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은 젖는 게 아니라 스며든다.
가난한 아이는 선택할 수 없다. 물건을 고르는 의미가 없다.
크다 못해 늙어가는 나는 아직도 사지 않을 물건을 보지 않는다.
의미 없는 아이쇼핑을 이해할 수 없다.
그렇게 어린아이는 선택할 장난감이 없고, 선택할 옷이 없고, 주어진 것을 아껴 쓰고 필요한 것을 구할 뿐이다.
떼를 쓸 필요도 없다.
떼를 쓰는 건 가능성을 보는 건데 그럴 가능성이 없으니까…
그렇게 20대가 되고, 혼자 살림을 차릴 때 제일 저렴한 것 가질 수 있는 것만 선택했다.
쇼핑이 아니라 필수품을 구하는 것이다.
그러다 언젠가…휴가 때 여유가 생겨 에버랜드에 갔다.
가서 실컷 걷고 놀다가 마지막 기념품 가게에 들어갔는데
기린을 좋아하는 나는 기린 피규어를 한참 보다 만지다.
가격을 보고 놀라 내려놨지만 미련이 조금 남아 만지작거렸다.
아마 만 육 천 원이었나… 점심때 먹은 맛없는 점심이 칠천 원이었다.
같이 간 신랑이 선뜻 사라고 권했으나, 가격 땜에 마다하니
“머 어때? 기념이잖아?’ 하는 말에 과감히 하나 샀다.
그때가 아마 처음이었다.
날 위해 아무 쓸모 없는 물건을 산건…
왠지 모를 죄책감이 생겼다.
‘정말? 이렇게 일상생활에 아무 소용 없는 얘를 산 건데? 괜찮은 거야?’ ‘심지어 입지도 먹지도 못해?!’라고 생각했지만 기린의 촉감이 좋다.
그렇게 점점 살림이 좀 나아지고, 스타벅스에서 컵을 하나 샀다.
그때 불현듯
아 나는 플라스틱, 스테인리스 컵이나 그릇을 싫어하는구나!
나는 자기로 된 식기와 컵을 좋아하는 취향이구나!
나는 각진 것보다 둥근 것을 좋아하는구나.
쨍하게 진한 색보단 파스텔톤이 편하구나.
처음 살림을 살 때 저렴한 국자나 주걱 등은
참…화가 날 정도로 망가지지 않는다.
멀쩡한 물건을 바꿀 수가 없어서 아직도 시뻘건 플라스틱 주걱이 하나 있다. 이 일이천 원짜리 물건은 참…나보다 오래 살 거 같아.
그때 나는 취향을 선택할 수 없었다.
지금처럼 좀 더 여유 있게 보고 다문 오천 원이라도 더 썼음 나았을까… 지금처럼 맘에 드는 게 나올 때까지 천천히 둘러보고 맘에 안 들면 선택을 미룰 수 있는 것이
나는 감동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