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span><br></span></div> <div><span>#</span><span>51<br></span><span>또 그렇게 봄은 오는가 봅니다. <br></span><span>한결 매섭게 휘몰아치던 바람이 웅숭그려가며 그 노기를 흩뜨릴 제, 자못 따스한 공기가 그 대기 속에서 새초롬히 번져나가고 있습니다.<br></span><span>그때를 놓치지 않고, 대지 아래 잠잠히 잠들어 있던 새싹들은 덤불이나 등걸 틈새를 비집고 나와, 삐쭉, 새 낯을 틔워 내고 있습니다.<br></span><span>이리저리 방정맞게 날아다니고 뛰어다니는 뭇 짐승들 또한 그 위대한 자연의 순환을 실로 만끽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br></span><span>바야흐로, </span><span>하얀 순백의 세상을 선사하곤 했던 겨울은 그렇게 시나브로 옅어져가고 있습니다. <br></span><span>그리고 겨우내 쥐 죽은 듯이 잠만 자대던 야옹이는 그런 새 날의 기운과 공명했는지, 어느새 언죽번죽 유난스러울 정도로 까탈을 부리기 시작하였습니다. <br></span><span>다시금 발정이 온 것이었습니다. <br></span><span><br></span><span></span><span><br></span><span>사실, 이전부터 야옹이를 중성화해야 되나, 하는 고민을 많이 했었습니다. <br></span><span>지금까지 2-3번 정도의 발정기를 거치면서 그 고민은 더욱더 번민이 되어 갔습니다. <br></span><span>그도 그럴 것이, 발정기가 오면 당사자인 야옹이나 집사뿐만 아니라 주위 이웃사람들에게까지도 어느 정도 피해가 가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br></span><span>다행히 집사가 살고 있는 빌라는 꽤 지은 지 오래됐음에도 불구하고 방음이나 차음이 상당히 잘 되어 있었고, 또 그리 동물에게 인색한 사람들이 살고 있지 않았던 덕분으로 지금까지는 별 문제 없이 잘 지내올 수 있었습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앞날까지도 우리의 평화를 담보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br></span><span></span><span>더군다나 이 자식은 꼭 남들 다 자는 밤에 괴성을 질러대는 통에, 일단은 이웃 주민들은커녕 집사조차도 새벽에 잠을 깨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나곤 하였던 것입니다. <br></span><span>그러니, 이후로 쭉 같이 살려면 중성화 시술은 아무래도 필수일 것 같았습니다만, 문제는 아직까지도 야옹이의 향후 인생이 어떻게 될지 전혀 장담할 수 없다는 점이었습니다.<br></span><span>그리고 잠을 제대로 못 이룰지언정 여전히 집사의 생각으로는, 야옹이의 중성화 시술이 그리 탐탁하게 여겨지지가 않았습니다.<br></span><span>그러니 이후로 쭉 같이 산다고 하더라도, 야옹이에게 처음 한두 번의 임신 기회는 주고 싶었습니다.<br></span><span>물론, 이런 순전히 자연주의적 배려에 대한 시도조차 뭇 반대 의견이나 부정적 시선이 따라다니는 것을 집사 또한 모르지 않는 바는 아니었습니다. <br></span><span>하지만, 그런 여러 가지 부정적 사항들과는 별개로, 아직까진, 이 한낱 맹물인 집사에게조차도, 임신과 출산은 자연이 선사한 선물이자 축복이며, 응당 기회가 되면 하는 것이 좋은 일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br></span><span>그리고 이는 순전히 집사만의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야옹이 또한 충분히 동의할 만한 생각이었습니다. <br></span><span>옆에서 발정 난 녀석의 눈을 보고 있자면, 금방이라도 동물병원으로 데려가 중성화 시술을 행하기보다는 수컷 단짝을 구해주는 게 더욱 맞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br></span><span>그리고 이는 자연을 오롯이 인공적으로 꾸미고 있는 인간에게조차도 여전히 자연적인 일에 속해 있었습니다. <br></span><span>누가 발정 났다고 여자를 잡아다가 불임시술을 한단 말입니까? <br></span><span>인간과 동물의 정도 차이는 있을지언정, 그래서 그에 따른 대처방안과 향후 생식 계획에 일정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이 본질적 의문에 대한 대답은 결코 다를 수 없다라는 것이 집사의 생각이었고 또 야옹이의 생각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좀 더 어려운 길을 걷기로 다짐하였습니다. <br></span><span>그리고 그것이, 야옹이에게 최소한 한 번 정도의 임신과 출산은 하게끔 하자라는 절충적 결론으로 도출되었던 것입니다. <br></span><span><br></span><span><br></span><span>옆에서 뒹굴거리고, 여기저기 긁어대고 하는 꼴을 지켜보다가, 그 말도 못할 결핍, 욕망, 고통, 희열, 등등을 집사는 곰곰이 대리적으로나마 떠올려 보았습니다. <br></span><span>한때, 세상에 태어나지 않는 게 제1의 행복이라던, 어떤 회의주의자의 말에 전적으로 동감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br></span><span>무수한 생식적 욕망과 고통의 생채기들이 송곳 하나 때려 박을 길 없이 영혼과 육체에 갈겨넣은, 그 가없는 주홍글씨들이 무던히도 무겁고 버겁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br></span><span>그리고 그런 시절을, 시공간을 달리하여 야옹이가 집사 옆에서 다시 한 번 더, 다르나마 비슷하게 겪고 