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BED height=300 width=400 src=http://pds24.egloos.com/pds/201206/23/71/06_My_Machine.swf wmode="transparent"> <P><BR><BR><BR>편의점 사장에게 삼십 분만 일찍 교대를 부탁했다.<BR>사장은 별일이라는 듯 꼬치꼬치 캐묻다가 순순히 자신이 삼십 분을 채워주겠다고 했다.<BR><BR>스토커가 누구인지 알고 싶었다.<BR><BR>아니, 이제는 내 스스로가 그 사람을 스토커라고 여기는 것조차 웃기는 일이었다.<BR>나는 그를 위해 방의 문을 열어주고, 음식을 준비했으며, 다시 찾아오라는 메모를 남겼다.<BR><BR>그 사람은 내 인생의 몇 안 되는 손님이었다.<BR><BR>편의점을 마치고 집까지 온 힘을 다해서 달렸다. 단지 삼십 분만 일찍 끝냈다고<BR>그를 확인 할 수 있는 확실한 보장이 없었으며, 나는 그 남자가 집에서 나오는 것을<BR>직접 마주하기보다는 한켠에 숨어 몰래 그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그를 위해서<BR>더 좋은 방법일 것이라고 생각했다.<BR><BR>집으로 향해 계단을 오르던 순간 잠깐 익숙한 얼굴이 스쳐지나 갔다.<BR>나는 방문을 향해 달리던 것을 멈추고 계단을 다시 내려가 그 남자의 얼굴을 확인해야 했다.<BR><BR>그 남자를 불러 세웠을 때, 그 남자의 얼굴을 확인했을 때.<BR><BR>"아저씨, 여기사세요?"<BR>"아니요."<BR>"네, 저도 아저씨 본적 없는 것 같아요."<BR>"그래서요?"<BR>"여기 왜 오셨어요?"<BR><BR>그 남자는 당연히도 자신이 스토커라는 것을 부정했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BR>내가 아는 얼굴. 편의점에 매일 같이 들려서 담배를 사가는 사람. 편의점 밖에서<BR>기웃기웃 나를 엿보던 사람.<BR><BR>그를 돌려보내고 방으로 들어갔을 때, 모든 메모지가 사라져 있는 것을 확인했다.<BR>그 사람이 확실하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그가 다시는 나를 찾아오지 않으면 어떡하나<BR>하는 걱정이 들었다. 너무 드세게 그를 몰아 치진 않았나 자신을 탓하고 있는 나를<BR>눈치챘을 때는 내가 그에게 얼마나 빠져들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BR><BR>다시 그가 편의점에 찾아들었을 때는 표현 할 수 없는 기쁜 마음이 일었다.<BR>여전히 나의 방에 들려주는 것이 안심되었다.<BR><BR>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는 일이 줄어들고, 방을 꾸미거나 그 사람이 다시 찾아올 것을 기다리며<BR>메모를 남겼다. 내가 남긴 메모의 의도를 알고 그대로 움직여주는 그 사람.<BR><BR>처음 그의 뒤를 쫓았을 때, 혹여 남자가 뒤를 돌아볼까 노심초사였지만,<BR>그는 길을 걸을 때 곧잘 땅만 쳐다보며 걷고는 했다.<BR><BR>열쇠를 손에 넣는 것은 의외로 순조로웠다.<BR><BR>"아가씨 못 보던 분인데?"<BR><BR>그의 방 문 앞에서 들어가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는 나에게 어떤 아주머니께서 말씀을 걸어오셨다.<BR>아주머니는 의심의 눈초리인지 호기심의 눈초리인지 애매한 태도로 나를 경계하며 다가왔다.<BR><BR>"아, 저희 남자친구네 집인데요. 지금 열쇠가 없어서..."<BR>"여기 총각 여자친구야? 어마! 이쁘네~."<BR>"아, 하하..."<BR>"열쇠가 왜 없어. 남자친구 부르면 안 돼?"<BR>"지금 일가서 좀 그러네요. 제 서류가방이 안에 있는데."<BR>"아침에 두고나왔구만?"<BR><BR>아주머니는 무엇이 그리도 신이 나는지 싱글벙글하며 나의 거짓말에 일단일조 장단을 맞춰왔다.<BR><BR>"관리 아줌마 불러줄까? 열쇠 금방 가지고 올 텐데."<BR>"정말요? 그러면 감사하죠."<BR><BR>관리자를 기다리는 동안 아주머니에게 계속해서 거짓말을 했다. <BR>결혼을 하기로 했다. 사귄 지 2년이 넘었다. 일만 해서 서운하다.<BR>내가 가끔 찾아오지 않으면 방이 개판이다. 술을 너무 좋아해서 탈이다.<BR><BR>아주머니는 내가 꺼내는 거짓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재미있는 듯 우리의 거짓 연애담에 푹 빠져들었다.