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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9동1201호님의
    개인페이지입니다
    가입 : 14-09-16
    방문 : 71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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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9동1201호님의 댓글입니다.
    번호 제목 댓글날짜 추천/비공감 삭제
    163 사업실패로 원양어선 탄 후기 2 (스압주의) [새창] 2016-04-15 22:24:09 0 삭제
    와 재미있습니다! ^^
    162 땀돌이 탈을 벗으며 [새창] 2016-04-13 00:38:15 11 삭제
    지방시 작가 309동1201호입니다. 저도 정의당을 지지하고 당신을 응원합니다. 고맙습니다.
    161 지방시를 기억하십니까? [새창] 2016-04-12 16:13:27 1 삭제
    저도 지지합니다.

    https://m.facebook.com/story.php?story_fbid=530254170491962&id=330014220515959¬if_t=like¬if_id=1460443445266387&ref=bookmarks
    160 크림빵 뺑소니 판결 나옴요^^* [새창] 2016-03-25 01:53:31 0 삭제
    이건 무슨...
    159 카카오 대리운전사업 본격화…'카카오 드라이버' 출시 [새창] 2016-03-08 02:35:38 0 삭제
    기사 등록했어요 ^^
    158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를 쓰신 김민섭 선생님(309동1201호)께. [새창] 2016-02-29 11:24:00 5 삭제
    * 아래의 글은 저의 페이스북 페이지에 한 답글을 그대로 인용한 것입니다. 배 교수께서 페이지에도 글을 남기셨기에 답했는데 여기에도 붙여 넣습니다. (http://www.facebook.com/3091201lin)

    배 교수님. 글은 잘 보았고 어제 이미 답글도 달았습니다. 선생님께서 왜곡이고 거짓이라 말씀하신 부분들, 참 가슴 아픕니다. 저의 급여액이 560만원이라고 적은 것은 시간강사의 평균 연봉으로 널리 알려진 액수이고, 말씀드렸듯 저의 신원을 숨기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강의명과 강의동 이름을 변경한 것과 같은 맥락이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받은 1100~1500의 강의 급여액과는 차이가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실명을 공개한 이후에는 저의 급여액이 1000만원 내외였다고 공식적으로 말하고 있고, 그것은 사실과 다르지 않습니다. 책에 표기된 부분은 다음 쇄를 찍을 때 수정하는 것을 출판사와 협의하겠습니다. 그 외에 모든 부분은 사실과 다른 점이 없음을 명확히 합니다.

    4대보험이 안된다고 한 것에 대해서도 "고용보험이 돼서 실업급여 받았잖아."라고 말씀하셨는데요, 선생님도 아시다시피 4대보험의 핵심은 건강보험입니다. 다른 것이야 특히 우리에게는 상징적인 거예요. 선생님은 이제 교수 직함을 다셨으니 건강보험을 포함한 4대보험을 보장 받으시겠지만, 그동안은 지역가입자였을 겁니다. 고용보험이라봐야 한 달에 몇 천원 나가는 것이고, 건강보험의 경우 지역가입자로 월 10만원 내외를 부담해야 합니다. 대학의 노동자로 노동하고 있는데 보험 보장조차 못 받는 게 옳은 것입니까? 그리고 그것을 비판했다고 해서 우리 대학교의 비판이 됩니까?

    조교근무에 대해서도 사실과 다르고 왜곡되었다고 하셨는데, 아 그러고 보니 맞아요, 왜곡입니다. 현실이 더욱 아팠으니까요. 우리의 조교 시스템은 어디에 내놓을만한 것이 못 돼요. 제가 조교장일 때는 근무 조건을 이야기해 주자 석사과정에 합격한 타 대학 학생이 등록을 포기하기도 했습니다. 지금이야 석사과정생이 줄어들어서 신입생의 방학 중 무급근무는 없어진 것으로 알지만, 저희 때만 해도 방학 내내 학과사무실을 떠날 수 없었습니다. 2008년의 조교일지까지 ‘증거자료’로 찾아보신 것 같은데, 고생하셨습니다. 저는 10타임 중 3~4타임 정도 근무했을 것입니다. 각자 수업이 없는 시간에 조교 근무를 서게 되고, 그러면 수업 외 시간은 대개 학과사무실에서 근무하게 됩니다. 저는 연구소 조교까지 맡고 있었으니 연구소와 학과사무실을 제외한 다른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 본 일이 거의 없어요. 무엇보다도 조교장은 9시부터 5시까지는 학교를 떠나지 말라는 말을 여러 차례 했지요. 비상사태가 벌어질 수 있으니 언제든 모일 수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우리가 가지고 있었던 조교로서의 자기 검열이 어떠한 것이었는지는 선생님이 더 잘 아실 거예요. 방학 중에도 교직원이 없는 학과사무실의 문을 우리가 열었죠. 이건 우리 학과만의 문제가 아니에요. 인예대 그 어디에도 교직원이 있는 학과사무실을 못 봤습니다. 대학의 문제이고, 대한민국 대학 전체의 문제입니다. 교직원이 해야 할 일을 TA 조교에게 전가시키고, 그렇게 대학의 행정이 돌아가는 것. 이 과정에서 선생님들이 우리에게 부당한 일을 시키든 안 시키든, 그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개별 주체의 선함과 악함은 언제나 제도의 범위 안에서 일어납니다. 제가 기억하기로, 우리 선생님들은 제도를 넘어서는 자선을 베푼 일이 별로 없습니다. 나는 그 분들을 ‘좋은 사람들’이라고 말은 못 하겠습니다. 물론 존경할 만한 학식과 인품을 가진 분들입니다. 하지만 그 분들 역시 제도 안에서만 움직였고, 그 제도를 고착화 시키는 데 기여했습니다. 이것은 내가 있었던 대학과 교수들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역시 모든 대학에 대한 비판입니다.