있습니다. <br></span><span>손을 뻗어 그 녀석의 머리며, 등이며, 몸통을 부단히도 쓸어주었습니다. <br></span><span>너도 힘들겠구나, 야옹아. <br></span><span>야옹이의 눈이 이제는 게슴츠레, 고통에 겨운지, 희열에 겨운지, 그 농밀한 색정을 담고 집사를 향하고 있는데, 정작 집사는 야옹이에게 해 줄 것이 거의 없었습니다. <br></span><span>그저 다시금 손을 빠르게 놀리면서, 그 녀석을 최대한 편안하게 해주려고 노력할 뿐이었습니다. <br></span><span>그러곤, 고통 속의 쾌락, 쾌락 속의 고통으로 온몸이 녹아날 그 녀석이 최대한 빨리 그 순간을 벗어나기만 간절히 바랄 따름이었습니다. <br></span><span><br></span><span><br></span><span>누군가는 주이상스를 말합니다. <br></span><span>고통 속에서도 피어나는, 아니, 고통 속에서야 비로소 피어나는, 그런 쾌락 말입니다.<br></span><span>그 주이상스를 절규하듯 원하는 생명들은 아직도 삶을 사랑하기 위해 살아가는 것들일 것임에는 틀림없습니다만, 그럼에도 그런 생명들조차 그 주이상스를 한결같이 원하고 그 삶을 살아낸다는 것은 매우 난망하리라는 것 또한 거의 틀림없습니다. <br></span><span>심지어, 그 날개치듯 활짝 만개한 주이상스조차도 시나브로 시들고 썩어가는 꼴이란, 마치 신의 거룩한 지성소가 갉아먹히고 파괴되는 듯한 꼴볼견일지도 모릅니다. <br></span><span>그것조차 대면하고 직면한 채 삶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일은 차라리 그저, 그것을 뒤로 하고 눈돌린 채 삶을 흐릿하게 살아내라는 강렬한 유혹을 불러낼지도 모르겠습니다. <br></span><span>그러니, 쾌락은 쾌락일지언정, 그 쾌락이 번연히 피어나는 대지가 무수한 고통으로 점철돼 있다면야, 차라리 그 쾌락보다는 그 고통에 방점을 찍는 것이 더욱 현명한 판단일지도 모를 일입니다. <br></span><span> 그 엄혹한 주이상스란 쾌락을 바라기보다는, 잠잠한 영혼의 평상심을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오히려 더 실전적이고 실용적인 삶의 노선이 될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br></span><span> 그리고 사실, 집사가 진작에 야옹이를 중성화했었던들, 이런 주이상스를 그 녀석은 굳이 맛보지 않을 수도 있었습니다.<br></span><span>그래놓고는, 이제 와서 다시, 한사코 그 주이상스를 빨리 벗어나게 하려는 필사적 노력을 집사는 헛되이 지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br></span><span>야옹이의 그 생식 본능을 - 얼마간이나마 - 막지 않으려고 다짐하면서도, 정작 그 본능이 표출될 때엔, 어떻게든 빨리 덮어버리려고 바둥거리는 이 모순. <br></span><span>그런 주이상스를 애초에 제거한 삶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신이 선사한 임신과 출산의 축복, 그 생식의 장대한 드라마 속에서 주이상스는 필수불가결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어쭙잖게 하면서도, 정작 그런 주이상스 자체가 없는 한없이 편안한 삶을 무연히도 갈구하는 이 모순. <br></span><span>삶은 그 자체로 축복임을 무수히 확인하고 또 그렇게 살아가자 다짐하면서도, 차라리 아예 태어나지 않았으면 제일 행복했을 것을, 왜 태어나서 이 고생인가 쓰디쓴 의문을 고통스럽게 뱉어대는 이 모순. <br></span><span>그러니, 모르겠습니다. <br></span><span>그저 이 거추장스러운 모순은 집사에게만 오로지 매어두고, 야옹이는 자신의 본능대로, 그 자연의 섭리대로, 훌훌 뛰어다닐 수 있게 되기만을,<br></span><span>그저 집사는 인간의 온갖 자질구레한 세계에 묶여 갈팡질팡거리게 놓아두고, 야옹이는 그 자신의 세계에서 자기 마음껏 훨훨 뛰어오를 수 있게 되기만을, </span></div> <div><span></span><span>바랄 따름입니다.</span></div> <div><span><br></span></div> <div><span><br></span></div><span> </span> <div style="text-align:left;"><img width="800" height="450" class="chimg_photo" style="border:medium;" alt="IMG_1243 0000015574ms그림판.png" src="http://thimg.todayhumor.co.kr/upfile/201704/14912163012d260bccde0e453e8eac0038ddd65859__w1440__h810__f152582__Ym201704.png" filesize="152582"></div> <div style="text-align:left;"><br></div> <div style="text-align:left;"><br></div> <div style="text-align:left;"><img width="800" height="450" class="chimg_photo" style="border:medium;" alt="IMG_1243 0000004029ms그림판.png" src="http://thimg.todayhumor.co.kr/upfile/201704/14912163182f18510b1f184a738065f6d5b6c49e37__w1440__h810__f142463__Ym201704.png" filesize="142463"></div> <div><span> </span><span><br></span><span> </span></div> <div><span><br></span><span> <br></span><span><br></span><span><br></span></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