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최근 역사스페셜에서 임시정부 외무총장 박용만에 관해 방송을 했습니다.</p><p><br></p><p>흔히 인식하기로,</p><p>교육으로서 독립을 쟁취하려고 한 대표적인 인물이 안창호 선생.</p><p>외교로서 독립을 쟁취하려고 한진 잘 모르겠지만 암튼 외교를 중시한 이승만.</p><p>정도가 있습니다.</p><p><br></p><p>그렇다면 무장투쟁은? </p><p>한 평생 무장투쟁에 의한 자주독립을 꿈꾼 인물이 박용만 초대 외무총장입니다.</p><p><br></p><p>역사를 공부하다보면, 연결고리가 이상하게 맞지 않는 부분이 참 많습니다.</p><p>박용만 또한 그러한 인물인데요. 이번에 역사스페셜에서 꼼꼼히 그의 삶을 이야기 했습니다.</p><p><br></p><p>짧게 설명드리자면,</p><p>미국, 네브라스카에서 군사학교를 설립. 이후 하와이에서 군사학교를 이어갑니다.</p><p>일본에서 미국정부에 강력하게 제재를 가할 것을 요청할 정도로 체계적이며 근대적인 군사학교입니다.</p><p>또한 미주내 한인들을 규합하여, 독립자금을 마련하는 한편. 군사학교를 더욱 더 다잡아 갑니다.</p><p><br></p><p>그러던 도중, 의형제인 이승만이 하와이에 왔고.</p><p>두 거물이 대립. 그로인해 미주내 한인 또한 분열합니다.</p><p>끝내 이승만이 하와이를 장악. 박용만은 베이징에서 새로히 무장투쟁을 준비합니다.</p><p>미주한인들이 다달이 모은 자금은 독립운동 자금 중 가장 큰 규모였던 것으로 알려집니다.</p><p>하지만 이승만이 하와이를 장악한 이후 자금은 끊깁니다.</p><p><br></p><p>박용만은 하와이에 임시정부 총본부를 꾸릴 것을 꿈꿨던 것으로 알려집니다.</p><p>하지만 더 이상 하와이의 실권을 유지할 수 없었고, 후에 이승만 또한 상해임시정부의 초대 대통령에 추대됩니다.</p><p><br></p><p>박용만은 그 이후도 중국 내 군벌들과 세력을 규합하는 등, 무장투쟁에 대한 자신의 신념을 놓지 않습니다.</p><p>그 후 블라디보스톡에 가는 길을 베이징 - 만주 - 블라디보스톡으로 향하지 않고,</p><p>상해, 일본과 한반도를 거쳐 블라디보스톡으로 갑니다. 이때 조선총독을 만나 자금을 지원받았다는 설에 휩싸입니다.</p><p>그리고 반역자로 낙인이 찍힙니다.</p><p><br></p><p>이후 베이징 그의 자택에서 의열단원 이해명의 총에 의해 피살됩니다.</p><p>물론 기록에는 피살이 아닌, 처형으로 남아있습니다. 반역자를 처형했다는 것이겠죠.</p><p><br></p><p>역사스페셜의 어감은 박용만에 대한 아쉬움입니다.</p><p>박용만은 이해명에 의해 피살되기 직전까지도 중국 내 군벌들과 힘을 합치려고 하는 등,</p><p>반역행위가 아닌 애국행위를 했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그렇다면 이해명은 왜 박용만을 처형한걸까요.</p><p>정작 우리는 기억해야할 사람 대신, 기억하지 말아야할 사람을 기억하는게 아닐까요.</p><p><br></p><p><br></p><p>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안창호 선생이든, 이승만이든 그들의 노선에는 무리가 있습니다.</p><p>그나마 교육을 통해 실력을 키워 자주독립을 꿈꿨던 안창호 선생의 말에는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p><p>그런식으로 민족을 유지하고, 엄청난 돈의 힘으로 나라를 다시 세운 민족이 유대인이잖아요.</p><p>교육을 통해 민족관, 국가관을 확고히 유지하고. 또한 교육을 통해 개개인의 실력이 향상되면 못할 것도 없습니다.</p><p>또한 안창호 선생은 진정으로 독립을 꿈꾸고, 민족을 사랑하는 분이셨기에 그의 가치관을 존중합니다. 아니 존경합니다.</p><p><br></p><p>이승만의 경우는 어떤가요.</p><p>일단 나라가 없는데 외교라는 행위 자체가 가능하지가 않잖아요?</p><p>나라도 없고 힘도 없고, 그렇다고 군대가 있는 것도 아닌데 무슨 수로 외교를 할 수 있나요.</p><p>게다가 2차대전 이전까지 일본은 열강의 한 축이고, 1차대전의 승전국인데. 도데체 어떻게 해야 외교를 통해 독립을 꿈꿀까요.</p><p>이승만이라고 한들 외교로 독립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그냥 허울이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입니다.</p><p><br></p><p>그의 행적을 일일히 거론할 필요조차 없지만,</p><p>우리는 그렇게 이승만을 초대대통령으로 만들어줬습니다. 전형적인 기회주의자에 극렬한 반공주의자를 말이죠.</p><p>역사는 되풀이 되듯이, 그 후 친일파가 일제에 지배당했던 나라의 대통령이 됐고.</p><p>그리고 이제는 그 친일파의 딸이 대통령이 되겠답니다.</p><p>생각하는 것 자체로도 기분이 나쁘지만, 이러다가 정말 대통령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p><p><br></p><p>역사에 만약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죠.</p><p>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을 상상하는 것 또한 역사의 단면이라고 생각합니다.</p><p><br></p><p>그때 이승만이 하와이를 가지 않았더라면.</p><p>박용만이 무장투쟁의 힘을 키워 결국 국내진공에 성공을 했더라면.</p><p>자주국이 될 수 있는 정도의 힘을 열강들에 보여줄 수 있었더라면.</p><p><br></p><p>그래서 이승만이 대통령에 추대되지 않았더라면.</p><p>그럼 지금 대한민국은 어떤 모습일까요?</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