    그리고 제가 부유하든, 가난하든, 그게 제가 쓴 글의 본질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요? 저는 제가 한 노동의 보수로서 저의 아내와 아이를 부양하고 싶었고, 그것은 노동하는 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당연한 바람입니다.

    저의 부유하지 않음을 증명해야 한다면 하겠습니다. 저의 부모님은 선생님이 말씀하신 대로 '리모델링 한 서울의 5층집'에 사십니다. 아니, 4층 건물이고 1층은 주차장이니 사람이 사는 층은 2, 3, 4층입니다. 박원순 시장이 땅콩주택 정책을 내며 단독주택을 다시 지을 것을 권유했고, 성미산 자락의 90%가 넘는 단독주택들이 그에 따랐습니다. 아주 오래된 집이어서 물도 새고 난방도 잘 되지 않았는데 나라에서 돈을 빌려준다고 하니 저희도 리모델링을 했지요. 돈을 감당할 수 없어서 월세가 아닌 전세를 주었고, 3층에는 저의 동생이 월세의 반을 내며 삽니다. 부모님께서 알아서 하신 일이라 디테일한 부분은 모르겠고 제가 알 필요도 없겠으나, 거기에는 아버지의 퇴직금도 들어갔을 것입니다.

    2009년 봄에 10평형 대 투룸 아파트를 한 채 샀습니다. 거기가 309동1201호입니다. 그때만 해도 원주의 아파트값은 아주 싸서 평당 200만원 대였습니다. 부모님께서 저를 보기 위해 내려오셨다가 미리 주는 유산으로 생각하겠다며 사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월세를 내며 사는 것보다 이게 비용이 덜 들겠다는 말씀도 덧붙이셨습니다. 그래봐야 지금 서울 고급 아파트의 한 평 가격도 안 됩니다. 선생님께서는 제가 그것을 통해 재테크를 했다고 하는데, 결과적으론 맞는 말입니다. 지금 두 배 가량 가격이 올랐으니까요.

