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BED src=http://pds24.egloos.com/pds/201206/23/71/06_My_Machine.swf wmode="transparent"> <P><BR><BR><BR>"대구라고."<BR><BR>"네?"<BR><BR>"아, 대구 인마 대구, 대구라고."<BR><BR>과장이 잔뜩 인상을 구기며 나를 노려봤다.<BR><BR>"내일 바로 출발이에요?"<BR><BR>"왜? 못 가?"<BR><BR>못 간다는 한마디를 기다린다는듯 과장은 비웃음을 흘렸다.<BR>못 간다는 대꾸를 할 수 있을 리 없다. 더러운 새끼.<BR><BR>이번 주말에는 지영씨의 방에 들려볼 예정이었다.<BR><BR>주말을 끼워서 2주 동안 까지 대구에 붙어있어야 한다니,<BR>나의 스토커 생활에 적신호가 들어오고 있었다.<BR><BR>퇴근길 편의점에 들려야 했다. 앞으로 거의 3주 동안 그녀와는 교류가 없을 것이다.<BR>일단 얼굴은 한 번 보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멈추질 않았다.<BR><BR>편의점 앞, 투명한 유리 뒤로 비춰 보이는 그녀는 다음 교대자와 인수인계를 하고 있는 듯 보였다.<BR>편의점 안으로 들어서자, 그녀는 "어서 오세요." 라며 반사적으로 인사를 했다.<BR><BR>"마일드세븐 하나 주세요."<BR><BR>"각으로 드릴까요. 팩으로 드릴까요?"<BR><BR>인수인계를 받고 있던 남자가 내가 물었다. 그녀는 내 대답을 들을 필요도 없다는 듯<BR>각을 꺼내 들고는 능숙한 손놀림으로 바코드 찍었다. 그녀는 고개를 숙인 체<BR>담배각을 계산대 위에 얹으며 스윽 나를 향해 밀었다.<BR><BR>"2,700원입니다."<BR><BR>"아니에요. 죄송합니다. 보루로 주세요. 한보루."<BR><BR>"예?"<BR><BR>그녀가 적잖이 당황하는 기색을 보이며 고개를 들었다.<BR><BR>거의 매일같이 퇴근길에는 이 편의점에서 담배를 한 갑씩 사갔다.<BR>다음날 일이 있는 날은 한 갑, 쉬는 날은 두세 갑.<BR><BR>한 보루를 샀던 것은 그녀를 스토킹하고 나서부터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BR><BR>멍하니 서 있는 그녀를 보던 남자 점원이<BR>어물쩡 거리다가 테이블 밑에서 담배를 한보루 꺼내 들었다.<BR><BR>"27,000원입니다."<BR><BR>카드를 내밀며 그녀를 슬쩍 쳐다보았다. 내 나름대로는 한동안<BR>편의점에는 찾아올 수 없다는 신호를 보내주고 싶었다.<BR><BR>표정이 굳어가는 그녀에게 어떻게 설명할 길은 없을까 고민을 해봤지만,<BR>순간 저번 현관 앞에 붙어있던 메시지가 떠오르며 온몸에 기운이 빠지는 느낌을 받았다.<BR><BR>'걱정 마세요. 이 이상은 다가서려고 하지 않을게요.'<BR><BR>이 이상 내게도 다가오지 말라는 통보처럼 느껴졌다.<BR><BR>내 방에 얼마든지 놀러 오세요. 제 얼굴을 보러 편의점에 찾아오세요.<BR>저도 당신의 방에 찾아가도 되죠? 편의점에 찾아오는 당신을 기다려도 되죠?<BR>하지만 우리 이 이상으로는 발전하지 말아요.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BR><BR>그녀의 당황스러워하던 표정이 마음에 밟혔지만<BR>성실한 스토킹을 하기 위해서 생업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BR><BR>어떻게 하면 조금 더 빨리 돌아올 수 있을까 하는 궁리를 하며, 다음날 대구행 버스에 올랐다.<BR><BR>대구지사에는 내가 손봐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BR><BR>바로 다음날 출장을 떠나라는 말이 날 괴롭히기 위한 것으로 생각했었지만,<BR>막상 도착해보니 의외로 정말 많이 바쁜 상황이었다. 과장이 나를 마냥 떨거지처럼<BR>생각했던 것도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BR><BR>예정보다 하루 일을 일찍 마치고 집으로 향했다.<BR>그동안 지영씨와 교류가 끊기는 것이 일하는 내내 마음에 걸렸다.