>나도 냉큼 다가서는데 어머니가 눈을 크게 뜨며 물으셨다.<BR><BR>"야야 아들, 야는 누구여? 야 누구여 시방?"<BR><BR>아내가 당황한듯 무안한 표정을 하며 나와 아버지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았다.<BR>어머니는 내 대답에 목이 마른사람처럼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셨다.<BR><BR><BR><BR><BR><BR>-3부 끝-<BR><BR></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