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BED src=http://pds24.egloos.com/pds/201206/23/71/06_My_Machine.swf wmode="transparent"> <P><BR><BR><BR>선분홍 조명빛, 각종 돼지, 소, 닭의 부위별 상품들이 진열된 투명한 냉장고에서 스산한 냉풍이 느껴진다.<BR>뻘건 조명, 뻘건 고기들 심지어 선반위 심심풀이로 설치해 놓은 15인치 작은 TV마저도 뻘것다.<BR>새하얀 점원들의 유니폼은 언뜻 정육점의 분위기와 상반되며 깔끔하게 보일지 몰랐으나 이마저도<BR>조명빛에 가렸을 뿐, 자세히 볼때면 핏물을 닦아낸 흔적들로 얼룩저 울긋불긋 손가락 모양의 뻘건 꽃잎이라도<BR>달라붙은 것 마냥 보였다.<BR><BR>"아~ 이거 소고기 마블링 이쁘게 잘떴네~?"<BR><BR>"그럼요. 스테이크용으로 좋을 겁니다."<BR><BR>아직 신혼으로 보이는 여성, 앞머리가 앞으로 쏟아지는지 검지와 엄지를 모아 가만히 머리를 쓸어 넘기며<BR>고정한체 진열용 냉장고를 유심히 바라보고있다. 한손에는 손바닥 만한 지갑과 그위로 포게진 작은 메모장이<BR>아무래도 저녁찬거리를 적어둔 것 처럼 보였다.<BR><BR>개인적으로 이런 신혼의 주부들이 우리 정육점을 찾는 것에 깊은 즐거움을 느낀다.<BR><BR>고기맛, 혹은 진짜 상등품의 고기가 무엇인지 아는 주부들이 늘어난다. 대형마트에서 저렴하게 판매되는<BR>개차판 같은 고기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고기의 질에서도 우리 정육점은 일대에서 손을 꼽는 상등품이었지만<BR>그것보다 더 중요한건 고기의 관리와 운반 그리고 무엇보다 고기의 칼손질에서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BR><BR>공장에서 손질된 고기를 받아오는 방식이 아닌 살아있는 가축들을 직접 받아와 손질을 하는 방식을 고집하고 있는 우리는<BR>남다른 고기맛과 육질 덕에 다른 대형상가에 종속되지 않은체 단일 정육점으로 거리에서 장사를 이어갈 수가 있었다.<BR><BR>고객들은 그 차이를 점점 알아 차리고 있는 것이다.<BR>무엇보다도 확연히 느껴지는 정육사의 실력의 차이.<BR><BR>젊은 주부는 손가락을 입술에 기댄체 고개를 갸웃갸웃하며 고민을 하는냥 골똘히 냉장고를 들여다 봤다.<BR>왜 그런 그녀가 기특해보였을까? 나도 모를 흐뭇함에 가만히 웃음 지으며 그녀의 결정을 기다렸다.<BR><BR>젋은 주부가 결정을 지은듯 은근한 미소를 띄며 내게 말을 붙이려는데 정문으로부터 키작고 왜소한<BR>아저씨가 한명 들어섰다. 벗겨진 머리와 볼록한 뱃살이 가늠짐작으로도 대충 오십대 중반이상은 되는 듯 했다.<BR><BR>주부는 스테이크용 한우 750g을 포장한체 돌아갔다.<BR><BR>주부가 자리를 떠나고 은은한 샴푸향과 비릿한 고기향만이 감도는데 오래전부터<BR>들어선 중년의 남성은 손수건으로 얼굴만 훔치며 좀처럼 고기를 살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기지 않았다.<BR><BR>주황색의 때타고 얇상한 가을점퍼와 흑갈색의 티셔츠를 배꼽까지 올려입은 면바지 안으로 넣어 입은 아저씨.<BR>직업을 가늠하기 애매한 지저분한 운동화에 검고 붉은 때가 잔뜩 서려있었다.<BR><BR>아저씨는 헛기침을 "험험"하며 요란히 뱉더니 카운터 한폭판에 철제 서류가방을 얹으며 내게 속삭였다.<BR><BR>"댁이 사장되쇼?"<BR><BR>좀처럼 나와 눈을 마주치려 안는 중년의 아저씨.<BR>나는 몸을 수그리며 아저씨의와 눈높이를 얼추맞춰 대답했다.<BR><BR>"네. 제가 사장인데요."<BR><BR>나의 대답을 들은 아저씨는 점점 진지한 표정을 짓더니 마치 결심이라도 선듯 내게 물었다.<BR><BR>"여기, 사장님이 고기손질이 그렇게 대단하시다면서?"