    준중형 차를 일찌감치 끌고 다녔다는 말씀에 대해서는 정말이지 웃음이 나왔습니다. 이사를 가고 나니 1시간에 한 대 있는 버스는 그나마도 제대로 오지 않았습니다. 몇 번 버스를 놓치고 곤욕을 치렀습니다. 처음에는 스쿠터를 한 대 사려고 알아 보았고, 나중에는 중고 소형차를 사려 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께서 그러면 걱정이 되어 당신께서 편히 지낼 수 없으니 차를 사는 데 보태라며 얼마간의 돈을 보내주셨습니다. 말하자면, 어머니의 손을 빌린 것이고, 선생님의 논지에 따르면 '부자 부모'의 덕을 보았습니다. 저는 2008년식 SM3를 구입했습니다. 아반테를 사고 싶었지만 200만원 가량 더 비쌌고, 마침 행사를 진행해 차량 가액이 900만원 대였던 SM3를 선택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발목을 정말 다쳤나? 난 못 믿겠다. 본 사람도 없더라. 거짓일 것이다.”라고 하신 부분에 대해서만 말하겠습니다. 저는 그날 K교수의 연구실 이전을 도왔습니다. 연구소의 책을 옮기는 일이어서 노 선생이 관여를 했습니다. 손 선생과 제가 가장 나이가 많은 축이었고 과정생 후배들이 몇 왔습니다. 책에서는 책더미가 무너지며 다쳤다고 했지만, 그건 손 선생을 괜히 끌어들이고 싶지 않아서 그렇게 쓴 것입니다. 밀차에 책을 가득 싣고 가서 연구소에 부려 놓고는 다시 돌아가던 길이었습니다. 손 선생이 빈 밀차에 올라탔고, 저는 웃으며 그것을 밀어주었습니다. 남자들은 서른이 넘어서도 그런 애 같은 장난을 종종 합니다. 그러던 중 밀차가 제 발목을 강하게 치고 지나갔습니다. 무언가 잘못되었다 싶어서 보니, 밀차가 치고 간 자리 그대로 예리하게 살이 잘려나가 있었습니다. 피부와 점막이 찢어졌고, 안으로 무언가 하얀 게 드러날 만큼 깊게 베였습니다. 손 선생도 깜짝 놀랐습니다. 곧 피가 나오기에 저는 양말로 거기를 틀어막고는 노 선생에게 보였습니다. 노 선생은 어머 어떻게 해요, 하고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저 혼자 병원에 가겠다고 말하고는 밖으로 나왔습니다. K선생과 연구소에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걸 두고 나중에 다른 배교수는 제가 놀다가 다쳤다고 표현하더군요. 그렇다고 해도 제가 노동의 현장에서 노동하다가 다친 것엔 변함이 없습니다.) 드라마 <송곳>을 보면 고기를 썰다 다친 점원이 상급자에게 “제가 실수한 건데 병원을 왜 가요, 회사에 피해를 주면 안 되죠, 정말 죄송합니다.”라고 말합니다. 저는 비슷한 심정이었습니다. 그래서 후배들에게도 “나 일이 있어서 먼저 좀 갈게”하고 웃으며 나왔고, 혼자 차에 올랐습니다. 가는 길에 그제서야 피가 펑펑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병원에 도착하자 의사는 저를 수술대에 눕혔고, 상처 부위를 꿰맸고, 생전 처음 목발을 짚고 발을 질질 끌며 집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노 선생과 손 선생에게 문자를 보냈습니다. 두 선생은 그날 문병을 왔지만 노 선생은 집에 들어오지 않고 주차장에서 기다렸고, 손 선생은 노 선생이 준 돈으로 샀다며 베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 한 통을 내밀었습니다. 그것을 적당히 나누어 먹고 그는 돌아갔습니다. 그게 끝이었습니다. 저는 2주 동안은 집에 누워 있었고, 2주 동안은 간신히 집 근처를 절룩거리며 돌아다녔습니다. 무실동 희망정형외과에서 2013년 아마도 6월말쯤, 제가 수술한 기록이 있을 것입니다. 필요하다면 학과 사무실에 서류를 보내겠습니다. 필요한 비용은 저의 계좌로 입금하세요. 그때 분명 교수의 일을, 학과의 일을 돕다가 다쳤는데, 책임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한 인간이 노동하다가 다쳤을 때 어떻게 해야할지, 대학에는 아무런 매뉴얼이 없었습니다. 노가다 현장에서도, 군대에서도, 그 어느 노동의 공간에서도 사람이 일하다가 다치면 어떻게 해야할지 모두 알고 있습니다. 책임자가 병원에 데려가고, 치료비를 부담해 주고, 위로해줍니다. 대학에는 유령과도 같은 대학원조교와 시간강사를 위한 메뉴얼 따위, 없습니다.

    배 교수님, 제가 해명해야 할 것이 있다면 이 밑으로 답글을 달아주세요. ‘잡일 돕는 아이’라고 너를 규정하면 안 되나? 너는 잡일 돕는 아이를 무시하는 건가, 뭐 그런 류의 질문에 대해서는 답할 가치를 못 느끼기에 굳이 답하지 않습니다. 책에서 사실과 다른 부분은 말씀드렸듯, 1100~1500 정도 되었던 강의급여액을 시간강사의 평균 급여액 정도로 줄여서 표현한 것, 강의명과 강의동의 이름을 바꾼 것, 발목을 다친 경위를 손 선생을 끌어들이고 싶지 않아 다소 각색한 것, 이뿐입니다. 강의 급여액에 대해서는 작년 12월 이후 모든 공적 자리에서 연 천만 원 내외로 명시하고 있습니다. (혹시 작년에 받은 CK강의료 같은 걸 끌고 올 생각은 마세요. 그 돈 받고 싶지도 않았고, 이거 너희 생활비 주려고 하는 거 아니니까 정신들 차리라는 그 따위 소리 들으면서 월 42만원씩 받았습니다. 그것 때문에 한 회의 시간, 서류 만드는 시간, 여러 스트레스, 컴퓨터 40대 나르면서 학교 교무처에서 ‘인력’소리 들었던 일 등등, 이제 상상하기도 싫어요. CK 그거, 하기 싫었어요. 거기에 더해 글쓰기 클리닉 비용, 우수 강사 강의료, 계절학기 강의 이런 게 포함된 급여명세서 들고 와서 숫자놀음 할 생각은 하지 마세요.)

    저는 옛 동료들과 싸우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봤자 대학은 위에서 내려다보며 웃습니다. 돌은 제가 던질 테고, 돌을 맞는 쪽도 대학일 테니 배 교수님께서 아파하지는 마세요.

