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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panic_100993
    작성자 : 박주영소월 (가입일자:2019-01-04 방문횟수:37)
    추천 : 6
    조회수 : 551
    IP : 122.45.***.93
    댓글 : 0개
    등록시간 : 2019/12/07 10:59:46
    http://todayhumor.com/?panic_100993 모바일
    얼굴 없는 남자(수정본) 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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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량이 조금 많아서 1,2부로 나누어 올립니다. 양해 부탁 드립니다.)

    얼굴 없는 남자

     

     

    1.

     

    낡은 뿔테안경이 세숫대야에 퐁당 떨어졌다.

    잠이 덜 깼는지 안경을 쓴 줄도 모르고 세수를 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남자는 안경을 건져 올렸다.

    그런데 대야에는 허여멀건 눈깔사탕 같은, 뭔가 이상한 것이 둥둥 떠 있었다.

    남자는 그것을 손바닥으로 주워 올려 유심히 살펴보았다.

    다름 아닌, 안구였다.

    깜짝 놀란 남자는 화장실 거울을 허겁지겁 돌아보았다.

    거울에 비친 남자의 얼굴은 양쪽 안구를 도려낸 듯 눈두덩이가 모두 새까맣게 사라져 있었고, 코와 입도 흐물거리면서 아래로 녹아내리고 있었다.

     

    남자는 하루살이 인생이었다.

    매일 새벽 4시면 잠자리에서 일어나 주중에는 생수 배달원,

    주말과 휴일에는 공사 현장 일용직 잡부로 쉬지 않고 일을 했다.

    자기 몸통만 한 커다란 생수를 보통 두 통씩 어깨에 짊어지거나 손목에 움켜쥐고

    5층 계단을 오를 때는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1년 전이라도 젊었을 땐 그것도 나름 거뿐했는데 나이 50이 넘어가자

    무릎과 손목 등의 관절도 차차 말썽이었다.

    문간까지 생수를 내려주고도 남자는 좋은 소리를 듣지 못했다.

    왜 낡고 지저분한 물통을 갖다주고, 왜 시간 맞춰 못 왔느냐는 핀잔과 박대뿐이었다.

    심각한 탈모로 벙거지를 덮어쓴 순박한 남자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라서

    그저 어색하게 웃었다. 그러자 여자는 또 자기를 비웃는 거냐며 남자를 마구 멸시했다.

    남자가 하루 종일 생수를 배달하고도 손에 쥐는 돈은 고작 십만 원 남짓이었다.

    그마저도 절반 가까운 금액은 본사 몫으로 떼야 하고,

    남는 돈으로 유류비나 식대에 쪼개 써야 한다.

    혼자 일을 다니며 일반식당에서 밥을 사 먹어본 지는 이미 오래였다.

    비교적 식대가 저렴한 관공서의 구내식당에서 시간 맞춰 점심을 먹으면 운이 좋은 날이었다.

    컵라면과 김밥 한 줄로 때우거나 그마저도 거르는 날이 다반사였기 때문이다.

    일이 고된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핵가족이나 일인 가족 시대를 맞아 생수 시장도 극심한 양극화를 겪고 있기 때문이었다.

    온라인을 통한 택배배달 쪽은 매년 증가하는 매출로 즐거운 비명이었지만,

    남자가 속해있는 오프라인 쪽은 갈수록 떨어지는 배달 물량으로 앞날도 장담하기 어려운 처지였다.

    경기불황이 길어지면서 간간이 물값을 떼먹고 도망가는 불량 고객은 더욱 골칫거리였다.

    사용하던 냉온수기라도 남겨 놓고 가면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일부 나쁜 사람들은 그것마저도 모조리 가져가 버리고 잠적하는 경우가 여럿 있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고객들은 그야말로 하늘 같은 밥줄이었다.

    생수 배달 말고도 가끔 접수되는 냉온수기 수리와 소독은 눈치껏 비용청구를 해야 했고,

    대부분은 그것을 당연한 무상서비스로 잘못 알고 소비자 권리를 마구 남용했다.

    마치 생수 노예처럼 남자를 부려먹지 않으려 들면 다행이었다.

    몇몇 동료 배달원들은 월 납품 수량을 실제보다 교묘하게 부풀려 결제를 올렸다.

    담뱃값이라도 몇 푼 벌자고 자기 양심과 거래처를 속이는 것이다.

    이걸 업계에서는 가라(から=)’ 잡는다고 했지만 남자는 그런 비열한 방법으로

    거래처의 담당 직원을 우롱하거나 기만하고 싶지 않았다.

    남자는 일이 끝나갈 무렵 건물 화장실에서 볼일을 본 후에 세면대에서 손을 씻었다.

    문득 거울 속의 자기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다행히 멀쩡했다.

    간밤의 기분 나쁜 꿈은 그저 개꿈이리라 생각하고 히죽 웃어 보았다.

    하지만, 이게 웬일인가!

    충격적이게도 거울 속의 남자는 자기를 따라 웃지 않았다.

    얼음처럼 싸늘히 굳은 원망의 눈초리로 남자를 경멸하듯 지그시 관조할 뿐이었다.

    그는 남자와 닮았지만, 훨씬 젊고 날카로운 인상의 청년이었다.

    , 뭐야? 누구...?

    질겁한 남자가 놀라 어쩔 줄 몰라 했다.

