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 현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고 변화를 만들고 싶다면 부처님 말씀을 공부해보는 것도 좋을 거 같아요. 사실 지금 처한 상황 자체는 좋다 나쁘다가 없어요. 단지 그것을 내가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 천국과 지옥을 왔다갔다 하죠. 중요한 것은 인식의 습관입니다. 상황을 긍정적으로 인식하든 부정적으로 인식하든 그것은 자유입니다. 아무런 선택의 강요가 없죠. 하지만 긍정적으로 인식한다면 내가 좋습니다. 부정적으로 인식한다면 단지 내가 괴로울 뿐이에요. 그렇다면 이왕이면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사는 게 좋지 않을까요? 그런데 문제는 지금까지 살아온 나의 습관이 그렇지 않다는 것이죠. 이것은 시간이 오래 되었을수록 단단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바꿀 수 있습니다. 다만 시간이 좀 걸리기에 안 바뀌는 것처럼 보이죠. 그래서 꾸준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불교에서는 이것을 '수행'이라고 부르죠. 수행은 인식의 '습관'을 바꾸는 거예요. 108배, 1000배 하며 정진하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저 같은 경우는 법륜스님 말씀을 들으면서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들어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절대적인 진리는 아닙니다. 부처님은 다만 우리의 괴로움의 원인과 그것을 해결하는 법을 알려주셨어요. 선택은 우리의 몫이고 강요도 없습니다.
하지 마세요! 저도 불교 믿는 사람인데 부처님의 가르침이 핵심이고, 아닌 나머지는 사실 불교가 아니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윗분말대로 마음의 위안 정도는 될 수 있겠지요. 글쓴이님이 그런 것도 영때문이 아니라 부모님으로부터 물려 받은 업식(생각이나 행동의 습관)이나 자라면서 생성된 업식 때문입니다. 어떠한 원인들에 의한 결과인거죠. 그것들이 생긴지 오래되었다면 그만큼 해결하기 위한 노력도 필요합니다. 단순히 한 번 마음의 위안을 얻는다고 해결되지는 않는다고 봅니다. 중요한건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고 꾸준히 알아차리고 변화를 위해 노력하는 것입니다. 제가 불교를 겪으면서 변하고 있는 경험을 토대로 한 말씀 드립니다. 좋은 결과 있었으면 좋겠어요!
상대 마음에 생채기를 냈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상대는 나를 미워하고 분노할 수 있겠죠. 만약 본인의 실수를 인정하고 반성하고 상대를 진정으로 이해한다면 그것을 받아들여야 해요. 상대에게 상처를 주고 상대가 아파하지 않기를 바란다면 욕심입니다. 그것이 욕심임을 알고 그 욕심을 내려놓고, 상대방이 욕을 하면 욕을 먹으시면 됩니다. 그러나 자신을 자책하진 마세요. 자책한다고 달라지는 건 없습니다. 자신의 행동에 대한 결과는 책임지되 지금까지는 연습이라고 생각하고 다시 시작하세요. 조금씩 변화를 만들어가세요. 분명히 변합니다. 주제넘게 글 올립니다.
http://www.jungto.org/buddhist/budd8.html?sm=v&b_no=73999&page=1&p_no=74 위 글에 나와있듯이 부처님의 탄생설화에서 부처님이 태어나면서 하신 말씀이 있는데, 실제로 그렇게 말씀하긴게 아니라 부처님의 가르침을 사람들이 요약해서 ‘부처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이렇게 살아가실 분이다’ 라고 표현한 거라고 하시네요. 불교의 핵심은 결국 부처님의 가르침이기 때문에 이 부분을 보면 불교의 방향을 알 수 있을거 같아요. 부처님이 하신 말씀은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 ‘삼계개고 아당안지(三界皆苦 我當安之)’ '하늘 위 하늘 아래 오직 나 홀로 존귀하도다. 삼계가 괴로움에 빠져 있으니 내 마땅히 이를 편안케 하리라.' 즉,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바로 나의 삶이고 나의 행복이고, 다른 사람들도 소중하니 괴로움에서 벗어나게끔 도와주겠다는 얘기지요. 인생이 고(苦)이기 때문에 빨리 끝내야 하는게 아니라,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향으로 가는 것(해탈)이 불교의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사실 인생은 고(苦)가 아니라 고락(苦樂)입니다. 즐거움과 괴로움이 반복되는 것이 인생입니다. 부처님은 그렇게 즐거움과 괴로움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것, 그 자체가 고(苦)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이 윤회이지요. 윤회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해탈이고요. 부처님은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6년간의 고행을 하셨으나 결국 즐거움을 끊고 힘든 수행을 하는 것으로도 깨달음에 이룰 수 없다는 것과 즐거움과 괴로움은 결국 따로가 아닌 '하나'라는 것을 깨달으시고 그 굴레로부터 벗어나는 '제 3의길 (중도)'를 찾으신거예요. 그것을 본인만 누리지 않고 괴로워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설법하며 노력하셨고 그 가르침이 전해져 내려온게 불교이지요. 사람들은 즐거움을 행복이라고 생각하지만 즐거움에 집착하면 반드시 괴로움이 따라와요. 이런 행복은 지속불가능해요. 그러나 즐거움에도 너무 끌려가지 않고, 괴로움에도 너무 끌려가지 않는 괜찮은 상태를 행복으로 생각하면 지속가능한 행복이 될 수 있어요. 그러기위해 수행을 하는 것이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