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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panic_100643
    작성자 : 불안먹는하마 (가입일자:2019-03-29 방문횟수:108)
    추천 : 7
    조회수 : 540
    IP : 59.10.***.118
    댓글 : 2개
    등록시간 : 2019/08/09 22:40:46
    http://todayhumor.com/?panic_100643 모바일
    그녀를 찾아 절망 속으로 들어갔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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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죄송합니다. 일찍 찾아 뵈어야 했었는데, 너무 늦어버렸네요.”
     

    그녀가 벽에 뚫려 있는 직사각형의 스테인리스 문을 들어서면서 했던 첫마디이다. 그녀는 품에 안은 색노란 상자를 움켜지고 연거푸 고개를 숙였다. 마치 죄지은 죄수마냥. 진수는 지수를 안으로 들였다. 한시라도 동생의 흔적을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물에 퉁퉁 부어 살갖이 흐느적거렸고, 머리는 듬성듬성 빠져있었다. 입은 무엇인가 물고 있는 듯 평소에 알고 있던 민주의 입술보다 몇 배는 커 보였다. 눈은 생선 눈깔처럼 툭 튀어 나왔고 반쯤 열린 눈꺼풀 안에 흐리멍텅한 눈동자가 들어있었다. 해외에서 운구되어 왔던 민주의 사체 모습이 진수의 머리를 강하게 때리고 지나갔다.
     

    유품과 유서를 본다면, 그 끔찍한 기억이 선명하게 그려지겠지만 동생에 대한 그리움보다는 진하지 않았다. 진수는 지수를 이끌고 매표소를 지나 붉은색으로 남탕이라고 적힌 유리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갔다.
     

    연갈색 바닥, 예전에는 이발소로 사용되었던 공간에는 2대의 커다란 안마의자와 같은 이발 의자, 그리고 중간에는 넓직한 평상과 관물대 위에 조그마한 브라운관이 놓여져 있다. 평상 옆에는 백발의 노인이 휠체어에 앉아 오래된 텔레비전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다. 진수는 그의 어머니 뒤로 다가갔다. 그리고 휠체어 손잡이를 잡고 지수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검버선, 하얗게 일어난 각질들. 입술은 수분하나 없이 말라 있었다. 유일하게 움직일 수 있는 노인의 눈동자는 지수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엄마, 민주 대학 동기라고 해요. 민주 유품하고 유서 가지고 왔다고 해요.”
     

    노인은 눈동자가 흔들렸고, 눈물이 순식간에 고였다.
     

    어머니, 안녕하세요. 민주 친구 지수예요. 제가 많이 늦어서 죄송합니다.”
    그녀는 비싼 명품가방을 평상에 아무렇게 던져버렸다. 그리고 상자 안에 든 민주의 유품과 유서가 적힌 종이를 꺼내기 시작했다. 민주의 책, 한 벌의 대학교점퍼, 그리고 몇 권의 전공서적. 그것이 전부였다. 거대한 상자 안에 들어있던 것은 그것이 전부였다.
     

    그래, 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난했다. 미치도록 가난해서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명문여대에 진학 할 만큼 머리가 좋았던 그의 여동생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녀가 가질 수 있는 것은 많은 빚뿐이었을 것이다. 학자금 대출과 생활비 대출. 그 증거로 유서 사이에 고이 모셔져 있는 고지서들이 눈에 들어왔다.
     

    진수는 눈물을 삼키며 상자 맨 밑에 깔려있는 유서를 발견했다. 맨 상단위에는 민주가 다니는 대학교 명이 워터마크로 선명하게 박혀있었다. 한 장의 여백에 민주의 필체로 한가득 적혀있었다. 자신의 꿈을 이랬다. 이런 꿈을 이루고 싶었는데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게 되어 안타깝다. 오빠와 어머니를 놔두고 가는 것이 심적으로 힘들다. 대략적인 이런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마지막 문장은 유독 많이 수정한 흔적들이 있었다. 여러 글씨의 퇴고 흔적들이 겹겹이 쌓여있었다.
     

    세상을 살아가기에 노력만으로 되지 않는 것이 있는 것 같다. 빚으로 얼룩진 가난으로 너무나 힘들다. 더 이상 살아갈 용기가 나지 않는다. 마지막 문장은 이렇게 끝맺어 있었다. 그리고 흐릿하게 보이는 연명이라는 글씨가 보였다.
     

    처음과 끝이 약간은 어조가 다른 듯 했지만 감정에 매몰되어버린 진수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의 어머니는 목에서 겨우 짜내는 듯한 소리로 울음을 퍼뜨렸다.
     

    지수는 죄인이 된 듯 고개를 가만히 숙이고 있었다. 눈물 한 방울,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어느덧 감정은 차분해졌다. 노인은 수면실을 개조해서 만든 방 안에서 인상을 찌푸린 채 자고 있다. 평상 위에 초록색 소주병과 과자 봉지들이 은색 속살을 드러내고 흩어져 있다.
     

