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월 28일 오후 7:05<br><b>#25491번째포효</b><br><br>대숲, 전 슈퍼히어로 영화를 안봐요<br><br>전남친이 슈퍼히어로영화를 엄청 좋아했거든요<br>개봉하는 모든 슈퍼히어로영화는 죄다 챙겨보는 덕후였어요<br>그래서 저도 따라가면서 평생 안보던 영화들 많이 봤죠<br>덕분에 저도 슈퍼히어로영화가 어떤 구조인지 잘 알게 됐어요<br>마블이니, DC니 하는 것도 잘 알게 됐죠.<br><br>우린 헤어졌어요. 제가 뻥차버렸죠.<br>그땐 제가 너무 어렸나봐요.<br>그사람이 어느 순간부터 설레임이 없었어요<br>두근거림도 없고, 익숙하고, 가족같았어요.<br>이건 사랑이 아닌것 같았어요.<br>그래서 그만 만나자고 했죠.<br><br>전 사실 로맨스 영화를 좋아했어요.<br>디즈니 애니메이션도 좋아했죠.<br>그 사람은 그런영화도 군소리없이 잘 봤어요.<br>어바웃타임을 보고서는<br>저정도 능력이면 어벤저스에 들어갈수 있니 이런소리나 하고<br>뷰티인사이드를 보고는 쟤 엑스맨이라고 그랬어요.<br>그래서 감성이 왜이렇게 무디냐고 제가 짜증도 냈었죠.<br><br>그 사람은 두말없이 돌아섰어요.<br>심지어 나한테 미안하다고 하면서 돌아섰어요.<br>마지막으로 그동안 고마웠다는 카톡하나만 오고,<br>아무런 연락도 없었어요. 당연한거지만.<br><br>저는 연애편지 받는걸 좋아했어요.<br>항상 써달라고 그랬죠.<br>거의 만날때마다 편지를 받은것 같아요.<br>그 사람은 저한테 연애편지를 쓸때도<br>슈퍼히어로의 대사를 인용하던 사람이었어요.<br>넌 날 완전하게 만들어 - 조커<br>위대한 왕보다는, 좋은 남자가 되고싶습니다 - 토르<br>뭐 이런말을 넣곤 했죠<br>이런 로맨스 없는 사람이 있나 싶다가도,<br>그래도 좋았어요. 특별한 연애를 하는것 같았거든요.<br><br>나중에 알았어요.<br>설레임이 없는 사랑도 있다는걸요.<br>아니, 설레임이 없는것도 아니고,<br>제가 설레임의 역치가 너무 높아졌었다는걸요.<br>하지만 이젠 너무 늦어버렸죠.<br><br>대숲, 사실 전 슈퍼히어로영화를 다 봐요.<br>개봉날 챙겨봐요.<br>그사람도 어딘가에서 보고있을테니까요.<br>오늘밤엔 같이봤던 영화를 하나 골라 다시봐야겠어요.<br>오늘밤은 너무 다운됐으니 유쾌한 가디언즈오브갤럭시를 봐야겠어요.<br><br>그사람은 대숲은 커녕 페북도 안하지만,<br>그래도 페기요원이 했던 대사를 이 편지에 넣어봅니다.<br><br>"다음주 토요일8시, 스토크 클럽에서 만나. 절대 늦으면 안돼. 알았지?"<br><br><br><br><br><br>2017년 1월 30일 오후 5:59<br><b>#25538번째포효</b><br><br>고맙습니다.<br>여기서 전여친이 쓴 편지를 보게되었어요.<br>이런거 안해서 몰랐는데 신기하네요.<br>저도 여기다가 편지좀 쓸께요<br><br>고마워요.<br>날 아직 생각해줘서요.<br>처음부터 말했었지만 전 연애가 서투르고 잘 몰라요.<br>이별도 처음이라 어떻게 해야할지 몰랐어요.<br>먼저 연락안했던건, 겁나서 그런거에요.<br>이미 헤어졌는데, 연락하면 날 더 싫어할까봐 무서웠어요.<br><br>말하지 그랬어요.<br>그런 고민이 있는줄 몰랐어요.<br>전 말해주지 않으면 잘 몰라요.<br>준비한것도 많았는데, 제가 너무 서툴러서 그랬나봐요.<br>혼자만 설레고 있었나봐요.<br>이젠 안그럴께요. 자신있어요.<br><br>당신이 저한테 쓴글 봤어요.<br>한가지는 바로잡고 싶어요.<br>당신이 편지받는걸 좋아해서 편지를 드린게 아니에요.<br>전 말을 잘 못해서, 당신과 있을때 제 마음을 잘 표현하지 못해요.<br>그래서 편지를 드린거에요.<br>전 여자랑 말을 잘 못하잖아요.<br>떨려서 하고픈 말 못하고 헤어진 날이면 편지를 썼던 거에요.<br><br>제가 좋아하는 영화도 함께 봐줘서 고마워요.<br>당신이 별로 안좋아한다는 것도 몰랐어요.<br>당신도 나처럼 배트맨을 좋아하고, 앤트맨을 좋아하는줄 알았어요.<br>이제야 저도 당신이 좋아하는 영화가 뭔지 알았네요.<br>저도 당신이 좋아할만한 영화 찾아놓을께요.<br><br>우린 대화가 부족했나봐요.<br>이젠 우리 그러지 말아요. 저도 말을 잘해볼께요.<br>당신도 속얘기 들려주세요. 당신에 대해 더 알고 싶어요.<br><br>당신도 제가 좋아하는 영화대사로 편지를 마무리 했었으니,<br>저도 당신이 좋아하는 영화대사로 편지를 마무리 할께요.<br>안나가 했던 말이에요.<br><br>"그럼, 정신나간 소리 하나 해도 될까요?"<br><br><br><br><br>2017년 2월 2일 오후 9:58<br><b>#25613번째포효</b><br><br>대숲, 저희 다시 만나요<br>정말 감사해요<br><br>망망대해에 편지를 병에 넣어 보내는 심정이었는데<br>그게 정말 도착하는 기적같은 일이 일어났어요<br>정말 감사합니다 평생 잊지 못할거에요<br><br>다시 만나고 많은 얘기를 했어요<br>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br>대숲은 어떻게 보게되었는지<br>너무너무 많은 이야기를 했어요<br><br>같이 앉아서 댓글도 하나하나 읽었어요<br>너무너무 소중한 추억을 만들었네요<br><br>저도 댓글단 분들 말씀 공감해요<br>제가 너무했어요<br>다시는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지 않을거에요<br><br>대숲지기분들, 응원해주신분들 모든 분들 다 감사합니다<br>제게 기적을 만들어주셨어요<br>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어요<br>감사합니다 덕분에 너무 행복합니다<br>여러분들 모두 행복하세요<br><br>그리고 전 그날도 편지를 받았어요<br>편지에는 딱 한줄만 씌어있었어요<br><br>"Always." - 스네이프<b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