    정말 ‘안녕히’입니다.
    157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를 쓰신 김민섭 선생님(309동1201호)께. [새창] 2016-02-27 15:43:50 18 삭제
    배 선생님께서 언급한 '5층 리모델링' 집까지 굳이 부연하고 싶지 않았는데요. 위에서 금수저라 하시니... 4층이고요. 저는 서울 강북 성미산 자락의 오래된 단독주택에 살았습니다. 어머니께서 3대째 토박이로 사셨어요. 서울시에서 어떤 대출 기금을 정책적으로 할 때 그 주변 집들의 90프로 이상이 집을 새로 지었는데 저희도 그러한 권유를 받았습니다. 1층은 주차장이고 4층엔 부모님이 사십니다. 3층엔 동생 부부가 월세의 반을 내며 살고 있고 아직 대출을 갚지 못해 전세를 준 것이 절반인 걸로 압니다.

    더 해명할 게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그런데 제가 이렇게 저의 가난함 혹은 부유하지 않음을 증명하는 것이, 대학원생과 시간강사의 구조적 삶의 문제를 다루는 데 어떠한 도움이 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156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를 쓰신 김민섭 선생님(309동1201호)께. [새창] 2016-02-27 13:21:58 21 삭제
    다음넷 스토리펀딩 글이 다른 때와 달리 정오에 발행되었습니다. 당황스럽네요; 다음 링크는 제가 배 선생님께 드리는 답글이자, 오유의 모든 구성원들께 드리는 아마도 당분간의 마지막 글입니다. http://todayhumor.com/?gomin_1597074
    155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를 쓰신 김민섭 선생님(309동1201호)께. [새창] 2016-02-27 12:41:16 95 삭제
    새벽에 글을 보고 조금은 비몽사몽 간에 댓글을 달았습니다. 지금 선생님의 글을 다시 읽어보았는데, 뭐랄까 제가 해명해야 할 일들이 무척 많네요. 가장 아픈 두 가지는 "정말 발목을 다치기는 했냐. 주변에 물어보아도 아는 사람이 없다. 거짓이다."라는 것과, "너는 준중형 차를 샀고 집값이 올라 재테크도 했다."라는 부분이네요.

    발목, 다쳤어요. 그때 K선생님의 연구실 책을 여러 권 옮겨야 해서 밀차를 이용하고 있었고, 선생님도 아시는 S선생과 그것을 날랐습니다. 배 선생님은 오지 않으셨지요. 노 선생님이 주도했고 저와 손 선생이 가장 나이가 많은 축에 속했습니다. 손 선생과 함께 책을 부려놓고 다시 책을 쌓으러 돌아오는 길에 일이 고되어서 서로 장난을 쳤습니다. 손 선생이 빈 밀차에 타고 제가 밀어주었지요. (믿기 힘드실지 모르지만, 남자는 서른이 넘어서도 그런 애 같은 장난을 한답니다.) 그런데 그것이 제 발목을 강하게 치고 지나갔어요. 뭔가 잘못되었다 싶어 바지를 걷어보니 정말 예리하게 피부와 점막 같은 것이 모두 찢어져 있었고, 정말 복숭아뼈 같은 게 보였죠. 놀랍게도 그때까지 피는 별로 나지 않았어요. 그래서 양말로 급히 지혈을 했고, 피는 제가 병원으로 가는 도중에야 펑펑 솟아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이것을 글에서는 책더미가 무너졌다는 것으로 설정을 바꾸었어요. 손 선생을 괜히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고, 노동 현장에서 다친 것이기에 그 묘사는 크게 상관이 없다고 여겼습니다.) 저는 피가 더 나기 전에 노선생님을 찾아가서 상처를 보였어요. 놀라면서 어떻게 하냐고 하시기에, 저는 조용히 혼자 병원에 가겠다고 했습니다. 이런 일로 K교수님께 피해를 끼치고 싶지 않았거든요. 혹시 우리 모두 재미있게 보았던 드라마 '송곳'에서 고기를 썰던 점원이 다치고서는 "제가 잘못했는데 병원엘 어떻게 가요. 정말 죄송합니다."하던 장면을 기억하시는지요. 그때의 저는 정말 그랬습니다. 후배들에게도 웃으면서 일이 있어서 먼저 갈게, 하고 병원으로 갔습니다.