    일 년이라는 기간 동안 민주의 유품과 유서를 가지고 있으면서 많은 고민을 했어요. 지금 당장 보내야 하는 것이 아닌지... 하지만 그때는 제가 어렵게 획득한 기회로 해외에 있었어요. 그래서 당장 오지도 못 한 거구요. 제 손으로 직접 전해드리고 싶었거든요.”
     

    지수의 손에 있는 조그마한 종이컵 안의 소주가 흔들린다. 취한 듯한 그녀는 변명하듯 진수에게 그동안의 사정을 말했다. 그는 그녀가 왜 이제야 나타난 이유가 무척이나 궁금했기 때문이다.
     

    민주는 빚과 가난으로 죽을 아이가 아니었습니다. 한 번도 불평하지 않은 아이였죠. 처음으로 내 동생이 해외여행을 가는 날, 그렇게 기뻐하는 표정은 여태껏 한 번도 보지 못 했습니다. 그런 아이가 그렇게 갑작스럽게 자살이라니, 믿기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좀 민감하게 반응한 것도 있었습니다. 유서를 보고, 이제는 좀 받아들여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아니, 받아들여야죠.”
     

    크고 두꺼운 손으로 작은 종이컵에 담긴 소주를 입에 털어놓았다. 그는 여태껏 부정했다. 그건 사고이거나 타살이라고 생각했다. 자살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물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나, 돌아온 동생의 유품과 유서를 보고 이제는 붙잡고 있고 싶지 않았다.
     

    저기, ..”
     

    지수는 약간 달아오른 얼굴을 하고 진수를 바라보았다.
     
    .. 오빠라고 해도 되죠? 제가 진짜 많이 고민했어요. 민주가 그렇게 되고나서, 아니, 그전에 민주가 어머니랑 오빠 자랑 많이 했거든요. 멋지고, 잘생기고..”
     

    진수는 갑작스런 접근에 안주로 뻗어나가는 손을 멈췄다.
     

    그래서 꼭 한번 뵙고 싶었어요. 이런 조금은 힘든 일로 뵙고 싶지는 않았지만.. 지금 보니 어머니도 많이 편찮으시고, 오빠께서도 일 때문에 지금 집안일도 잘 못하고 계시는 거 같은데, 제가 당분간은 왔다 갔다 하면서 도와주고 싶어요.”
     

    그는 한사코 거절했다. 하지만 지수는 친구의 죽음을 막지 못 했다는 죄책감 때문에 이렇게라도 해야 자신이 편하다고 주장을 하였다.
     

    아니, 민주씨. 그 마음 잘 압니다. 그래도 민주씨는 학교도 다녀야하고 본인 할 일이 있잖아요. 마음만 받겠습니다.”
     

    아니에요, 저 요즘 학교 잠시 안 다니고, 백화점에서 일하고 있어서요. 만약 공부를 한다면 저도 힘들겠지만. 제가 돈 벌 때만큼은 민주 오빠와 어머니에게 투자하고 싶어요. 제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이 이거라고 생각해요.”
     

    진수는 그녀가 잠시 술 취한 상태에서 흥분을 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예견은 틀렸다. 그날 이후로 지수는 그녀와 어울리지 않는 골목에 들어와 살았다.
     

    **
     

    오빠, 고마워. 내가 잘 할게요.”
     

    보상금과 융자 다 합쳐서 2. 그녀의 통장에 입금시켰다. 조만간 들어갈 주택을 사는 데 필요한 돈이다. 물론 그녀가 사업장을 꾸미는 데 필요한 돈이 더 필요하다며 몇 천 만원을 더 요구했다.
     

    그래, 잘 해보자. 나도 고마워.”
     

    진수는 평상에 앉아 조용히 티비를 보았다. 그의 어머니는 요즘 유독 힘이 없어 보인다. 구토증세가 심해지고, 온몸에 붉은 반점이 올랐다. 힘없이 꾸벅꾸벅 졸고, 기침을 한다.
     

    어머니께서 요즘 너무 힘들어 하셔서 걱정이네. 내가 음식도 골고루 먹이고, 약도 제때 먹이고 산책도 하는데..”
     

    지수는 노인을 보고 걱정스러운 눈을 했다.
     

    오늘 병원 갔다 와 봤어?”
     

    , 그냥 단순한 감기 몸살인데, 나이가 있으시다 보니 그런거라고 하시더라.”
     

    나도 걱정이네, 내일이나 모레 나랑 같이 어머니 모시고 큰 병원 다녀 와 보자.”
     

    지수는 알겠다고 하였다. 하지만 같이 갈 수 없었다. 진수의 아내는 다음날 저녁, 그가 일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홀연히 집에서 사라졌다. 바닥에는 허연 거품을 물고 정신을 잃은 어머니만 남겨두고서.
     

    진수가 자신이 살던 목욕탕을 샅샅히 뒤졌을 때 발견된 것은 사용하지 않은 매표소 안에 가득 쌓여있던 락스통들과 낙태약 미프진을 다량으로 구입한 내역이 적혀있는 영수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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