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지난 일을 돌이켜 볼 때, 그 일이 현실이었는지 꿈이었는지 구별이 안가는 때가 종종 있습니다. <div><br></div> <div>당시에 분명 겪었다고 생각했던 일이, 후일 그 기억을 곱씹어 봤을때 그것이 꿈이었는지 정말 현실의 기억이었는지 구분이 되지 않는 일들이요.</div> <div><br></div> <div>이제부터 할 얘기는 무서운 얘기는 아닙니다. </div> <div><br></div> <div>귀신이라든가 어떤 초자연적인 현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서요.</div> <div><br></div> <div>그래서 이것을 '기담'이라고 제목을 붙여봅니다. 이것은 제가 10여년 전에 겪은 기담입니다.</div> <div><br></div> <div>(아주 예전에 이것을 어느 커뮤니티에 간략하게나마 썼던 적이 있었는데 오유에도 새로 적어봅니다.)</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저는 20대 초반에 겪은 사고로 인해 군복무를 공익근무요원(현 사회복무요원)으로 완료했습니다.</div> <div><br></div> <div>발령된 기관은 서울외곽의 어느 산자락에 위치한 국책연구원이었구요.</div> <div><br></div> <div>이 연구원이 역사가 제법 깁니다. 대략 60년대에 설립되었다고 기억하는데 건물을 보면 그 정도 됐겠구나 생각하게 합니다.</div> <div><br></div> <div><span style="font-size:9pt;">80~90년대 학교에서나 볼 수 있었던 나무로 된 문.</span></div> <div><br></div> <div>낮에도 해가 잘 들지 않는 구조의, 형광등 마저 띄엄띄엄 있어서 늘 어두컴컴했던 복도.</div> <div><br></div> <div>전체적인 분위기가 오래된 병원내지 학교 같았습니다.</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span style="font-size:9pt;">공익근무요원의 일은 기관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저는 일반 사무보조 업무를 하는 직장인과 비슷한 일을 했습니다.</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br></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9시출근, 12시~13시 중식, 18시 퇴근에 단순한 업무지원 성격의 일이었습니다. </span></div> <div><br></div> <div>그리고 저는 주로 점심은 거르거나 간식으로 간단히 떼우고 잠을 잤습니다.</div> <div><br></div> <div>책상에 엎드려자기에는 다른 공무원 선생님들의 눈치도 보이고 예의도 아니라고 생각해서 건물안의 적당한 곳을 찾던 도중</div> <div><br></div> <div>저보다 먼저 복무를 시작한 선임이 언젠가 말했던 지하의 창고가 좋겠다 싶어서 그곳에서 주로 잠을 잤습니다.</div> <div><br></div> <div>이곳은 7평 정도의 공간이지만 층고가 매우 높았습니다.</div> <div><br></div> <div>제 키가 190이 좀 안되는데 그걸로 유추해보니 대략 4m정도였던 걸로 기억합니다.</div> <div><br></div> <div>그곳에 철제 앵글이 'ㄷ'자 형식으로 벽을 따라 놓여있었고 앵글에는 갖가지 물건들이 정신없이 쌓여있는 창고였습니다.</div> <div><br></div> <div>층고가 높았기 때문인지 아니면 그냥 조명이 부족함 때문이었는지 딱 하나 있던 형광등을 켜봐도 굉장히 어두웠습니다.</div> <div><br></div> <div><span style="font-size:9pt;">어쨌든 저는 그 철제 앵글 위로 올라가 그 위에서 잠을 잤죠.</span></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처음에는 몰랐지만, 점심시간에 그곳에서 잠을 한 숨 자고 나오는게 거의 일상이 될 무렵쯤이었던 것 같습니다.</div> <div><br></div> <div>이곳에서 잘때 조금 기이하달까... 이상한 점이 있었습니다.</div> <div><br></div> <div>2~3시간을 잔 것 처럼 느껴져 깜짝 놀라 일어나 시계를 보면 고작 10여분이 지났다거나...</div> <div><br></div> <div>분명 큰 치찰음 같은 소리에 잠을 깼는데 조용하다든가...</div> <div><br></div> <div>장난치기 좋아하는 후임이 잠자는 저를 툭툭 치고 도망간걸 잠결에 분명 봤는데 알고보니 그 친구는 오전에 이미 외근을 나갔었다든가...</div> <div><br></div> <div>대략 이런 것들이었습니다만 저는 그 모든게 잠결에 겪은 일이라 기분이 조금 찝찝해도 착각한거겠거니 생각했습니다.</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그렇게 그 곳에서 삐대는 날이 계속 됐고 책장 넘기는 소리가 들린다거나 하는... 지금 생각하면 찝찝한 일이 종종 있었지만 역시나 그때는 잠결이라 착각한거겠거니 넘어갔는데</div> <div><br></div> <div>어느 날 부터는 한 층 더 이상한 경험을 하기 시작했습니다.</div> <div><br></div> <div>저는 꿈을 잘 안 꾸는 편인데 어느 때 부턴가 그 곳에서 잘때면 무조건 꿈을 꿨습니다.</div> <div><br></div> <div>꿈꾸는게 뭐 이상한게 있나 싶겠지만 그게 항상 똑같은 장소가 나오는 꿈이라면 얘기가 좀 다릅니다.</div> <div><br></div> <div>장소는 바로 그 방이었습니다.</div> <div><br></div> <div>위에서 내려다 보는 시점이었습니다.</div> <div><br></div> <div>그게 꿈 내용의 전부입니다.</div> <div><br></div> <div>다만 그 광경을 cctv 화면을 보듯 아무 변화 없이 계속해서 보고 있다는게 조금 소름 끼쳤죠.</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이쯤되니 좀 무서워졌습니다. 