    제가 조용히 병원으로 가면, 그 다음에는 선생님이든 누구든 해결을 해 주시리라 생각했어요. 저는 생각보다 크게 다쳤거든요. 의사는 저를 보자마자 수술대에 눕혔고, 그 수술기록은 제가 지금이라도 떼어다 보여드릴 수가 있어요. 생전 처음 목발을 짚고 다리를 질질 끌며 집에 돌아가서 누웠는데 밤늦게 손 선생이 찾아왔죠. 같이 온 사람이 없느냐고 물었는데 노 선생님은 들어오지 않겠다고 하셔서 혼자 들어왔다고 했어요. (아, 그날 일을 같이 했던 석사생 한 명이 함께 와서 저를 위로해 주었네요.) 그러면서 노 선생이 주신 돈으로 샀다며 베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 한 통을 내밀었고, 저는 그것을 함께 나누어 먹고 빨래를 좀 널어달라 부탁하고 작별했습니다. 대략 2주 정도는 정말 누워만 있었고, 나머지 2주는 조금씩 목발없이 집 근처를 돌아다녔습니다. 그리고 선생님도 아시는 그 '수해' 때 학교에 간 것이 거의 한 달만이에요. 아직 아물지 않은 발목에 흙탕물이 들어차도록 물을 퍼냈죠. 저는 누구든 저에게 수술비에 대해 한 번쯤 물어봐 줄 것이라 생각했어요. 교수님의 연구실 이사를 돕다가 다쳤는데, 그처럼 홀로 내버려 질 줄은 몰랐습니다. 처음에는 못난 인간으로 매도되거나 괜히 지도교수와 연구소에 피해를 끼칠까 두려워 혼자 숨어 있었고, 나중에는 그것이 분노로, 다시 외로움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 다치기는 했느냐 믿을 수 없다 물으시니, 뭐라 드릴 말씀이 없어요.

    그리고 저는 2009년에 10평형 대 투룸 아파트를 한 채 샀어요. 아시다시피 그때만 해도 OO의 집값이 아주 쌌어요. 평당 200~300만원 정도 할 때 부모님이 내려와 보시고는 이 가격이면 너에게 물려줄 얼마 안 되는 유산을 미리 준다고 생각하고 하나 사줄 게 여기에서 살아라, 오히려 월세보다 그게 쌀지도 모르겠다 라고 하셨지요. (그렇게 지금 서울 고급 아파트의 1평 값도 안 되는 돈으로 아파트 한 채를 샀어요.) 부모님의 판단은 옳았어요. 대략 두 배 가까이 집값이 올랐으니까요. 거기가 제 필명인 309동1201호입니다. 지금은 이사를 갔지만, 저에게는 너무나 소중한 공간이고, 아픈 공간이고, 제 청춘이 모두 녹아 있는 곳이에요.

    왜 저의 가난을 증명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금수저이든, 흙수저이든, 그것은 별로 상관이 없습니다. 저는 한 사람의 가장으로 바로 서고 싶었고, 제가 한 노동의 댓가로서 아내와 아이를 부양하고 싶었습니다. 기왕 말이 나온 김에 "너는 준중형 차가 있었다."라는 것에 답하자면, 이사를 가고 나니 학교에 들어갈 수 있는 수단이 1시간에 한 번 오는 버스 한 대밖에 없었습니다. 오는 시간도 그때그때 달랐고요. 몇 번이나 버스를 놓쳐 곤란한 상황에 처하고는, 처음에는 스쿠터라도 한 대 사려고 했고, 돈을 조금 더 주고 중고 소형차를 살까도 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께서 그러면 사고 때문에 걱정이 된다며 굳이 얼마간의 돈을 보내 주셨고, 저는 제가 모아 놓은 야주 약간의 돈에 더해, 다시 부모님의 손을 빌려 2008년식 SM3 한대를 할부로 구입했습니다. 그 차는 아직도 타고 있어요.

    다른 것들도 더 쓰고 싶지만... 이 커뮤니티에서 이런 진흙탕 싸움을 할 필요는 없어요. 대학을 그만둔 그 날 이후로 다시 한 번 무척 서글프네요. 오늘 자정에 스토리펀딩의 마지막 글을 올리겠습니다. 그것이 저와 선생님께 조금의 답이 될 수 있길 바랍니다. 그 이전까지는 더 이상 댓글을 달거나, 그 이후로도 어떤 추가적인 글은 자제하겠습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배 교수님.
    154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를 쓰신 김민섭 선생님(309동1201호)께. [새창] 2016-02-27 10:05:38 40 삭제
    아, 선생님. 오늘 자정에 다음넷 스토리펀딩 마지막 글이 올라갑니다. 이미 목요일에 송고해둔 것이어서 제가 거기에 더하고 뺄 수 있는 내용은 없어요. 그 글로 이 글에 대한 답을 추가로 대신하겠습니다. 그 글은 올라오는 대로 오유에도 링크하겠습니다...
    153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를 쓰신 김민섭 선생님(309동1201호)께. [새창] 2016-02-27 09:14:44 60 삭제
    학생들의 교수법에 대한 부분에 대해서만 첨언할게요 선생님. 저는 책에서 제가 믿는 좋은 강의에 대해서 썼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선생님들의 교수법을 비난한 것은 아니에요. (선생님께서는 10년 넘게 강의를 해 오셨고, 저와 교수법은 많이 다르지만 학생들의 존경을 많이 받고 계신 걸 익히 알고 있어요. 저는 할 수 없는 것이어서 부럽기도 하고요. 이건 좋고 나쁨의 문제가 아니라 다름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저는 여전히 모든 학생을 바라보고 존중하는 것을 가장 좋은 교수법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선생님은 제가 생각하는 가장 좋은 '선생님' 중 한 분이에요. 교수법이 다소 다를 뿐 학생을 생각하는 마음은 저보다 깊은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정말로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어떤 오해가 없으면 좋겠습니다.

