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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친구가 이사했다.
방 하나가 딸린 1.5룸 오피스텔인데,
베란다가 있고 햇볕이 잘 든다는 점이 마음에 쏙 들었다.
퇴근 이후나 주말에는 나도 같이 지내므로
생활비는 반반씩 부담하기로 했다.
한데 막상 살아보니 지나칠 정도로 쨍쨍 내리쬐는
해의 위력에 질리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큰일이네. 너무 더워서 에어컨을 펑펑 틀어놔야 하는데
전기료가 걱정이 될 지경이었다.
그때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 준 것은 옆집에 사는 부부였다.
두 사람 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친다고 한다.
이사 와서 인사하러 갔을 때부터 인상이 좋았다.
나이 차는 있지만 적절한 거리를 둘 줄 아는
친절한 이웃으로서 교류할 만한 사람들이었다.
“우리도 햇빛으로 고민하다가 여주를 심어서 간단히 해결했어요.”
이른바 여주 커튼이다.
“그늘을 만들면 정말로 실내 온도가 2, 3도나 떨어집니다.
열매도 열리니까 일석이조예요.
우리 남편은 여름 내내 아침마다 여주로 그린 스무디를 만들어 먹어요”라고 한다.
여주를 베란다에서 키우는 건 낯설었지만
실내온도가 떨어지는데다가 먹을 수도 있다니 솔깃했다.
그런 연유로 우리는 옆집 부부의 도움을 받아 필요한 도구를 사들였다.
각종 연장에 흙, 비료, 그물망까지.
베란다에 직사각형 플랜터를 두 줄로 늘어놓고 거기에 여주 묘종을 심었다.
처음 얼마 동안은 나무젓가락을 지주로 세우고
끈으로 줄기를 부드럽게 묶어서 부러지지 않게 해둔 다음
매일 물만 주면 되었다.
한 달쯤 지나자 베란다에 멋진 여주 커튼이 완성되었다.
빽빽하게 난 푸른 잎이 풍기는 청량감은
막연히 기대하던 것 이상으로 훌륭했다.
8월에는 첫 수확도 할 수 있었다.
굵기가 꼭 내 손목쯤 되는 열매가 달려서
스무디로 만들어 먹었다.
직접 키워 먹는 채소 맛이 각별하다며 여자친구는 매우 흡족해했다.
그런데 10월 중순의 어느 날 아침,
주방 카운터에 팔꿈치를 괴고 뜨거운 커피를 마시다가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그때 처음으로 눈을 뜬 것처럼 의식했던 것이다.
어라? 우리 베란다의 여주가
그때까지도 짙은 초록색 잎을 무성하게 펼치고 있는 게 아닌가.
전혀 마르지 않았다.
게다가 열매도 달려 있다.
이상해서 물어보니 옆집의 여주는 이미 말라비틀어졌다고 한다.
“설마 11월이 되면 마르겠죠.”
부부는 그렇게 이야기하며 웃었지만.
11월이 지나고 12월이 되어도 여주는 마르지 않았다.
게다가 열매가 점점 커져갔다.
벌써 두 달 가까이 물도 주지 않았는데 말이다.
“이게 가능한 일이야? 우리 집에 뭔가 기적이 일어나고 있어.”
어리둥절한 채로 우리는 새해를 맞았다.
사실 나는 약간 찜찜했다.
아니, 겁이 났다.
그래서 말하려고 했다.
그냥 없애버리자고.
한데 그보다 먼저 여자친구가 입을 열었다.
“이 열매, 시험 삼아 먹어보면 어떨까.”
그때 강하게 말렸어야 했는데.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이런 기분 나쁜 걸 먹겠다니,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냐?
라고 말했어야 했는데.
왜 그러지 못했는지.
결국 이 지경이 되었다.
아아 그렇다.
여자친구는 내가 외출한 틈에 여주 열매를 먹고 말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기이한 몸의 변화를 겪게 되는데...
대관절 그 기이한 변화가 무엇인지.
궁금하신 형제자매님들은
미야베 미유키의 신간 <구름에 달 가리운 방금 전까지 인간이었다>
를 읽어봐 주시면 좋겠습니다.
‘하이쿠×소설의 콜라보레이션’이라는
데뷔 36년차 작가의 새로운 도전이자,
이미 은퇴를 예고한 바 있는 미야베 미유키의
미스터리×호러×에스에프×판타지가 담긴
마지막 ‘종합선물세트’ 같은 작품이니까 꼭 읽어봐 주셔야 해요.
삼송 김 사장 드림.
출처 | https://blog.naver.com/hongminkkk/2233167701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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