그 순간 순간 잠결에 착각했다고 생각했던걸 되짚어보니 아무리 착각이라고는 해도 그 횟수가 너무 많았어요. </div> <div><br></div> <div>그래서 그곳을 1년여간 찾지 않았습니다. 어쩔 수 없이 그 곳에 물건을 찾으러 갈때도 별의 별 이유를 붙여 꼭 다른 사람과 함께 갔습니다.</div> <div><br></div> <div>자연스레 점심시간에 잠을 자던 습관도 고쳐졌습니다.</div> <div><br></div> <div>그리고 시간이 지나 그때 느꼈던 감정도 무뎌져 그곳에서 있던 일은 단순 해프닝 정도로만 기억될 쯤이었습니다.</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공익근무요원은 기관장의 허락하에 복무에 지장을 주지 않는 한 아르바이트등의 부업을 할 수 있었습니다. 저도 얼마 안되는 월급으로는 생활이 힘들어 새벽까지 아르바이트를 했구요.</div> <div><br></div> <div>잠이부족했죠. 항상. </div> <div><br></div> <div>그래서 이제는 무서운 기억이 많이 희석된 그 지하 창고를 다시 찾아가서 예전에 늘 그랬듯이 철제 앵글 위로 올라가 잠을 청했습니다.</div> <div><br></div> <div>그리고 그 날 바로 또 꿈을 꿨습니다. 예의 그 꿈이요.</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그런데 이 번엔 조금 달랐습니다.</div> <div><br></div> <div>상단에서 바라보고 있는 시점이나 cctv를 보는 듯한 광경을 보고 있는건 마찬가지였지만</div> <div><br></div> <div>이번엔 그곳에 사람들이 있었습니다.</div> <div><br></div> <div><span style="font-size:9pt;">10여년이 지난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span></div> <div><div><br></div> <div>대략 대여섯 명의 사람들이 서로서로 앞 사람의 어깨에 두 손을 올리고 일렬로 그 방을 빙빙 돌고 있었습니다.</div> <div><br></div> <div>검은색 줄무늬 원피스 같은 옷을 입은 여자를 선두로 대 여섯명이 소리없는 어떤 규칙이나 구령에 맞춘것처럼 빙빙 돌고 있었고</div> <div><br></div> <div>물리적으로 말도 안되는 공간 왜곡이 있었습니다. 바닥이 파도처럼 출렁거린다든가 사각형의 방이 누군가 좌우로 비트는 것처럼 늘어나고 줄어들곤 했습니다.</div> <div><br></div> <div><br></div></div> <div><br></div> <div><br></div> <div>그 광경을 보면서 느꼈던 <span style="font-size:9pt;">정말 이상한, 태어나서 처음 느껴봤던 종류의 감정이 어렴풋이 기억이 납니다.</span></div> <div><br></div> <div><span style="font-size:9pt;">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다는 말로 밖에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 정도로 현실감이 있는 동시에 </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br></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상황 자체가 말이 안되기에 꿈이라고 밖에는 생각 할 수 없는 정말 이상한 느낌이었습니다.</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br></span></div> <div>무섭다는 감정이 아니라 오히려 괴이하다는 감정에 가까울 것 같습니다.</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일이 여기까지였다면 그냥 또 해프닝이겠거니 꿈이겠거니 지금도 생각하고 있겠지만</div> <div><br></div> <div>그렇게 아주 한참을 빙빙 돌던 사람들이 멈춰 서서 이 쪽을 보며 검은색이라고 밖에 표현 할 수 없는 크게 벌린 입으로 온갖 괴이한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을때</div> <div><span style="font-size:9pt;"><br></span></div> <div>무언가 이상한 일이 분명하게 일어났다고 느꼈고 빨리 이곳을 벗어나야한다는 생각을 그때서야 했습니다.</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기차가 급제동할때 나는 엄청난 굉음의 쇳소리.</div> <div><br></div> <div>피아노의 가장 높은 음의 건반을 매우 빠르게 연타하는 소리.</div> <div><br></div> <div>정규방송시간 외 화면조정중이라는 화면이 송출될때의 '삐'하는 전자음.</div> <div><br></div> <div>오래된 가전제품에서 나는 고주파음.</div> <div><br></div> <div><span style="font-size:9pt;"><br></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br></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br></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대략 '이런 느낌'의 소리들이 전부 섞여서,</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br></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태어나 들어본 어떤 소리보다 더 큰 소리로,</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br></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그 검고 깊이감이 느껴지지 않는 그 들의 입(이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는 곳)에서 버퍼링 걸린 스트리밍 음악 마냥 불규칙하게 끊기며 들려왔습니다.