    페이스북 페이지에도 이 글을 링크해 두었습니다. 글 고맙습니다 선생님.
    151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를 쓰신 김민섭 선생님(309동1201호)께. [새창] 2016-02-27 08:15:39 106 삭제
    지방시를 쓴 김민섭입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그날로 벌써 두 달이 넘게 지났네요. 배현자 선생님도 그날 자리에 나온 선생님 중 한 분이셨죠. 얼마 전 그 후로는 처음으로 모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자리에 나오지 않았던 후배 선생님과 밥을 한 끼 먹었습니다. 그가 저에게 그날 자리에서는 대학을 나갈 것 같은 분위기가 아니었다고 들었다는 말을 건넸습니다. 저는 자리에 계셨던 모 선생님께 이전에 제가 했던 어떤 후회하고 있는 (지극히 개인적인) 행동에 대해서 사과드렸고, 배 선생님과는 나오면서 울며 쳐다보기도 했습니다. 그건 다시 볼 수 없는 사이가 될 것이었고, 그래서 한 분께는 사과를 드린 것이고 선생님을 보면서는 눈물이 났습니다. 다른 한 분은 제가 이야기를 좀더 하고 싶다고 했으나 바쁘다고 거절하셨고, 다른 한 분은 자청해서 저와 술자리를 더하셨고요. 8년의 시간 동안 저에게 호의적이었거나 따뜻하게 대해주신 분들이 많았고, 그 시간은 절대로 가벼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가능하다면 저는 계속 남아서 공부하고 싶었습니다.

    사실에 기반하지 않은 글을 썼다고 하셨습니다. 우선 저 스스로 이야기했듯이 건물의 층수나, 학과사무실의 위치나, 휴게공간, 제가 가르친 과목명의 변경 같은 것을 의도적으로 했습니다. 어느 선배는 조교 근무 시간을 왜 8시로 표현했느냐, 8시 20분부터가 아니었느냐 화를 내기도 했죠. 그런 것은 모두 제가 어느 곳의 구성원인지 알아보기 힘들게 하기 위한 것이었어요. 그 이유는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로는 신상이 알려지는 것이 두려웠고, 둘째로는 이것이 사적경험을 통한 공적비판이 될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어느 대학인지 알려지는 순간 특정 공간의 슬픈이야기가 되어버릴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제가 시간강사를 하며 받은 돈의 액수와 조교 근무 시간에 대한 것입니다. 선생님도 잘 아시다시피 우리 학교의 시급은 5만원이 약간 넘어요. 국립대보다는 적고, 여타 사립대보다는 조금 많은 수준이지요. 저는 6학점을 1년 강의했고 8학점을 3년 강의했어요. 6학점을 강의했을 때 제가 받은 돈은 1년에 천만 원 정도였고, 8학점을 했을 때는 조금 더 많아서 1200만원 정도였어요. 말하자면 천만 원 내외가 돼요. (선생님 말씀대로 이천만 원을 받으려면 12학점을 강의하면 가능하지만, 그게 어려운 건 아실 거예요. 우리 학교는 10학점 초과분부터는 보수를 아예 주지 않으니까요. 계절학기를 매학기마다 한다면 가능하겠지만, 저는 4년 8학기 동안 2번 기회를 얻었어요. 이건 학사포탈에 모두 남아 있는 기록이에요. 저보다 적게하신 분도, 많이 하신 분도 계시지만, 그것에 별 문제를 제기하고 싶지는 않아요.) 물론 우수강사강의료 포상금이나 지역 바깥에 거주하는 이들에게 주는 교통비, 재작년부터 생긴 제도인 글쓰기클리닉 수당 같은 것을 더하면 연봉은 약간 올라갈 수 있지만, 그건 모두에게 닿는 제도라고 할 수는 없어요. 특히 클리닉으로 받는 돈은 대개 연간 100만원이 채 안 되는데, 그나마도 우리가 굳이 시간을 내어 하는 것이고요. 순수 강의로 받는 돈은 천만 원 내외일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책의 프롤로그에 쓴 560만원은 제가 4학점 강의 한 과목을 한다면 받게 되는 돈의 총액이에요. 많은 이들이 이야기하는 시간강사 평균연봉이기도 하고요. 저의 실수령액을 줄여서 쓴 것은 우선은 저의 신상을 숨기기 위한 것이었어요. 실명을 공개하고부터는 어느 자리에서든 연봉 실급여를 천만 원 내외로 정정해서 이야기했고, 그것은 사실과 다르지 않아요.