<BR><BR>동네 어귀에 접어든 나는 편의점에 들러 지영씨의 얼굴을 먼저 보고 싶었다.<BR><BR>"2,700원입니다."<BR><BR>처음 보는 여학생이 내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았다.<BR><BR>"카드로 하실 건가요?"<BR><BR>"새로 오셨나 봐요?"<BR><BR>아르바이트생은 내게 찝쩍거리지 말아 달라는 듯 인상을 구겼다.<BR><BR>"네, 그런데요."<BR><BR>"전에 계시던 분은요?"<BR><BR>"예?"<BR><BR>"전에 계시던 여자분이요. 여기서 일 년도 넘게 일했는데요."<BR><BR>자신도 급하게 뽑힌 아르바이트라 자세한 사항은 잘 모르지만, 갑자기 자리가 빈 이유가<BR>주말이 지나고 월요일부터 지영씨는 편의점에 출근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고 했다.<BR><BR>"무슨 일 있는 거 아니에요?"<BR><BR>"저야 모르죠."<BR><BR>"아무도 확인 안 해봤데요?"<BR><BR>"몰라요."<BR><BR>바로 편의점을 빠져나와 지영씨의 집으로 향했다.<BR>이미 주변이 어둑해졌는데도 지영씨의 방 창에선 불빛 하나 새어나오지 않았다.<BR><BR>열쇠를 조심히 돌리며 발소리가 안 나게 그녀의 방으로 들어갔다.<BR><BR>불 꺼진 방, 조용한 것이 사람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최대한 소리를 죽이며<BR>신발을 벗고 방에 올라 방을 한 바퀴 돌아보았으나, 역시 그녀는 집에 없었다.<BR><BR>'이거 아직 안 봤죠?' 하는 메시지가 책장에 붙어있었다.<BR><BR>냉장고 위에는 '맥주 사놨어요. 드시고 가세요.' 라는 메시지가,<BR>화분 위에는 "이거 물 얼마나 주는 거에요?'하는 메시지가,<BR>그 이외에도 방 이곳저곳에 내가 찾아올 것을 기다린 듯 붙여놓은<BR>메시지들이 사방에 널려있었다.<BR><BR>왜 편의점을 관뒀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집으로 향했다.<BR>마치 이별이라도 한 연인처럼 마음이 무거워졌다.<BR><BR>우리가 연인이었다면 나는 무차별적인 이별통보를 하고 사라진 꼴이나 마찬가지였다.<BR>그녀가 떠났을 곳을 예상해보려 애썼지만, 나는 그녀의 스토커임에도 불구하고 그녀에 대해서<BR>알고 있는 것이 별로 없었다. 그녀가 사는 방. 그녀가 일하는 편의점.<BR><BR>나는 스토커 실격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잠기며 집 앞에 들어서자<BR>집 앞 현관에는 그녀가 쓴 것으로 보이는 수십 장의 메시지가 붙어있었다.<BR><BR>'어디 갔어요?', '언제 와요?', '제가 무슨 잘못한 거에요?', '제가 찾아오지 않는 편이 좋았어요?'<BR>'다시는 안 그럴게요.', '죄송해요. 다시 왔어요.', '제가 싫어졌어요?', '돌아와요.'<BR><BR>'나쁜 놈. 스토커 주제에...'<BR><BR>방문을 열고 현관에 들어서면서부터 집안이 난장판이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BR>주방의 식기는 전부 거실바닥에 깨져서 난잡하게 흩어져있었고 냉장고는 열린체 붉은빛을<BR>뿜어대고 있었다.<BR><BR>거실 벽에는 알 수 없는 검붉은 자국이 번져있었다. 순간 피인 줄 알고<BR>소스라치게 놀랐으나 주변을 보니 반찬 가지를 집어던진 흔적으로 보였다. <BR><BR>수많은 글이 벽지위에 적혀있었다. 벽지를 새로하지 않는 이상 지울 수 없는 낙서들.<BR><BR>'니가 먼저 좋아했잖아.', '개새끼.', '죽여버릴꺼야.', '어디로 사라졌어.', '왜 사람 가지고 놀아.'<BR><BR>착잡한 기분이 들어 한숨이 절로 나왔다. 발밑에 난잡하게 늘어진 물건들을 발로 살살 밀며<BR>조심스럽게 방문의 손잡이를 잡았을 때, 방문에 붙은 메시지가 눈에 들어왔다.<BR><BR>'저, 여기서 기다릴래요.'<BR><BR>문을 열어젖히자 침대 위에서 곤히 잠든 그녀가 보였다.<BR><BR><BR><BR><BR>-4부 끝-<B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