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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humorbest_525746
    작성자 : 숏다리코뿔소
    추천 : 17
    조회수 : 4289
    IP : 119.195.***.230
    댓글 : 9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2/09/10 17:09:54
    원글작성시간 : 2012/09/10 05:41:30
    http://todayhumor.com/?humorbest_525746 모바일
    배경음) 그랜드 호텔 404호실 -완결-



    늦더위가 기승인 9월의 중순. 관광객이래야 맞을지 순례객이라야 맞을지 모를 손님들의 행렬은 여전했다.
    깔딱거리며 빙글뱅글 도는 선풍기 소리가 귀에 익숙해지려고 할때 즈음 전화벨이 울렸다.

    "여...부세요?"

    아이와 같은 앳된 여자 목소리.

    "네, 그랜드 호텔입니다."

    "저, 404호실. 예약하고 싶은데요. 3명."

    404라는 숫자의 상징성, 아내는 장사수완에 있어서 나보다 한결 센스가 있었던 것일까.
    사람들은 404호실의 마력에 빨려오는 듯 단 반나절도 예약이 비는 날이 없었다.

    심지어 예약을 기다리기 위해 일부러 다른 방에서 하루 이틀씩 투숙을 하며 기다리는 부류의 사람들까지 생겨났다.
    사람들은 각종 고성능의 사진기와 캠코더를 손에 손으로 쥔체 정문부터 모텔을 프레임 안에 담는 것에 분주했고
    그 프레임 안에 담기는 화면 속에서 오래되고 후진 나의 모텔은 귀신이 나오는 모텔의 모습으로써 더욱 안성맞춤인
    존재감과 낡은 모습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귀신을 봤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날로 늘어만 갔다.

    어째서 내 눈에는 보이지 않을까. 혹여나 싶어 404호실에서 하룻밤을 자볼까
    생각도 해봤지만 밀려드는 예약을 취소하는 것은 여의치가 안았다.

    최근들어 원래 하룻밤 단가가 높았던 우리 모텔은 하루 숙박비가 십만원을 넘겼고 가격높은
    숙박비에는 아랑곳 안는 귀신마니아들의 만원사례로 사상 이례없었던 귀신특수를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잠자리에 들며 눈을 감고 고른숨을 내쉬는 아내의 콧잔등을 잠시 바라보았다.

    "자기는 봤어?"

    아내가 대뜸 입을 열었다.

    "귀신?"

    "음."

    "아니 못봤지. 자기는 봤어?"

    "아니..."

    아내는 대답을 하더니 등을 돌려 누웠다.
    그리곤 수여분이 지났을까.


    아내가 가는 한숨을 내쉬었다.



    새벽시간 모텔 카운터를 지키며 컴퓨터 자판을 끄적였다.

    이제 대형 포털사이트에 '그랜드 호텔'을 검색하면 블로그 글 뿐이 아니라
    마니아층에서 형성된 팬들이 모여 그랜드 호텔의 카페까지 개설한 상태였다.

    의외로 카페의 회원수는 3000명을 넘긴 상황이었고 최근 개설된 탓인지 게시판의 활동도 상당히 활발해보였다.

    그곳에서 나의 이목을 사로잡은 것은 바로 '그랜드 호텔 방문후기' 게시글들로 그 게시판에는
    그들이 목격했다는 귀신의 상세한 특징들이 여러 목격자의 증언에 의해 뚜렷하게 일치하고 있었으며
    더욱 놀라운 것은 404호실 외에 4층 복도에서도 귀신이 목격된다는 것이었다.

    목을 맨 남자가 때로는 소릴치고 때로는 웅얼거리는다는데 사람들은 그때마다 가위에 눌려
    귀신이 사라질때 까지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404호실의 귀신은 사진이
    단 한장도 없고 미리 설치된 카메라에 실시간으로 찍힌 영상에도 그 모습이 보이질 않았다.

    404호실의 귀신은 사진이나 영상에 잡히질 않는 다는 것이 그들의 공통된 이야기였다.
    조금 더 스크롤을 내리며 보게된 4층 복도에서 목격 된다는 귀신의 사진들.

    벌거벗은 여인의 뒷모습들, 여인은 뒷짐에 시퍼렇게 빛을 띄는 칼을 들고 서있었다.
    날개뼈 중간만치 오는 검은 머리칼, 뒷모습에서도 어렴풋 보이는 도드라진 쇄골의 윤곽

    오른쪽 옆구리에 선명히 보이는 지워질 것 같지 않은 깊고 거친 선이 드리운 칼자국.


    "뭘 그렇게 봐?"

    뒤에서 갑자기 입을 연 아내를 화들짝 놀라며 돌아보니
    아내는 태연한 얼굴을 하며 벌거벗은 체로 칼자루를 가만히 싱크대에 얹어두었다.

    오른쪽 옆구리에 박힌 긴긴 칼자국...

    "너 뭐하는거야?"