    그리고 너는 '4대보험'을 받았잖아, 라고 하시는 부분에 대해서는... 선생님도 아시겠지만 4대보험의 핵심은 건강보험입니다. 고용보험은 우리 월급에서 가져가봐야 몇천 원이 되지 않아요. 국민연금은 꼬박꼬박 떼어가고 있고요. 하지만 건강보험이 보장되지를 않죠. 제가 맥도날드에서 일을 시작한 동기는 오로지 건강보험 때문이었어요. 저를 비롯한 많은 시간강사들이 10만원 내외의 건강보험비를 부담하는데, 그것은 지역가입자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대학에서 건강보험을 부담해 준다면 우리는 월 2만원만 내면 돼요. 저는 맥도날드에서 14500원의 건강보험료를 냈어요. 제가 실업급여를 받았던 것에 대해 상세히 기술해 주셨는데, 고용보험으로 인해 실업급여를 받았던 부분은 언젠가 글로 꼭 다루려고 하고 있었어요. 우리가 1년에 한 번 방학 중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많은 강사들이 알 수 있도록요.

    조교 근무에 대해서 말씀드리면, 우리 학교의 조교 시스템은 어디에 가서 말하기 부끄러운 것이에요. 제가 조교장일 때 우리 학교의 조교 근무 시스템에 대해서 이야기하자 등록을 포기한 타학교 학생도 있었어요. 신입생에게 강요하는 방학 중 무급 근무는 지금은 아마 없어진 것으로 알지만 제가 조교를 할 때는 엄격하게 지켜졌습니다. 선생님께서 문제 삼으신 부분은 순번을 나누어 학과사무실 근무를 하지 않았느냐, 라는 것이지만 조교장은 일과 시간 중에는 학교를 떠나지 말라고 몇 번이고 강조했어요. 그 시기의 우리가 얼마나 많은 자기검열 속에 조교를 했는지 선생님은 잘 아실 것입니다. 저는 물론 연구소 조교를 3년 동안 도맡았으니 일과 시간뿐 아니라 그 이후에도 대개 학교에 상주했고요. 제가 받은 조교 장학금은 TA장학금 260만원 (정확한 액수는 기억이 안나지만 200만원 대 중반이었던 것 같네요.)에 부득이 일할 수 없는 대학원생들의 장학금을 합쳐 N분의1 하는 형식이었어요. 적게 받았을 때는 6개월 간 300만원 내외였고, 조교장을 할 때는 등록금을 보전 받았습니다. (이러한 시스템에 대해서는 선생님이 더 잘 아실 거예요. 교내 편의점에서 일하는 것이 오히려 급여나 여러 보장면에서 더 낫다는 것을요.) 교직원도 없는 학과사무실의 문을 방학 중에도 8시 반이면 열었고, 학과의 사무를 우리가 모두 대신 보았죠. 그런데 다른 학과는 방학 중에는 계절학기 이후 중요한 학사일정이 없으면 딱히 문을 열지 않았어요. 언젠가 조교장께 다른 학과는 방학 중에는 조교 근무를 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하자 그는 저에게 그러면 안 된다고 답했습니다. 그러한 조교로서의 엄격한 검열은 우리 학과의 특징이었고 다른 학과의 누군가는 부러워하는 모습이기도 했지요.

    제가 학교에서 가장 많이 들은 이야기 중 하나는 아마도 "너무나 좋은 곳이다. 이렇게 좋은 선생님들이 어디 계시단 말이냐. 행복하게 여겨라/여기자"하는 것이에요. 배 선생님은 그러한 말씀을 가장 많이 한 선생님 중 한 분이에요. 사실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물론 지금도 여러 선생님들이 훌륭한 학식을 지닌 분들이시고 좋은 분들이시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지도교수님께 많이 배울 수 있었던 것을 지금도 큰 은혜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저 제가 있었던 공간을 좋은 공간으로 믿고 싶었던 것 뿐이라고 생각해요. 좋은 공간이었다고 말은 못 하겠습니다. 무엇보다 "너는 잡일 돕는 아이다.", "그래도 너는 살만하지 않았느냐", "그만하면 살만했겠구나." 이러한 말씀들은 제가 대학원에 있었던 8년 동안 선생님들께 실제로 들었던 말들이기도 해요. 그때는 정말이지 며칠 동안 서글펐습니다. 많이요. 특히 선생님의 연구실 정리를 돕다가 발을 다쳐서 한 달 가까이 누워있을 때는, 정말 힘들었어요. 왜 내가 병원비를 모두 부담해야 할까, 왜 아무도 책임지려는 사람이 없을까, 그저 다쳐서 폐를 끼친 나의 잘못인건가...