<BR><BR>칼질이 좋다는 평가를 어디에서 전해 듣게 되었든, 손님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니 기분이 좋았다.<BR>나는 말로 대답하지 않고 기분좋은 미소만 머금었다.<BR><BR>"내가 사장선생한테 부탁이 있는데요."<BR><BR>"어떤 부탁이요?"<BR><BR>"그, 손질을 좀 부탁할게 있어서."<BR><BR>"어디서 불법포획하신 것 아니신가요?"<BR><BR>"아! 아니~ 아니, 그런것은 아니라."<BR><BR>야생 고라니, 사슴등을 불법포획하고 그것을 식용으로 조리하는 것은 엄연히 불법이다.<BR>짐승이란 본래 비슷한 구조를 하고 있어서 새삼 손질하는 것에 큰 어려움을 없었다만<BR>정육사 자격증을 취소당할 수도 있는 위험한 일은 당연히 삼가하는 것이 좋았다.<BR><BR>나는 탐탁치 않은 얼굴로 거부의사를 밝혔다.<BR><BR>"그냥은 안되는거 잘 잘죠. 잘 압니다. 그래서 그 전에..."<BR><BR>중년의 아저씨는 서류가방을 돌려 손잡이를 더듬거렸다.<BR>얼마 안있어 서류가방이 딸각하는 소리를 내며 내 앞에 입을 벌렸다.<BR><BR>"그냥, 그냥 와서 봐주시는 거. 그것만해주시면 일단 이거 한다발 드릴게요. 한다발, 그냥 아무것도 안해도 한다발."<BR><BR>한다발? 서류가방에는 오만원권 현금 묶음이 가득히 들어 있었다.<BR>한다발이라는 것은 오백만원, 잠깐 물건만 봐주는데 터무니 없이 높은 금액이었다.<BR><BR>내가 깨림직한 기분이 들어 얼굴을 찌푸리자, 아저씨는 한다발을 더 꺼내들며 카운터에 얹어 놓았다.<BR><BR>"두다발."<BR><BR><BR><BR>오만원권 돈뭉치를 서류가방 가득담고 다니는 아저씨치고 자가용조차 한대 없는 사람.<BR>아무리 생각해봐도 수상적은 것이 너무 많았지만 잠깐 칼손질할 물건 좀 봐주고 천만원.<BR><BR>나는 천만원의 현금을 정육점 도마 밑 서랍장에 감춰둔체<BR>여섯시 칼같이 정육점 셔터를 내리고 아저씨를 따라나섰다.<BR><BR>택시를 타고 십오분 아저씨는 택시를 빌라 촌 앞에 세웠다. 근 일이십년은 지난 건물들인듯<BR>적벽돌 미장마감에 허연색 페인트로 101, 102하며 동수를 세겨 넣은게 대충 둘러봐도 집값이<BR>상당히 저렴한 동네처럼 보였다.<BR><BR>"이쪽이네."<BR><BR>아저씨의 급한 걸음을 쫒아 십여분을 더 걷자 동네 언덕배기 조금 못간 곳에 3층형식의 연립주택이 보였다.<BR>아저씨는 말없이 몸을 빙글돌려 나를 처다본 후 연립주택 안으로 발걸을을 옮겨나갔다.<BR><BR>주위의 분위기가 마치 살인이 나도 찍소리한번 안들릴 곳 처럼 음산했다.<BR><BR>아저씨가 무거운 철문에 열쇠를 걸고 돌리자 녹이슨듯 끼긱하며 기분나쁜 소리가 들렸다.<BR>현관에 대충 신발을 팽게치듯 벗은 아저씨는 "후~" 하는 한숨과 함께 웃옷을 대충 바닥에 널부러 트렸다.<BR><BR>거실부터 느껴지는 깔끔한 분위기, 의외로 정돈이 잘되어있는 집안의 행색에 은근히 마음이 놓였다.<BR><BR>"아저씨 물건은 어디에 있나요?"<BR><BR>내가 묻자 아저씨는 나를 두어번 흘깃거리더니 손짓을 하며 주방으로 불렀다.<BR>주방으로 들어서자 시큼한 김치냄새와 약간 시간이 지난 듯한 반찬들 냄새가 은근하게 밀려왔다.<BR><BR>"흠, 흠!... 여기."<BR><BR>아저씨가 주방 냉장고 손잡이를 잡고 머뭇거리듯 몸을 움찔거렸다.<BR>아저씨의 마음의 동요가 전달되는 듯 나 스스로도 이상하게 긴장이 되어 말없이 아저씨가 문을 열기만 기다렸다.<BR><BR><BR><BR>스륵, "?!"<BR><BR><BR>아저씨가 문을 연 냉장고 안에는 아직 열여덟, 열아홉 쯤으로 밖에 안보이는 소녀가 눈을 감은체 담겨있었다.<BR>내가 놀란것이 당연스럽다는 듯 아저씨는 내게 냉랭한 시선을 보냈다. 아저씨는 잠깐 나를 지켜보다 다시 냉장고<BR>속의 소녀에게 눈을 돌리며 말했다.<BR><BR>"내 딸이요."<BR><BR><BR><BR><BR>-1부 끝-<BR></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