    거울 속의 청년은 왠지 섬뜩하게 웃는 얼굴로 남자를 조롱했다.

    --안 지겨워? 벌레처럼 사는 거.--

    남자는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고,

    겁에 질린 얼굴로 화장실에서 부랴부랴 뛰쳐나왔다.

    한편 무서운 생각도 스쳤지만, 그렇다고 자기가 어쩔 도리는 없었다.

    기계처럼 해오던 단순반복적인 일을 하루아침에 그만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2.

     

    남자는 그때부터 거울을 피해 다녔다.

    사물이 그대로 비치는 투명창문이나 길거리의 쇼윈도에도 일부러 시선을 주지 않으려고 애썼다.

    수수께끼의 청년은 거울과 창문 속에서 남자가 어딜 가건 그를 무섭게 쏘아보고 있었다.

    주말이 되자 남자는 또 인력시장으로 새벽같이 출근했다.

    골목길을 빠져나오다 말고 문득 길가에 멈춰있던 자동차 창문을 돌아보았다.

    까만 차창에 비친 청년은 길고 가느다란 손을 자랑하듯 열 손가락으로 얼굴을 반쯤 가린 채

    남자를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 소름 끼칠 정도로 아름다운 손이었다.

    청년은 이렇게 말했다.

    --세상은, 널 먹어 치우고 말 거야. 그러다가 죽어...--

    남자는 자기 양손을 내려다보았다.

    손마디가 굵고 뭉툭한 데다 굳은살로 뒤덮인, 전형적인 일꾼의 손.

    청년의 그것과는 비교도 안 되는 솥뚜껑처럼 큼지막한 손이었다.

     

    인력사무실은 평일보다 주말에 항상 사람이 더 몰렸다.

    남자처럼 주말 알바를 뛰는 사람들이 몇 푼 더 벌어보자고 몰려나와서였다.

    노가다 판도 언제나 일은 적고, 사람은 많았다.

    일거리를 잡는 사람은 결국 한정되어 있다.

    남자는 작업 현장에서도 생수를 배달할 때처럼 절대 요령을 피워가며

    일을 슬렁슬렁하는 법이 없었다. 자기 몸도 돌보지 않고 죽을 둥 살 둥 열심히 일했기 때문에

    단골 업체에서는 주말과 휴일에 출근하는 남자만 찾을 정도였다.

    그런데도 오늘은 이상하게 남자의 이름이 불리지 않았다.

    일찍이 예닐곱 명으로 짜여진, 큰 공사 현장 단체 작업조로 뽑혔지만,

    뭔가 착오가 있는지 자기들끼리 쑥덕거리더니 곧, 명단을 정정했고

    대학생 알바 한 명으로 대체되었다. 남자는 다른 일을 주겠거니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별 신경 쓰지 않았지만, 그 뒤로도 남자의 이름은 끝내 호명되지 않았다.

    그 사이 삼십여 명의 크고 작은 장정들이 차례대로 일거리를 받아 사무실을 나갔고,

    결국 남자만 덩그러니 남겨졌다.

    인력사무실 실장이 거의 여덟 시를 가리키는 시계를 바라보고는

    남자에게 씁쓸하게 커피를 권했다. 그제야 자초지종을 늘어놓으면서.

    혼자 현장 나갈 때는 열심히 하건, 말건 상관없는데 여럿이 함께 나가는 날은

    좀 다른 사람들과 보조를 맞춰가며 일하라는 것이다. 아등바등 죽어라 일한다고

    일당을 더 주는 것도 아닌데 왜 사람들 기분 언짢게 하고 눈총받아 따돌림 당하느냐는 얘기였다.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지만, 남자는 노가다 판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외톨이 방외인에 불과했다.

    사실 주업인 생수 쪽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본사 영업직원들은 조금이라도 매출이 많은 가맹점주에게 알랑거릴 뿐,

    군소 점주이자 존재감 없는 남자는 아무 신경도 쓰지 않았다.

    간혹 사람 좋은 생수 고객이 음료수나 작은 선물 가방을 명절선물로 챙겨줄 때는

    그동안의 노고를 보상받는 것처럼 기뻐서 눈물이 날 정도였다.

     

    남자는 결국 대마찌를 맞고 집으로 되돌아왔다.

    마트 캐셔로 일하는 아내가 막 출근하려던 참이었다.

    남자가 주말에 일을 못 나가고 집으로 되돌아오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었다.

    그런데도 남편의 뒤통수를 향해 무심코 내뱉은 아내의 말은 비수가 되어 꽂혔다.

    전세 대출금 원금상환일이 당장 내일모렌데 어떡해? 어디 돈 빌릴 데도 없고...

    그놈의 돈! ! 제발 좀 그만할 수 없어!

     

    텔레비전 뉴스에서는 대형사고 속보가 터져 나오고 있었다.

    공사현장 거푸집이 붕괴되어 일용직 노동자 두 명이 사망하고,

    대학생 알바생을 포함한 다섯 명이 중경상을 입는 대형재난사고가 발생한 것이었다.

    그곳은 남자가 처음 호명을 받았지만 따돌림으로 가로채기 당한 현장이었다.

    새옹지마라고 했던가?

    악착같이 우겨서 따라 나가지 않은 것이 오히려 목숨을 건진 천만다행한 일이 되었다.

    차창 유리 속에서 위험을 알려준 청년이 도대체 누군지 아리송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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