    저는 대학이 대학원생과 시간강사에 대한 제도와 메뉴얼을 전혀 구비해 놓지 않은 채 구성원들의 관습과 내규에 맡겨 둔 것을 보았어요. 그것은 어느 특정 공간이나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 모든 대학의 문제가 됩니다. 그 안에서의 구성원은 괴물이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저 역시 괴물이 된 인간이었고요. 제가 책을 쓰면서도 가장 드러내고 싶었던 것은 그러한 부분입니다.

    스토리펀딩을 쓰면서는 감정이 많이 격화되어 있었어요. 선배들과의 자리가 있었던 직후에 연재 제의를 받았죠.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라는 글은 쓰면서도 참 아팠어요. 저는 저에게 "김선생은 시간강사고 난 교수잖아요."라고 말했던 선생님이, 왜 그렇게 말씀하셨는지 그 이유는 알아요. 해당 글에서도 저를 위해서였을 것이라고 썼고요. 하지만 그건 하면 안 되는 말이었어요. 차라리 저에게 돈을 모두 부담하라고 했다면 여기는 그런 곳이지 하고 쓰게 웃고 말았겠으나 학생들과 함께 문제를 책임지라는 말씀은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었습니다. 다른 글들은 어느 특정인을 염두에 두고 쓴 것이 아니라 대학 그 자체에 대한 비판이었지만, 그 글과 '분노하는 데도 눈치가 필요하다'는 두 편은 구성원들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이었습니다. 많이 망설였던 글입니다. 하지만 사실과 다른 부분이 없고, 부끄러운 부분들을 일부러 더 축소해 가며 썼습니다.

    그날 선생님들과 나눈 말들은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어요. 그 중 저에게 많은 화를 내던 선생님께서 나중에 혼잣말처럼 "내가 그 글을 썼으면 10권짜리 대하 소설을 썼어... 그런데 왜 안썼는지 모르겠냐..." 아마도 계속해서 연구하고 강의하고 싶으셨기 때문일 겁니다. 이렇게 모든 걸 내려 놓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고 계셨으니까요.

    글을 쓰면서 선생님이라 표현한 부분들을 선배라고 썼다가 몇 번을 다시 고쳤습니다...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공간이네요. 저의 책에서 해명할 부분은 이 글에서 모두 했습니다. 특히 시간강사로서 받은 금액이 사실과 다르다는 부분에 대해서, 제가 받은 연봉이 천만 원 내외였던 것, 그리고 조교 근무에 대해서는 책보다 현실이 더욱 아팠던 것에 대해 말씀드립니다. 그것으로 제가 쓴 글의 내용이 왜곡과 과장으로 읽히는 것에 대해서는 저 역시 납득할 수 없습니다.

    다음주면 학교가 개강하네요. 이제 돌아갈 수 없는 공간입니다. 가끔 학교 앞을 지나게 될 때면 참 낯설어요. 예전에는 집보다 더 친숙한 공간이었는데 말이죠. 제가 학과장 선생님께 드렸던 이메일이 있는데, 그 마지막 부분을 인용하면서 두서없는 글을 이만 줄이겠습니다. (선생님께서도 감정이 격화되어 있으시니 인사는 생략하겠습니다...)

    "제가 있었던 공간이, 더욱 사람을 위하는 따뜻한 공간이 되길 바랍니다."

    * 저는 대학을 그만두었지만 여전히 연구실과 강의실에는 젊은 연구자들이 남아 있습니다. 특히 후배들이 조금은 더 나은 환경에서 연구하고 강의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오지랖일지 모르겠지만... 저는 대학이라는 공간이 우리 사회를 올바른 길로 이끌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있던 특정 공간은 대한민국의 가장 전형적이고 평범한 대학원이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좋은 공간이었다고는 말하지 않을게요.) 저의 구성원이나 공간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대학이라는 존재에게 계속 작은 돌멩이를 던져나가고 싶습니다. 대학이라는 괴물이 별로 아파하지 않을 것을, 변화하지 않을 것을 잘 알아요. 하지만 그저 한 번 돌아봐주면 여기에도 사람이 있다고 말해주려고 합니다.
    150 나는 1회용 선생 입니다.jpg [새창] 2016-01-17 01:00:28 1 삭제
    모래알 같은 인간들이라고 스스로 자조하고 그래요. 그래도 학생들을 위해 감당하고 있어요. 대학은 언제나 가혹함을 강요하고요.
    149 나는 1회용 선생 입니다.jpg [새창] 2016-01-17 00:58:21 33 삭제
    초중고 시절 기간제 교사에게 배운 아이들은, 대학에 진학해 다시 시간강사의 수업을 듣습니다. 그렇게 비정규직에게 배우면서 모두가 정규직을 꿈꿉니다. 교육의 현장이, 가장 사람을 비참하게 만드는 곳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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