<BR>나도 내가 어째서 그렇게까지 술술 거짓말을 뱉을 수 있는지 의아스러웠다. 거짓말을 하면서<BR>이 거짓말의 현실성이 느껴지는 것이 즐거웠다.<BR><BR>"여기 열쇠."<BR><BR>관리자 아주머니께서 시큰둥한 얼굴을 하며 열쇠를 건넸다.<BR><BR>"똥 씹다 왔어? 얼굴이 왜 그래?"<BR><BR>아주머니가 관리자분을 나무라자 관리자 아주머니는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BR><BR>"여기 총각 혼자 사는데?"<BR>"왜 혼자 살면 여자친구도 못사귀어?"<BR>"아니, 아는 사람 맞는 건지."<BR>"아! 됐어 무슨 내가 여기 살면서 이 처녀 얼굴을 한두 번 봤는지 알어? 괜찮아."<BR><BR>아주머니가 대뜸 얼토당토 안는 거짓말을 했다.<BR>만난지 삼십 분 남짓 아주머니는 나에게 이상하리만치 깊은 신뢰를 갖은 듯 했다.<BR><BR>"아, 나 지금 부동산에 손님 와계시니까. 그쪽으로 좀 가져다줄 수 있어요? 저기 바로 앞인데."<BR><BR>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관리자 아주머니는 급하게 발을 돌렸다.<BR>나와 장단을 맞춰주던 아주머니는 내 등을 두드리더니<BR><BR>"남자는 혼전에 확실히 잡아 놔야되! 알았지? " 하며 계단을 올라가셨다.<BR><BR>내가 웃으며 고개 숙여 인사를 하자 함박웃음을 머금으시며 계단에 오르는 아주머니.<BR>손 위에 열쇠를 바라보며 내가 근 한 시간여 동안 거짓말을 하며 이루어낸 것들이 믿겨지질 않았다.<BR><BR>열쇠를 따고 방에 들어섰을 때.<BR><BR>그의 방은 뭐랄까. 향이 없었다. 남자들의 냄새. <BR>그리고 또 특별히 뭐라 콕 찍어 설명이 힘들었지만,<BR>이곳은 남자의 방이라는 뉘앙스가 없었다.<BR><BR>꼭 남자들이라고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이 방에는 그 흔한 여자 연예인이나, 게임 포스터조차 한장 보이지 않았다.<BR><BR>커튼이 걸리지 않은 창문에는 어설픈 페인트칠이 볼품이 없었고,<BR>침대는 순 시커먼 진 남색의 민무늬 커버로 재미없는 물건들뿐이었다.<BR><BR>냉장고 안에는 요리할 수 있는 식재료 따윈 들어있지 않았다.<BR>물, 맥주 몇 캔, 언제부터 얼어붙어 있는지 가늠이 안 되는 고기 한 덩어리.<BR><BR>15인치 즘으로 보이는 작은 TV와 그 옆에 오히려 TV보다 커 보이는 모니터가 하나<BR>컴퓨터와 함께 책상도 아닌 조막만 한 작은 테이블 위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BR><BR>옷장 속은 남자의 옷장이란 느낌을 풍기며 별 옷이 들어있지 않았다.<BR>확실히 내가 그를 보아왔던 옷들이 대부분으로 그는 옷을 몇 벌 갖고 있지 않은 것 같았다.<BR><BR>방을 둘러보다 졸업앨범을 찾아 앨범을 뒤적이며 그를 찾았다.<BR>졸업 사진의 고등학생 시절의 얼굴이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아 금방 그를 찾아낼 수 있었다.<BR><BR>2006년 졸업생. 이름 김성민.<BR><BR>어릴 적부터 어두운 상이었 다는 것을 알았다. 물론 지금 모습을 보면 예상이 어려워 소스라칠<BR>만한 일도 아니었지만, 그래도 지금의 모습보다는 밝아 보이는 느낌이 마음을 뭉클하게 만들었다.<BR><BR>컴퓨터를 켜자. 바로 윈도우 화면으로 전환되었다.<BR><BR>하드디스크 내용물을 살살 뒤져보자, 순 게임과 영화 그리고 몇몇 야동이 나왔다.<BR>남자란 별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약간 실망감이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BR><BR>웃음이 나왔다. 메모지에 휘둘려주는 상냥한 스토커가 그래도 남자는 남자였다.<BR><BR>한참 방을 뒤져보고는 텅텅 비어있는 방의 살풍경이 마치 남자의 삶을 대변하듯 느껴졌다.<BR>나를 스토킹하는 남자에게 이런 생각은 모순되었지만, 나는 김성민이란 남자를 동정하게 되었다.<BR><BR>이 사람에게 이 이상 빠져들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이<BR>들면서도 발이 방을 떠나지질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BR><BR><BR><BR><BR><BR><BR>-7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