</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br></span></div> <div>말로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소리였습니다. </div> <div><br></div> <div><span style="font-size:9pt;">그 광경을 그저 계속해서 보고 듣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정말 굉장한 스트레스였습니다.</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br></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짜증이나서 빡친다는 종류의 스트레스라기보다 도저히 내 의지로 어쩔 수 없을 정도의 무엇을 받아들이고 있는 그 상황자체의 무력감, 공포감에 의한 스트레스였던 것 같습니다. 코즈믹호러라고 해야할 지도 모르겠습니다.</span></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그러다 어느순간 그것이 다 없어졌습니다.</div> <div><br></div> <div><span style="font-size:9pt;">드디어 내가 현실이라고 지각할 수 있을만한 곳으로 돌아(?)왔습니다.</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br></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그것이 단순히 </span><span style="font-size:9pt;">꿈에서 깬건지, 내가 뭘 잘못 줏어먹고 환각 같은것을 본건지, 그것도 아니면 평생 가위눌린적이 없었는데 이게 그런 것이었는지...</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br></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잠에서 깰때 꿈과 현실이 기상이라는 행위로 확실하게 분절되어 있어 어떤 것이 꿈이고 현실인지 분간 할 수 있는 형태가 아니었습니다.</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br></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아직도 그 괴이한 광경속에서 현실로 돌아올때까지의 확실한 기억이 없습니다. 그냥 짐작할 뿐입니다. '꿈에서 깬 거겠지'하면서요.</span></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그렇게 대략 3m정도 되는 그 철제 앵글에서 거의 떨어지다싶이 내려와 정신없이 건물 밖으로 나왔습니다.</div> <div><br></div> <div>밖은 화창했고 점심을 먹고 들어오는 연구원 사람들이 있는 아주 일상적인 보통의 풍경이었습니다.</div> <div><br></div> <div>얄밉고 억울하면서도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섞인 기분으로 심각하게 두근대던 놀랜 가슴을 진정시키며 30분여간 줄담배를 피우다가 겨우 다시 자리로 복귀했습니다.</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이야기는 여기서 끝입니다.</div> <div><br></div> <div>사실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그저 이상한 꿈을 꾼 것 뿐일지도 모릅니다.</div> <div><br></div> <div>유독 그 곳에서는 괴이한 해프닝이 자주 있었지만 잠결에 겪은 착각이었을뿐일지도 모르고</div> <div><br></div> <div>마지막으로 봤던 꿈의 광경은 이러한 착각이 무의식에 쌓이고 쌓여 만들어낸 악몽일 뿐일지도 모릅니다.</div> <div><br></div> <div>그래도 그 곳에서 마지막으로 보았(다고 생각하는)던 광경은 이전에 없던 새로운 종류의 감정을 느끼게 해주었습니다.</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귀신이 나오는 영화를 보거나 정말 무서워 보이는 놀이기구 앞에서의 긴장감 등의 두려움을 아득히 뛰어넘는 감정이었는데</div> <div><br></div> <div>이것을 저는 '공포'라고 짐작해봅니다. 흔하게 얘기하는 감정이지만 그 감정의 깊이를 제대로 겪어보았다고 생각합니다.</div> <div><br></div> <div>일순 전기에 감전되고 있는 것처럼 온몸의 모든것이 날카로워 지는 듯한 소름과 함께 밀려오는, <span style="font-size:9pt;">내가 절대로 어떻게 무엇을 할 수 없을 거라고 확신되는 엄청난 무력감.</span></div> <div><br></div> <div>날것 또는 정말 원초적인 감정을 느꼈던 기이한 경험이었습니다.</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이후 남은 복무기간을 사고없이 잘 마치고 소집해제되어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div> <div><br></div> <div>생활 동선이 그 동네와 겹치지 않아 그 연구원 근처를 지날일이 별로 없습니다만</div> <div><br></div> <div>우연히 한 번 그 곳을 지날때 발령초기 선임이 했던 얘기가 생각났습니다.</div> <div><br></div> <div>그 지하창고와 관련된 얘기들, '저기서 귀신나온다ㅋ' 같은 으레 어두컴컴한 장소를 보면 말 하는 우스갯 소리인 줄 알았던 그 말들이</div> <div><br></div> <div>실은 그 선임도 그 곳에서 겪은 어떤 해프닝 때문에 했던 말들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요.</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어떤 평범한 날에 겪었던 기담이었습니다.</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