    아내는 어리둥절하다는 듯 나를 향해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물었다.

    "뭘? 뭘, 뭘하냐는 거야?"

    "옷도 안입고 뭐하는 거냐고? 칼들고 어디 갔었어?"

    "어딜가긴, 자기도 지금 인터넷에서 읽었잖아."

    "무슨 소리야?"

    "자기 진짜로 안보이는 구나?"

    "뭐?!"

    "그 새끼야."

    "..."

    점점 아내의 눈이 커지며 작은 눈물방울들이 맺히기 시작했다.

    "그 새끼라고..."

    "..."

    "왜 말이 없어? 나 만났어. 청소 할때마다 만나. 매일매일 만나고있어. 매일 목매달고 나한테, 그 새끼가 나한테..."

    나는 아내에게 달려들어 아내를 세게 부여 안았다.

    "그 새끼가 나 죽여버리고 싶데, 날 살려준게 실수래. 나랑 한번만 더하면 소원이 없겠데. 여보, 여보 나, 나, 불안해서 잠이 안와."

    아내가 품에 안긴체 참아왔던 눈물을 쏟아냈다. 눈물이 베여가는 옷자락 위로
    아내의 바들바들 떨리는 손이 내 옷을 부여잡은체 놓을 생각을 못했다.

    "문 닫자..."

    아내를 웅켜안은 내 손에도 점점 힘이 들어갔다.


    그 새끼...

    아내가 장기투숙을 하며 몸을 팔던 시절이었다. 그 새끼, 선한인상의 눈매가 뚜렷한 호남형의 장정.
    말끔한 청바지 차림을 한 그는 내게 502호실의 위치를 물어 왔었다.

    그리고 수시간이 지난 이후 새벽, 카운터로 객실전화가 연결되었다.

    떨렸던 아내의 목소리, 내가 방으로 발을 옮겼을때는 이미 상당한 시간이 흘렀던 것 같다.
    아내는 소리죽인체 울며 온몸에 타올을 둘러매어 허리춤에 흐르는 피를 눌러막고 있었고,
    그 남자는 대형 실링팬에 몸을 의존한체 목을 매곤 대롱거리고 있었다.

    나도, 아내도 그곳에서 성매매가 이루워졌었다는 것을 경찰에 알리기엔 부담이 컸다. 나는 암묵적으로
    그녀의 성매매를 인정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는 명백한 범죄였다. 그녀의 크나큰 동조자.

    오픈한지 얼마 되지 않는 모텔을 장기간 닫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
    나는 그의 시신을 여러쪽으로 갈라야한다는 결심을 했다.

    다음날 밤 나는 세자루의 큼지막한 검정색 비닐봉지를 모텔 뒷산에 묻었다.
    땅을 충분히 깊게 파는데 상당한 시간을 들였다. 아직 늦겨울이었던
    날씨 때문인지 삽자루는 쉽게 땅바닥으로 들어갈 생각을 안했다.

    아내의 상처에선 피가 상당히 흘렀지만 병원에 가지 않은체 자연히 살이 붙는 것을 기다려야했다.
    장기에 닿지 않을 만큼 얕았던 것이 다행이었다만 흉은 지워질 수 없이 짙게 베어갔다.

    그 이후 두달여쯤 후 TV뉴스에서 그 남자의 얼굴을 볼 수가 있었다.

    성매매녀를 노린 연쇄살인. 과학수사로 인해 발켜진 지문조사 결과 용의자가 거의 확실시 되었으며,
    범행도구와 범죄자의 위치를 찾지 못했으나 신원을 확인해 추적중에 있다는 뉴스였다.

    화면을 꽉체운 그 녀석의 얼굴을 바라보며 아내가 웅얼거렸었다.

    "나는, 이제 죽일 가치가 없데요. 그냥 살려 주겠데요..."

    뱃가죽에 붙은 살들이 거진 다 아물었음에도 이따금 쑤셨는지 옆구리를 슬슬 쓸어내렸다.
    내가 아내와 결혼을 하게된 것은 어떻게 보면 운명이었는지 모른다.

    아내와 정식으로 혼인신고를 하게 된건 그로부터 반년 이후였다.


    모텔을 팔기로하고 한달. 예약은 끊임이 없었지만 모텔방은 요즘들어 조금씩 빈방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것이 하룻밤 숙박비를 이십만원으로 올렸기 때문이다.

    귀신 성수기, 마니아들의 광적인 집착은 몇십만원의 숙박비에는 아랑곳 안았다.

    바보같은 건지 열정적인건지 알 수 없는 귀신마니아들은 주인이 돈에 미쳤다는 둥 독한 소리를 뱉었지만
    모텔을 찾는 발길이 끊일 줄을 모르며 집안의 통장잔고는 날로 늘어갈 뿐이었다.


    404호실의 청소는 언제나 내 담담이 되었다만
    어째서인지 내 눈에는 아직도 그 놈이 보이질 않았다.

    청소도중 천정에 걸린체 멈춘 실링팬을 지긋히 한참을 바라보았지만
    역시나 목을 매단모습의 귀신따위는 나에게 보이질 않았다.

    그리고 얼마 후, 방송국에서 찾아들었다.

    리포터로 보이는 아리따운 아가씨와 그 뒤로 보이는 열댓의 스탭들,
    이미 카메라를 들고 스탠바이중인 그들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어왔다.

    "하룻밤 까지는 아니구요. 그냥 잠깐 한,두시간정도 취재해봐도 될까요?"

    새로생긴 종편방송의 심령코너에서 나온 취재.

    내가 다른 것을 따지지도 안은체 돈에대해 묻자
    그들은 잠시동안의 촬영이라기엔 놀랄만큼의 금액을 제시했다.

    404호실의 예약을 두시간 미루며 대기손님에게 남는 방을 무료로 제공했다.
    방송취재란 말에 대기객들은 호쾌히 대기를 승낙하며 방으로 사라졌다.

    아내는 고개를 좌우로 가르며 촬영엔 참가하지 않겠다고 완강히 거부했으나
    결국 404호실 안으로는 들어가지 않겠다는 조건하에 촬영을 하게되었다.

    리포터는 모텔 정면에서부터 모텔 카운터, 계단, 복도 순으로 촬영을 전개해갔다.

    별것없는 계단에서 일부러 겁이나는 듯 호들갑을 떠는 모습과
    카메라가 꺼진 후 담담해 하는 모습은 혀를 내두르게 만들만큼 판이했다.

    404호실에 들어선 나와 리포터

    원룸형 모텔에 촬영이랄 것이 무엇이 있으랴. 화장실과 객실을 한방퀴 빙둘러
    촬영한 그들은 내게 집요한 질문을 삼십분정도 하고선 촬영을 접었다.

    기대하던 귀신은 나타지 않았다.

    "이거 언제 방송되요?"

    내가 묻자 리포터는 언제 그랬냐는 듯 촬연전의 나긋한 모습은 사라지고
    눈발이 날릴 듯 퉁명한 표정을 하며 뒤돌아 스탭들에게 웅얼거렸다.

    그러자 한 스텝이 내게 다가오며 말했다.

    "이거 모래 밤 열한시면 방송이에요."

    통장입금을 확인한 스텝들은 분주히 촬영장비를 챙기곤 사라져 갔다.
    촬영팀들이 모여 만들어 놓은 담배꽁초들이 널부러진 땅바닥을 치울까 고민하다 그냥 카운터로 발을 돌렸다.


    "너도 볼래?"

    아내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며 카운터룸에 이불을 깔았다.
    10시 55분 얼마안있어 방송이었다.

    TV의 전원을 켜자

    광고가 나오고 있었다. 광고화면 오른켠 위로 <특집>이라는 선명한 빨강글씨가 눈을 사로잡았다.
    얼마후 특집이라는 타이틀에 걸맞는 충격적인 화면이 약 삼십분간 흘러 나왔다.

    귀신은 내 눈에만 안보였던 것이 아니었다. 카메라에 분명히 담긴 귀신의 모습은
    나의 옆과 나의 등 뒤에서 정신산란히 움직이고 있었고 내 시선을 교묘히 피하며 그것을 즐기고 있는 듯 했다.

    또 귀신은 내 시선에서 벗어난 틈을타 리포터의 몸을 더듬거나 핥으며 농락하고 천장에 올라 붙었다.
    벽구석 이쪽저쪽으로 순식간에 들러 붙었다 떨어졌다를 반복하며 도저히 사람의 모습이 아닌 기이한 행동을 하고 있었다.

    방송 마이크의 담긴 귀신의 선명한 목소리가 TV를 통해 카운터룸을 시끄럽게 울리는데도
    아내는 아랑곳 안는지 안들리는지 곤히 잠들어 있을 뿐이었다.

    나는 정신을 빼앗긴듯 TV화면에 몰두해 귀신이 소리치는 반복적인 말을 듣고 있었다.

    "야!! 야!!!! 이 새끼 창녀랑 결혼했어!!! 이 새끼 마누라 창녀야!! 내가 돈주고 따먹었어!!! 야!!!! 크하하하 야!!!!
    이 개새끼, 야!! 이 새끼가 나 토막내서 나 저기 옆 산에 갔다 묻었어 이 씨발새끼. 야! 야!!!! 야!!!!!!!!!!!!!!!!!!!!!!!!!!!!!!"

    한참을 TV에 정신이 팔려있는데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따르르르릉 따르르르릉 따르르르릉 따르르르릉 따르르르릉
    따르르르릉 따르르르릉 따르르르릉 따르르르릉 따르르르릉
    따르르르릉 따르르르릉 따르르르릉 따르르르릉 따르르르릉



    마지못해 수화기를 집어들자. 알 수 없는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404호실 예약하고 싶어서 전화했는데요."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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